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둠지 잘린 나무
임병식
산책을 하다 어느 지점에 이르면 고개가 한쪽으로 돌아간다. 그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몽당빗자루처럼 우둠지가 잘린 나무들이다. 한때는 하늘 높이 치솟던 나무였다.
예전에는 그 우둠지에 까치가 집을 짓고 살았다. 그러나 가지가 잘려 나가면서 까치집도 함께 사라졌다. 지금은 흔적조차 없다.
그래서인지 애써 눈을 피하려 한다. 하지만 누군가 말했듯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 하면 더 생각나듯, 외면하려 할수록 시선은 자꾸 그곳으로 돌아간다.
우둠지를 잃은 나무는 균형을 잃어 보인다. 몸통만 남은 모습은 나무라기보다 말뚝에 가깝다. 풍경이 지녔던 생동감마저 함께 잘려 나간 듯하다.
그 나무를 보고 있으면 한 단어가 떠오른다.
하중(荷重).
무성한 가지에 가려 보이지 않던 몸통의 무게가 이제는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한참 바라보다 문득 생각한다.
저 무게를 떠받치는 뿌리는 얼마나 긴 시간을 견뎌 왔을까.
수많은 계절 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저 몸체를 지탱해 왔을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보이는 것에 시선을 둔다. 그러나 삶을 떠받치는 힘은 대개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잘린 나무 앞에 서면 새삼 알게 된다.
남은 것은 몸통이지만,
끝내 버티게 하는 것은 뿌리라는 것을.
높이 자란 것은 잘려 나갈 수 있어도,
깊이 뻗은 것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오늘도 뿌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말없이 그 하중을 받고 있다.
(2026)
첫댓글 잘려 나간 우둠지의 상실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뿌리의 묵묵한 헌신과
삶을 지탱하는 진정한 힘을 깊이 있게 통찰한 청석님의 예리한 秀作입니다.^^
사물시긴압축사유 수필 쓰기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쳇지피티도 그쪽으로 글을 쓰는 것이 좋겠다고 하니 앞으로 그리해볼 생각입니다.
몽당빗자루처럼 변해버린 나무를 외면하지 못하고, 그 안에서 '하중'과 '뿌리'를 발견해 내는 선생님의 따뜻하고도 날카로운 시선에 머물다 갑니다. 겉모습은 말뚝처럼 초라해졌을지라도, 땅속 깊은 곳에서 여전히 묵묵히 제 몫의 무게를 감내하고 있을 뿌리의 침묵이 들리는 듯합니다. 흔들리고 깎이는 삶 속에서도 우리가 끝내 버틸 수 있는 이유를 깨닫게 해주는 깊은 울림이 있는 글입니다. 우둠지라는 단어도 간만에 들어보니 참 좋습니다. 어제는 몸 컨디션이 안 좋아 집에 오자마자 기절했다가 오늘 다시 몸이 다시 기계처럼 굴러가고 있습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어제 선생님을 뵐수 있어 좋았습니다.
따뜻한 지성미를 많이 느꼈습니다.
요사이 사유수필 쓰기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한번 시작한 일이나 끝을 봐야할것 같습니다.
지상에 노출된 나무의 모습이 뿌리라고 보면 거의 맞을 것입니다 나무 지상부의 무게와 뿌리의 무게는 대등하다고 합니다 열매를 보고 그 나무를 알듯 나무의 모습을 통해 뿌리를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즉 우듬지가 잘려나간 나무는 뿌리와 균형을 맞추기 위해 왕성하게 새 가지를 내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서로 보지 못하지만 그렇게 조화하여 살아가는 나무를 통해 사람과 사람의 관계와 가족 구성원의 역할을 돌아보게 됩니다
나무를 보면서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사람은 또 교훈을 얻지 않나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