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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Dean`s Study 원문보기 글쓴이: yimychan
발람과 발락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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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을 적대시 하는 모압 왕 발락. 그는 십볼의 아들이다.
그가 이스라엘을 대적하고자 하나 두려워하여(민22:5~6) “이스라엘을 이길 수 있기 위한 계책”으로서 발람을 찾았다.
발람은 브돌에 사는 브올의 아들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그는 마술을 행하던 자(민24:1)였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발람은 야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였다. 참으로 묘한 상황이지 않는가? 야훼 하나님의 백성도 아니면서 야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로서 기록되다니 말이다.
그러나 발람에 대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다음의 한 구절로서 설명될 수 있으리라 본다.
민수기 22장(쉬운성경) 6 그들은 너무 강해서 나는 이길 수 없소. 그러니 이리 와서 그들(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해 주시오. 그러면 내가 그들을 물리치고, 그들을 이 곳에서 쫓아 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소. 당신(발람)이 누구에게 복을 빌어 주면 그가 복을 받고, 누구를 저주하면 그가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소.” |
위의 빨간색으로 기록된 내용을 보면, 어디서 많이 보던 성경 구절이라 생각되지 않는가?
바로 창세기 12장 3절의 그 유명한 말씀으로서, 야훼께서 아브라함에게 축복하시는 부분의 말씀이다. 여기에서 창12:3의 말씀이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발람과 발락의 사건”을 통해서 명확히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창12:3의 내용이 인용된 채로, 발락이 말하는 그 주체는 바로 발람이다. 그러한 발람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있는 사람도 아니면서 심지어는 마술을 행하는 자인 것이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야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로 기록되고 있다.
그러한 그가 “아브라함(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하면 아브라함이 복을 받고, 아브라함을 저주하면 아브라함이 저주를 받는다”라고 말하고 있는 듯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약간의 숨겨진 해석이 담겨져 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래서 앞선 해석에 대하여 다른 해석을 적용해 본다면 다음과 같겠다.
너에게 복을 주는 사람에게 내가 복을 주고,
너를 저주하는 사람을 내가 저주하겠다.
땅 위의 모든 백성이 너를 통해 복을 받을 것이다.(창12:3; 쉬운성경)
아브라함(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을 주거나 저주는 주는 사람은 바로 땅 위의 모든 백성을 가리킨다. 더 명확하게는 아브라함(이스라엘 백성) 본인을 제외한 다른 사람을 가르키는 말이다. 그래서 야훼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셨기에 “아브라함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사람들”은 선택받지 못한 족속을 의미하게 된다. 따라서 그들을 우리는 “이방인(Gentiles)”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발락은 발람을 주체로 말을 한 것이라고 보이지만, 실제는 “발람이 이스라엘을 축복하게 됨으로써 발람이 축복을 얻고, 발람이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되면 발람이 저주를 받는다”라는 의미로서 위 민22:6의 말씀이 기록된 것이다.
발락은 발람을 데리고 다니면서 세 번이나 이스라엘을 저주하도록 유혹한다. 사단이 예슈아를 시험하던 당시 3번의 시험을 시도했던 것처럼 말이다.
민수기 (개역개정) 22:41 아침에 발락이 발람과 함께 하고 그를 인도하여 바알의 산당에 오르매 발람이 거기서 이스라엘 백성의 진 끝까지(끝부분을…다른 성경에서) 보니라
23:13 발락이 말하되 나와 함께 그들을 달리 볼 곳으로 가자 거기서는 그들을 다 보지 못하고 그들의 끝만 보리니 거기서 나를 위하여 그들을 저주하라 하고 23:14 소빔 들로 인도하여 비스가 꼭대기에 이르러 일곱 제단을 쌓고 각 제단에 수송아지와 숫양을 드리니
23:27 발락이 발람에게 또 이르되 오라 내가 너를 다른 곳으로 인도하리니 네가 거기서 나를 위하여 그들을 저주하기를 하나님이 혹시 기뻐하시리라 하고 23:28 발락이 발람을 인도하여 광야가 내려다 보이는 브올 산 꼭대기에 이르니 24:2 눈을 들어 이스라엘이 그 지파대로 천막 친 것을 보는데 …중략…. |
발람을 첫 번째로 인도한 장소는 “바알의 산당”이고 그곳에서는 이스라엘 진의 끝부분만을 볼 수 있는 상황이다.
두 번째로 인도한 장소는 “비스가 꼭대기”로서, 이곳은 모세가 광야의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기에 야훼께서 은혜를 베푸시는 곳(신3:27)이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진의 끝부분만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세 번째로 인도한 장소는 “브올 산 꼭대기”로서, 이곳에서는 광야와 이스라엘 진의 전체가 훤히 보이는 곳이다.
