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동체 생활에 대하여 1/4 쯤 미친 사람이라 기회만 있으면 공동체를 찾아 다닌다.
7,8 년 전에 한국에서 내가 졸업한 신학 대학의 후배 학생들로 구성된 합창단이 호주에 순회공연을 왔었다.
나는 이런 기회에 학생들에게 공동체 맛이라도 보여주어야겠다는 생각에서 무리를 해서 2박 3일 일정으로 시드니에서 퀸즈랜드 방향으로 800 km를 달려 부루더후프에 갔다. 사실은 공동체에 가면 숙박, 식사에 일체 돈이 들지 않음으로 30 명이나 되는 인원의 사흘간의 숙식이 해결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 대신 하루 동안 같이 공동체 일정을 따라 함께 생활을 하고 저녁 집회 시간에 공연을 해 주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공연을 하는데 이상한 현상이 나타났다. 합창단 대원들 중에는 음악 전공자가 많아서 공연 수준이 상당히 수준급이라서 어디 가나 반응이 좋은 편이었는데 첫 곡이 끝났는데도 아무도 박수를 치지 않았던 것이다. 처음에는 200명 가까운 사람들이 무반주로 노래를 해도 박자 감각이 정확할 정도로 그들의 음악적 수준이 높은 사람들이라서 박수에 이렇게 인색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그렇게 싸가지 없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은 알기 때문에 더 이상했던 것이다. 혹시 이 사람들이 외부와 격리된 체 살아서 공연 문화가 낮 설어서 언제 박수를 쳐야 될지를 잘 몰라서 어색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두 번째 곡을 불렀는데 한 사람도 박수를 치는 사람이 없는 완전 무반응이었다.
세번 째 곡을 불렀을 때도 그들은 목석같이 앉아만 있었다.
나는 오랜 공동체 생활이 이 사람들을 왜곡 시켰구나 하고 생각이 되었다. 대원들은 조금 당황이 아니라 완전 황당 무드에 빠지고 말았지만 그래도 프로들답게 절대 침묵 속에서도 의연하게 공연을 마쳐다.
도무지 이상해서 조심스럽게 나중에 도대체 왜 박수를 치지 않느냐고 물어 보니 기가 막힌 이유가 있었다. 그들은 손바닥에 곰팡이가 날지라도 인간을 향해서 박수를 치지 않는 전통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박수를 치지 않는 까닭은 인간이 한 일을 가지고 서로 칭찬을 하지도 않고 비난을 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그 해답은 나에게 충격이었다.
그러니까 그들이 왜곡된 것이 아니라 꼭 남의 칭찬을 들어야만 기분이 좋고 조금이라도 안 좋은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금방 언짢아지는 내가 왜곡이 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생각이 유치함을 말하는 소아병적(小我病的)이라는 말이 있다. 그 순간 우리 모두는 소아병적인 사고 방식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모두 과격하게 뒤틀렸거나 부드럽게 뒤틀렸거나 중에 하나인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가만히 생각해보니 25년 전에도 이미 그런 경험을 했었다. 장애인 선교단체인 베데스다 선교회에서 해마다 여름 방학 때 장애인들 100여명을 데려다가 캠프를 했다. 요즘처럼 차가 흔하지 않을 때이어서 내가 목회하던 교회의 봉고차를 가지고 청년들을 데리고 가서 한 주간 동안 봉사를 했다. 그런데 한 주간 동안 열심히 봉사를 했는데 아무도 고맙다고 하지 않아서 섭섭함을 느꼈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곳은 모두가 자원봉사자뿐이어서 누가 누구에게 감사할 일이 없는 곳이었다. 그러니 아무도 ‘수고 했다.’고 하지 않고 ‘감사하다.’고 하지 않았다.
불교에서 ‘유아독존(唯我獨尊)’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물론 ‘세상에 타인은 없고 나만 존재 한다.’는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나만 존재 한다.’고 할 때의 ‘나’의 의미는 개인성/이기성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 ‘자아’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大我’ 즉, 세상의 모든 나가 합쳐진 ‘나’를 말한다.
오히려 일상에서의 온갖 욕망과 분별을 만들어내는 ‘小我(개인적 자아)’는 이 ‘大我’와 대결하는 것이고, 大我가 깨어나지 못하게끔 방해하는 것이다.
묵자는 “천하에 남이란 없다.”고 했다. 즉 大我뿐이란 말이다.
小我가 죽어야 大我가 산다.
‘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을 어려서부터 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수신을 하지 않아도 투표로 평천하를 할 수 있는 민주주의 사회이고 수신을 하기 위해서는 일단 백수를 면해야 하고 경제력을 갖지 못하고는 제가를 할 수 없는 시대이다.
오히려 요즘 시대에 이런 논리는 개인의 의지와 삶을 국가의 하위구성 단위로 명시하고 ‘小我’와 ‘大我’를 나눠서 애초에 하나가 되게 만들 수 없게끔 왜곡 시킬 수도 있다.
이런 논리는 권력집중을 통한 통치의 이상을 실현키 위한 유가적인 관점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요즘 시대와 맞지 않는 것이다.
자칫하면 ’수신도 못한 주제‘에, 즉 ‘백수는 정치에 관심도 갖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될 수도 있다.
