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광주일보] 신춘문예 당선 취소 표절 시
신기용(문학평론가)
2013년 [광주일보]는 신춘문예 당선 시를 취소하였다. ‘시인지망생’이라고 밝힌 한 독자가 인터넷 ‘독자투고’란(2013.1.7.)에 이덕규 시인의 시집 『밥그릇 경전』(실천문학사, 2009)에 수록된 「논두렁」을 표절한 작품이라고 이의를 제기했다. [광주일보]는 표절 의혹을 신속하게 심의한 결과 표절이라 판단했다. 그 사실을 [광주일보] (2013.1.11.) 지면을 통해 아래와 같이 당선을 취소하는 알림을 실었다.
2013년 본보 신춘문예 시 부문 김승필 씨의 「삼거리 점방」 당선을 취소합니다. 이 작품은 이덕규 시인의 「논두렁」 작품 표절인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습니다. ‘중복 응모나 작품의 표절이 밝혀질 경우에 당선이 취소됩니다.’라는 본사 신춘문예 응모 요강에 따라 해당 작품의 당선을 취소합니다.
해당 작품 응모자도 ‘당선 취소 결정’을 수용했습니다. [광주일보] 시 부문 신춘문예 심사를 맡았던 박남준·김정란 시인도 “당선 취소 결정에 이견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두 심사위원의 판단은 [광주일보]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자세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광주일보]가 신춘문예 당선 시 김승필의 「삼거리 점방」이 이덕규 시인의 「논두렁」을 표절한 시라고 인정하여 당선 취소 결정을 내렸다. 아래의 두 시를 비교해 읽어 본다. 진한 글씨로 표기한 시어를 관심 있게 보면서 시적 발상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감실감실 화랑 성냥 양초 넣고
시오리 길 전봇대 돌아 발쪽발쪽 막걸리 주전자 딱지 쫀득이 파리채 넣고
귀신같이 동네 사람 죽은 걸 척척 알아맞힌 칠복이 아재 담상담상 검정 고무신 허리띠 넣고
머리빡 기계독 오른 동네 아이 밀어 넣고
오다마 삼양라면 박카스 크라운산도 브라보콘 농심새우깡 크라운 조리퐁 뽀빠이 맛동산 회똑회똑 넣고
넙죽넙죽 상둣도가 지나갈 때 눈 한번 꿈적하고
무뚝뚝이 아버지 악다구니 밀어 넣고
알금알금 파리똥 범벅 밀레 만종 액자 춘길 아재 이발소 면도 거품 집어넣고
쑥부쟁이 구절초 애기똥풀 쇠비름 고들빼기 똘똘 말아넣고
후루룩후루룩 뚝딱 마시면 배부르겠다.
- 김승필, 당선 취소작 「삼거리 점방」 전문
찰방찰방 물을 넣고
간들간들 어린모를 넣고 바글바글 올챙이 우렁이 소금쟁이 물거미 미꾸라지 풀뱀을 넣고
온갖 잡초를 넣고 푸드덕, 물닭이며 논병아리며 뜸부기 알을 넣고
햇빛과 바람도 열댓 마씩 너울너울 끊어 넣고
무뚝뚝이 아버지를 넣고 올망졸망 온 동네 어른 아이 모다 복닥복닥 밀어 넣고
첨벙첨벙 휘휘 저어서 마시면,
맨땅에 절하듯
누대에 걸쳐 넙죽넙죽 무릎 꿇고 낮게 엎드린 생각들 길게 이어 붙인
저 순하게 굽은 등짝에 걸터앉아
미끈유월, 그 물텀벙이 한 대접씩 후르륵 뚝딱 들이켜면
허옇게 부르튼 맨발들 갈퀴손가락들 건더기째 꿀떡꿀떡 넘어가겠다
- 이덕규, 「논두렁」 전문
심사위원 김정란 씨는 [광주일보](2013.1.10.)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서두에 “김승필의 작품 「삼거리 점방」과 이덕규의 「논두렁」을 꼼꼼히 비교한 결과,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표절이라는 판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라고 명확히 밝혔다. 또한, 끝맺음에서도 “의도적인 표절이 아니라고 해도, 표절은 표절이다. 나로서는 두 작품의 유사성이 전적인 우연의 결과라고 보기 힘들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매우 유감스럽다.”라며 다시 표절임을 명확히 밝혔다. 그 주요 내용을 아래와 같이 더 읽어 본다.
표절이란 자구를 그대로 가져다 베끼는 것만이 표절이 아니다. 두 작품 사이에 완벽하게 일치하는 대목은 동사 “밀어넣고”와 “넣고”, “마시면”과 명사 “무뚝뚝이 아버지”, “후르르 뚝딱”이라는 의성어뿐이지만, 몇 자가 원작과 표절 의혹 작품에서 일치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자구를 베끼는 것보다 더 위험한 것은 창작 아이디어를 베끼는 것이다. 두 작품은 시적 발상이 완전히 똑같다. ‘시적 발상이 완전한 무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닌 다음에야 비슷할 수 있지 않은가’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문제가 되는 시적 발상은 비슷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소외되고 못난 것들을 한데 비벼 한끼 물텀벙 먹듯이 먹는다’라는 발상도 똑같을 뿐 아니라, 그 안에 사람들을 밀어넣어 마신다는 설정까지 똑같다. 특히 “무뚝뚝이 아버지”를 밀어넣는다는 발상, 극복하지 못한 아버지의 고집을 “먹어버림”으로써 오이디푸스적 상처를 극복한다는 심리적·시적 전략이 똑같다. 사람을 음식처럼 먹는다는 것은 매우 독특한 상상력이다. 그것이 우연히 겹쳐질 확률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옳다. 더욱이 두 작품은 의태어와 의성어를 특유의 토속적 호흡에 섞어 시의 리듬을 구성지게 만드는 외적 특징마저 똑같다. 역시 우연의 일치로 보기 힘들다.
