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오원우
필리핀에서 돌아온 지 3~4주 된 것만 같은데 벌써 2학년 2학기 기말이다. 이번 학기는 학교에서의 생활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몇 가지 기억나는 것은 성심원과 별아띠 천문대, 3학년의 논문 발표 정도… 어찌 보면 이 학교에서 벌써 살아온 시간이 2년이 다 되어가니 이런 활동 혹은 삶이 우리 몸에 익숙해진 듯했다. 하지만 그중, 지금 생각해 봐도 뚜렷하게 기억나는 배움을 주었던 일이 있다면 아마 내가 준비했던 간디학교의 학생회장단 준비가 아닐까 싶다.
어렸을 때는 리더라고 할 수 있는 학급회장, 부회장 등에는 관심도 없었다. 단지 친구들과 선배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소리를 선생님께 들었었다. 그러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학급회장을 했었다. 학급회장을 하면서는 친구들의 우유 급식을 가져오거나, 시험을 보고 시험지를 걷고 가정통신문을 친구들에게 나누어주는 일을 했었다. 대부분의 일이 귀찮은 일이었지만 그래도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했다.
처음으로 선거에 나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건 전학을 갔던 5학년 때였다. 5학년 11월 즈음에 학교에서 내년 6학년 전교 부회장을 뽑는다고 해서 친구들이 적극적으로 추천해줬다. 하지만 회장은 너무 부담스러울 듯싶어 결국 부회장으로 나가게 되었다. 그 당시엔 처음 나가 보는 것이고, 어떤 공약을 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상대 후보자는 이미 준비를 거의 끝내 가는데 나만 뒤처지는 것 같아 불안했고, 결국 후보자 등록만 한 후 포기하게 되었다. 준비성이 부족했었다는 것을 느꼈었고,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게 맞았을까?”라는 의문이 남게 되었다.
간디학교에 처음 왔을 때는 6학년 가을, 예비학교 때였다. 도착하자마자 느꼈던 것은 분위기가 자유로워 보였다. 그래서 간디학교에 와서는 내가 생각했던 것들을 이뤄보고 싶다는 목표가 생기게 되었다. 예비학교에서는 여러 가지 목표가 있었지만 막상 입학하고 난 후에는 바쁜 일상에 적응하다 보니 내 기억 속에서는 사라져 갔다. 그러던 중 필리핀에 가 있던 15기가 돌아오게 되었다. 선생님께 얘기를 들어보니 학생회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15기와 함께 나가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들은 후 나는 무언가 까먹고 있던 것을 챙기듯 15기에게 갔다. 고맙게도 앤 누나가 먼저 제안을 해줘서 앤 누나와 함께 기호 2번으로 출마하기로 결정했다. 공약의 주된 내용은 부서 활성화와 개편이었다. 공약을 알려주고 난 후 우리는 포스터를 만들기 시작했다. “기호 1번은 이미 포스터를 제작해서 붙였는데 기호 2번은 왜 이렇게 느리냐”라는 의미의 말들이 조금씩 들려왔다. 결국 제시간 안에 만들지 못했지만, 만들고 기숙사에 갔다. 포스터를 완성한 다음 날 공청회를 진행하게 되었다. 하지만 공청회 자리에서 우리 팀이 준비한 공약의 문제점들을 제기하며 수많은 질문이 들어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 질문들을 대답하던 앤 누나와는 다르게 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고 결국 만족스러운 대답을 하지 못한 듯했다. 공청회 자리가 끝나고 투표를 진행하기 전까지만 해도 난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상하지 못했다.그리고 꽤나 압도적인 투표 수의 차이를 보며 공허함이 들기도 했고, 자만했던 나 자신이 밉기도 했다. 기숙사에 돌아와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며 생각을 해보니 그제야 우리의 문제점이 보였다. 우리의 공약은 남들이 듣기에 강압적인 부분이 있었고, 답변을 진행할 때도 좀 더 강한 어감의 말을 사용해 불쾌함을 초래하기도 했다. 한걸음 배우는 순간이었다. 슬프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어떤 부분에서 실수했는지 알았기에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었다.
2학년 2학기가 되고 저번 실수를 경험 삼아 학생회장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최종적으로 학생회장을 같이 나가게 된 친구들은 태리와 민영이었다. 투표는 11월 20일 날 진행되었기 때문에 먼저 공약을 생각해 보기로 했다. 처음엔 마냥 재미있고 신나는 학교를 만들고 싶었고 그게 우리 팀과 가장 걸맞다 생각했다. 하지만 을순쌤께서 “우리 학교는 재미있고 신나는 것은 기본이고 안전하고 자치적이어야 된다”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들으니 마치 우린 우물 안 개구리처럼 느껴졌다. 너무 재미에 치중되게 생각했던 생각을 바꿔 재미있는 학생 자치와 학생의 목소리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오게 되었던 공약은 필수 수업 개편 건의, 식솔회 및 학생 총회 개편, 부서장 회의 활성화였다. 재미에 치중되지 않으려 하다 보니 오히려 재미가 떨어지는 공약을 만들게 되었다. 조금 후회가 되기도 했지만 학생 자치도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3가지의 공약을 가져가게 되었다.
