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곳곳에 계시는 벗 님들:
11 월 15 일 아침, 집을 나서 좀 가다가 도로 들어와 옷을 하나 더 껴입고 나왔습니다. 날씨가
예상보다 추웠습니다.
광화문에서 세검정 가는 버스를 타고 자하문 앞에서 내려 오늘의 걷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자하문
근처는 봄에 서울 북쪽성곽 걷기를 할 때 내려왔던 지점입니다. 근처에는 1.21 사태 때 전사한
최 경무관 동상이 있고 클럽에스프레소 라는 커피점 과 자하손만두 집 등이 있습니다.

세검정을 향해 내리막 길을 내려오니 왼쪽에 부암동 주민센터가 있고, 이 센터를 왼쪽으로 끼고
돌아 오르막길을 올라가니 憑虛 현진건의 집 터가 나왔습니다. 빈 터에 나무 몇 그루와 마당에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고 바로 뒤 쪽에 안평대군의 별장인 무계정사가 있었습니다. 무계정사는
개인소유로 넘어가 입구는 쇠창살 문이 잠겨 있어 밖에서 무계동이라고 파인 글자와 집처마의
곡선을 넣어 사진만 한 장 찍었습니다.

다시 큰 길로 나와 세검정 쪽으로 가면서 石破停을 찾아 왼쪽 골목길로 들어갔으나 석파정으로
가는 길인 듯싶은 길은 공사가림막으로 막아져 있었습니다. 공사 중인 것 같았습니다. 할 수 없이
한정식당인 石破廊의 별채로 쓰이는 석파정의 사랑채만 둘러 보았습니다. 두 개의 방이 있고 마침
점심 때라 손님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언젠가 여기서 식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석파랑을 나왔습니다.
세검정 사거리에서 왼쪽으로 걸어 가니 弘智門이 있었습니다. 이 문은 서울성곽의 인왕산중턱에서
북한산성으로 이어지는 탕춘대성의 성문이고, 옆에 홍제천을 지나가는 부분은 5개의 아치형 水門
으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이 水門의 이름이 五間水門 이라고 하는군요. 1921년 홍수 때 파괴된 것
을 1977 년에 재건하였고, 弘智門 이라는 현판은 故 朴正凞 대통령의 글씨라고 합니다.


세검정사거리에서 상명대학교 쪽으로 오르다가 이광수가옥 이라는 표지판을 따라 왼쪽 골목길을
올라 갔습니다. 조금 올라가니 한옥 기와집 처마가 보이는, 대문은 양옥인, 집이 보여 긴가민가
하고 보니 집 앞에 안내문이 있었습니다. 1934년에 이광수님이 집을 지어 1939년까지 살았는데,
이 집에 살 때인 1937년에 춘원은 수양동우회사건으로 투옥되었다 하는군요. 나중에 이 집을 산
사람이 집을 새로 지을 때 여러 문인들의 권고를 받아들여 양옥으로 완전히 개조하지는 않고
한옥을 나름대로 살렸으며 마당에 있던 우물과 나무 등을 그대로 두었다고 하는군요. 개인 집
이라 들어가지는 못하고 대문 앞에서 북악산 쪽을 향해 옛 날 춘원이 집을 나서면서 보았을
경관을 한 장 찍고 돌아섰습니다. 1930년대 에 지은 집이라면 그대로 보존 하고 문화재로 남겨
일반인이 둘러 볼 수 있게 하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하기는 요새 같으면 친일분자
집을 왜 그냥 두느냐 하고 집 앞에서 시위가 벌어질 수도 있겠지요.
평창동쪽으로 걸어 올라 갔습니다. 가는 길에 표지석이 계속 보였습니다. 처음에는 造紙署, 다음
에는 總戎廳 그리고 平倉址 가 있었습니다. 平倉址는 총융청의 군량미창고 터 이었군요. 이 이름
에서 평창동 이름이 생긴 것 같습니다.

서울예고 건너편의 왼쪽으로 올라가는 길에 박종화고택 가는 길 이라고 표지판이 붙어 있어 그
길로 들어섰습니다. 조금 가니 눈에 확 띄는 건물이 있었습니다. “평창 오브에힐스 단독형 타운
하우스 홍보관” 이라고 붙어 있고, 건축가 이타미 준의 작품이라고 씌어 있었습니다. 이타미 준
이라는 건축가는 모르지만 건물이 아주 멋이 있어 사진 한 장 찍었습니다.

올라 가면서 보니 길 양쪽으로 고급 주택이 연이어 자리잡고 있더군요. 천천히 올라가다 보니
오른 편에 한옥 집이 보여 대문에 가 보니 “서울시 문화재 박종화 고택” 이라고 씌어 있고 문은
잠겨 있더군요. 담 너머로 보니 풍채 좋은 한옥집이 있었습니다. 한옥은 살기에는 좀 불편하지만
모양은 아주 멋있습니다. 月灘 박종화 님은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그 중 대중에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錦衫의 피” 가 아닐까요? 드라마와 영화로도 만들어져 아주 인기가 좋았지요. 그 주인공
연산군은 도봉구 방학동에 왕릉으로서는 초라한 무덤에 안장되어 있는 것을 전 달 걷기 할 때
가 보았습니다.

조금 더 올라 가다가 이제 내리막 길로 접어들어 계속 고급주택가를 지나가다가 영인문학관
이라는 팻말이 보여 그 길로 갔습니다. 이 영인문학관은 이어령 님 부부가 세운 문학관으로 전
달에는 이광수, 김동인 그리고 주요한 님의 원고와 애장품을 전시하는 행사를 가졌다 합니다.
다시 세검정길을 내려오다 보니 蕩春臺址 라는 표지석이 있었습니다. 이곳이 그 유명한 연산군이
세운 蕩春臺 가 있던 자리군요. 그런데 蕩 자가 쓸어버릴 탕 이군요. “봄을 쓸어버린다” 일견 멋
있는 이름이라고 생각 해 보았습니다.

조금 더 내려오니 개천에 주춧돌을 세운 洗劍停 이 서 있었습니다. 원래는 영조 때 세워졌는데
당시 지금처럼 인가가 밀집하지 않았을 때는 주위 풍광이 아주 좋았을 것 같습니다. 1941년에
소실된 것을 1977년에 재건하였다고 합니다.
세검정 네거리에 도착하여 석파랑 앞에서 버스를 타고 시내로 들어 와 오늘의 걷기를 마쳤습니다.
백학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