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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진화
의식의 진화는 어디까지?
무조건적 사랑을 넘어서
깨달음에 이르는 길
신에 이르는 길!!!
지적 역사 전반에 걸쳐,
마음은
이성을 가질수 있는 능력 및
상징적으로 사고하는 능력과 더불어
인간성의 환원불가능한
근본적 특질이라고
일반적으로 추정되어 왔다.
인간과 동물을 구별해주는 점이
생각하는 능력 이라는 말은
흔히 인용된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마음은 사실 어떤 근본적인 것이 아니라
'유용성과 신뢰성의 범위가 한정되어 있는 의식의 부수현상'임을
알게될 것이다.
주지화는
410으로 측정되는데,
이는
지성이
인간의 궁극적 능력이라는
신념이 그 자체로 한계임을 가리킨다.
정신기능을 살펴보면서
마음에 거의 자동적으로 따라붙는 반주는
그 타고난 진술되지 않는
하지만
항상 현존하는
순진한 추정성이라는 것을
각성하는 것이 유익하다.
마음의 순진한 추정성은
부정과 자부심의 기제들에 의한
마음의 한계에 대한
통찰력 결여의 기초가 된다.
마음의 한계란
다시 말해 마음의 필연적 귀결인
나는 존재한다. 고로 나는 생각한다(측정수준 480)가 아닌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측정수준 400)"고 말하는 것이다.
만인이 자신의 세계관은 올바르고
그 밖의 것은 틀리다고 은밀히 믿고 있다.
그럼으로써
의견은
외견상의 사실이자
유사타당성을 갖는 것으로
승격된다.
마음이
의식의 기층이라기 보다는
의식의 산물이라는 것이
용이하게 관찰되는 한,
그 다음에는
의식의 본성과 기원, 발달, 잠재력을
상세히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의식은
생명자체가 갖는
본질의 한 표현
혹은 그 성질이다.
생명에 관한
근본적이고 검증가능한 진술은
생명은
죽음을 겪지도
죽음에 취약하지도 않으며
오직 형상을 바꿀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물질의 에너지 보존법칙과
마찬가지로 '생명의 보존법칙'은 거의 동일하다.
생명은 파괴될 수 없으며
오직 형상만 바꿀 수 있을 뿐이다
(측정수준 1000).
인류가 그 동안 이 결정적 이해에 관해 알지 못했다는 것은 놀랍기 짝이 없다. 그럴듯한 이유 하나는 전역사를 통틀어 모든 위대한 현인, 화신, 영적으로 앞선 스승들이 생명은 영원하다고 진술했지만, 보통의 마음은 그 진술이 일반적 진실이라기 보다는 영성이나 종교의 가르침에 국한된 것이라고 추정하여 그 위대한 진실을 구획화시켰다는 것이다.
따라서
생명은
영원하다는 것은
사실이라기 보다는
믿음의 문제라고 추론되었다.
이러한 무지에 대한
또 다른 자명한 설명은
보통 사람은
생명을 육체와 동일시하여
죽음은 일차적으로 물질적인
따라서 최종적 현상으로 비친다는 것이다.
이 표면적으로 그럴듯한 신념에도 불구하고
인류 대다수는 또한
육체가 죽은 뒤에도 영의 생명은
영의 운명에 대한 상대적으로 잘 이해되고 있는 암시와 더불어
계속된다고 일반적으로 짐작했고
또 그렇게 믿었다.
인간이
여러 세기에 걸쳐
축적한 막대한 양의 지식에도 불구하고
불확실성이
여전히 모든 철학적 지적토론을 지배하고 있고,
영적 가르침은
증명가능한 사실이 아닌
신념체계로 간주되고 있다.
따라서 기본적 질문
"즉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를 여전히 묻고 있는 인류에게 공통의 관심은 물질에 대한 철저한 조사이다.
과거의 위대한 지성과
철학자들의 소문난 박학다식에도 불구하고
위의 질문에 대한 답은
여전히 없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마음이 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답은
오직 마음의 근원
즉 의식속으로
파고 들어감으로써만 발견할 수 있다.
의식없이
마음은 존재할 수 없다.
그리고
그것 없이는
인간은
자신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지조차 못할 것이다.
의식자체의 본성
(그것은 어떻게 일어났는지,
그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은 어떻게 기능하는지)은
의식진화에 대한 연구를 통해
분명해지게 된다.
행성지구는
은하계에서 기원한 응축 에너지의 산물임이 분명한데,
그러한 현상의 역학에 대해서는 천문학은 물론
고등이론 물리학에서 여전히 연구중에 있다.
모든 물질성의
환원 불가능한 기층은
의식자체가 갖는
원초적 에너지의
환원 불가능한 기층이며,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형상으로서 식별할 수 있는
표현들을 갖는 의식의 타고난 잠재성이다.