11월 20일이 다가올수록 마음은 더 급해지기 시작했다. 포스터도 만들어 붙여야 하고, 영상도 만들어야 하니 마음은 급해져 갔고, 작년에 포스터에 질타를 받았던 기억이 떠올라 곧 그것은 모든 것을 빨리 끝내 앞서나가야 한다는 강박처럼 자리 잡기도 했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도전하는 마음과 재미있게 즐기려던 마음은 없어지고 조급하고 힘들어져 갔고 주변에서는 내가 학생회장을 나간다는 것에 불만이 있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내가 했던 말과 행동이 나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처음엔 억울하기도 했고 조금 속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언행이 불편한 사람들 많다는 것을 깨달았을 땐 고쳐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물론 학생회장 때문도 있었지만 나의 언행이 나를 만드니 16기와 혹은 선후배와 관계를 더 좋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배워가는 순간이었다. 그렇기에 대본을 쓸 때도 한 문단 한 문단을 나의 언어로 표현하는 데 집중하며 쓰고 포스터 제작도 우리의 색을 담아내고 싶었다. 포스터를 만들던 중 슬로건이 필요해 만들려고 생각을 하다 태리가 “참이슬”을 제안했다. 뜻은 “참 이상하지만 슬모 있는 회장단”이라고 했다. 처음엔 조금 더 생각해보자 했지만 “참이슬”이라는 글자를 보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뜻도 마치 우리를 설명해 주는 것 같았다. 슬로건을 보다 보니 태리와 민영이는 즐겁게 도전하려 하지만 나만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을 알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가 왜 학생회장 선거에 나오게 되었는지의 목적인 재미와 학생들의 목소리 그리고 나만의 배움과 도전을 생각하게 된 후부터 조금씩 부담감과 강박을 내려놓으며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준비를 모두 다 하고 11월 20일이 다가오게 되었다. 긴장되었던 공청회를 마치고 밥을 먹으러 가며 “이제 진짜 다 끝났구나”라고 생각하니 긴장감과 부담감이 사라졌고 투표에서 어떠한 결과가 나오든 좋을 듯했다. 밥을 다 먹고 투표가 끝나자 모두가 강당에 모여 개표를 지켜봤다. 먼저 협동조합장과 총기숙사장 먼저 투표를 했다. 옆에서 같이 선거를 준비했던 친구들의 얼굴엔 미소가 걸려 있었고 아쉽게 떨어진 친구에겐 당선자를 축하해 주는 미소와 무언의 아쉬움이 느껴졌다. 앞선 투표가 모두 끝난 후 드디어 학생회장 개표가 시작되었다. 표 하나하나가 나올 때마다 심장이 두근두근거렸고, 주변에서의 “기호 1번”이라는 소리는 환호성에 가려져 들리지 않았다. 중간쯤 우리팀의 표가 뒤쳐져 결과를 예측하고 있었지만 집중해서 소리를 들으니 “기호 1번”이라는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개표가 끝난 후엔 기호 1번의 표가 3표 많았다. 단 “3”표. 당선되었을 땐 기쁜 감정도 올라왔지만 미안한 마음도 함께 올라왔다. “내가 더 잘했다 할 수 있을까?” 같은 의문점도 들었다. 무언가 찝찝한 마음으로 무대 위에서 소감을 말하고 내려왔다. 주변에선 연신 “축하한다”라는 말들이 들렸다. 기숙사에 올라가서는 한동안 천장을 쳐다보며 생각을 했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준비했다고 생각했고 열심히 해서 얻은 성과지만 찝찝한 마음들을 덜어낼 수 없었다. 하지만 앞으로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그 찝찝한 마음들을 덜어내고 싶다.
이번 학생회 선거를 준비하며 정말 많은 걸 배웠고 많은 걸 느꼈다. 처음엔 리더라는 자리가 나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학생회장이라는 자리에 도전하면서 나를 돌아보는 거울이 되어주었고 정말 하나에 집중할 수 있었던 동기가 되어주었다. 난 나를 좋은 리더라고 말할 수 없다. “아직은.” 하지만 앞으로 좋은 리더가 되고 싶고, 나를 뽑아주지 않았던 22명도 만족시킬 수 있는 리더가 되고 싶다. 리더란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주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타인의 의견을 조율할 줄 아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번 학기 학생회 선거는 오지 않은 내년에 나를 바꿔줄 수 있는 밑거름이 되어주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