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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계: 송대관, 현철 — 젊은 시절의 대중가요와 흥겨웠던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가수들.
개그계: 전유성 — 한국 코미디의 새로운 흐름과 독특한 웃음을 보여준 인물.
배우: 이순재, 안성기 — 오랜 세월 우리 곁에서 작품 활동을 하며 한국 영화와 드라마의 역사를 함께한 배우들.
이분들의 부고를 접하면 한 사람의 죽음을 넘어 그분들이 활동하던 시대와 그 시대를 살아온 자신의 젊은 시절까지 함께 떠올리게 됩니다.
이를 심리학적으로는 자서전적 기억과 정서적 회상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특정 인물이나 노래가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한 시기의 기억을 불러오는 것이지요.
그런데 최불암씨는 앞서 언급하신 분들과 조금 다른 특별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불암씨는 배우이면서 동시에 한국 사회가 공유해 온 아버지의 이미지였기 때문입니다.
그를 생각하면 세 가지 모습이 겹칩니다.
'수사반장'의 박 반장 — 정의롭고 책임감 있는 어른.
'전원일기'의 김 회장 — 가족과 마을을 지키는 아버지.
'한국인의 밥상'의 진행자 — 사람과 음식, 고향의 이야기를 따뜻하게 전하는 어른.
특히 '전원일기'는 1980년부터 2002년까지 22년간 방송됐습니다. 한 세대가 성장하고 결혼하고 부모가 되는 동안 최불암씨는 계속 김 회장으로 우리 곁에 있었던 셈입니다.
오늘 별세 소식을 확인하면서 저도 한 가지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추억하는 연예인들의 부고가 잇따른다는 것은 단순히 유명인들이 나이가 들어 세상을 떠난다는 의미만은 아닙니다. 그분들을 보며 성장했던 우리 세대도 어느덧 인생의 후반부에 들어섰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합니다.
어쩌면 그분들의 죽음 앞에서 슬퍼하는 마음에는 두 가지가 함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즐거움과 감동을 주었던 분에 대한 애도.
그분들과 함께했던 자신의 젊은 시절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최불암씨의 부고가 조금 더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국민 아버지'라는 호칭이 단순한 홍보 문구가 아니라 오랜 세월 시청자들이 그에게 부여한 정서적 자리였기 때문입니다.
젊은 시절에는 그분들의 연기를 보며 웃고 울었는데, 이제는 그분들의 부고를 보며 우리 자신의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게 되는 것이지요.
한 시대의 배우들이 떠나고 있지만, 그분들이 출연했던 작품과 그때의 기억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최불암씨의 명복을 빕니다.
최불암씨가 나와 30년 나이 차이인데 내 친아버지는 내가 대학교 3학년때 돌아가셨는데 이때 돌아가시지 않고 자연사 하셨다면 최불암씨 나이로 보여 더욱 다른 연예인들의 부고와 다르게 느껴지는 것으로 보여~!
그 말씀을 들으니 최불암씨의 부고가 다른 연예인들의 부고와 유독 다르게 다가오는 이유가 조금 더 선명해집니다.
최불암씨와 30년 정도의 나이 차이라면, 단순히 좋아했던 배우의 죽음이 아니라 살아 계셨다면 지금쯤 그 정도 연세가 되셨을 친아버지의 모습을 겹쳐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더욱이 친아버지께서는 대학 3학년 때 돌아가셨으니, 아버지가 노년기에 접어들어 자연스럽게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볼 기회가 없으셨던 것이지요.
그런 상황에서 최불암씨처럼 아버지 세대의 연령과 풍모를 가진 분을 오랫동안 TV에서 보다가 부고를 접하면 남다른 감정이 생길 수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연예인들의 부고에는 그들과 함께했던 젊은 시절의 추억이 담겨 있을 수 있습니다.
최불암씨의 부고에는 젊은 시절의 추억뿐 아니라, 살아 계셨다면 지금쯤 노년의 아버지로 계셨을 친아버지의 모습까지 겹쳐 있을 수 있습니다.
특히 최불암씨가 연기했던 김 회장 같은 모습은 단순한 연기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겠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아버지, 가족을 지켜보는 아버지, 말없이 자녀들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모습 말입니다.
