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샤론강단-448 12제자를 파송하시다(누가복음9장1-6절)
성경말씀은 누가복음 9장 1절에서 6절까지 봉독합니다.
[누가복음 9장]
1 예수께서 열 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시고
2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어 보내시며
3 이르시되 여행을 위하여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주머니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며
4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서 유하다가 거기서 떠나라
5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지 아니하거든 그 성에서 떠날 때에 너희 발에서 먼지를 떨어 버려 저희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6 제자들이 나가 각 촌에 두루 행하여 처처에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치더라
누가복음 제 9장에는 제자들을 파송하는 내용인데, 우리 교회도 블라디보스톡으로 두분이 파송하는 날이어서 감회가 새롭습니다.
[누가복음 9장]
1 예수께서 열 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시고
구약시대에 보면 선지학교가 있었던 것 같거든요. 엘리야 엘리사 때에..
그런데 파송을 했다는 말이 없어요.
그리고 구약시대 선지자 학교에서 뭘 가르쳤으며 무슨 교육을 어떻게 했기에 엘리야 엘리사 두 사람밖에 일을 못하고 나머지는 흐지부지 되고 말았던 것 같아요.
연구할 만한 자료가 없어서 구약시대의 선지자 학교가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무엇을 배워서 어떻게 했느냐? 하는데 대한 연구가 별로 안 되었습니다.
아마 규명될 수 있다면 교육이 잘못되었다고 볼 수 있고, 교육이 하나님을 말씀을 인격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약간의 신비주의적인 그런 학교가 아닌가 하거든요.
예언자 학교 하면서 오늘 우리 한국교회에서 예언자 학교와 비슷한 것이 아니었겠는가..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은 어떤 신비한 뭐가 있으면 움직이고, 그렇지 않으면 객관적 역사적 진리를 가르치는 것을 잘 못했던 것 같아요.
반면에 오늘날 신학교는 이성적으로 지식적으로는 꽤 많이 하는 것 같은데,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도 없이 목사가 되어 나온다는 거야.
둘 다 잘못된 거죠.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면서 진도가 어디까지 갈지 모르지만, 예수님께서 맨 먼저 제자들에게 모든 귀신을 제어하고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셨다.
그런데 저는 그런 어떤 능력을 받는 무슨 감각적인 어떤 체험 그런 게 없이 성경에 그렇게 되어 있길래 가서 그대로 귀신을 명하고 또 병자를 위해서 기도하고 그렇게 하면 병자가 낫기도 하고 귀신이 쫓겨나기도 하고 그랬단 말이죠.
그래서 성경을 배우자마자 채 1년 안팎되었을 때에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를 위해서 기도하는데, 신학교에 가니까 귀신이라는 것을 조금도 다루거나 귀신에 대한 어떤 이해를 할만한 어떤 특강도 한 시간도 없이 지나가는 거예요.
상식적으로도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싸움을 할 수 있는데, 우리의 적은 혈과 육이 아니고, 공중의 권세잡은 악령들인데, 신학교에서 마귀론 귀신론이 단 한시간도 없습니다.
학부에도 없고 신대원 가도 없고 석사 박사 과정에 가도 없어요.
그러니까 모릅니다. 목사님들이..
그래서 서양신학에서는 ‘옛날 동양에서는 어떤 질병들을 귀신인 줄로 알았다.’ 이렇게 되어 있어요.
주석들을 보면..
그러니까 서구 신학자들이 귀신을 안 믿는 신학자가 대부분이야.
그러니 신학이 될리가 없죠.
제가 성경강좌할 때마다 ‘성경이 하나님 이야기 사람의 이야기 사탄의 이야기이다.’
그러니까 사탄의 이야기를 빼버리면 신학도 안 되는 건데..
서구 신학이 그렇게 한국에 수입되다보니까 전혀 목회자들이 귀신을 제어하거나 이렇게 못해요.
그리고 예수님은 불과 3년도 채 안 되었는데, 제자들을 바로 파송하시거든요.
교회가 파송하는 것을 전혀 안 배웠어요.
전혀 교회가 사람들을 파송해야 된다하는 의식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오늘 청년들이 처음에 만나서 교제하는 것 좋아요. 좋은데, 보니까 조금 유치한 것 같아요.
우리가 저렇게 유치한가.. 안 그래요?
그러니까 그런 것은 많이 했으니까 올해까지 하고 내년부터는 틈만 나면 파송을 할거야.
많이 보내면 안 되고 몇팀으로 해서 어느 마을을, 저 지리산 하늘아래 첫동네부터 둘째 동네 셋째 동네..
우리 고향마을부터 파송을 해서 거기가서 일하면서 트레이닝이 될 수 있도록..
그게 훨씬 더 바람직할 겁니다.
이제 우리가 3년이 넘었으니까 파송을 해야 돼요.
청년들을 파송하고 그리고 부단히 거기에서 만나는 사람 있으면 전화도 하고 젊은 사람 있으면 문자메세지 메일도 보내고, 파송을 해야 돼요.
우리교회 성도님들이 200여명 정도 되는데, 그러면 두사람이 한 마을씩 맡아서 책임지면 우리가 1백개 마을에 관심을 가질 수 있다는 겁니다.
한 마을도 비우지 말고 담당자를 두어서 기도하고 또 관심을 가지고 틈나면 찾아가고..