더 깊은 묵상이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본 글에서 논하고자 하는 부분은 다음과 같은 짧은 사실이다. 그것은 “발락은 자신의 악한 마음을 실현시키기 위해 발람을 유혹하여 발람이 스스로 넘어지는 자가 되게 하려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발락은 스스로 “이스라엘 백성”을 어떻게 해 볼 수는 없는 상황이다. 그렇기에 발람이 스스로 자신의 입을 열어서 “이스라엘을 비방하고 저주”하게끔 하려는 것이다. 마치 사단이 예슈아를 강제로 억압하여 돌을 떡으로 만들거나 사단 자신에게 경배하게 만들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야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에게는 이와 같은 애매모호한 상황 가운데 처했다 할지라도 친히 야훼 하나님의 음성이 발람을 이끄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볼 수 있다. 발람이 대단한 믿음의 소유자이기 때문일까? 결단코 발람의 믿음 때문이라고 기록된 바는 없다. 다만 발람이 야훼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그 말씀에 청종하였기 때문인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야훼의 천사가 발람의 나귀 앞에 나타났던 장면에서 익히 알 수 있다.
민수기 22장(쉬운성경) 22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발람이 길을 떠난 것 때문에 화가 나셨습니다. 여호와의 천사가 발람이 가는 길에 서서 발람을 가로막았습니다. 그 때, 발람은 나귀를 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발람에게는 종 두 사람이 함께 있었습니다. 24 얼마 후에 여호와의 천사가 두 포도밭 사이에 있는 좁은 길을 가로막고 섰습니다. 길 양쪽에는 담이 있었습니다. 26 여호와의 천사가 다시 앞으로 나가서 좁은 길을 가로막고 섰습니다. 너무 좁은 길이라 왼쪽으로도, 오른쪽으로도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
발람이 가고자 하는 길(the way)이 야훼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지 못한 길임을 알 수 있다. 물론 야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여정(민22:20)이지만, 발람이 바라보는 그의 속 마음은 야훼 하나님께 합당한 마음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람의 겉 모습이 아닌 그 중심을 보시는 야훼 하나님의 판결이 나타나는 부분이다. 그래서 3번에 걸쳐서 발람이 가는 길(the way)을 막으신 것이다.
그리고 강하게 말씀하신다.
민수기 22장(쉬운성경) 35 여호와의 천사가 발람에게 말했습니다. “이 사람들과 함께 가거라. 그러나 오직 내가 너에게 시키는 말만 하여라.” 그리하여 발람은 발락이 보낸 지도자들과 함께 갔습니다. |
시키는 말만 하기 위해서는 먼저 들어야 한다. 그리고 들은 그대로만 말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우리는 알 것이다.
사무엘상 15장(쉬운성경) 22 그러나 사무엘이 말했습니다. 여호와를 더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이겠소? 태워 드리는 제물인 번제물과 그밖의 제사요? 아니면 순종이요?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제사보다 낫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을 바치는 것보다 낫소. |
왜 야훼 하나님은 자신이 가장 기뻐하시는, 다시 말하면 가장 복을 받을 자격이 있는 이에게나 주시는 귀하고 귀한 말씀을 어떻게 발람 같은 자에게 주시고자 했을까?
그것은 앞서 이야기 했던 창12:3의 내용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본시 복을 받은 자이다. 충분히 받은 자이다.
민수기 22장(쉬운성경) 12 그러자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말했습니다. “저들과 함께 가지 마라. 그 백성에게 저주하지 마라. 그들은 복을 받은 백성이다.” |
아브라함이 이처럼 복을 이미 받은 자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발락은 발람을 꿰어내고자 한다. 그러나 야훼 하나님의 음성(voice)은 “저주하지 마라”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그렇게 하시는 가장 큰 이유는 “발람을 축복”하시기 위함인 것이다.
비록 아직은 마술을 행하고 야훼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거하는 자가 아니다 할지라도, 야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이에게 복을 베풀고자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발람에게 말씀하시길 “오직 내가 너에게 시키는 말만 하여라 “고 말씀하신 것이다.
발락은 발람에게 돈을 주었는가? 아니다. 성경에는 “대가를 지불”하였다고 기록하지 않고 있다.
민수기 24장(쉬운성경) 10 그러자 발락이 발람에게 화를 냈습니다. 발락은 주먹을 쥐고 발람에게 말했습니다. “내 원수들을 저주해 달라고 불렀더니, 당신은 오히려 세 번이나 축복해 주었소. 11 이제는 돌아가시오. 당신에게 보수를 충분히 주겠다고 말했지만, 여호와께서 당신이 보수를 받는 것을 막으셨소.” |
발락은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행동한 발람에 대해서 “이 모든 일의 결과는 야훼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시인하고 있다. 그래서 발람에게 보수를 주지 아니하는 것은 “야훼께서 직접 막으셨다”고 고백하고 있다.