어쩌면 오늘의 감정은 최불암씨라는 배우에 대한 애도와 함께, 실제로 경험하지 못했던 아버지의 노년을 잠시 상상하게 되는 마음일 수도 있겠습니다.
일찍 떠나보낸 아버지는 나의 기억 속에 특정한 나이로 남아 있지만, TV 속 아버지들은 세월과 함께 늙어갑니다.
이 두 시간의 차이가 오늘 최불암씨의 부고를 더욱 특별하게 느끼도록 했을 것 같습니다.
고 김영삼 대통령 유모시리즈가 나온 뒤 연예인드로서는 유일하게 최불암씨 유머 관련 책도 나온 것으로 아는데(개인적으로도 이 책을 읽을려다가 앞부분에서 읽다가 그만 둔 기억이 있음) 왜 최불암씨처럼 엄해보이는 아버지상의 이미지를 가졌는데 유머시리즈와 연결이 되었을까?
흥미로운 질문입니다. 사실 최불암 시리즈의 성공에는 상당히 역설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엄하고 진지한 아버지의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에 오히려 그를 우스꽝스러운 유머의 주인공으로 만들었을 때 웃음의 효과가 커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먼저 당시 상황을 살펴보겠습니다.
1. 최불암 시리즈는 어떻게 탄생했나?
최불암 시리즈는 1990년대 초, 특히 1992년 무렵 유행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처음부터 방송 작가들이 기획한 유머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PC통신 케텔(KETEL), 하이텔, 나우누리 등의 유머 게시판에서 확산됐습니다.
기존에 존재하던 여러 유머의 등장인물을 최불암으로 바꾸기도 했습니다.
인기가 높아지면서 여러 출판사에서 책으로 출간했습니다.
나중에는 최불암 본인도 일부 유머를 TV 콩트로 직접 연기했습니다.
2. 왜 하필 최불암이었을까?
저는 세 가지 요인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① 엄숙한 이미지와 어리숙한 행동의 대비
당시 최불암씨는 '수사반장'과 '전원일기'를 통해 신뢰감과 권위가 있는 중년 남성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엉뚱한 말이나 행동을 하면 평범한 사람이 같은 행동을 할 때보다 훨씬 우스워집니다.
이것은 코미디에서 말하는 기대의 전복입니다.
② 아버지 세대에 대한 친근한 풍자
최불암씨는 무섭고 권위적인 아버지라기보다는 엄격하면서도 인간적인 아버지의 이미지가 있었습니다.
그런 인물을 바보스럽거나 엉뚱한 상황에 등장시키면 권위적인 어른을 직접 공격하지 않으면서도 웃음을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③ 최불암 본인의 대중적 인지도
유머는 등장인물을 사람들이 얼마나 잘 알고 있느냐에 따라 전달력이 달라집니다.
최불암씨는 당시 이미 전국적으로 알려진 배우였기 때문에 별다른 설명 없이도 독자들이 등장인물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3. 더 재미있는 사실: 최불암 본인도 참여했다
최불암씨는 자신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한 유머를 무조건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TV 프로그램에서 일부 에피소드를 직접 연기하기도 했습니다. 자신에 대한 풍자를 스스로 받아들인 셈입니다.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대목입니다.
자신의 권위와 이미지를 지키려고만 했다면 하기 어려운 행동이었을 것입니다.
4. 제가 주목하는 가장 큰 역설
최불암 시리즈는 단순히 최불암씨가 웃긴 사람이어서 만들어진 유머가 아닙니다.
오히려 웃기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웃음의 주인공이 되었기 때문에 성공한 유머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현상은 오늘날에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평소 엄숙하고 진지한 사람이 예상치 못한 농담을 하면 주변 사람들이 더 크게 웃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앞서 말씀하신 김영삼 대통령의 유머 시리즈와 비교하면 흥미롭습니다.
김영삼 시리즈: 실제 정치인의 말과 행동을 소재로 한 정치 풍자.
최불암 시리즈: 대중이 알고 있는 배우의 이미지와 성격을 활용한 허무개그.
두 시리즈 모두 당시 대중문화와 PC통신 유머 문화가 성장하던 시기의 산물입니다.