한국교회가 예배당 안에 사람을 가두어 놓을 것만 아니라, 끝까지 파송해 갔으면 벌써 민족이 복음화 되었을 거야.
전부 다 몇천명을 예배당 안에 가두어서 내 보내지도 않고..
그것은 우리가 많이 잘못된 거야.
그것은 우리가 초신자때부터 제가 예수 믿은지 1년도 채 안 되어서 교회 없는 마을로 자전거를 타고 자갈밭길 20리를 갔어요.
그것도 평탄한 길이 아니고 경사가 있는 자갈밭길 황토길..
비가 와서 자전거 바퀴가 진흙땅에 박혀서 빠지지도 않고 소나기를 맞고 결혼식 때 얻어입은 예복 양복이 흠뻑 다 젖어서 그렇게 비를 맞고도 기쁨이 충만해가지고 산을 넘고 이렇게 했는데, 오늘 제가 그 뒤에 교회에 와서 일반 성도들 신앙생활 하는 것을 보면 놀고 있거나 졸고 있거나 잠든 상태로 너무 나태하고 너무 편한 예수를 믿고 파송할 줄을 모르는 거예요. 전부 다..
초창기에 처음에는 그랬잖아요. 그래서 우리 성도님들이 앞으로는 가야 돼요.
자꾸 여기다가 사람 끌어 모으는 것만 하는 게 아니라 모아와서 복음을 전하고 나가도록 보내고.. 하나님 말씀 심는 것을 전도, 그리고 내어 보내어서 복음을 전하게 하는 것을 선교..
그래서 교회에 와서 하나님 말씀을 심어지는 것까지 전도라고 하고, 그리고 그 전도된 사람이 나가서 선교하고..
모이고 흩어지고 하는 것을 아주 역동적으로 해야 살아있는 교회가 되죠.
예수님도 3년 되었는데 파송하는 것을 보세요.
우리가 배웠으면 해야 되거든요.
그래서,
2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어 보내시며
3 이르시되 여행을 위하여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주머니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며
그러니까 엄청나게 준비해서 가져갈려고 하지 말고, 여러분 우리가 만약에 어디에 가서 하나님을 믿고 그리고 사람을 신뢰하고 가서 일을 하는데, 거기에 은혜와 진리와 능력이 나타나면 먹는 것은 문제가 안 된다는 거야.
시골 할머니에게 가서 ‘할머니 배가 고파요.’ 하고 밥을 얻어먹어도 괜찮아요.
아니면 쌀만 조금 가져가서 밥 해드리면서 얻어먹어도 괜찮고..
그래서 너무 그렇게 염려해가지고 이렇게 갖추어서 가는 것이 아니라, 정말 하나님을 믿고 사람을 신뢰하고 갈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는 제가 가서 하기 어려운 게 우리 고향인데 우리 고향 마을부터..
고향 마을이 7-8개 정도 돼요. 거기부터 시작해야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원지에서 개척할 때, 개척교회를 하면서 개척을 네개씩이나 했거든요.
집사님을 파송하고 교사를 파송하고 새신자를 파송하고, 제일 잘 가는 게 새신자야.
왜냐하면 가서 개척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모르니까 담대한 거예요.
오랜 된 사람이 가면 잘 안 가요. 장로님들 가라고 하면 겁이나서 못가요.
목사님은 더 겁이 나서 더 못가고..
그런데 청년들 학생들이 자전거를 타고 가는 팀이 있고, 자전거 없는 팀은 택시를 태워서 개척교회에 가서 매주 보내고 했는데, 다 교회가 되었거든요.
그게 교회가 되는 것을 보고 우리 선배 지역사회의 목사님들이 굉장히 충격을 받고, ‘저 개척교회 전도사가 교회를 한꺼번에 네개를 개척하는데 우리는 도대체 뭐하는 거냐.. 우리도 일어나서 개척하자..’
그래서 84년도에 ‘지리산 지역 선교 동지회’가 결성이 되어서 교회를 31개를 개척했어요.
그 중에 한개가 문을 닫았다고 합니다.
그 동네는 다 죽거나 이사 가버리고 사람이 한 집도 없으니까 문을 닫았다고 해요. 끝까지 사명을 다한 유일한 교회죠.
그래서 우리도 우리가 여기에 모여가지고 그냥 우리끼리만 은혜받았다고 노래하고 춤추고 할게 아니라, 교회 없는 곳으로 할머니 할아버지 한걸음 넘어가면 돌아오지 못하는 분들에게 믿고 안 믿고는 놔두고 우리가 할 바는 다 해야 되지 않겠는가..
그러기 위해서 준비를 해야 돼요.
할머니 할아버지 팔다리 주무르는 것부터 해봐요.
아무리 강퍅해도 자꾸 주무르면 물렁물렁 해집니다.
외로워서 마음이 가난해져 있어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자기 친아들 친손자는 잘 안오는데, 우리가 정기적으로 자주 찾아가면 더 반기는 거야.
여러분 그런 데에 가서 주일날 교회 안 나와도 전혀 염려를 안 할 것이고, 오히려 더 권장하는 편이니까, 예배당에 갇혀 있는 것은 그런 교회가 옳지 않다는 겁니다.
다 가고 저 혼자 있어도 괜찮아요.
교회 없는 곳으로 가겠다 하면 얼마든지 보내 드릴테니까..
좀 우리가 생각을 달리해야 돼요.
