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용문성당
고풍스런 분위기...기도하고 싶은 마음 '절로'
천년을 이겨온 은행나무. 천연기념물 제 30호다.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 한다. 경기도 양평군 용문산에 있는 용문사를 유명케 하는 장본인. 동양에서 가장 큰 은행나무다. 키가 무려 60m에 이르고 수령도 1100년을 훌쩍 넘겼다.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 아들 마의태자가 나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들어가면서 꽂아놓은 지팡이가 자랐다고도 하고,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단장을 꽂아놓은 것이 자란 것이라고도 한다.
깊은 역사의 골을 간직하고 있는 용문. 그 중심에 용문성당(주임 배경석 신부,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다문1리 산 10)이 있다. 은행나무에서 불과 10여㎞ 떨어진 곳. 용문성당은 용문면 중심지에서 도보로 2~3분 거리에 있다.
1908년. 독일 남부 오틸리엔에 본부를 둔 '성 베네딕도 수도회'가 남자 수도회로는 처음 한국에 진출하던 그 해, 용문본당은 원주교구 원동본당에서 분가해 첫발을 내디뎠다.
용문면을 중심으로 한 인근 지역에 천주교 신자가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1866년. 병인박해 이후 박해를 피해 숨어든 신자들 수가 늘어난 양평군 일대는 1887년 풍수원본당이 설립되면서 풍수원본당 관할지역이 되었고, 1896년 원주 본당이 설립된 후에는 원주 본당에서 이 지역을 관할했다. 그런 가운데 양평군 일대 신자가 증가하자 당시 서울교구장 뮈텔 주교는 1908년 양근 및 그 인근 지역 사목을 조제 신부(파리외방전교회)에게 맡겼다. 조제 신부는 용문면 덕촌리 퇴촌으로 부임해 사목활동을 시작했고, 그것이 용문본당의 시초다. 초기 성당은 초가와 기와 성당이었다. 6.25전쟁 직후 고 김정진 신부(2004년 선종)가 성당을 신축했으며, 1964년 후임 신부를 받지 못해 양평본당 소속 공소가 됐다가 1967년 다시 본당으로 부활, 지금에 이르고 있다. 현 성당은 1992년 10월11일 새로 지은 건물이다.
역사가 오래된 성당이 그렇듯 용문성당도 어김없이 언덕 위에 있다. 겨울 찬 바람을 가슴으로 밀어내며 언덕길을 올랐다. 도시에서 접할 수 있는 일반 성당과는 다른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성모상을 성전 마당에 별도로 모시지 않고 성당 건물 정면에 모셨다.
고개를 젖혀 성모상을 올려보다 보니 마치 하늘에 오르는 듯한 수직적 상승감이 느껴졌다. 수직감과 함께 대칭성을 강조한 모습에서 전형적인 고딕 건축양식(12~17세기)이 읽혀졌다. 특히 성전 앞 부분 장식을 강조한 형식은 17~18세기 스페인 특유의 건축 양식을 빌려온 듯했다. 하지만 외양에서 느껴지는 세월과 달리 1992년 지은 성당 건물 자체 역사는 이제 10여년을 조금 넘겼을 뿐이다.
"반갑습니다. 잘 오셨습니다." 사무장이 반갑게 맞았다. 시골 성당 특유의 친밀감을 느낄 수 있었다. 사무장은 이제 막 본당 100년 맞이 사업에 돌입했다고 말했다.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를 구성, 오는 3월6일 발족할 예정이란다. 그리고 100년전 용문 신앙인들의 삶을 정리하는 작업에 나설 계획이라고 했다.
허락을 받고 성전 안으로 들어섰다. 이름난 작가가 제작한 성미술은 눈에 띄지 않았다. 하지만 화려한 장식을 배제한 고풍스런 분위기는 기도를 하고 싶다는 의욕을 북돋우기에 충분했다. 유리화를 통해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성당 안으로 은은하게 퍼지는 빛의 잔치에 나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밖으로 나오니 배경석 주임신부가 기다리고 있다.
"가정 같은 교회, 교회 같은 가정이 목표입니다". 배 신부는 교구 시노두스 정신(소공동체ㆍ 청소년 중심 사목) 실현과 신자가정의 성가정화를 100년 신앙 역사를 바탕으로 일궈내겠다고 했다. 그래서 정기적으로 가정 미사를 봉헌하는 등 가정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외형적으로는 신자수 2000여명에 미사 참례자수가 500~600여명에 불과한 작은 시골본당이지만 영적으로는 100년 역사에 못지 않는 큰 본당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배 신부는 확신에 차 있었다. 그리고 자부심이 가득했다.
은행나무 앞에 섰다. 수령 1100년을 넘긴 은행나무는 지금도 매년 가을이면 10가마가 넘는 열매를 내 놓는다고 한다. 신앙 100년을 앞두고 있는 용문성당 신앙인 2000여명. 이들이 앞으로 만들어갈 결실을 위해 두 손을 모았다. 순례문의 : 031-771-8181
**인근에 가볼만한 곳
용문성당에서 영적 평안함을 얻었다면 이제 마음의 휴식을 위해 발걸음을 돌려보자. 용문산, 용문사, 중원계곡, 사나사계곡, 대명스키장, 산음휴양림, 중미산휴양림, 양수리 등이 모두 승용차로 10~60분 거리에 있다.
▲용문산 : 권철신 등 초기교회 신자들이 신심수련에 전념한 곳이기도 한 용문산은 정상에서 뻗어내린 수많은 산줄기와 계곡이 사시사철 사람들 눈길을 사로잡는다. 바위들이 산 전체에 널려 있으며 장군약수터를 비롯한 약수터도 군데군데 있다. 또한 절묘한 기암괴석과 차고 맑은 계곡물이 산세의 수려함을 한층 돋보이게 한다. 모처럼 분위기를 내고 싶다면 오가는 중간 중간에 통나무로 지은 찻집 등 분위기 있는 카페들을 찾을 수도 있다.
▲용문사 : 용문사는 수도권에서 여행하기 좋은 사찰 중 하나로 통한다. 절 자체 규모보다는 오가기가 쉬워 많은 사람들이 나들이 삼아 찾기 때문이다. 본래 용문사는 300여개 방이 있을 정도로 큰 규모였지만 몇번 전란을 통해 대부분이 소실되고, 지금은 건물 세채만 남아있다. 입구에 놀이공원을 비롯해 야외공연장과 잔디광장등이 조성되어 있다. 특히 용문사에 이르는 울창한 소나무숲길은 풍광이 아주 좋다. 수령 1000년을 넘긴 은행나무도 반드시 구경해야 할 명소. 이밖에 용문사 반경 3km이내에 용각바위, 마당바위 등이 있어 가벼운 산행을 해 볼 만 하다.
(사진설명)
1. 용문성당 전경. 성전 앞 부분 장식에 주안점을 두었다는 점에서 중세에서 근세로 넘어오는 시기 스페인 성당 건축 양식을 닮았다.
2. 성당 내부. 100년 전통의 본당 역사에 어울리는 고풍스런 분위기는 순례객들이 영적 휴식 시간을 갖기에 손색이 없다.
3. 성전 정면에 올려진 묵주기도의 모후. 올려다 보면, 마치 하늘에 오르는 듯한 수직적 상승감이 느껴진다.
[평화신문-발행일 : 2005-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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