임진강 : 수한이 죽다 제9회
그런데 이제 고등학교 일 학년짜리인 그 녀석이 바로 그곳에 갔다 왔다는 말은 그녀석이 여자를 알게 되었
다는 말인 것이다.
첫 경험, 그것을 그런 곳에서 했다는 사실이 엄격한 유교 사상에 젖어 있는 부모님과 그런 집안 풍습에 젖어
있는 그에게는 도저히 동의 할 수 없는 일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마냥 그런 행동을 하는 녀석들을 비난만
할 수는 없었고, 오히려 때로는 그 역시 묘한 궁금증이 일기도 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시절 성숙하다고 생각하는 나름의 학생들 중 적지 않은 수가 그 사창가를 경험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녀석이 오늘 거기에 갔다 왔다니? 이것은 정말 놀랄 만한 사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
녀석이 여자를 품에 안아 본 것이 적어도 그가 알기로는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물론 그가 알지
못하는 일들이 있기는 하겠지만 그가 그 녀석이 결혼을 했다는 소식을 들은 바가 없었으니 만일 그 녀석이
여자를 품는다면 아마 그런 곳에서 그런 여자와의 하룻밤이었을 것이다. 그 녀석은 그곳을 다녀 온 그 해
여름에 원치 않는 사고를 당하게 되기 때문이다.
깜빡 졸았나? 그가 여객전무의 방송을 들으면서 놀라 눈을 떴을 때 열차는 천천히 속도를 줄이면서 역 내로
들어서고 있었다. 아직도 80년대 역사를 그대로 간직한 건물은 조금 우중충한 모습으로 그곳에 서 있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열차 표를 끊는 방식과 개찰하는 방식이 현대화 되었다는 것 외에는 별반 달라지지 않
았다.
대합실의 의자 배치, 한 쪽에 놓여있는 시들해 보이는 거피 자판기, 그 곁에 있던 작은 매점은 문이 닫혀 있
었다.
그는 열차표를 수거함에 넣고 밖으로 나간다. 오후의 햇볕이 그의 눈을 찌르듯 꽂히는 바람에 그는 한 손을
펴서 눈을 가리고 정면을 바라보았다. 일직선으로 드러난 이차선 도로, 그 끝에서 조금 더 가면 장례식장이
있는 곳이다. 택시를 타기에 조금 가깝고 걷기에는 조금 멀다 싶은 곳, 그는 가방을 어깨에 둘러메고 담배를
입에 문 뒤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역을 빠져나가면 바로 만나는 군인 극장. 학창시절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유일하게 생색 낼 수 있는 행사는
일 년에 두 번 정도 단체로 영화관람 하는 것이었다. 전곡에 있는 두 곳의 극장인 전곡극장과 군인극장, 그가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는 추석을 전후해서 장터에 들어오는 가설극장과 학교에서 단체로 관람하게 해 주는
군인극장이거나 아니면 학교 가기를 포기하고 전곡으로 나와서 오전에 만화방에 들어박혀 만화책을 보다가
오후 한 시에 시작하는 영화를 보기도 했으니 그래도 일 년에 네다섯 번 영화를 보기는 했다.
그는 다른 건물이 되어버린 군인극장 자리에 있는 커피숍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샀다. 그리고 한 입 마시
며 군인극장의 지붕이 타원형이었다는 기억을 한다. ‘영화, 그랬지,’
그가 중학교 일학년일 때, 그해 추석이 지난 며칠 후 가설극장이 들어왔다. 가설극장이 들어온 지 삼일 째 되
던 날,
“야! 오늘 영화 봐야지”
수한은 교모를 벗어 무릎에 놓으며 말했다.
학교에서부터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던 일행은 마을이 보이는 언덕위에서 땀을 식히며 앉아서 오늘 저녁에
어떻게 영화를 볼 것인가를 궁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