우리가 교회 처음 설립 정신이 그런 것이었거든요.
늦게 오신 분은 잘 모를텐데, 예배당에 모여서 우리끼리만 신앙생활하는 게 아니라 끝없이 파송하고 교회 없는 곳으로 막 흩어지는 교회..
제가 오래전부터 꿈꾸어 오던 거예요.
4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서 유하다가 거기서 떠나라
집집마다 다니다가 그 집이 방이 크고 좋다 하지 말고, 한군데 가면 싫든 좋든 거기 있다가 떠날 때까지 거기 있어야 돼요.
그러니까 너무 인간적으로 그런 데에 가리지 말고 불편한 데에 가서 불편도 겪어보는 게 좋아요.
이번에 에스라 하우스에 오신 어떤 분이 ‘불편한 게 너무 감동되었다.’ 그렇게 말하는 분이 있어요.
‘세상에 우리가 어디가서 이런 불편을 경험하느냐?’
그 시설 불편한 게 자기를 겸손하게 만들고 그렇게 받아들이는 분이 있어요.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가서 흙냄새 쿰쿰하게 나는 그런 방에 방 청소도 할 수 있고 그렇거든요.
5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지 아니하거든 그 성에서 떠날 때에 너희 발에서 먼지를 떨어 버려 저희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6 제자들이 나가 각 촌에 두루 행하여 처처에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치더라
그렇게 하면 귀신이 나가는 수도 있고, 병이 고쳐지는 수도 있고..
전에 우리는 그 때 청년때에 아무 병자나 있으면 붙잡고 병낫기를 위해서 기도하고 했는데, 한번은 어느 집에 가니까 산청군 금서면 향량리 새터 마을에 고씨 가문에 가니까 청년이 배가 하여튼 이렇게 나온 거야. 복수가 차가지고.. 등어리 뼈가 굽어질만큼..
그것을 보고 참 몸이 온통 발등까지 부어가지고 사람이 핏기가 없어서 하얗게 되어 있는데, 뭐 눈만 떠있다뿐이지 시체나 다름이 없는 거야.
이런 것을 보고 기도해야 말아야 되나.. 지금 생각하면 그런 생각이 들텐데,
그 때에 얼마나 믿음이 충만했는지, ‘하나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려내셨으니까 이 사람도 치유할 것이다.’ 그렇게 믿고 기도했는데, 나은 거예요.
거기에 있는 교회에도 나오고 했는데, 그 뒤로 어떻게 되었는지 최근 소식은 못 들었어요.
살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복수가 찼는데, 살아난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어떤 사람을 찾아간다 할 때 그런 사람들과 성령께서 함께 하십니다.
여러분 한번 그렇게 해봐요.
체험을 안 해보면 이해를 못해요.
체험을 해볼 필요가 있어요.
그래서 청년들도 모래장난이나 하지 말고, 다 커가지고..
키나 작으면 몰라. 키가 그렇게 큰 사람들이..
앞으로는 사람들에게 찾아가도록.. 사람을 찾아가는 거예요.
성령께서 그런 데에 함께 하실줄 믿습니다.
괜히 태풍만 쫓아가지고 사람 잡지 말고..
처음에 세례요한, 그 다음에 예수님, 그 다음에 열두 제자가 나와서 이렇게 전국에 병을 고치고 귀신이 쫓겨나고 이렇게 하니까, 헤롯이 상당히 신경이 쓰이는가 봅니다.
7 분봉왕 헤롯이 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당황하여 하니 이는 혹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고도 하며
도둑놈이 제발 저린 거죠.
8 혹은 엘리야가 나타났다고도 하며 혹은 옛 선지자 하나가 다시 살아났다고도 함이라
이런 소문이 도는 거예요.
9 헤롯이 가로되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거늘 이제 이런 일이 들리니 이 사람이 누군고 하며 저를 보고자 하더라
그래서 이 사람은 두려움도 있고 호기심도 있고 아주 이중성을 띄고 있는 사람이 헤롯이었어요.
10 사도들이 돌아와 자기들의 모든 행한 것을 예수께 고한대 데리시고 따로 벳새다라는 고을로 떠나가셨으나
11 무리가 알고 따라왔거늘 예수께서 저희를 영접하사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하시며 병 고칠 자들은 고치시더라
12 날이 저물어가매 열 두 사도가 나아와 여짜오되 무리를 보내어 두루 마을과 촌으로 가서 유하며 먹을 것을 얻게 하소서 우리 있는 여기가 빈 들이니이다
1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에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으니 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먹을 것을 사지 아니하고는 할 수 없삽나이다 하였으니
14 이는 남자가 한 오천 명 됨이러라,
남자가 오천명이면 여자도 오천명이고, 애들도 하나씩 따라 오면 아무리 못 되어도 만명이 넘었을 거예요.
..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떼를 지어 한 오십 명씩 앉히라 하시니
15 제자들이 이렇게 하여 다 앉힌 후
16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무리 앞에 놓게 하시니
17 먹고 다 배불렀더라 그 남은 조각 열 두 바구니를 거두니라
이것은 하도 많이 여러 번 들은 얘기죠.
하나님께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하신 분이 말로만 하신 게 아니라, 정말 염려할 필요 없다는 것을 보여준 거예요.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최소한 먹을 것 염려할 필요가 없어요. 한번도 하나님께서 ‘내가 너희를 부자되게 해 주겠다.’ 그런 것은 한번도 약속한 적이 없지만, 그러나 적어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그런 것 정도로 염려하지 말라는 거죠.