인용문을 보면 김정란 시인은 “자구를 베끼는 것보다 더 위험한 것은 창작 아이디어를 베끼는 것이다. 두 작품은 시적 발상이 완전히 똑같다.”라고 분명히 하면서 시어와 시적 발상의 유사성과 근접성은 물론, 시적 발상의 일치성까지 결론으로 이끌어내었다.
김정란 시인은 시어의 표절보다는 시적 발상, 즉 아이디어의 표절이야말로 더 무서운 표절로 본 것이다. 그것은 시인으로서 올곧은 정신으로 무장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일부 시어의 일치는 우연성일 수 있다 하더라도 시적 발상에 대한 표절 행위에 대해 변명의 여지를 남기지 않았다. 이런 결론은 김정란 시인 자신의 앞날에도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다.
반면에 본심 심사를 맡았던 박남준 시인은, 심사위원으로서는 물론이고, 시인으로서도 자질이 의심스러울 정도의 핑계의 글을 [광주일보](2013.1.10.) 인터넷 홈페이지에 발표했다. ‘2013 신춘문예 시 표절 의견’이라는 글에서 ‘영감’과 ‘무의식’을 내세워 표절자를 마치 옹호하려는 넋두리를 펼쳤다. 물론 결론에서 자신의 “좁은 안목으로 인해 독자 여러분과 당선자에게 심려를 끼쳤음을 사과한다.”라는 말을 덧붙이기는 했으나, 그 말에 도달하기 위해 불필요한 말로 너무 많이 치장했다. 그 내용을 한 글자도 빠짐없이 그대로 아래와 같이 인용한다. 그 이유는 이런 자질 없는 시인이 신춘문예 심사를 맡았다는 것을 독자들이 알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등단한 지 몇 년 되지 않은 시절, 두어 번 아주 당혹스러운 문제에 부딪혔었다. 문득 영감처럼 떠오른 시의 한 구절이 어디선가 보았던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누구의 시였지? 밤새 시집을 들춰보며 찾아보았다. 그런 문장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차라리 어느 누구의 시에 그와 같은 표현이 발견되었다면 일찌감치 그 문장을 포기할 수 있었을 것이다.
며칠을 끙끙거리며 안절부절 시집들을 뒤졌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그 문장이 들어간 시마저도 포기해버린 경우가 있었다. 왜냐하면, 그 문장으로 인해 살이 돋고 옷을 입혔기 때문이다.
어떤 강력한 인상이 뇌리에 박혀 무의식 속에 자리 잡히기도 한다. 진실로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있는 것이 비슷한 조건이 주어지면 반사 신경처럼 뛰쳐나올 수도 있다. 모든 예술가, 시인이나 창작자들이 무의식적으로 떠오른 느낌에 취하지 않겠는가.
올해 [광주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자 또한 그러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심사위원의 한 사람으로 미리 점검해보지 못한 좁은 안목으로 인해 독자 여러분과 당선자에게 심려를 끼쳤음을 사과한다. 또한, [광주일보사]에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 드린다.
적어도 박남준 시인의 이번 글 수준은 엉터리다. 신춘문예 심사위원으로서 심사와 심사평, 그리고 사후 평가라는 심사의 연장선상에서 다루어야 할 문제임을 그는 간과했다. 적어도 표절이라는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잣대 앞에서 최종 결론을 내려야 하는 글 치고는 너무나 무책임하다. 어떠한 핑계로도 해명할 수 없고, 해명해서도 안 되는 표절 행위 앞에서 핵심 문장과 중심 문장을 중심으로 논리적 접근을 해야 함에도 추상적인 접근은 물론, 자기 방어기제를 작동했다. 특히 “시인이나 창작자들이 무의식적으로 떠오른 느낌에 취하지 않겠는가. 올해 [광주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자 또한 그러지 않았을까 생각한다.”라며 ‘영감’과 ‘무의식’을 내세워 표절자를 옹호하는 의미를 복선에 깔은 것 자체가 문제이다. 이런 경우 김정란 시인처럼 서두에서부터 표절임을 명확히 밝히고, 손에 잡히는 명확한 증거를 내놓아야 했었다. 그의 글은 마치 표절자에 대해 변명의 여지를 주려는 듯해 씁쓸하다.
첫댓글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표현이든 발상이든 표절은 무서운 일이고, 양심을 뭉개는 일입니다. 모르는 사이에 남의 글과 같아지지 않을까 고민하면서 새로운 시각, 새로운 표현을 찾는 것이 창작자로서의 의무가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