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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역사를사랑하는모임
 
 
 
카페 게시글
역사평론(역사가의 눈길) 昧於勇退 용퇴하는데 어두웠군요.
jdkwon 추천 1 조회 17 24.10.18 07:18 댓글 4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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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4.10.18 08:18

    첫댓글 여개의 종말이 아쉽습니다. 자살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 가요. 그가 떠날 때가 2년 남았다는 데 떠날 좋은 명분은 없었던 지요.
    이승만과 박정희의 예는 그런 경우에 적절합니다. 그들은 역사에 좋은 선례를 남기는 것이 얼마나 좋다는 인식보다 당시의 현상을 유지함을 더 중시한 탓이 아닐까요?
    좋은 사론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 24.10.18 15:13

    긴 이야기를 쓸 수가 없었는데, 여개는 촉 지역에서 성공하였지만, 조정에 끈을 대어 좋은 보직으로 출세하려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를 막았고 여개에게 막힌 이들은 환관을 끼고 막후에서 여개를 공격할 준비를 했지요. 그리고 여개가 힘을 키우면 황제도 위태로워진다는 말로 황제를 유혹합니다. 그리고 여개의 불법도 조사하게 하였는데, 한 지역을 그렇게 빨리 정돈하려면 요즈음 식으로 독재를 했던 모양입니다. 나는 여개가 너무 세상을 순진하게 생각하였던 것 같습니다. 내가 잘 하면 그만이라고 ... 그러나 세상은 안 그렇지요. 여개가 죽은 다음에 그 반대자들은 그것 보라는 듯이 그의 아들에게서 모든 재산을 환수하였습니다. 세상 인심을 공부하는 좋은 경우인 것 같습니다. 세상 인심이 정의라고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인심으로 세상을 이끌어 가려고 하는 것이 민주주의이니 이 또한 답답하지요. 하기는 다른 대안도 없지요.

  • 24.10.19 10:08

    친절한 추가 답변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비슷한 상황을 현대사만이 아니라 그 이전에도 많았습니다. 한 예를 든다면 고려조의 충렬공 감방경(1212~1300)은 안동 김씨로 우리나라 명장 중 명장이었습니다. 무인이었지만 문에도 상당한 조예가 있었습니다. 그가 무장으로 혁혁한 공로를 세우자 삼별초 난을 진압할 때 그가 반란을 준비했다는 무고를 당하여 곤혹을 치룬 예가 있습니다. 이는 원 세조의 올바른 판단으로 벗어났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충무공 이순신도 그런 예에 속합니다. 이순신의 경우 물러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자살설이 떠돌게 된 것이지요. 감사합니다.

  • 24.10.25 07:24

    용퇴에는 관직에서 물러남이 주이겠지만 자기의 주장에서 한발 물러남에도 용퇴라는 말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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