18 예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이 주와 함께 있더니 물어 가라사대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19 대답하여 가로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라, 더러는 옛 선지자 중의 하나가 살아났다 하나이다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말합니다.
20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오늘 낮에 말씀드렸죠.
풍랑도 잠잠해지는 것을 보고는 ‘저가 뉘기에 누구시기에 바람과 풍랑이 잔잔해지는가..’
누구시기에 이렇게 했는데, 예수님께서도 결정적으로, 여기 다른 복음서에 보면 그냥 물은 게 아니라, 사역을 다 끝내고 제자교육을 다 끝내고 사실 다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죠.
왜냐하면 파송까지 해봤으니까.
가르쳐서 파송까지 해봤으니까 이 정도는 예수님 떠난 후에도 자기 사역을 감당하겠다 했을 때 비로소 3년만에 휴가 같은 것을 갔어요.
저 이스라엘 땅에서 물이 제일 많고 기후가 선선한 곳이 헤르몬 산 기슭에 가이사랴 빌립보 혹은 지금 현재 이름은 바니아스라는 곳인데,
바니아스는 판이아스, 판신이라는 것은 여러 신 만신..
로마에 가면 판테온이라고 있어요. 만신장이라고 하죠.
판이아스는 판신이 나오는 땅이다. 판신의 땅이다. 파니아스라고..
거기에 참 좋아요.
휴양하기 아주 좋은 곳인데, 거기를 몇일 갔다왔는지는 모르지만, 3년 사역 중에 유일하게 쉴 수 있는 한적한 곳으로 가셨는데, 거기 가서 졸업시험을 치는 거야.
졸업시험 치는데, 문제가 딱 한 문제야.
‘내가 누구냐? 나를 누구라고 보느냐?’
맨날 이상한 소리하던 베드로가 그날 따라 아주 퍼펙트한 답을 한 거야.
..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니
여기는 그냥,
21 경계하사 이 말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명하시고
이렇게 했는데, 마태복음에 보면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다.’ 이렇게 했어요.
이를 알게 한 것은 혈육이 아니고 내 아버지의 성령이 너희에게 알게 해 줬다는 거야.
여러분 우리가 복있는 사람이 누구냐 하면,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고 믿는 사람은 복이 있는 거야.
이미 복 받은 사람이 그것을 믿는 겁니다.
만약에 한국에서 제일 갑부로 제일 잘나가는 사람으로 그렇게 했다손쳐도, 예수님이 누구신지 모르고 믿지 못했다면 우리 민족에 기여는 했을 수 있어요.
그렇지만 차라리 그 영혼은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 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니
21 경계하사 이 말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명하시고
22 가라사대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여기는 간단하게 압축해서 설명 없이 되어질 일만 간단하게 말씀했어요.
왜 이런 말씀을 했느냐 하면, 만약에 이런 말씀을 미리 안 해 놓고 있다가 예수님이 덜컥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면, 예수님께서 무슨 불의의 사고를 당한 것처럼 하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알아듣든지 못알아듣든지 부단히 이런 얘기를 두번 세번 충분히 해 놓고는 나중에 그 일이 당하고 나서는 ‘그래 예수님 모르고 있다가 당한 것이 아니고 미리 다 알고 계셨었어.’ 이렇게 되도록 하기 위해서..
지금은 도저히 수용도 납득도 이해도 안 되지만 말씀을 해 놓으신 거죠.
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여러분 참 가장 중요한 시기에 예수님이 누군지 아는 사람, 그리고 예수님을 따라가려고 하는 사람, 예수님의 제자될 사람은 자꾸 자기 주장을 가지고 나오면 안 돼요.
‘아르네오마이’라는 헬라어가 철저하게 자기를 내려놓는, 자기를 부정하는 거예요.
끊임없이 자기 주장이 강한 사람은 예수님 따라갈 수 없고, 완전히 자기를 내려 놓는 사람이 예수님을 따라갈 수 있어요.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내 십자가 내가 지고 가니까 ‘스타로스’라고 하는 십자가는 그냥 기둥입니다. 기둥..
자기 기둥을 가져오라. 자기가 못박힐 기둥을 가지고 가라..
그러니까 매일 죽을 각오를 하지 않고는 나를 따라 올 수 없다.
여러분 한번도 예수님께서 ‘너희를 출세하게 해 주겠다.’ 아니면 ‘목회 성공하게 해 주겠다.’ 이런 것은 한번도 일언반구도 없습니다.
자기 성공 의지라든지 욕심이라든지 다 내려놓고 자기 기둥을, ‘스타로스’라고 하는 십자가 기둥을 날마다 지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그런 마음으로 따라와라.
그리고,
24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그게 겁나서 자기 목숨 건지기 위해서 십자가를 안 지고 주님 안 따라오면 자기 목숨 잃을것이요,
..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아주 역설이죠. 파라독스..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
그런데 죽고자 함이 아니라 죽었어요. 십자가에서..
사도 요한 말고는 몽땅 다 순교 했습니다.
이게 ‘말하자면 그렇다’ 그런 얘기가 아닙니다.
‘그 정도 각오하라’ 이런 정도가 아니고, 실제로 예수님의 제자들이 다 목숨을 바쳤는데, 예수님을 증거한다는 말도 ‘마르티오’이고, 십자가에 순교하다는 말도 ‘마르티오’예요. 헬라어로 똑 같아요.