에너지 속에서 탐지할 수 있는
우주의 더욱 큰 부분을 구성하는
비가시적 암흑 에너지와 암흑 물질은 물론
가시적 덩어리가 생겨났다.
우주에서
단 4%는 보이는 물질이고,
23%는 보이지 않는 암흑물질,
73%는 보이지 않는 암흑 에너지다.
그리하여
보이지 않는 영역은
잠재성에 비유되고,
보이는 것은 확증가능한 현실의 나타남을 대표한다.
에너지, 질량, 중력, 공간,
물질, 반물질 간의 정확한
관계의 자세한 내용은
지성이 갖는 가능성의
첨단에 대한 연구의 초점을 이룬다.
비록
양자역학은
선형적 영역과
비선형적 영역간의
이행을 이해하는 수단을 제공하지만
그 이해를 위해서는
측정된 의식수준
500(즉 인과율 개념의 한계를 넘어선)에서 시작되는
패러다임 도약이 요구된다.
현재의 의식연구를 통해 식별할 수 있는 것처럼,
나타나지 않은 것의 무한한 잠재성은
잠재적 물질 우주의 에너지 모체로서
나타난 것이 되었다.
의식의 에너지는
물질과의 접촉에서
생물학적 생명의 잠재력을 실현시켰다.
생명으로서의
의식은
하나이며,
동일한 기본적 실상이다.
영적 용어로 의식은
신성의 광휘(창세기에 나오는 하나님의 빛)다.
신이나 신성과 같은 용어는
문제를 일으킬수 있기 때문에,
사람은 그 대신 신격을 궁극적인 전능한 실상,
전 존재의 대결적이고
환원불가능한 근원으로 언급할 수 있다.
지구의 용융된 덩어리 표면이
충분히 식었을 때,
의식에 더해진 물질은
처음에는 조류나 지의류같은
원시적이고 단순한 생명 형태로 진화했다.
장구한 세월이 흐른뒤
동물지능은
최초로 바이러스 DNA로
그리고 나중에는 박테리아 DNA로 출현했다.
최초의 의식적 유기체는
박테리아였는데,
그것은 의식척도상에서
1로 측정된다.
바이러스는
자신의 DNA를 복제하며
의식이 갖는 지성의 상물이긴 하지만
그들 자신이 본래 의식하지는 않는다.
다시 말하면
바이러스는 주관이 결여되어 있다.
의미심장한 관찰결과는
형상과 기능을 포함하는 진화과정의 정확한 자리는
바로 의식자체의 장 내부이고,
의식의 장 내에서 현상의 원기는
루퍼트 셸드레이크가 형태 발생장으로 명명한
'패턴 잠재성'이라는 것이다.
잠재성은
의식의 장 안에서
패턴(지성의 정보)으로 거하고,
조건이 유리할 때
현상 세계내의 출현으로서
현실로 변형되며,
'의도에 의해서 현실화'된다.
이러한 것은
나타나지 않은 것이
그 편재함, 전능함
그리고 고전적으로 전지로 명명된
성질로 말미암아
나타난 것이 될 수 있는
능력에 의해 촉진되는데,
이는
전부를 포함하는
원초적 실상이
모든 알려져 있는 것과
알 수 있는 것을 통합하고 있음을 뜻한다.
왜냐하면
원초적 실상은
존재의 전부임의 근원, 기층, 맥락이기 때문이다.
지성은
그것에 의해 정보(즉 형상)가 알려지게 되고,
그럼으로써 전달가능한 것이 되는
전지의 성질이다.
생명이 생존하고
나중에 진화할 수 있기 위한
제일의 필수조건은
생명이 생존을 일차적 목표나 귀결로 하여
설계되는 것이다.
자가번식, 자기이익, 자기봉사는
모든 원시생명이 생존
혹은 성공하기 위한 선험적 요건이었다.
그 다음에
형상속에 든 생명의 생존은
순수한 에너지 자체의 축적,
조직화, 이용, 통합에 의존한다.
에너지는
획득해야만 하는
생명의 필수품이다.
식물수준에서
광합성은
그것을 통해
화학분자를 통합하고
이용할 수 있는 일차적 기제가 되었다.
미생물은
환경속의 분자성분을 받아들이는
통합된 시스템을 발전시켰다.
생명의 생존은
어떤 형태의 것이든
접근가능한 필수적 에너지원의 획득에 의존했다.
생명의
그러한 기본적 필요는
비상히 복잡하고
독창적인 생존시스템을 발달시킴으로써 충족되었다.
그 생존 시스템은
그들이 살아있는 형상으로서
물질세계에 출현하기 전에
의식자체의 장이
본래 타고난 지성이라는 성질이 발달한 것이었다.
엄밀히 말해
학습이 일어나는 곳은
의식에너지 장의
비물질적 영역내부였다.
