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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영화 <신이 보낸 사람>의 감독 김진무입니다. 오늘 무대인사일정을 마치고 늦은 밤 들어와 분주했던 마
음을 뒤로하고... 몇가지 생각들이 들어서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글을 쓰는 새벽. 오늘이 개봉 사흘째입니다. 이틀동안 여러 관객반응들을 봅니다. 조금 창피하지만 저희 영화가 상영
되는 아무 영화관이나 들어가서 떨리는 마음으로 관객반응을 살피기도 했습니다. 함께 울어주시고, 관객들끼리 어떤
묵직한 울림을 나누는 이야기를 엿들을 때... 짐짓 행복하기도 합니다.
예상치 않게 관객점유율이 첫날 39%, 둘째날은 42% 1위에 육박했습니다. 조조와 늦은밤. 아, 좀 지나치나 싶을 정도
로 퐁퐁당 퐁퐁당 상영에도 불구하고, 이른 아침부터 매진으로 찾아주시는 관객분들에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단지
언제나 그렇듯 작은 영화들에 자행되는 스크린 독과점의 현실에 좀 더 많은 관객들과 만날 수 없는 작금의 상황이 조
금 당혹스럽기도 합니다. 여기저기서 매진되었다는 소식도 들리고, 퐁퐁당 상영에도 이런 점유율에... 단체관람까지
쇄도하고 있는데... CGV측에서는 왜 극장문을 열어주시지 않는지, 오히려 오늘 스크린수를 왜 줄이시는 건지... 상업
논리 때문이라면 <관능의 법칙>을 개봉한 롯데측이 오히려 더 열려있고...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 상업
논리로 이해하기도 약간 부족한 면이 있어서 아쉬운 지점입니다. 조금만 더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전국시사를 돌면서 많은 관객들을 만나고... 2월 13일 개봉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좀 남다른 감회가 있었습니
다. 무대인사라는 것이 때때로 우스겟소리도 좀 하고, 영화 홍보도 좀 하고 그래야하는데... 관객들을 보니까 그럴 수
가 없더라구요..
저희 영화를 본 관객분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엔딩크래딧이 올라가고 난 뒤에 흐르는 일종의 ‘침묵’이 그것입
니다. 저희의 의도대로라면, 이 영화를 통해 한민족으로서의 연대적 책임의식이 관객들에게 전해지길 진심으로 바랬
었습니다. 조금은 서툴더라도, 조금은 부족하더라도... 한민족으로서 우리가 앞으로 짊어지고 가야할 휴전선 너머의
동포들의 슬픔을 함께 공감해주길 말입니다.
때문에 우리의 무대인사는 늘 진지합니다. 이 영화를 만든 연출자의 부족함에 비판을 할 순 있을 지언정, 우리는 결코
웃을 수 없습니다. 적어도, 우리가 이 땅에서 더불어 산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조금이라도 느끼셨다면 말입니다..
1년전, 충무로 현장에 북한 지하교인들을 소재로 한 인권영화를 가지고 들어간다는 것은 크나 큰 모험이었습니다. 저
는 처음에 이 영화가 제작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인터뷰를 하고 시나리오를 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그들의 슬픔
과 절망을 목도하고, 이끌리는대로 틈틈이 움직였을 뿐이었습니다. 감독으로서의 사명감이요? 그런거 제겐 거창하
고, 거추장스럽기까지 합니다. 감독이란 원래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을 찍으면서, 관객과 공유하고 싶은 것을 만들면
서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사람들이니까요. 저는 그냥 제가 하고 싶었던 거... 울림이 있었던거... 함께 나누고 싶었던
게 다였습니다.
후원을 해주십사 찾아간 뭇 교회에서는 영화가 상업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거절당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렇게 다들 안
될거라고 했었을 때, 투자자가 나타났습니다. 현재 우리 대표님은 영화제작엔 관심도 없었고, 더군다나 사람들이 개
독교영화라고 욕하는 것처럼... 신앙인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그 분은 편견없이 시나리오 보고 울었다고, 그러니까
투자하고 싶다고, 그렇게 덜컥 영화는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영화를 찍기 시작했습니다. 충무로에 먼저 나가있었던 고교시절의 단짝친구는 이 영화
의 프로듀서를 맡아주었습니다. 그는 그동안 충무로에서 쌓아왔던 두터운 우정들을 토대로 스탭들을 모았고, 함께
해줄 배우들을 만났습니다.
많은 예술장르 중에 노력하는 자가 천재를 이길 수 있는 예술이 있다면, 저는 그것이 영화라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영
화는 혼자 만들 수 없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좀 못나고 부족해도 노력하는 스탭들과의 앙상블이 그 모자람을 채워주
며 나아가는 것이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 빈 자리엔 보고, 느끼고, 말하는 관객이 있을 것입니다.
<신이 보낸 사람>에 참여한 배우와 스탭들은 크게 두가지 정도의 명분을 가지고 이 영화에 참여했습니다. 크리스천
분들, 비크리스천이라고 할지라도 북한인권에 관심이 있었던 분들, 진보진영의 배우분, 보수진영의 배우분... 너나 할
것 없이 동참해주었습니다. 적어도 우리는 대한민국 사람이니까요. 세대와 가치관이 달라도, 적어도 그건 변함없는
사실이니까요... 그들의 힘으로 이 영화가 만들어졌습니다. 저는 초자연적인 일들보다 이런 일이 현실적인 기적이라
고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이 영화는 프로파간다가 되어서는 안되며, 정치적 진영싸움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 한민족으로서 함께 울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 그 진심과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영화의 제 1원칙이었습니다. 그 누구 하나도 욕심을 내면 무너
지는건 순식간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배려하고, 인내하고, 이해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후반작업을 진행하면서 많은 배급사들에게 거절을 당했고, 우리는 영화가 개봉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지금 이렇게 상영관에서 관객들이 우리 영화를 보아주시고 있네요. 감사함에 가슴이 뜨거워집
니다.