그러니까 초대교회에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인 것을 증거한다는 것은 그렇게 믿기만 해도 지금 맞아죽을 판인데, 그것을 전도까지 하고 증거할려고 하면 당연히 목이 달아나는 거니까..
‘마르티오’라는 말이 ‘증거하다’는 말도 되고 ‘순교하다’는 말도 되고 똑 같아요.
여러분 프랑스 파리에 가면 ‘몽마르뜨’라는 곳이 있어요. 몽마르뜨..
우리가 들으면 아주 낭만적으로 그렇게 들리죠.
그게 사실은 ‘몽’ 하는 것은 ‘산’이예요. 산..
‘마르뜨’는 ‘순교자’. ‘순교자의 산’이라는 말이 몽마르뜨입니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이렇게 복된 소식 하나님 말씀이 우리에게 전해질 때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순교를 해가지고 전달 된 거예요.
그래서 우리도 때로는 진리를 위해서 주님을 위해서 목숨을 바쳐야 될 만한 그런 마지막 대환난 때에 우리가 살아 남는다면 끔찍한 환난이 올 수 있으니까, 평소에 그런 비장한 각오를 갖고 있어야 돼요.
예수 믿으면 복받고 세상에서 성공하는 부자되고 이런 믿음을 가지고는 주님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25절,
25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27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느니라
그러니까 영광을 보여주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다 보여준 다음에는 이 제자들까지도 다 하나같이 매일 십자가를 지고, 자기가 성공하겠다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고, 철저하게 자기를 내려놓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가 못박힐 기둥을 짊어지고 언제든지 그저 죽을 준비를 하고 따라오라..
제자들에게 한번도 무슨 성공하게 해 주겠다 그런 약속한 적 없습니다.
28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시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29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30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31 영광 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씀할새
32 베드로와 및 함께 있는 자들이 곤하여 졸다가 아주 깨어 예수의 영광과 및 함께 선 두 사람을 보더니
33 두 사람이 떠날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되 자기의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
베드로는 분위기가 어색하면 말을 한다니까.. 맞든지 틀리든지 간에..
대개 안 맞는 말이예요.
34 이 말 할 즈음에 구름이 와서 저희를 덮는지라 구름 속으로 들어갈 때에 저희가 무서워하더니
35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고
36 소리가 그치매 오직 예수만 보이시더라,
오직 예수님만 보여야지 자꾸 모세가 어른거리고 자꾸 엘리야가 어른거리고, 엘리야 모세와 예수님과 비교하고 그러면 안 되는 거죠.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냥 홀연히 순식간에 변화되는 모습은 어쩌면 우리가 마지막에 예수님 오실 때에 재림 때에 마지막 나팔소리와 함께 우리가 순식간에 변화될 것.
다시 말하면 예수님 부활도 보여주시고 부활전에 홀연히 순식간에 변화되는 것도 미리 보여주신 거예요. 맛을 보게..
우리가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 어떻게 부활될 것인가..
무덤에서 예수님 부활하신 것처럼..
부활하기도 하고 변화되기도 하고 다 보여주신 거죠.
..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고
이것은 대관식 용어라고 말씀드렸죠?
왕자들이 여럿이 있을 때 솔로몬을 딱 세우고 ‘솔로몬 이리 나오너라. 이는 내 기뻐하는 자요 나의 택한 아들이다.’
이렇게 하면 모든 왕자가 그 솔로몬이 후계자인 줄 알고 손등이 입맞추는 게 존경의 키스라고 내가 이야기 했나요?
그 손에 가서 입맞추는 거죠.
그러면 솔로몬 보다도 나이가 많은 형님도 있고 동생도 있고 다 있지만, 누구든지 간에 솔로몬에게 가서 손에 입맞추어야 돼요.
입맞추지 않으면 반역입니다. 반역..
여러분 시편 2편에 보면,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길에서 망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왕으로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대관식 같은 용어가 ‘나의 택한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다.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이제는 모세의 말도 아니고, 엘리야의 말도 아니고 예수님 말을 들으라.
36 소리가 그치매 오직 예수만 보이시더라 제자들이 잠잠하여 그 본 것을 무엇이든지 그 때에는 아무에게도 이르지 아니하니라
한참 후에 말을 했겠죠.
누가도 나중에 돌아서 돌아서 들은 거죠.
37 이튿날 산에서 내려오시니 큰 무리가 맞을새
38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소리질러 가로되 선생님 청컨대 내 아들을 돌아보아 주옵소서 이는 내 외아들이니이다
39 귀신이 저를 잡아 졸지에 부르짖게 하고 경련을 일으켜 거품을 흘리게 하며 심히 상하게 하고야 겨우 떠나 가나이다
증상이라든지 나타나는 양상은 꼭 간질증상인데, 아직도 간질이라는 병은 난치병이거나 불치병이거나 아니면 아직도 해명이 안되는 병이예요.
증상을 완화시키는 약은 있어요.
장미회라는 단체가 있어가지고 약을 제공해서 그것을 먹으면 그런 대로 좀 증상이 완화되는데, 완치되는 케이스가 거의 잘 없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은 어떤 때에는 귀신들린 자, 간질하는 자, 병든 자라고 셋으로 따로 간질환자를 따로 분류를 했어요.