참고로 최불암 시리즈가 연예인 유머의 유일한 사례였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대발이 시리즈, 덩달이 시리즈 등 다른 인물 중심의 유머도 출판됐습니다.
말씀하신 책을 앞부분만 읽고 덮으셨다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최불암이라는 인물의 이미지를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재미있지만, 유머 자체는 당시 유행하던 허무개그의 문법을 이해해야 웃을 수 있는 부분이 많았으니까요.
어쩌면 최불암 시리즈의 가장 큰 웃음은 국민 아버지 최불암을 국민적인 웃음거리로 만들었는데도, 오히려 최불암의 호감도가 훼손되지 않았다는 데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노래에도 참여, 주로 아버지로서 나레이션을 하는 역할로
맞습니다. 최불암씨는 배우로서뿐 아니라 노래에서도 특유의 존재감을 보여주셨지요.
특히 말씀하신 아버지의 목소리로 노래의 도입부나 중간에 내레이션을 맡는 역할이 인상적입니다.
최불암씨의 목소리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었습니다.
중후함 – 오랜 세월을 살아온 어른의 무게가 느껴지는 저음.
친근함 – 권위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자녀에게 말을 건네는 듯한 정감.
회상과 교훈 – 인생을 돌아보거나 자녀에게 당부하는 아버지의 말투.
이런 목소리는 노래에 또 다른 서사를 만들어 줍니다. 가수가 노래로 감정을 전달한다면, 최불암씨는 아버지의 내레이션으로 그 감정에 인생의 경험을 더하는 것이지요.
특히 오늘처럼 최불암씨의 부고를 접한 날에는 그분의 얼굴뿐 아니라 목소리까지 떠올리게 됩니다.
한 가지 궁금합니다. 말씀하시는 노래는 최불암씨가 직접 부른 노래보다는, 가수가 노래하고 최불암씨가 아버지 역할로 대사를 들려주는 형태의 음반이나 가요를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최불암이 나레이션을, 정여진이 노래를 맡은 이 곡
아, 이제 어떤 형태를 말씀하시는지 정확히 알겠습니다.
최불암씨가 아버지의 목소리로 내레이션을 맡고, 정여진씨가 노래를 부르는 구성이군요.
이 조합은 상당히 상징적입니다.
최불암씨: 인생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아버지.
정여진씨: 자녀 세대의 감성과 목소리를 대변하는 가수.
노래와 내레이션: 세대 간의 정서적 교감을 만들어 내는 구성.
최불암씨는 실제로 노래를 부르지 않아도 목소리만으로 노래에 등장하는 아버지의 존재감을 만들어 냅니다.
앞서 말씀하신 친아버지와의 나이 차이, 그리고 최불암씨에게서 느끼는 아버지의 이미지까지 생각하면 이런 노래가 더욱 특별하게 들릴 수도 있겠습니다.
다만 보내주신 네이버 블로그는 제가 직접 열어 곡 제목과 가사를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곡 제목을 알려주시면 제작 배경과 정여진씨의 참여까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곡명
아빠의 말씀
아빠 언제 어른이 되나요 나는 정말 꿈이 커요 빨리 어른이 되야지 그래 아가 아주 큰 꿈을 가져라 안된다는 생각은 하지 말아요 암되고 말고 넌 지금 막 시작하는 거니까 빨리 어른이 되야지 나는 누가 이끌어주나요 그냥 어른이 되나요 나는 어쩌면 되나요 음 그래 정직하게 열심히 살아야돼 그러면 착한 엄마가 되고 훌륭한 아빠가 되는거야 내가 쓰러지면 그냥 놔두세요 나도 내 힘으로 일어서야죠 그래 아가 용기를 가져라 누구나 어른은 쉽게 되지만 혼자 일어서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아요 나는 희망이 있어요 자 아빠를 봐 올바르게 열심히 살았지 이제 이 아름다운 세상은 네 것이야 넌 지금막 시작하는거란다 내가 쓰러지면 그냥 놔두세요 나도 내 힘으로 일어서야죠 나는 지금 시작 이니까 그래 아빠가 할일은 끝난것같다 아빠 내 곁에 있어줘요 아빠가 가는 만큼 넌 오는거야 빨리 어른이 될거야 그리고 기억해다오 너를 사랑하는 이 아빠 나는 지금 시작이니까요 아빠 내 곁에 있어줘요 빨리 어른이 될거야 될거야 될거야
이제 왜 최불암씨가 단순한 배우 이상의 아버지 이미지로 기억되는지 알 것 같습니다.