<신이 보낸 사람>은 북한인권과 지하교인들의 이야기를 다뤘다는 이유만으로 개봉 전부터 많은 가십거리에 시달린
영화입니다. 어떤 이들은 그것을 노이즈마케팅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영화를 보지도 않고서 신천지 연류설부터
별점테러, 개독교영화, 우파선동영화... 우리 영화를 스쳐지나간 이름들입니다. 물론 그 말들이 결과적으론 영향력을
행사했는지도 모릅니다. 그 물살을 타서인지 관심을 사기도 했고, 비난을 받기도 했으니까요. 어떤 의미에선 트위터
같은 SNS등을 통해서 어떤 담론이 형성되어 그들의 실상이 수면 위로 끌어올려지길, 무엇보다 그들의 실상을 함께
보아주길 소망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요. 영화가 사람들의 구설수 속에서 너덜너덜해지더라도 제작진이 이 영화를 만들고자 했던 본질은 변할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생각하시는 좋은 영화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오랜 시간 많은 영화들을 열심히 보면
서 제가 느낀 좋은 영화란...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시각을 가지고 영화를 지지하고 비판할 수 있는 풍부한 텍스트를
가진 영화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영화를 만든 이들이 있을지언정... 영화가 관객과 만났을 때, 영화는 관객들의 감
상의 조각들로 흩어지고... 그 때부터는 영화는 그들 모두의 것이라는 제 오랜 믿음 때문입니다.
저희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은 각자의 사정과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앙의 절개를 지키는 사람, 가족을 지켜야하
는 사람, 삶의 딜레마에 고민하는 사람, 체제가 신앙이 된 사람, 현실이 가장 중요한 사람... 저는 팩트가 어디까지인
가보다 어떠한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는가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계몽적이지도, 감상적이지도, 연민
을 가지지도 않아야했습니다. 팩트로 그들의 몽타주를 만들기보다 여러 입장들을 끌어안는 ‘시선의 몽타주’가 리얼리
즘을 말해준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를 하면서 많은 것을 느낍니다. 저 또한 크리스천이기에 개독교영화는 안본다는 편견에 부딪칠 때면, 이 영화
가 크리스처니티를 기저에 깔고 있지만 종교와 이념을 뛰어넘어서 북녘땅에서 고통받고 있는 이들을 보아주길 바라
는 마음으로 만들었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은 심정이 굴뚝같지만... 그 전에 반성부터 하게 됩니다.
아.. 관객들에게 색안경을 끼고 보지 말아달라고 말하기 이전에, 색안경은 어쩌면 교회가 그들에게 씌워준건 아닐
까... 크리스천인 내가 잘못 살았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 크리스천들이 저지른 과오들 때문에. 교회가 세상을 위해 기
도해야하는데,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는 사회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낮은 자의 마음으로 섬기며 살아야하는데, 권력
으로 군림하려 했기 때문에. 반성과 회개. 그리고 삶으로 증명하며 살아야한다고, 그렇게 매일 기도했습니다. 이 영화
는 우리 사회에, 그리고 한국교계에 한번쯤 스스로에게 질문해보길 바라는 반성적 성찰을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아
마도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처절하게 몸부림치는 북한사람들의 외침과... 돈이 신앙이 되어버린 남한의 현실 중에
무엇이 더 안타까울까 생각하면서 영화를 찍는 내내 거울보기를 했습니다.
저희 영화엔 탈북자이신 북한말 선생님이 계십니다. 선생님께서는 북에 계실 때, 탈북하는 인민들을 때려잡는 일을
하셨던 여군이셨다고 합니다. 선생님과의 첫 미팅자리에서, 선생님은 제 앞에서 펑펑 우셨습니다. 본인의 상처와 죄
의식이 이 영화를 통해 조금이나마 아물 것 같다고...
두만강씬을 찍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 강을 바라보며 제게 물으셨습니다.
“감독님, 저 두만강물이 마르면... 그 강바닥에 무엇이 있을 것 같습니까...”
제가 머뭇거리자 선생님이 말을 이었습니다.
“저 두만강물이 마르면... 그 강바닥에는 수많은 성경책들로 가득할 겁니다. 수많은 지하교인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
아서 그렇게 목숨을 걸고 강을 건넙니다.”
이 말은 우리 영화의 모토가 되었습니다. 결국... 우리 영화는 자신들의 가치관을 지켜나가려는 북한의 소시민들의 슬
픔을 담고자 만들어졌습니다.
인간이 신이 된 나라... 물질이 신이 된 나라... 둘 중에 여러분은 어떤 나라가 가나안 땅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가끔은 태도가 중요해지는 영화가 있어야할 자리도 필요할 것입니다. 상영관을 나올 때, 제 손을 꼭 잡고 울어주시는
관객들 앞에서 저는 할 말을 잃습니다. 팝콘과 콜라가 어울리지 않는 영화일지라도, 멋있고 스펙터클하지 않을지라
도... 우리가 용기를 다해야 하는 영화이길 소망해봅니다.
영화, 그 자체를 지지하실 수도 비판하실 수도 있습니다. 언제나 겸허히 받겠습니다.
하지만 북녘땅의 동포들을 위해 단 1분이나마 기도해주신다면...
이 영화를 통해 그런 마음이 조금이라도 생기셨다면... 감독으로서 그것으로 다 이루
었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관심가져주시는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2월 15일 오전 04시 04분.
사랑을 담아, 김진무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