뇌에 어떤 물리적 손상이 있어서 간헐적으로 발작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는 모양인데, 또 악령이 들어가서 그렇게 하는 수도 있는 것 같아요.
40 당신의 제자들에게 내어 쫓아 주기를 구하였으나 저희가 능히 못하더이다
41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를 참으리요 네 아들을 이리로 데리고 오라 하시니
42 올 때에 귀신이 거꾸러뜨리고 심한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예수께서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시고 아이를 낫게 하사 그 아비에게 도로 주시니
43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위엄을 놀라니라 저희가 다 그 행하시는 모든 일을 기이히 여길새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44 이 말을 너희 귀에 담아 두라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기우리라 하시되
또 이야기 하죠.
간간히 이렇게 이야기를 해요.
45 저희가 이 말씀을 알지 못하였나니 이는 저희로 깨닫지 못하게 숨김이 되었음이라 또 저희는 이 말씀을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반문하기 겁이 나서 ‘무슨 말씀입니까?’ 이 말도 못하는 거야. 예수님께서 넘기워진다 하니까..
지금 이 제자들이 지금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이번에는 그야말로 세상이 뒤집히는 혁명이 일어날 것이고,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그러면 우리가 주의 우편에 좌편에..
이런 생각들을 했는데, 예수님께서 죽을 각오를 하라고 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하니까, ‘아 우리에게 죽을 각오를 단단히 하라 하는가 보다.’ 이런 정도로 생각했을 거란 말이죠.
그런데 그럴 때, 46절,
46 제자 중에서 누가 크냐 하는 변론이 일어나니
아이고 누가 크기는 누가 커? 똑 같지..
한 3년 되었는데, 이런 생각이 나는 거야.
우리 교회도 한 3년 되었죠.
그러면 누가 크냐? 이연승이 제일 크죠. 크기야..
조직화 되면 꼭 사람들이 조직병의 부작용이 온다는 거야.
그래서 항상 우리가 자기를 부정하고 누가 크냐 그런 소리 하지 말고 조심해야 돼요.
47 예수께서 그 마음에 변론하는 것을 아시고 어린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자기 곁에 세우시고
48 저희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 어린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이가 큰 자니라
이것은 역설적인 거예요.
자꾸 ‘내가 내다.’ 하는 사람이 큰 게 아니라, 자기를 낮추는 자가 큰 자다..
49 요한이 여짜오되 주여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50 예수께서 가라사대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을 따라 오거나 예수님을 믿지도 않으면서 예수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유행이 된 것을 보면 상당히 유행된 것 같죠?
여러분도 믿음을 가지고 저게 아무래도 귀신 들었다 싶으면 해봐요.
해보면 깜쪽 놀란다니까..
제가 연습으로 했는데 나가더라니까..
그렇다고 연습으로 한다 하지 말고..
제가 처음에 확신도 없고 영의 세계가 눈에 보이고 그런 것도 아닌데, 인격적으로 원만하지 않고 비정상적이다. 다른 사람과 인간관계가 잘 안 되고 딴 사람과 눈을 잘 못 맞추고 수근수근한다든지 궁시렁 궁시렁 한다든지 불평 불만이 가득하다든지 만사에 부정적이라든지 이런 경우 우리가 볼 때, 좀 부정적이다 싶으죠?
들여다보면 악령이 들어 있어요. 악한 영이.
본인은 그게 자기인줄 알아요.
본인은 그게 자기인지 자기 속에 있는 귀신인지 잘 모르는데, 진리의 빛이 들어가게 되면 ‘아하 내 속에 나 아닌 다른 나가 있구나..’ 하는 것을 인식을 하면 분리가 시작돼요.
내 속에 내 아닌 다른 나라고 하는 것이 있어가지고 이러면 사람이 어떤 때에는 좋았다가 어떤 때에는 완전히 돌변하죠.
지킬 박사와 하이드 아시죠?
인간 내면을 아주 잘 그린 거예요. 이중성이야.
어떤 때에 보면 사람이 괜찮은데, 어떤 때에는 사람이 영 엉망이야.
제 친구 하나는 가끔 이야기 하는 사람인데, 지금은 죽었습니다만, 이 사람은 술을 한잔 하면 본심으로 돌아와..
술을 한잔하면 아주 착해져요.
그래가지고 ‘노군 내가 참 교회에 나가야 되는데, 참 어쩌고 저쩌고..’
영 사람된 소리를 해요.
술 깨고 나면 헤까닥하고..
귀신이 술을 먹어버리는가 봐..
귀신이 술을 먹고 취해버리니까 본심이 나오는 거야.
그래가지고 김영삼 대통령이 당선되어가지고 청와대에서 칼국수를 먹고 칼바람 분다 하니까 뭘 해먹었는지 겁이 나가지고 평생 공직에 있었는데,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공직에 들어갔으니까, 사표내더니 퇴직금 타가지고 여관인가 빌려가지고 하다가 가서 또 이것 했어요. 이것 도박..
도박하다가 빚을 엄청나게 져서 자살해버린 거야.
그런데 그 집은 전부 다 악령들이 그 어머니로부터 온 것 같아.
그 어머니 얘기, 제가 얘기 했죠? 욕쟁이라고..
욕을 창작을 하는거야. 이름도 모르고 택호도 모르고 그냥 욕쟁이 아줌마라.