그것은
루퍼트 셀드레이크가
"형성적 인과작용"으로 명시한
바로 그 수준이었다.
기록된 에너지 주파수와 패턴의 형태를 취하는
새겨진 정보는
라디오, 텔레비젼, CD, DVD등을 포함하는
아날로그 및 디지털 프로그램으로서
현대세계에서 일반적이다.
형상자체는
유전자 정보와 같은 지시문으로 전사할 수 있는
암호화된 정보다.
유사한 과정이
디지털카메라의 이미지 촬영에서 일어나는데,
화학과 물리학은
전자분광법을 통해 특정한 화학적 성질이 존재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전자기 스펙트럼의 주파수를 이용한다.
이렇듯
현대의 마음은
'보이지 않는 에너지 패턴의 존재'를
수용한다.
보이지 않는 에너지 패턴은
정보만이 아니라
특정 지시문까지 포함하며,
물질성과 형상이라는
관찰가능한 뉴턴적 차원내에서
프로그램이나 구조로서의 출현과 펼쳐짐에 선행하고
그러한 출현과 펼쳐짐의 근원을 이룬다.
의식의 에너지 장의 특징은
가장 높은 잠재성들이 표현될 수 있도록
더욱 높은 수준으로 진화해가려는 그 타고난 성향이다.
의식의 장의 진보 도중에,
어떤 지점에서
'아는 능력'이 일어난다.
그것은
주관이라는
선험적 기층을 제공하고,
일반적으로
인간뿐아니라
주요 동물의 능력으로 여겨져 온
경험하고 생각하고 느끼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한다.
위와같은 명제들의 입증은
우리가 동물계의 의식수준을 측정할 때
우리는 일시적 시간으로 이루어진
장구한 세월에 걸친
의식의 매우 분명한 진보에 대해
알게된다는 것을 드러내준다.
의식수준의 측정
박테리아 1 | 곤충류 6 |
원생동물 2 | 거미류 7 |
갑각류 3 | 양서류 17 |
어류 20 | 물소 175 |
문어 20 | 검은곰 180 |
상어류 24 | 자칼, 여우류 185 |
독사류 35 | 늑대류 190 |
코모도왕도마뱀 40 | 하마 190 |
파충류 40 | 자벨리나 195 |
하이에나, 사자, 호랑이 40 | 얼룩말, 가젤, 기린 200 |
뱀류 45 | 사슴 205 |
악어류 45 | 들소 205 |
공룡류 60 | 집돼지 205 |
고래류 85 | 엘크 210 |
돌고래류 95 | 젖소 210 |
철새류 105 | 양 210 |
육식조류 105 | 목장의 소 210 |
설치류 105 | 코끼리류 210 |
코뿔소류 105 | 원숭이류 210 |
비비류 105 | 사육마 240 |
명금류 125 | 고양이류 240 |
비둘기류 145 | 아프리카 회색 앵무새 240 |
북극곰 160 | 집고양이 245 |
회색곰 160 | 경주마 245 |
개 245 | 훈련된 앵무새 401 |
애완돼지 250, 검은 까마귀 250, 고릴라 275, 침팬지류 305, 훈련된 고릴라(코코) 405, 명금류의 노래 500, 고양이가 가르랑거리는 것 500, 강아지 꼬리를 흔드는 것 500
동물계 의식지도에서 우리는
몇가지 흥미롭고도
대단히 의미심장한 관찰을 할 수 있다.
200수준까지 동물은
포식을 통해 생존하고,
따라서 포식자의 생명은
오로지 먹이를 소비하는 데 달려있다.
인간적 가치의 관점에서 볼 때,
200수준에 이르기까지 동물은
게걸스러운 것은 물론
완전히 자기본위이고 이기적이며
자기중심적이다.
그런 수준에서의 생존은
선택이 아닌 필요에 달려있다.
포식자는
먹이를 죽이는 대상이 아니라
순전히 음식으로 본다.
만일 우리가 의식연구를 통해 포식자가 표면상의 희생자를 죽일 의도를 갖고 있는지를 묻는다면 답은 아니오이다.
포식자의 의도는
죽이는 게 아니라 먹으려는데 있다.
(즉 포식자의 생명유지에 필요한 에너지 획득은 포식에 의존한다)
생명자체는
죽임을 당할수 없고,
오직 현상을 바꿀 수 있으므로
동물 영은 계속 살아서
또 다른 육체속에 깃든다.
인간의 경우
영은
임신 3개월이 되기까지는
태아속에 들어가지 않는다
(이는 진실로 측정된다).
하등동물의 경우
영이 태아속에 들어가는 일은
좀더 일찍 일어나지만
생육가능한 동물태아가
에너지화되기를 여전히 기다려야 한다.
