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이 맛과 비슷하기라도 한 것이 또 있단 말인가. 존득존득 탄력 넘치는 저작감에 씹을 때마다 뜨겁고 고소한 육즙이 터져나고, 매콤달콤한 양념에 밴 매캐한 숯불 향까지. 차가운 소주 한잔에 이보다 더 어울리는 안줏감이 더 있을까.
곰장어(꼼장어)는 애초 허드레 생선이었다. 지갑 제작용 가죽을 벗기고 남은 살점을 구워 먹던 것이, 지금은 술꾼들의 대표 안줏거리로 당당히 위용을 떨치고 있다. 눈이 없어 ‘먹장어’라 불리는 곰장어는 흡착판 하나만 달랑 가진 원시생물(칠성장어)과 흡사하다. 척추를 지닌 장어와는 아예 다른 종이다. 남해안에서 많이 나는 곰장어는 통영이나 마산에선 주로 쪄먹고, 가죽공장이 있는 부산에선 껍질을 벗겨 내다 팔고 남는 살은 굽거나 볶아 먹었다. 부산에는 자갈치식과 기장식 등 2종류가 있듯 ‘곰장어 구이의 본향’으로 알려졌다. 기장식이야 잘 알려진 대로 짚불로 초벌한 다음 석쇠에 올려 구워 먹는 방식이고 자갈치식은 양파를 듬뿍 넣고 볶아낸다. 춘곤증을 이겨낼 풍부한 영양소를 다량 함유한 곰장어. 그 꼬들꼬들한 매력에 빠져들 봄날이 왔다.
서울 마포구 망원동 ‘용머리숯불꼼장어·굴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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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추운 겨울철에 더욱 인기를 끄는 이 집은 오후 5시 가게 오픈과 동시에 밀물처럼 사람들이 몰려 쉽사리 자리를 찾기 어려운 곳이다. 저녁 퇴근 후 직장인들이 몰려드는 오후 7시쯤 피크타임엔 한 두시간 정도 기다림은 각오해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예약 대기명단에 이름과 연락처를 남기면 자리가 비는 대로 연락을 주기 때문에 추운 밖에서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다. 좁은 가게 안은 옹기종기 모여 앉은 사람들로 왁자지껄 정겨움이 넘친다. 가게 주방 앞 원형 테이블에선 주인장이 정성스러운 손길로 쉴 새 없이 곰장어를 구워낸다. 덕분에 타지 않고 맛있게 구워진 곰장어를 바로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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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의 대표메뉴 곰장어는 매콤달콤한 양념 곰장어와 담백한 맛을 살린 소금 곰장어 두 종류다. 숯불 위에 노릇하게 구어 낸 양념곰장어는 깻잎에 싸서 먹어야 제맛이다. 매콤달콤한 양념이 입맛을 자극하고 야들야들한 육질과 육즙이 입안 가득 퍼지며 소주를 부른다. 양념곰장어와 달리 소금곰장어는 양념 없이 소금으로만 간을 했다. 노릇하게 구워진 소금곰장어는 기름장에 찍어 깻잎에 싸서 먹는다. 소금곰장어는 입안으로 퍼지는 향긋한 깻잎 향과 함께 씹을수록 고소한 곰장어의 담백함이 입안 가득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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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집의 꼼장어를 맛보기 위해선 기다림은 필수. 가게 앞엔 벌써 수많은 사람이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긴 줄을 드리우고 있다. 다행히 추위에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열풍기와 곳곳에 착화탄을 이용한 간이난로가 놓여있다. 가게 출입구 바로 옆에선 두 명의 청년이 능숙한 솜씨로 곰장어를 연탄불 위에서 구워낸다. 초벌구이를 마친 곰장어를 바로 옆 동료에게 전달하면 다시 고추 양념에 버무려 다시 구워낸다. 이어 현란한 가위질이 이어지고 다 구워진 곰장어는 석쇠에 함께 손님상에 올린다. 덕분에 자리에서 다시 굽지 않고도 바로 꼬득한 곰장어를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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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의 양념꼼장어는 칼칼하게 매운맛이 특징이다. 청양고추가루와 양파와 키위, 배 등을 갈아 넣고 조청과 매실청을 더했다. 마지막으로 곰장어 특유의 잡내를 잡기 위해 식용목초액을 넣어 고추양념을 완성한다. 야들야들하게 구워진 곰장어는 칼칼한 고추양념이 어우러져 담백하면서 살짝 매운맛을 내는 것이 묘한 중독성마저 느낄 수 있다. 잡내가 느껴지지 않고 깔끔한 맛이다. 북적거리는 가게 안은 60~70년대 추억을 소환하는 당시 영화 포스터와 교련복이 걸려있다. 메뉴 또한 과거 학창시절과 군 시절을 연상케 하는 양철도시락 ‘벤또’와 반합에 비벼 먹는 ‘짬밥’을 각각 3000원에 판다.
산곰장어 양념구이. 부산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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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통한 산곰장어를 잡아 양념을 묻혀 내온다. 참숯에 올려 잠시 구워내면 속에서 당면 비슷한 기관이 쭈욱 늘어진다. 이때 집어먹으면 그만이다.
달지 않은 양념이 담백한 곰장어 살에 배어들어 환상의 조화를 이룬다. 솜씨가 보통 아니다. 곰장어가 여느 집보다 통통하다. 불에 올리면 스물스물 움직일 정도로 신선하다.
특제 양념장에 찍어 먹어도 좋고, 그냥 양파와 함께 고추장에 찍어도 좋다. 원래 양념 맛이 스며들어 있어 별 상관없다.
곰장어는 소·중·대 크기로 나눠서 파는데, ‘중’ 크기와 민물장어 한 마리를 함께 묶은 ‘니캉내캉’ 메뉴도 있다. 가격은 조금 비싼 편이지만 산곰장어와 참숯을 쓰는 것을 감안하면 괜찮다. 비슷하면서도 저렴하게 안주를 이어나갈 수 있는 오징어 양념구이는 마지막에 먹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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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콤한 맛은 곰장어를 굽는 순간부터 생겨난다. 30년 전통을 자랑하는 일급비밀 소스 덕이다. 고추장이 주재료이지만 주인은 그 외의 것은 영업비밀이라며 더 이상 말을 아꼈다. 달콤한 맛은 매실을 기본으로 만든 또 다른 소스에 있다. 구워진 곰장어는 매실을 기본으로 한 소스를 바른 후 양배추, 깻잎, 부추 등 영양소 높은 채소와 무쌈에 얹어 먹는다. 곰장어 하나를 먹을 때마다 수고스럽지만 이내 입속으로 들어가면 아삭아삭 섞이며 살살 녹는 맛이 일품이다. 자신과 곰장어를 사랑하는 이에게 점수를 따려면 필수적으로 한번 들러봐야 할 듯한 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