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등살에 떠밀려 입학한 집근처 전문대 간호학과였다. 나는 그때 독립의지가 너무너무 강했던 20살이었다. 그 학교만 아니면 됐었다. 대구든 부산이든 대전이든 집을 떠나고 싶었는데 고3때 나는 그닥 열심히 살지 못했다. 그래서 인문계열과는 다른 간호과를 가게되었고 입학할 때 우울했었던 기억이 난다.
여길 떠나려면 이젠 대구, 대전도 안된다. 무조건 서울이어야만 했다. 그래서 시험기간 1주일 앞두고는 학교 도서관과 집만 왕복했다. 그렇게 1년 뒤 교직이수 자격을 땄고, 그 이후에도 똑같은 패턴을 반복했다.
취업이 이상하게 나만 어려웠다. 서울에 있는 큰 병원들을 10군데 이상 원서를 넣었고, 면접만 보면 탈락이었다. 그렇게 겨우겨우 들어간 병원에서 1년 반만에 우연찮은 기회로 큰 대학병원을 들어가게 되었다. 학부시절 이왕 갈거면 여길가자! 했던 병원이었는데, 꿈과 현실은 정말 멘붕이 올정도로, 잔혹하게도 달랐다. 그렇게 겨우겨우 버티다 1년이 지나고 3년이 지났다.
4년쯤 접어드니 어딜 이직한다는게 너무 아까웠다. 그동안 수많은 그 시간들을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번아웃증후군은 나에게 찾아왔고, 이래선 안되겠다 싶어 RN-BSN을 했다.
2년이란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게 지나왔다. 그러고 나니 2년간 멈췄던 번아웃 증후군이 물밀듯이 밀려왔고, 부서이동을 하면서 1년을 또 적응하느라 결혼준비 하느라 그렇게 보내버렸다.
작년 연말 쯤 엄마가 조심스럽게 얘기했다. '보건교사 채용이 늘었다더라.. 너 교직이수한거 아깝지 않냐..'
진짜 나는 '아깝다'는 단어가 너무 싫다. 날 붙잡고 늘어진다. 그렇게 또 발목이 잡혔다.
내가 과연 3교대를 하면서 진행 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들 공부하는 시간에 나는 일을 하고 있을텐데 과연 따라갈 수 있을까.
그럼 사직을 하고(휴직할 사유를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공부를 해볼까.. 그러다 안되면 어쩌지??
아.. 남편이 있다 참.. 전세금 대출도 있다.. 남편 벌이로는 현실에 부딪혀버린다..
그래도 한번 해볼까? 왠지 이번이 아니면 안될거 같은데..
허허 학원비가 장난이 아니네.. 300만원을 우선 어떻게 결제를 하지.. 남편한테 뭐라하지..
과연 시댁에선 응원해줄까.. 사직하고 공부한다고 하면 우리 아빤 또 나에게 그러겠지
'굳이 사직까지 하면서 해야하니, 아깝다 8년 경력..'
이렇게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3달을 그렇게 고민만 했다.
주변 사람들, 친구들은 '아니 왜 교직이수 있는데 안해? 왜 고민해?' 라고만 했다
내가 이걸 해서 붙는다는 확신이, 아니 확실하게 붙는 결과를 향해 공부를 하는거면 이렇게 고민도 안했을텐데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 내 속만 답답하고 머릿속만 복잡하고 무거웠다
근데, 나는 더이상 여길 다니고 싶지 않다. 남부럽지 않은 연봉이지만 내가 하는 일에 비하면 박봉이다.
여기서 더이상 스트레스 받고 싶지 않고, '출근하기 싫어' 라는 말을 출근 할 때마다 하고 싶지도 않다.
새벽 5시 30분에 출근하는 지하철 타러 나오면서, 아침 7시에 퇴근하는 지하철 타고 졸면서 그렇게 더 살고 싶지 않다..
아픈게 내탓도 아닌데 내탓인양 투사하는 환자들을 상대하기에 너무 지쳐버렸다.
내가 오더낸것도 아니고, 내가 오라고 한것도 아니고, 내가 기다리라고 한것도 아닌데
의사와 환자보호자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껴있는것도 너무 지친다.