또한
의식연구를 통해
먹이들은 사실상 육체적 생명에
인간과 같은 식으로 가치를 두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들은
육체로의 주기적 복귀를
알아채지조차 못한다는 것이
밝혀질 수 있다.
파리나 나방이
파리채에 맞아죽는다고 해도,
그들은 변화를 알아채지 못한 채
에테르체 속에서
비행을 계속하다가
곧 또 다른 육체속으로 복귀한다.
고대 리그베다(705로 측정)에 따르면,
매 수준의 유기생명체는
자신의 생명을
고등한 생명체에게 희생하며
그리하여
자신의 삶을
카르마적으로 축성하고
고등한 형태로의 진화를 따낸다.
(생명체는 고등한 생명체에 봉사한다)
임사체험이나 유체이탈, 혹은 전생퇴행을 경험한 사람들은
이러한 진술의 참뜻을 이해할 수 있다.
이 모든 경험에서
자기정체감은 불변이다.
항상 똑같은 내가 있다.
이와 비슷하게
꿈속에서 꿈꾸는 사람의 지가감은
약화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
최면으로 전생회상을 유도했을 때,
피험자가 지난 생의 어떤 경험과 상황을
매우 선명하게 다시 사는 것 또한
사실이다.
어떤 유형의 육체속에 있든
자기 정체감은 항상 동일하다.
따라서
곤충은
이행을 눈치조차 못채고,
동물은
꿈속의 세계가
자신의 일상적 육체성과 같은 정도로
현실성과 타당성을 갖는다고 여긴다.
고양이나 개에게
꿈속의 추격전은
생시의 추격전과 같이 진짜다.
(이는 진실로 측정된다).
동물계의 측정수준들은
집단 전체의 평균을 나타내는데,
집단내부에는 개별적 편차가 있으며
또한 행동에 대한 측정수준에서 편차가 있다.
그리하여
놀이는 평균적 기능수준보다
10점 가량 높게 측정되는데,
이것은 의미심장하다.
일단
인간 가족이
동물을 입양하면
그 동물의 의식수준은
5점에서 10점 올라간다.
또 하나의 크게 흥미로운 분야는
사람들과의 장기적 상호작용을 경험한
조류와 동물이
사실상 400으로 측정되는 것이다.
그 수준은
생각하고
추론할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킨다.
그리하여
측정수준은 일정한 동물행동이
사실상 추론 능력을 반영하는지 여부에 대한
실험 과학자들 간의 논쟁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된다.
고양이가 가르랑거리는 것,
명금류의 노래,
개가 꼬리를 흔드는 것
모두가 지극히 높게,
사실상
대다수 인구보다
더 높게 측정된다는 것은
유례없는 발견이다.
애완동물이
상호작용능력과
사랑을 발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 것은
그 사랑받는 동물들이
왜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지,
즉
그들이
가슴 차크라의 앞선 개발을 보여주는 이유와
다양한 병을 앓는 사람들에게
치유효과를 갖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밝혀내기 위해
좀더 연구해야할 분야가 있음을
가리키고 있다.
동물의식의 진화에서
우리는
200수준에서
생명의 성질이 크게 변한다는 것을 아는데,
200수준은
생존하기 위해
다른 것을 잡아먹을 필요가 없는
온건한 초식동물의 출현을 특징으로 한다.
초식동물은
질소가 풍부한 거름이 되어
토양으로 돌아가고
그럼으로써 생명을 부양한다.
게다가
그들은 배설물을 통해
씨앗을 퍼뜨려 번식을 돕는다.
사랑과 전체적인 의식진보로서
나중에 출현하게 될 것에 대한 전주곡은
알과 새끼의 보호라는 원시적 형태로
동물계에서 최초로 나타난다.
그것은
고등동물 속에서
모성 본능으로 진화한다.
그리하여
의식의 임계수준 200에서는
다른 생명체를 희생시켜
자기 이익만 도모하는 것에서부터
남을 돌보고 가족간의 유대가 출현하는
보다 온건한 수준으로
의식의 성질의 주요한 변화가 입증된다.
유대가
출현하면서 집단 충성심과
사회적이고 부족적인 행동이 나타나는데,
이것은
그 자체로 생존에
부차적으로 기여한다.
하지만
집단충성과 무리형성은
또한 지배, 짝짓기 의식,
영토지배를 위한 투쟁 등
사회적 갈등의 신호탄이 된다.
이 모든 것은
인간종족에게도
일반적이다.
의식연구기법을 이용한 발달적 분석에서 볼때,
인간에고 자체는
일차적으로 동물진화의 생존 핵 현존의 산물이자
그것의 계속으로 보인다.
이는 결국
인간 두뇌의 기본구조와 생리에서
드러난다.
동물계의 의식진화와 비슷하게
인간계에서도 의식수준 200은
주요한 임계적 성질변화를 이루는 분수령이다.