곡명은 **〈아빠의 말씀〉**이군요. 가사는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특히 일반적인 대중가요의 아버지 노래와는 다른 구성이 눈에 띕니다.
제가 주목한 부분은 세 가지입니다.
1. 아버지는 가르치고, 자녀는 질문한다
노래의 전반부는 자녀의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언제 어른이 되나요?
누가 이끌어 주나요?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이에 아버지는 정직하게 열심히 살라고 답합니다.
그런데 단순히 성공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꿈을 갖고, 넘어져도 스스로 일어설 용기를 가지라는 인생의 가르침입니다.
2.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아버지의 퇴장입니다
아빠가 할 일은 끝난 것 같다
아빠 내 곁에 있어줘요
아빠가 가는 만큼 넌 오는 거야
출처 입력
저는 이 부분이 노래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는 자녀를 평생 자신의 곁에 붙잡아 두려 하지 않습니다. 자녀가 성장하면 아버지의 역할은 조금씩 끝나고, 자녀가 그 자리를 이어받는다는 세대교체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특히 자녀가 아버지에게 곁에 있어 달라고 하는 대목은 마음을 울립니다.
3. 최불암씨의 목소리가 갖는 특별함
최불암씨는 이 노래에서 단순한 내레이션 담당자가 아닙니다.
그의 목소리는 노래 전체에 아버지라는 인격을 부여합니다.
그가 오랫동안 연기해 온 김 회장 같은 아버지의 이미지와도 연결됩니다. 그래서 듣는 사람은 가상의 아버지가 아니라 실제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오늘 이 노래를 다시 생각하게 되는 이유
앞서 친아버지께서 대학교 3학년 때 돌아가셨다고 말씀하셨지요.
최불암씨와 친아버지의 나이 차이가 약 30년이라는 점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노래에는 특별히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아빠가 가는 만큼 넌 오는 거야."
이것은 단순히 자녀에게 어른이 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아버지의 세대가 물러나고 자녀의 세대가 이어받는 인생의 순리를 이야기합니다.
어쩌면 친아버지께서 살아 계셨다면 지금쯤 어떤 모습으로 늙어가셨을지, 어떤 말씀을 해주셨을지 상상하게 하는 노래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의 아버지와 자녀의 대화가 특히 마음에 남습니다.
아버지는 떠날 준비를 하지만 자녀는 아직 아버지를 보내고 싶지 않습니다.
오늘 최불암씨의 부고를 접하고 이 노래를 떠올리셨다는 것이 단순한 우연처럼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최불암씨에 대한 약력은
최불암(崔佛岩)씨의 약력을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오늘인 2026년 10월 30일 별세 소식이 보도되어, 생애와 연기 활동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고(故) 최불암
본명: 최영한(崔英漢)
출생: 1939년 인천
별세: 2026년 10월 29일
향년: 87세
직업: 배우, 전 국회의원
1. 성장과 연극 활동
서울 중앙중학교·중앙고등학교 졸업
서라벌예술대학 연극영화과에서 수학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졸업
1959년 극단 실험극회의 연극 《햄릿》으로 연기 활동 시작
1965년 국립극단 단원으로 활동
1967년 KBS 특채 탤런트로 방송계 진출
원래 연출가를 꿈꾸었지만 배우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특히 젊은 시절부터 노역을 맡으며 연기 영역을 넓혔습니다.
2. 주요 작품과 대표 배역
① 수사반장 (1971~1989)
박영한 반장 역.
정의롭고 인간적인 형사의 모습을 보여주며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무려 18년간 출연했습니다.
② 전원일기 (1980~2002)
김 회장 역.
김혜자씨와 부부로 출연하며 한국의 대표적인 아버지상을 형성했습니다. 22년간 이어진 대표작입니다.
③ 그대 그리고 나 (1997~1998)
캡틴 박 역.
가족과 세대 간 갈등을 다룬 작품에서 인상적인 아버지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④ 한국인의 밥상 (2011~2025)
진행자.