나한테는 온갖 소리를 질러가며 진상부려놓고 정작 의사앞에서 고개 숙이는 사람들도 너무 보기 싫어졌다.
나는 신이 아닌데 IV 한번에 못했다고, 채혈 한번에 못했다고, 불편한 곳에 IV 했다고 (오죽 혈관이 없었으면 그랬을까)
혈관도 없는 곳에 놔달라고 여기 아니면 싫다고, 무슨 놈의 병원은 맨날 피만 빼가고 치료는 안해준다고 하는
이 모든 말들을(이보다 더한말도 많지만..) 하루 8시간을 들어가며 일하기엔 내 정신이 너무 피폐해지고 우울하고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자괴감이 든다.
앞으로 아가가 생기면 새벽 5시 30분에 아가를 떼어놓고 나오는게 얼마나 끔찍할지..
밤에 아가가 아픈데 엄마라는 나는 병원에서 미친년처럼 일하고 있는게 맞는건지..
애가 커서 친구가 생겼을때, 그 친구는 주말에 부모님이랑 놀러도 다니고 신날텐데 엄마라는 나는 주말에 병원에 들어가있는게 맞는건지..
우선 해보자
3교대를 하지만, 우선 해보자. 조금 더 집중하고 절실하게 해보자.
나의 저 고민을 듣곤 같은 간호사(병원은 다르다)를 하는 절친이 그랬다
'니 년이 아직 절실하지 않아서 그렇다. 나는 교직 못한게 한이다.'
다른 절친(경찰공무원을 잠깐 준비했던)은
'지금은 300,400만원이 아까울지도 몰라도, 그 돈이 니가 합격했을때 앞으로 너의 시간은 3억이될지 30억이 될지 모른다'
그래 해보자.
남편한테 말했다. 이 모든 고민을 모조리 다.
연애때도 힘들단 말을 입에 달고 살았고, 오프땐 집에서 어디 가는게 싫고 그저 쉬고만 싶어했던 날 봐왔던 사람이다.
아직도 한달에 1~2번은 힘들어서 울고, 자다가 하지불안 증후군 때문에 다리가 아파 끙끙대면 본인이 자다가도 깨서 다리를 주물러주던 사람이다. 그런 남편한테 또 힘든 짐을 지어주게 되었다며 어떻게 했음 좋을지 물어봤다. 오빠가 하지 말라면 안하겠다 라고 엄포를 놓으면서 물어봤다.
'해. 힘들어지겠지만.. 도와줄 수 있을 만큼 도와줄께, 안되더라도 하고 후회하는게 나아.'
그래서 하기로 했다. 해보기로 했다.
10년 전 체력도 10년 전 머리도 아니겠지만, 해보기로 했다.
병원을 다니면서 우선 해보고 안되겠음 사직하고 하지 뭐..
해보자 그래, 기억을 더듬어 가며 배우고 해보자.
2019년 보건교사가 되어보자. 이번이 아니면 안될거 같다. 올해가 처음이자 마지막일거 같다.
첫댓글 간절하면 이루어지겠지요~~서로 화이팅 해요!!!
샘...하면됩니다! 작년합격자....
공감되는 글이에요 .. 다들 힘든 시간들 힘내보아요 !!
네.......샘.......!!
우리 모두가 경험했던 아픔일 거에요.......!!
초심을 굳게 세우셨으니, 학습계획을 꼼꼼하게 세우시고 꾸준히 매진하신다면
반드시 좋을 결과가 함께하리라 믿습니다......응원합니다.......홧팅......!!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8.03.23 08:33
그런 간절함이 있으시면 붙으실거에요 보건교사 참 좋네요~~^^
공감이 되네요 ㅠㅠ! 같이 화이팅 해요!!!
ㅇ응원합니다!!
글이 너무 감동이에요ㅠㅠ 화이팅해서 합격해요 모두^^*
다들 보건교사가 되어서 새로운 인생 살아봅시다 ♥
샘 저랑 비슷하시네요 ㅠ 같이 열심해 해보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