200이하의 수준은
감정에 물든 다양한 정도의 에고중심성을 가리키는데,
그러한 에고 중심성에서
타인의 권리는 무시된다.
200이상에서는
온건한 예의바름 및
타인의 생명과 권리에 대한
배려가 출현한다.
현재의 인간 진화기에
지구상 전체 인구의 78%는
200이하로 측정되며,
그래서
대중매체를 통해 보도되고
세계에서 벌어지는 야만 행위들에서 번영되는 것처럼,
타인의 권리에 대한 관심 결핍이
매일같이 입증되고 있다.
의식진화와 동물계에서
에고의 기원을 바라볼 때,
우리는
에고란
일차적으로
동물 의식수준의 의식이
인간심령 내에서
지속되는 것임을 이해할 수 있다.
진화적 관점에서 볼 때
어떤 이해가 솟아나는데,
그것은(에고는)
전통적으로 악마로 몰리고
유죄선고를 받았으며
숱한 갈등, 죄책감, 괴로움의 근원이었던
에고에게 연민을 가질 수 있게 해준다.
에고는
유죄선고, 죄라는 꼬리표를 다는 것,
자루 옷과 재, 죄책감의 탐닉으로 강화된다.
이러한 것은
에고를 공격하는데
에고를 이용함으로써
에고를 강화시키는 일일 뿐이다.
에고에 대한 비난은
너무도 큰 죄책감을 낳고
그래서
인간 의식이
갈등을 처리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식은
부정, 세속, 주의, 타인에 대한 비난의 투사다.
이것은
요즘의 우리사회에서
가해자대 피해자 모델에 대한
강박적 집착으로 나타나고
그것은 세계 분쟁과 소송걸고 논쟁하기 좋아하는 사회로
인도한다.
프로이트가 밝혀낸 것처럼,
죄책감으로 인해 사람의 동물본성은 억압되며
그런 다음 그것은 타인에게 혹은
사람과 동일한 성격 결함을 갖고 있다고
소문난 어떤 신위에게 투사되게 된다.
역사를 통해 사람은
역설적으로 자신이 투사한 것들을 두려워하고,
자신의 본성속에 있는 억압된 어두운 면과
신성을 혼동한다.
에고는
규탄이나 자기혐오에 의해
해소되지 않는데,
그러한 것은 에고의 표현들이다.
에고는
자신의 내재적 본성과
기원에 대한 이해에서 솟아나는
온건하고 비도덕주의적인 수용과 연민으로 해소된다.
죄책감과 회개는
사람의 영적진화에서
단기간 일정한 실용적 유용성을 가질수도 있다.
하지만
의식지도를 살펴보면
죄책감, 자기혐오, 가책, 후회, 낙담
그리고 그와 같은 모든 부정적 위치성들은
목록의 밑바닥에 있다는 것이 눈에 띌 것이다.
반면에
용서, 사랑, 수용, 기쁨은
목록의 위쪽에 있으며
깨달음으로 이끈다.
에고의 영리함과
타고난 생존에 대한 전념은
인류의 많은 부분에서 높이 평가될 수 있다.
하지만
에고는 흔히 종교의 어두운 해석의 조력과 부추김을 받아서
대중이 의식지도 상부 즉
앞선 영적 앎에 대한 각성,
신성에 관한 지식,
모든 존재와 창조의 저변에 있는 비분별적 실상으로
인도해주는 곳에서 찾는 대신
부정성에 이르는 대로인
의식지도 밑바닥에서 찾도록 이끌었다.
의식진화는
또한 사람과의 진화에서의
의식진보로 입증된다.
네안데르탈인의 의식수준은
75로 측정된다.
그 다음에 자바인, 호모 에렉투드는 80으로 출현했다.
하이델베르크인은 80-85로 측정된다.
그 다음에 60만년 전
현대인의 조상으로 추정되는
호모사피엔스 이델타(측정수준 80)가
에티오피아에서 출현했다.
가장 최근에 이루어진 발견은
사람과 호모 플로레시엔시스인데,
왜소한 진화상의 조상인 이들은
대략 만 3천년전까지 인도네시아 폴로레스 섬에서 살았다.
그들은
뉴런 복잡성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크기가 작은 두뇌를 보상했으며
85로 측정된다.
인류전체의 의식진화는
표면상으로 느렸다.
인류는 기원전 563년 경,
붓다의 탄생시까지 90수준에 미달했다.
진화의 속도는
그 다음에 가속된 듯 한데,
그래서 예수그리스도 탄생시까지
인류전체의 의식수준은 100에 도달했다.