전국의 음식과 지역의 역사, 사람들의 삶을 따뜻한 목소리로 전달했습니다.
그 밖에도 《제1공화국》, 《제2공화국》, 《개구리 남편》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습니다.
3. 정치 활동
배우로서 활동하던 중 정치에도 참여했습니다.
1992년 통일국민당 비례대표로 제14대 국회의원 당선
1992~1996년 국회의원 활동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
이후 연기 활동에 복귀
4. 가족과 사회공헌 활동
배우자: 김민자씨
자녀: 1남 1녀
1970년 김민자씨와 결혼
1981년부터 초록우산 어린이재단과 인연을 맺고 아동 후원 활동
전국후원회장 등으로 장기간 활동
특히 《전원일기》의 입양 관련 에피소드가 실제 어린이 후원 활동으로 이어졌다는 점이 의미 있습니다.
5. 주요 수상 및 명예직
셀 전체 선택
열 너비 조절
행 높이 조절
| 연도 | 수상 및 경력 |
| 1969·1971 | 백상예술대상 연극 부문 남자최우수연기상 |
| 1974·1978 |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남자최우수연기상 |
| 1978 | 대종상 남우조연상 |
| 1979 | 대종상 남우주연상 |
| 1998 | 국민훈장 목련장 |
| 2014 | 은관문화훈장 |
| 2025 | 명예 국가수사본부장 위촉 |
6. 최불암이라는 배우가 남긴 세 가지 얼굴
제가 그의 연기 인생을 세 가지로 정리하고 싶습니다.
정의의 상징: 수사반장의 박영한.
가족의 상징: 전원일기의 김 회장.
한국인의 삶을 기록한 어른: 한국인의 밥상 진행자.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한다면 최불암 시리즈의 주인공입니다. 자신을 소재로 한 유머를 받아들이고 직접 코미디에 참여했던 여유도 그의 인간적인 매력 중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앞서 말씀하신 노래 《아빠의 말씀》도 이 세 가지 이미지와 연결됩니다.
특히 아버지의 목소리로 자녀에게 인생을 이야기하고, 언젠가는 아버지가 물러나 자녀가 그 자리를 이어받는다는 내용은 최불암씨가 평생 쌓아 온 이미지와 잘 어울립니다.
최불암씨는 아버지를 연기한 배우를 넘어, 여러 세대가 각자의 아버지를 떠올리게 만든 배우였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부고를 계기로 그의 작품을 다시 돌아보면, 단순히 한 배우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는 것을 넘어 한국 TV 드라마의 역사와 우리 세대의 성장 과정까지 함께 돌아보게 됩니다.
[서울=뉴시스] 조수정 기자 =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13일 입원중인 배우 최불암의 병문안을 간 사진을 SNS에 게시했다. 최 장관은 사진과 함께 "건강이 불편하셔서 입원중이신 우리의 '국민아버지' 최불암 선생님을 찾아뵙고 정중히 문안인사를 드렸습니다. 특유의 '파하' 웃음으로 반갑게 맞아주셔서 무척 많이 안심이 되었습니다" 라고 SNS에 적었다. (사진=최휘영 장관 SNS 캡처) 2026.06.14.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출처] - 뉴시스
[원본링크] - https://www.newsis.com/view/NISX20261030_0003848028
올려주신 사진은 최불암씨가 입원 중이던 2026년 6월 13일,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병문안을 갔을 때의 모습이군요.
사진에서 눈에 띄는 것은 최불암씨가 병상에 누워 있으면서도 환하게 웃고 있다는 점입니다. 최 장관의 설명에도 특유의 '파하' 웃음으로 반갑게 맞아주었다는 내용이 있네요.
사진에는 부인 김민자씨와 가족으로 보이는 분들도 함께 자리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 사진은 6월 당시의 병문안 기록이므로, 10월의 별세 여부를 판단하는 자료와는 구분해야 합니다.
이 사진을 보니 앞서 이야기한 최불암씨의 마지막 시기가 조금 더 구체적으로 다가옵니다.
특히 세 가지가 눈에 들어옵니다.
최불암씨의 표정: 병상에 누워 있지만 사진 속에서는 특유의 넉넉한 웃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김민자씨의 모습: 오랜 세월 함께한 배우자의 병문안 자리라는 점에서 부부의 세월도 생각하게 됩니다.