삶에서 실천으로 동반되지 않는 ‘大我’의 개념은 ‘허구’와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인류의 고통과 생명의 황폐화에 맞서지 않는 모든 ‘大我’에 대한 가르침은 ‘위선적인 것’이다.
세상의 아픔을 공유 하려고 하지 않고 아무런 위험부담이 없는 편하고 안락한 ‘감성’과 ‘개념’에만 안주해서 ‘大我’를 설법, 설교하는 것은 위선일 수밖에 없다.
약자에 대한 핍박, 유린되는 인권, 부조리한 사회구조, 파괴되는 환경, 괴로운 인간의 실존의 문제에 대해서 별다른 고민도 하지 않고 그럴싸한 설명과 논리를 늘어놓으며 설법, 설교하는 ‘大我’는 ‘위선’일 뿐이다.
나는 386 시대의 젊은이들과 함께 했던 8, 90년대의 추억을 소중하게 간직하며 산다. 그래서 나는 육체적으로가 아니고 정신적으로 386세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과 정신적 연대감을 느끼며 산다. 386 세대는 실천과 실존이 따르지 않는 편안한 ‘관념에만 안주’한 가르침이 아니라 길바닥에서 약자의 생존권을 위해서 투쟁하며 땀을 흘렸던 大我的이었다.
젊은 혈기에 ‘욱’하는 심정으로 진보, 개혁, 민주를 부르짖으며 ‘데모’를 잠깐 했던 것이 아니라, 大我的 시각에서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리기 위해 온갖 유혹을 떨쳐내고 시대의 어둠과 장기간 조직적으로 싸웠다.
한 부자가 절에 큰 보시를 하고 그 공덕을 적어서 현판으로 걸어 놓자 스님이 ‘이런 큰 공덕을 적은 현판을 사람 많이 다니는 저자거리에 달아 놓지 왜 절간 구석에 달아놓았소?’ 했단다.
이것은 ‘겸손의 미덕’을 강조한 대목이 아니다. ‘보시’의 ‘핵심’은 ‘보시를 하되 했다는 생각조차 하지 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大我’에게 보시를 했기 때문에...
즉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에게 보시를 했기 때문에 그것을 했다는 생각조차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내가 내 자신의 입에 밥을 넣은 후에 ‘난 나에게 밥을 줬어. 잘했지?’라는 생각 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보시 했다는 생각자체를 마음에 담고 떠벌리는 순간에 ‘大我’에서 ‘小我’로 자아가 강등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주보에 헌금 명단을 실고 보시한 이들의 이름을 절 지붕의 기왓장에 적어 넣는 짓들은 얼마나 촌티 나는 짓들인가?
그러나 어쩌랴? 세상은 大我를 깨친 자들만 사는 세상이 아닌 것을...
‘왜 내가 머리 아프게 다른 사람과 세계의 문제까지 고민해야 하느냐?’
‘小我’적인 관점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질문이다.
그러나 부처의 ‘무한한 자비’와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은 감정적인 평안과 풍요만이 있는 행복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시종일관 자비와 사랑만 계속된다면 지루함 그 자체일 것이다.
大我의 문제에 고민하면서 실천할 때에는 끝없는 시련과 고난과 고독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를 극복하기 위해 끝없이 몸부림 치고 괴로워하지만 항시 다시 새롭게 태어나는 상태가 바로 무한하신 ‘자비’와 ‘사랑’인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예수께서 ‘왼 손이 한 일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하라’고 한 것과 ’지극히 작은 소자 하나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다.’은 ‘小我‘를 버리고 ’大我‘로 나아가라는 이야기이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 역시 그러한 노력들을 통해서 각자가 ‘小我’를 버릴 때에만 가능하다.
‘네 마음 속에 있는 하늘나라’ 또한 ‘大我’의 다른 이름이 아니다.
성경에는 이렇게 ‘大我’로의 길로 향한 풍부한 먹을거리가 넘쳐남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들은 ‘小我’만을 편식하고 있는 경향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책상에 금을 긋고 반으로 나누어 가장 친해야 할 짝궁과 다투듯이 ‘小我’적 의식구조를 갖도록 훈련되고 있다.
대다수 기독교인들이 느끼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은 ‘小我’적인 사랑에 불과하다.
눈물을 흘리고, 박수치고 사랑을 갈구하고 통곡하며 죄를 참회 하지만, 그것은 단지 ‘小我’적인 관점에서 ‘大我’(하나님)를 대상화해서 느끼는 감정적 격정일 뿐이지, ‘大我’를 실현하는 것이 아니다.
이렇기에 그들이 느낀 감정적 격정은 세상(大我)이 겪는 아픔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도, 실천도 동반하지 않고, 다만 주말마다 반복되는 건전한 취미생활일 뿐이다.
몇 해전에 돌아가신 가난뱅이 아동문학가 권 정생 선생은 평생 가난하지만 ‘大我’를 실현하는 분이었다.
진정 그 분은 혼자 외롭게 사셨지만 전 지구 공동체와 함께 사신 분이었다.
일단 공동체 생활을 시작한다면 절반은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진 것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 같다. 왜냐하면 ‘小我’를 버리지 않고는 공동체 생활은 시작부터 불가능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