욕쟁이 아줌마인데, 그 욕한대로 전부 다 이루어지는 거예요.
남편이 다리가 물레방아 벨트에 끌려들어가서 다리가 잘려진다든지, 딸이 여섯 있었는데 그 중에 제일 예쁜 딸이 동명합판에 가서 오른손 손목이 날아간다든지, 아들 장남이 나이 50안팎 되었을 때 그렇게 정신이 이상해져가지고 결국은 자살하고 말았죠.
아주 욕을 지독하게 하고 악담하고 저주를 퍼붓는다든지 이런 경우는 거의 99.9%가 귀신이야.
본인은 몰라요. 자기 속에 뭐가 들어있는지 모릅니다.
느끼지도 못하고 화가 폭발적으로 나는 경우는 대부분 그런 케이스인데,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싸울려고 덤빈다든지 아니면 별것도 아닌 것으로 스트레스 받았다고 떠드는 사람 있어요.
스트레스 안 줘도 받는 사람이 있어요.
아무도 스트레스 안 주는데, 자기 혼자 받아가지고 이런 경우는 거의 다 악령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본인이 그것을 하나님 말씀을 듣고 영적인 세계를 배우고 본인이 그것을 느끼고 ‘아 내 속에 내 아닌 다른 악한 것이 있구나’ 하는 것이 인식이 되면 아주 쉬워져요.
인식되면 분리가 일어나는 거야.
분리가 일어나야 자기 양심이 그 악한 영을 대적하고, 그리고 누군가가 위해서 기도하거나 명령하고 하면 나가는데, 인식이 안 되면 참 어려운 거야.
그것을 자기인줄 아는 사람이 있어. 그러면 안 돼요.
그러니까 다른 방법이 없고 하나님 말씀을 잘 들을 때 영적인 세계 진리를 잘 들으면 내 속에 내 아닌 다른 누가 있다는 것을 인식이 되면서 분리가 일어나는 거예요.
분리가 일어나면 쫓아낼 수 있어요.
자기가 할 수 있는 거죠.
누가 크냐 하는 이런 것 하지 않도록..
예수님 이름으로 지극히 작은 자를 영접하면 바로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은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다.
그래서 교만한 생각은 다 잘못된 것입니다.
49 요한이 여짜오되 주여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50 예수께서 가라사대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 하시니라
51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이것은 조금 소급해서 비약한 거죠.
아직은 승천을 이야기 할 때가 아닌데, 누가가 작가적인 시점에서 볼 때 예수님께서 마지막때가 다 되어가지고 예루살렘을 딱 보고 돌아선 거야.
그러니까 제가 볼 때에는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휴가처럼 끝나고 돌아선다는 것은, 물론 중간에 가다가 변화산에 올라가지만,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너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제자의 입에서 올바른 신앙고백이 나왔을 때 교육은 고비를 넘어선 거죠.
그러면 바로 돌아서면 예루살렘 십자가를 향해서 갈건데, 누가는 변화산 사건이 있은 후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했다.
갈등이 되었겠죠.
예수님 마지막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를 보면,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결심했어도 그런 고민과 갈등이 있었다는 거죠.
우리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니까 아무 갈등도 고민도 없고 전혀 걱정도 안 되고 잠도 잘 자고 그런 줄 아는데,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우리와 똑 같은 성정을 가지고 있었던 거죠.
피곤하고 온갖 두려움과 근심과 걱정과 고민하시고, 내 마음이 심히 고민되어 죽게 되었다는 말까지 하잖아요.
그래서,
..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간다는 것은 십자가를 보고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52 사자들을 앞서 보내시매 저희가 가서 예수를 위하여 예비하려고 사마리아인의 한 촌에 들어갔더니
53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는 고로 저희가 받아들이지 아니하는지라
54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가로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 좇아 내려 저희를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불을 명하면 내려올건데..
화가 많이 난 거야.
예수님이 어떤 분인데, 이 싸가지 없는 것들이 영접 하지 않고, 불을 내려오게 해서 태워버리겠다고..
55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
그런 소리 하는 것 아니다..
56 함께 다른 촌으로 가시니라
예수님께서 환영받지 못한 곳이 있었다는 거예요.
57 길 가실 때에 혹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
이것도 위험해요.
58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그러니까 따라 오겠다고 하는 것은 뭐 보고 따라오느냐?
‘예수님만 따라가면 한 자리 하겠다. 아니면 뭔가 수지 맞겠다.’ 이런 것을 생각하고 따라가고 하니까 따라오지 못하게 하신 거죠.
‘나는 머리 둘 곳도 없는 사람이야.’ 하고 사양을 했어요.
59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이것도 번역이 잘못되었는데, 마치 자기 부친 초상난 것처럼 이야기 하죠. 그렇죠?
아니고 ‘아버지 돌아가신 후에 내가 쫓으리이다.’ 뒤로 꽁무니를 빼고 연기를 하는 거죠.
지금도 전도해보면 그런 사람 많죠.
‘우리 시어른들 돌아가시고 나면 믿겠나이다.’
이것은 ‘우리 시어른들 지옥 보내놓고 믿겠나이다.’와 똑같은 말이죠.
그런 사람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그러면 안 되죠.
물에 빠져 죽어갈 때, 내가 먼저 물에서 빠져나와 언덕위에 올라서야, 다른 사람을 시어머니를 건지든지 하지, 나도 빠지면 안 되는 거죠.