각 시기에
200이상으로 측정되는 인구비율은
극히 낮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대인도의 아리아 문화에서 나온 베다는 900대 후반으로
크리슈나는 1000으로 측정된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와 붓다가 입증한 것과 같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인류 전체적 의식수준이 100에서
1980년대 후반의 205수준으로
그리고 2003년 11월 조화로운 수렴에 때에 다시 2점 더 움직여,
요즘 수준인 207로 상승하는데 걸린 시간은
약 2천년이었다.
오랜 세월에 걸친
동물과 인간 양자의 형상속에 있는
생명의 측정된 의식수준을 추적하는 것 외에
유사이전의
장구한 지질시대를 관통하는
행성지구상의 생명체의
의식수준을 측정하는 것으로부터
의미깊은 추론이 도출된다.
지질시대의 의식수준
암석의 연대 | 대략 지속기간(100만년) | 생명 형태 | 생명의 측정된 수준 |
제 4기 | 1 | 인간의 출현과 지배 | 212 |
신 제 3기 | 60 | 현생동물과 식물 | 212 |
현생 포유류, 곤충과 식물의 급격한 발달 | 112 | ||
백악기 후기 | 60 | 원시 포유류, 마지막 공룡 | 84 |
백악기 전기 | 60 | 꽃피는 식물, 시조새, 최초의 포유류 출현 | 84 |
쥐라기 | 35 | 파충류의 다양화, 침엽수 | 68 |
트라이아스기 | 35 | 공룡의 출현, 소철류 식물, 뼈있는 어류 | 62 |
페름기 | 25 | 파충류의 출현, 현생 곤충류, 많은 식물과 동물군의 절멸 | 45 |
펜실베니아기(석탄기) | 85 | 최초의 파충류, 양서류, 원시 곤충류, 씨앗 양치류, 원시적 구과식물 | 35 |
미시시피아기(석탄기) | 85 | 원시 상어의 번성 | 33 |
데본기 | 50 | 최초의 양서류, 최초의 육상달팽이, 원시적 육상 식물, 완족류의 번성 | 27 |
실루리아기 | 40 | 최초의 육상생물 흔적, 전갈, 최초의 폐어류, 산호초의 확산 | 17 |
오르도비스기 | 90 | 최초의 어류, 삼엽충 번성, 많은해양무척추 동물이 최초로 출현 | 12 |
캄브리아기 | 70 | 최초의 해양 무척추동물 | 8 |
원생대, 시생대(선캄브리아기) | 1,300 이상 | 원생동물 | 2 |
조류, 지의류, 박테리아 |
가장 오래된 암석의 나이는 18억 5천만년임.
이상으로부터
우리는 의식이
점진적으로 꾸준히
진화해오고 있다는 것과
그러한 의식발전이
의식자체가
타고난 한 성질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더 이상의 증거를 이끌어 낸다.
이상 모든 것으로부터
의식은
진화를 본성으로 하기 때문에
진화를 계속할 것이라는
표면적으로 합리적인 개연성이 도출될 수 있고,
인류의 미래는
현실적으로 낙관적으로 비칠 수 있다.
그러한 진보는
또한 의식은
그 자체의 근원에 대한
앎으로 복귀하고자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영적으로 앞선
인류 구성원들은 의식은
그 자체의 본질과
근원에 대한 앎으로 복귀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복귀하는데 성공한다는 것을
전 역사에 걸쳐 되풀이해서 보고해왔다.
의식진보의
궁극적 수준들에 대해서는
인간계의 의식진화에서
가장 앞선 수준들을 나타내는
전적으로 인정받는 현인, 성인,
위대한 깨달음은 존재들을 통해
연구하는 것이 가능하다.
의식지도는
위로 600까지의 의식수준들에 대해
주로 기술하는데, 왜냐하면
그렇게 하면서 그것은 인류의 99% 이상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비록 그 수는 적지만
역사상 위대한 현인들이 보고한
지극히 앞선 의식수준들은
의식의 진화하는 성질과 인간수준에서
의식의 궁극적 진보를 재확인 해준다.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200수준 이상에서의 의식진화는
비물질적이며 오직
에너지 패턴으로만 구성되는 에테르 뇌의 발달과 더불어
뇌 생리의 변화를 가져온다.
보다 앞선 의식의 높은 주파수는
원형질 뇌와 뉴턴적 패러다임의 물질성이 갖는
반응능력을 초월한다.
대신 그것은
매우 높은 주파수의 진동하는 에너지 장들에 반응하는 능력이 있는
순수한 에너지체(영체, 에테르체, 영혼)을 요구하는데,
그 순수한 에너지체는 용량과 능력에서
컴퓨터 칩대 진공관에 비견된다.
따라서
뇌생리와 뇌화학만을 파고드는 연구는
고등이론 물리학 및 수학이 해석하는 바와 마찬가지로 한계가 있으며,
그러한 주제를 다루는 모든 학술회의는
400대로 측정된다.