최휘영 장관의 병문안: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직접 찾아가 문안할 정도로 최불암씨가 문화계에서 차지하는 상징적 위치를 보여줍니다.
제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최불암씨가 병상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아빠의 말씀》의 가사가 다시 떠오릅니다.
"아빠가 할 일은 끝난 것 같다."
이 노래에서는 아버지가 자녀에게 자신의 역할을 넘겨주려 하지만, 자녀는 여전히 아버지가 곁에 있어 주기를 바랍니다.
오늘 최불암씨의 소식을 접하면서 이 노래가 더욱 각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이 사진은 6월 13일 당시의 모습이므로 이후 건강 상태나 별세 경위를 설명해 주는 자료는 아닙니다. 오늘의 부고와 연결할 때는 그 점을 구분해야겠습니다.
[단독] 최수종, 故 최불암 추모 다큐 내레이션 맡는다…11월 1일 방송
이 소식은 앞서 이야기한 최불암씨의 아버지 이미지와도 상당히 잘 연
결됩니다.
특히 저는 최수종씨가 내레이션을 맡는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최수종씨는 최불암씨의 뒤를 이어 KBS 〈한국인의 밥상〉 진행자가 된 후임자입니다. 이번에는 단순히 프로그램의 진행을 이어받는 것을 넘어 선배의 삶을 추억하는 목소리까지 맡게 된 것입니다.
[단독] 최불암→최수종 '한국인의 밥상' 대물림…"15년 가까이 했으니" (인터뷰 종합)
chosun.com
방송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10월 30일 오후 11시 10분: KBS 추모 특집 〈따뜻한 어른, 최불암 – 당신이 길이었습니다〉
11월 1일 오후 8시 10분: KBS 추모 특집 〈밥상지기 최불암, 당신을 기억합니다〉 — 최수종 내레이션.
뉴스1+1
저는 이번 추모 다큐멘터리의 의미를 이렇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한 시대의 아버지가 떠나고, 다음 세대의 아버지가 그를 기억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입니다.
최불암씨가 오랫동안 전국의 밥상을 찾아다니며 사람들의 삶을 소개했
다면, 이제 최수종씨가 그 발자취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앞서 말씀하신 〈아빠의 말씀〉의 가사 중 "아빠가 가는 만큼 넌 오는 거야"라는 구절이 다시 떠오릅니다.
이번 방송은 그 가사가 현실에서 구현되는 듯한 세대교체의 장면이기도 합니다. 놓치지 않고 보시면 좋겠습니다.
최수종씨가 최불암씨를 이어 '한국인의 밥상'을 진행하고 있었는 줄 몰랐네. 최수종씨는 형님뻘인데 내게 의미있는 연예인인데 본능적으로 끌린 두번째 연예인이였는데(첫째는 노주현씨) 끌린 이유는 모름. 두 사람다 잘생겨서는 아니고 성품이나 행동이 내 마음에 들어서인지 알 수 없음. 최수종씨가 청추스타에서 사극에서 위인역할을 많이했고 예능에서도 두각을 드러냈기에 아직 최불암씨 같은 아버지의 이미지는 크지 않음. 이전에 주말드라마에서 걸그룹출신인 유이의 아버지 역할을 하긴 했지만 아직 아버지 인상을 주는 이미지는 아님. 청춘스타 출신이자 사극의 위인 중심의 이미지를 덮을 정도의 드라마에서 아버지 역할이 필요한데 최불암씨처럼 전원일기 같은 장기적으로 드라마를 할 수 없는 형편이라 최불암씨 같은 국민아버지의 위치에 오를 배우는 어려워 보이기도 함.
말씀을 읽으면서 최수종씨에 대한 평가가 상당히 흥미롭다고 느꼈습니다. 특히 최수종씨를 좋아하지만 아직 최불암씨와 같은 아버지의 이미지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는 구분이 중요해 보입니다.
실제로 최수종씨는 2025년 4월부터 최불암씨의 뒤를 이어 KBS 〈한국인의 밥상〉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제가 앞서 말씀드린 후임자 관계는 맞습니다. 다만 최수종씨가 맡은 역할은 최불암씨의 이미지를 그대로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어가는 것입니다.