야훼 하나님께서는 발람에게 “이스라엘을 세 번이나 축복”할 수 있도록 이끄셨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과정에 있다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그 주변의 나라들은 이스라엘을 두려워하는 상대로 바라보게 된다. 이것이 야훼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이 지나는 동안,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이방인들을 모으시는 것이다. 이방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을 통해서 복을 받게 하시기 위함이라고 약속하셨던 창12:3절의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더욱 놀라운 것은 발람에게 야훼 하나님의 영이 임함으로써 장래 올 일들을 예언하게 된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한 예언은 아직 충분한 묵상이 이루어지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혹 아시는 이들이 계실 거라 믿고 올리고자 한다. 두 부분에 걸쳐서 예언을 하는데, 한 부분은 이스라엘을 향해서, 그리고 다음 부분은 열방을 향한 예언인 듯 싶다.
민수기 24장(쉬운성경) 15 발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브올의 아들 발람의 말이라. 눈이 열린 사람의 말이라. 16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의 말이라. 나는 가장 높으신 하나님을 안다. 나는 전능하신 분에게서 환상을 보았고, 그분 앞에 엎드릴 때 내 눈이 열렸도다. 17 나는 언젠가 오실 분의 모습을 보는도다. 그러나 당장 오실 분은 아니다. 야곱에게서 별이 나오고, 이스라엘에게서 다스리는 자가 나올 것이다. 그는 모압 백성의 이마를 깨뜨릴 것이고, 셋 자손의 해골을 부술 것이다. 18 에돔은 정복될 것이다. 그의 원수 세일도 정복될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힘을 떨칠 것이다. 19 야곱 자손에게서 한 통치자가 나올 것이며, 성에 남아 있는 사람을 멸망시킬 것이다.” 20 발람은 아말렉을 보고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말렉은 으뜸 가는 나라였으나, 마침내 멸망할 것이다.” 21 발람은 가인 자손을 보고 이런 말을 했습니다. “너의 집은 든든하고, 너희 보금자리는 바위 안에 있도다. 22 하지만 너희 가인 자손은 쇠약해질 것이며, 앗시리아가 너희를 포로로 잡아갈 것이다.” 23 발람은 또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하실 때는 아무도 살지 못하리라. 24 키프로스 바닷가에서 배들이 와서, 앗시리아와 에벨을 물리쳐 이길 것이다. 그러나 그들도 역시 망할 것이다.” 25 이 말을 하고 발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발락도 자기 갈 길로 갔습니다. |
발람은 예언을 마치고서 자신의 집(the tent)으로 간다. 집은 안식처, 안락함과 평온함이 깃든 곳을 의미할 것이다. 그리고 발락은 자신의 길(the way)로 여전히 간다는 것이다.
이 상황에 가장 알맞은 시편의 말씀이 떠 오른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시1:6)
발람은 우리 믿는 이방인을 뜻한다. 결단코 이스라엘을 대적한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자신의 욕심대로 행한 사람도 아니다. 발람에 대한 이해의 시각을 다시 잡을 수 있기를 바란다. 발람과 발락의 사건은 이방인을 향한 야훼 하나님의 구속사가 이스라엘이라는 자신의 종을 통해 어떻게 이루어나가시는 지를 보여준 가장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때 야훼 하나님께서 자신의 종으로 보시는 이스라엘에 대한 평가를 유심히 보시기 바란다.
민수기 (쉬운성경) 23: 8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저주하지 않으셨는데, 내가 어찌 그들을 저주할 수 있으랴! 여호와께서 꾸짖지 않으셨는데, 내가 어찌 꾸짖을 수 있으랴! 23: 21 하나님께서는 야곱 백성에게서 아무런 잘못도 찾지 못하셨고, 이스라엘에게서 아무런 죄도 찾지 못하셨다네. 그들의 하나님이신 여호와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니, 그들이 자기들의 왕을 찬양할 것이다. 24: 5 야곱 백성아, 너희의 장막은 아름답고, 이스라엘아, 너희의 집은 아름답구나. 24:6 너희의 장막은 골짜기처럼 펼쳐졌고, 강가의 동산 같구나. 여호와께서 심으신 침향목 같고, 물가에서 자라는 백향목 같구나. |
현재의 이스라엘을 바라보시는 이들에게 강한 메시지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이스라엘의 무엇이 현재 잘못되었고, 무엇을 다시 바로 잡아야 하고…라는 등의 비판하는 자세는 발락의 모습과 유사합니다.
야훼 하나님은 이스라엘에서 그 어떤 잘못도 찾을 수 없다고 말하십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야훼 하나님을 향해서 “더 많은 먹을거리, 더 편한 삶…”등등을 원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결단코 죄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들의 아이들이 “엄마, 나 오늘은 밥 먹기 싫고 짜장면 사줘요”라고 말했다고 해서…
밥을 준비하시던 엄마된 이가 ‘자신의 자녀를 집에서 내쫓는 경우’가 가능할까? 아니다. 단지 꾸중과 책망을 들을 수는 있지만, 결국 ‘사랑하는 자녀’인 것이다. 그 자녀를 향해서 ‘옆집의 아저씨’가 비난하고 조롱할 경우, 그 자녀를 둔 부모는 옆집의 아저씨에게 강한 반감을 표현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모습은 야훼 하나님도 그렇다. 그러니 이스라엘에 대한 시각을 다시 한번 되짚어보시길 강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