영적정보의 처리는
비물질적 수단을 요구하는데,
두뇌는
그 다음에 존 에클스 경이 묘사한 바와같이
정보의 수신기로 이해된다.
뇌 생리 및 뇌의 처리 양식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대해서는 7장에서 묘사할 것이다. 하지만 붓다가 생각을 감각양식으로, 두뇌를 감각기관으로 분류한 것은 흥미로운데, 그것은 정신화가 감각, 촉각, 청각, 시각, 미각과 유사한 양식임을 가리킨다. 이렇듯 붓다는 인간이 서구 전통의 오감만이 아닌 육감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의식의 진화 및 사람으로서의 의식진화에 관한 이상의 개관을 요약하면
생각하고 추론하고
그리하여 정신화하는 능력은
동물의 정신관점을 대체한 것이 아니라
그위에 덧붙여졌을 뿐이라는 사실에
주목하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동물의식은
오직
자신의 생존에만 관심이 있고,
남들의 가치는 커녕
남들의 필요와
욕구의 충족에 관심이 없으며,
그러한 것을 인지하지도 못한다.
인지능력이
동물본능에 더해졌을때의
귀결이 갖는 그늘은
어린이 혹은 정신지체 장애인에게
총을 준 귀결에 비할만 한다.
에고에게
지성과 이성은
추가된 생존도구이자
생존양식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에고의 내재적이고
자기애적 핵심은
남을 공격하는데
정신화를 이용했다.
마음은
그런 다음
포식 목적을 거들고
일차적으로
자기애적인 목표를
추구할 수 있었는데,
세계인구의 78%는
여전히 그렇게 하고 있다.
이렇듯
영적으로 진화되지 않은
에고는
문명이 이룬 발전과
기술적 발견을
자신의 목표를 위해 이용할 뿐이다.
부족간의 전쟁은 핵전쟁이 되고, 이빨과 손톱은 지뢰밭이 되며, 총은 강도와 살인의 도구가 된다. 막대기와 돌과 화살을 대신하여, 탄도미사일이 패거리 정신과 영토침략, 알파 수컷들의 경쟁적 지배에 쓰인다. 그리하여 인류는 역사속의 그 어떤 요인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과대망상증으로 표현되는 에고중심성의 고삐풀린 압제의 희생자가 되었다.
고삐풀린 에고는
만족할줄 모르고
타인의 권리나
심지어 타인의 생명조차도 배려하지 않으며
그리하여
신성을
절대적 통치권에 대한
자신의 욕망을 가로막는
궁극적 대립물로 본다.
하지만 영리하게도 에고는 야만적 행위가 신의 이름으로, 알라의 이름으로, 신앙을 위해, 그리스도를 위해, 태양신 케찰코아틀을 위해, 혹은 훈왕 아틸라의 신을 위해 행해졌다며, 신의 재가를 얻었음을 주장하는 것으로 난국을 타개한다. 히틀러 조차도 신의 승인을 얻었다고 주장했다.
에고의 동물본성에 대해 종교는 그것으로 타인을 통제할 수 있는 무기고 속의 또다른 도구에 지나지 않는데, 이로써 에고의 고유한 약점은 생존을 위해 남에게 의존하는 것이라는 자기모순의 진실이 드러난다. 하지만 참된 힘은 독립적이고 자급자족하며 결핍이 없다.
사랑의 힘은
주는 행위를 통해 입증되고,
에고의 약점은
그것의 결핍과 부족을 통해 드러난다.
에고의 지속은
그것의 기본적 필요를
충족시키는데 달려있으므로
에고는
두려움속에서 살지만
(모든 과대망상광은 피해망상적이다),
반면에
사랑은
두려움이 없다.
변형을 불러일으키는 사랑의 성질을 입증하는 독특한 사건이 토론토의 신문들에 보도된적 있다. 다중 살인자가 될 소지가 있었던 어느 불안정한 남자가 있었는데 그는 6천발의 탄약과 다수의 무기를 소지하고 있었다. 그는 될 수있는 대로 많은 사람을 죽인 다음에 자살하려고 했다. 그는 누가 만류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프리스비를 물고 와서 놀라달라고 졸라댄 한마리 개로 인해 마음을 돌렸다.
살인자가 될 수도 있었던 그 남자는
갑자기 가슴이 변하는 걸 느꼈고,
무기들을 떨어뜨리고 내맡겼으며,
그 다음에 자신의 심리상태에 대해 도움을 청했다.
엘비스라는
이름을 가진 그 개의 500으로 측정되는 사랑임은
수월하게 기적적인 일을 성취했는데,
그것은 이성이나 간청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진화적 발달의 관점에서 볼때,
호모사피엔스라는 종은
측정된 의식수준이
같은 종안에서
대단히 폭넓은 스펙트럼을 나타낸다는 면에서
독특하다.
