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가 진정 강한 군대인가?
요즘 해병대가 그 이름만큼이나 사회를 걱정스럽게 하고 있다.
동료를 총으로 쏴 죽였다.
사병이 의문의 자살을 하였다.
28년 된 베테랑 해병원사도 자살을 했다.
해병 소장이 상관를 무고(誣告)하여 구속을 당했다.
구타 가혹행위로 2010년에 505명이 영창을 갔다고 신문에 보도되고 있다.
의리에 죽고 사는 무적해병?
도대체 무엇을 보고 해병을 강한 군대라 하는가?
한(漢)나라 문제(文帝) 때 북방의 오랑캐가 쳐들어왔다.
황제는 패상성(覇上城), 극문성(棘門城), 세류성(細柳城)의 3개 성에 진을 쳤다.
그리고 황제는 세 성의 경비를 순시(巡視)하여 보았다.
먼저 패상성(覇上城), 극문성(棘門城)을 순시(巡視) 하였다.
두 성문 앞에 황제가 도착하자 성의 책임자 장수와 병사가 성문을 열고 뛰어나와 황제를 맞았다.
다음에 세류성(細柳城)을 찾았다.
황제의 마차가 성문을 들어갈려고하니 성문을 지키는 병사가 활을 겨누면서 수례를 못 들어가게 제지한다.
황제의 마부가 화를 내면서 외쳤다.
-황제의 행차다. 성문을 열라-
성문을 지키는 부장이 대답한다.
-전시(戰時)에 전장(戰場)에서는 장군(將軍)의 명령은 받아도 황제의 명령은 듣지 않습니다-
황제가 할 수 없어 글을 써서 세류성(細柳城)의 장군(將軍)인 주아부(周亞夫)에게 보내니 그때야 주아부(周亞夫) 장군이 나와서 황제를 맞았다.
황제 앞에서 주아 부는 말하기를
-전시에 갑옷 입은 군사는 절을 올리지 못합니다. 군례(軍禮)로 뵙겠나이다-
하면서 큰절을 하지 않고 꼿꼿이 서서 고개만 약간 숙인다.
이때 황제가 화난 얼굴을 풀고 낯빛을 고쳐 군신(君臣)의 예를 갖춰 전투의 노고를 치하하고 돌아갔다.
황궁으로 돌아오면서 황제의 시종들은 주아부가 무례하다고 펄펄 뛰며 분개했다.
그때 황제가 말했다
-주아부가 진짜 장군이다. 앞의 패상성(覇上城), 극문성(棘門城)은 군기가 확립 안된 부대다.
전시에서는 함부로 성문을 열어서는 안 된다.
전투를 지휘하는 것은 황제인 내가 아니고
세류성(細柳城)의 장군(將軍)인 주아부(周亞夫)다-
이후부터 장군이 머무는 부대의 군영을 뜻하는 표현으로 세류영(細柳營), 또는 유영(柳營)이라는 말을 썼다.
우리도 옛날에 군대생활을 하면서 해병대 못지않은 힘든 훈련을 받았다.
병영생활은 대부분은 그 부대 지휘관의 분위기에 따라서 좌우된다.
부대의 최고 지휘관은 부하들의 계급에 따라 군 기강을 위임한다.
병사들도 계급과 입대 순서에 따라 고참 신참으로 구분되어 갖가지 기압과 폭력을 행하지만 상급자들은 모른 체한다.
폭력에 짓눌렸던 신참은 제가 당한 것 이상으로 후임에게 되갚는다.
40년 50년 전 우리 군대 생활했던 병영 환경이 지금까지 내려오는 모양이다.
강한 군대는 동료에게 강한 것이 아니라 적앞에 강해야 한다.
강한군대는 엄격한 군기가 확립되어야 한다.
엄격한 군기확립은 동료를 폭행하고 왕따 시키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
정작 엄격해야 될 총기관리나 인사관리 병사들의 정서관리는 엉망진창인 모양이다.
진실 된 전우애가 없이는 절대로 강한 해병이 될 수 없다.
북한군을 눈앞에 둔 전선에서 목숨을 건 국토방위는 전우애를 통한 엄격한 기강확립이 없으면 “귀신 잡는 해병이 아니라 동료 잡는 해병”으로 오명을 남긴다.
참된 전우애가 없이는 적앞에 강한 해병대는 있을 수 없다.
해병대 훈련이 힘든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해병대의 고된 병영생활의 거친 정서를 “기수” “고참 신참”등의 명분으로 동료를 폭행하고 힘들게 하는 것은 절대로 강한해병이 아니라 갈등으로 인한 자중지란(自中之亂)만 일으킬 뿐이다.
이런 잘못된 전통은 빨리 고쳐야 한다.
이래서야 그 지옥 같은 해병대에 자식을 보내놓고 부모가 잠을 잘수 있겠는가?
세류성(細柳城)의 주아부(周亞夫) 장군 같은 군대 기강이 있어야 참된 해병이 될 수 있다.
☺농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