1. 최수종씨에게는 아직 청춘스타와 역사적 인물의 이미지가 강합니다
최수종씨의 연기 이력을 보면 상당히 독특합니다.
젊은 시절에는 청춘스타이자 멜로드라마의 주인공.
이후 〈태조 왕건〉의 왕건, 〈해신〉의 장보고 등 역사적 인물.
여러 사극에서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짊어진 지도자 역할.
예능에서는 친근하고 유쾌한 모습.
이런 이미지들은 대부분 개인의 가족 안에서 아버지로 살아가는 모습보다는 대중 앞에서 활약하는 주인공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도 시청자에게는 여전히 왕이나 영웅, 청춘스타의 연장선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2. 최불암씨와 최수종씨의 결정적인 차이
최불암
전원일기의 김 회장
오랜 세월 축적된 아버지 이미지
권위와 친근함의 공존
한국 사회의 아버지상
최수종
청춘스타 출신
역사적 영웅과 지도자
다정하고 적극적인 성품의 이미지
국민 남편·친근한 이웃
최수종씨도 〈하나뿐인 내편〉에서 유이씨의 아버지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러나 한 작품에서 아버지를 연기하는 것과 오랜 세월 시청자들에게 아버지로 인식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최불암씨의 김 회장은 22년이라는 시간이 만들어 낸 이미지입니다. 배우의 연기뿐 아니라 시청자 자신의 성장과 가족사가 함께 축적된 결과이지요.
3. 최수종씨도 이 차이를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흥미롭게도 최수종씨는 2025년 〈한국인의 밥상〉 후임 진행자로 선정됐을 때 다음과 같은 취지의 말을 했습니다.
최불암씨가 아버지의 시선으로 사람들을 만났다면 자신은 아버지, 아들, 삼촌, 이웃집 형이나 오빠의 역할도 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발언이 상당히 의미 있다고 봅니다.
최수종씨는 최불암씨의 자리를 그대로 차지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연령과 성품에 맞는 친근함으로 접근하려는 것 같습니다.
4. 국민 아버지의 탄생은 가능한가?
말씀하신 대로 오늘날에는 최불암씨의 〈전원일기〉와 같은 장기 가족드라마를 다시 만들기가 쉽지 않습니다.
방송 환경이 달라졌습니다.
장기 방영 드라마보다 시즌제와 단기 작품이 많아졌습니다.
시청자의 세대별 취향이 분화됐습니다.
배우의 이미지가 한 작품에 장기간 고정되기 어려워졌습니다.
예능과 드라마, 유튜브 등 활동 영역이 다양해졌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최불암씨와 같은 국민 아버지가 등장하려면 단순히 아버지 역할을 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것입니다. 여러 세대가 오랫동안 함께 보고 신뢰할 수 있는 작품과 인물이 필요합니다.
5. 노주현씨와 최수종씨에게 끌렸던 이유
마지막으로 처음 말씀하신 내용이 저는 더 흥미롭습니다.
첫 번째가 노주현씨, 두 번째가 최수종씨였다는 점입니다.
두 사람은 연기 스타일과 대중적 이미지가 상당히 다릅니다.
노주현씨는 차분하고 여유 있으며 세련된 중년 남성의 이미지가 있습니다.
최수종씨는 적극적이고 열정적이며 상대방에게 정성을 다하는 이미지가 강합니다.
그런데 두 사람 모두 외모의 잘생김보다는 사람 자체에서 느껴지는 호감이 있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혹시 두 사람에게서 공통적으로 느낀 것이 있다면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기보다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에서 나오는 호감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실제 성품 전체를 평가하는 것과 대중에게 보여지는 이미지는 구분해야 합니다.
제 생각에는 최수종씨가 앞으로 국민 아버지의 위치에 오르지 못한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최불암씨와 똑같은 길을 갈 필요도 없습니다.
최불암씨가 한국의 아버지였다면 최수종씨는 한국의 다정한 형님이나 삼촌으로 시작해서 또 다른 어른의 이미지를 만들어 갈 수도 있겠습니다.
국민 아버지는 나이가 많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국민의 마음속에서 아버지로 살아야 만들어지는 자리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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