인류의 전체적 의식수준이 몇세기 동안 190에 머물러 있다가 205로, 그리고 지금의 207로 상승한 것은 아주 최근인 1980년대 후반의 일이다. 즉 인류의 의식수준은 자신을 구하는 포식에서 남에 대한 관심으로 집단적으로 이동했다. 통계적 평균치의 상승에도 불구하고 세계 인구의 78%는 여전히 의식수준 200이하다.
세계의 문제들이
일어나는 곳은
바로 이 거대한 부정성의 저수지다.
세계 분쟁은 진화한 부문들과 낙후되어 있고 그럼으로서 제한되어 있는 대다수 인구사이에 존재하는 엄청난 격차로 인해 불가피해 보일듯 하다.
첫댓글 의식은 생명자체가 갖는 본질의 한 표현 혹은 그 성질이다. 생명에 관한 근본적이고 검증가능한 진술은 생명은 죽음을 격지도 죽음에 취약하지도 않으며 오직 형상을 바꿀 수 있을뿐이라는 것이다
우주에서 단 4%는 보이는 물질이고, 23%는 보이지 않는 암흑물질, 73%는 보이지 않는 암흑 에너지
고양이나 개에게 꿈속의 추격전은 생시의 추격전과 같이 진짜다. (이는 진실로 측정된다).
생명자체는 죽임을 당할수 없고, 오직 현상을 바꿀 수 있으므로 동물영은 계속 살아서 또 다른 육체속에 깃든다. 인간의 경우 영은 임신 3개월이 되기까지는 태아속에 들어가지 않는다(이는 진실로 측정된다). 하등동물의 경우 영이 태아속에 들어가는 일은 좀더 일찍 일어나지만 생육가능한 동물태아가 에너지화되기를 여전히 기다려야 한다. 또한 의식연구를 통해 먹이들은 사실상 육체적 생명에 인간과 같은 식으로 가치를 두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들은 육체로의 주기적 복귀를 알아채지조차 못한다는 것이 밝혀질 수 있다. 파리나 나방이 파리채에 맞아죽는다고 해도, 그들은 변화를 알아채지 못한채 에테르체 속에서 비행을 계속하다가
동물의식은 오직 자신의 생존에만 관심이 있고, 남들의 가치는 커녕 남들의 필요와 욕구의 충족에 관심이 없으며, 그러한 것을 인지하지도 못한다
호모작대기쿠스^^
인간의 부족한 팔
2프로를 보완 해 주기 위해
진화적 발달이 이루어 질 것이라는? ㅋ
ㅎㅎㅎ 호모작대기쿠스 !!
진화적 발달의 관점에서 볼때, 호모사피엔스라는 종은 측정된 의식수준이 같은 종안에서 대단히 폭넓은 스펙트럼을 나타낸다는 면에서 독특하다
감사합니다
의식은 생명자체가 갖는 본질의 한 표현 혹은 그 성질이다. 생명에 관한 근본적이고 검증가능한 진술은 생명은 죽음을 겪지도 죽음에 취약하지도 않으며 오직 형상을 바꿀 수 있을뿐이라는 것이다.
진화적 발달의 관점에서 볼때, 호모사피엔스라는 종은 측정된 의식수준이 같은 종안에서 대단히 폭넓은 스펙트럼을 나타낸다는 면에서 독특하다. 인류의 전체적 의식수준이 몇세기 동안 190에 머물러 있다가 205로, 그리고 지금의 207로 상승한 것은 아주 최근인 1980년대 후반의 일이다. 즉 인류의 의식수준은 자신을 구하는 포식에서 남에 대한 관심으로 집단적으로 이동했다. 통계적평균치의 상승에도 불구하고 세계 인구의 78%는 여전히 의식수준 200이하다. 세계의 문제들이 일어나는 곳은 바로 이 거대한 부정성의 저수지다. 세계 분쟁은 진화한 부문들과 낙후되어 있고 그럼으로서 제한되어 있는 대다수 인구사이에 존재하는 엄청난 격차
고대 리그베다(705로 측정)에 따르면, 매 수준의 유기생명체는 자신의 생명을 고등한 생명체에게 희생하며 그리하여 자신의 삶을 카르마적으로 축성하고 고등한 형태로의 진화를 따낸다. (생명체는 고등한 생명체에 봉사한다)
만인이 자신의 세계관은 올바르고 그 밖의 것은 틀리다고 은밀히 믿고 있다.
200수준 이상에서의 의식진화는 비물질적이며 오직 에너지 패턴으로만 구성되는 에테르 뇌의 발달과 더불어 뇌 생리의 변화를 가져온다. 보다 앞선 의식의 높은 주파수는 원형질 뇌와 뉴턴적 패러다임의 물질성이 갖는 반응능력을 초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