그래서 뒤로 꽁무니 빼는 사람에게 예수님께서,
60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이것도 누가 말했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중에서 누가 그랬던 모양인데..
‘먼저 가서 내 부친 돌아가시면 제가 믿겠습니다.’ 이렇게 한 것은 잘못된 생각이죠.
61 또 다른 사람이 가로되 주여 내가 주를 좇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케 허락하소서
‘마는’을 붙이는 게 아닙니다.
안 가도 작별되는 것이지..
그러니까 가족들이 흔쾌이 나를 보내주고 하면 내가 따르겠나이다.
가족들과 원만하지 않아서 따라가기 힘듭니다.
이렇게 가족 핑계하고 하면 아무도 따라올 사람이 없죠.
신구약을 다 보면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정말 단번에 응답하고 뒤를 돌아보지 않는 사람, 이런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해요.
여러분 제가 아브라함을 예로 들었는데, 갈데아 우르에서 부름받은 후에 가나안 땅 그 척박한 땅에 왔어요.
나중에 히브리서 기자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이 만약에 나온 바 본향으로 사모했다면 돌아갈 길은 얼마든지 있었다는 거야.
그러나 그는 자기 나온 바 본향 갈대아 우르를 사모한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였으니 곧 하늘에 있는 하늘 본향을 바라보고 살았다.
이런 사람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한 성을 예비하셨으니 곧 아브라함의 품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아브라함이 낙원의 주인처럼 된 거죠. 아브라함 품이라고..
저도 참 그 점에 대해서 아브라함에게 부끄러워요.
저는 고향에 친구도 없으면서도 어떻게 고향을 못잊어가지고..
고향 그것을 못 벗어나서 아직도 지리산 못 벗어나고 있잖아요.
그래서 여러분은 잘 모르겠어요. 나는 좀 지나친 것 같아요.
아마 나만큼 고향을 사랑하는 사람도 없을 거야.
그래서 처음에도 한 5년간 사천에서 해보다가 안 되어서 다시 고향으로 갔거든요. 산청으로..
거기에서 뼈를 묻을거라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기어이 쫓아내어서 밀양으로 갔다가 다시 마산에 왔는데,
제가 참 마산시에서 일한다는 게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어요.
도시가 겁이 나서 맨날 시골에서 뺑뺑돌다가 어떻게 시에까지 왔는지..
내가 몸 안에 있는지 몸 밖에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먼저 가서 내 가족을 작별하게 하옵소서.
62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아브라함은 절대 뒤를 돌아보지 않고, 심지어 다니러 인사차 놀러도 한번 안 갔습니다.
자기 며느리감을 고르는데도 직접 안 가고 다메섹 엘리에셀을 보낼지언정 자기는 아예 그쪽으로 가지 않았어요.
여러분도 혹시 선교하러 어디가면 오지마. 편지도 하지 말고 전화도 하지 말고..
거기에 막벨라 굴을 사 놓고.. ‘나는 그저 양화진에 묻히는 것보다 한국 국립묘지에 묻히는 것 보다 여기에 묻히는 것을 원한다.’
뼈를 묻을 각오를 해야 돼요.
저는 가는 곳마다 되지 않기도 했지만, 일할 때 항상 거기에서 뼈를 묻을 각오를 하고..
사천에서도 그랬어요.
사천에서도 뼈를 묻을 각오를 하고 일을 했거든요.
그런데 안 되고 말았는데..
또 원지에 가서 고향에 왔으니까 내가 여기 고향에서 일하다가 고향을 위해서 살고 죽어야지 했는데, 또 뼈를 묻을 각오를 했는데, 거기에서 쫓겨났죠.
밀양에 갔을 때는 온 교회가 ‘목사님 49세에 왔는데, 내년이면 50이고 한 20년 일하고 은퇴하면 딱 맞으니까 딴데갈 생각 마시고 가만히 계시라고..’
또 그렇게 될 줄 알았는데, 한 10년 있으니까 그것도 내 마음대로 안 되고, 결국은 여기로 왔죠.
그래서 어떻든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제가 한 가지는 하나님 앞에 여러분 앞에 한 가지는 말씀드릴 수 있는데, 신학을 하고 목회자가 된 것을 아무리 어려워도 그 자체를 후회한 적이 없습니다. 꿈에도..
오히려 500번 다시 태어나도 다시 신학을 하고 성경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진리를 같이 이야기 하는, 하나님 이야기를 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 아닌가..
거기에 대해서는 한번도 의심이 없고 회의가 없습니다.
잘하든 못하든 간에..
그래서 여러분도 기왕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 길을 내 길로 보여주셨다면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푯대를 향해서 달려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드립니다.
오늘 주님께서 3년여 가르치신 후에 제자를 파송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주님께서 하시던 그 일을 그대로 본받아서 그 능력을 가지고 주님의 일을 계승했고, 오늘 그 일은 우리 손에 바톤처럼 넘겨진 줄을 믿습니다.
주님께서 하시던 일이요 사도들이 하던 그 일들을 우리가 잘 감당하게 하옵시고, 예배당 안에 갇혀 있는 성도가 아니라 나가서 모든 사람들에게 찾아가는, 사람들이 교회에까지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먼저 찾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시고,
지혜와 능력과 은사와 또한 선한 열심과 투철한 사명감을 가지고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람들 찾아나서는 우리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