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없다면 모기가 있건 없건 옛다 피 드시오 하고 그냥 자겠지만, 유빈이를 사이에
두고 한 침대에 누운 백랑과 백랑 마눌은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어디서 모기가
들어오는지 분명 다 잡았는데도 다시 보면 모기의 공습이 끊이질 않았고, 시장 근처
여관방에는 모기를 위한 별다른 안전장치는 보이지 않았다. 앵앵거리는 모기소리에
무의식적으로 잠이 깨어 벽에 착륙해 있거나 아니면 공습을 해오는 모기를 박멸시키지
못하면 다시 경계경보 속에서 스르르 자리에 누워 감시의 레이다를 돌려야만 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탕론의 울음소리 만이 부족한 잠을 부추길 뿐이었다. 그 놈(한 새끼
탕론)을 발견한 것도 그런 인연이었으리라. 금쪽같은 내 새끼 유빈이의 피 한방울을
지키기 위해 사정 없이 뜯긴 내 몸을 벅벅 긁으며 앵앵거리는 모기를 때려 잡으려고
무의식적으로 일어나 불을 켜고 레이다를 가동시켰는데, 우연히 레이다에 들어온 것이
창가에 붙어있던 그 놈이었다. 백랑이 잡으려하자 얼른 천장 쪽으로 도망치더니 유유히
사라져 버렸다. 그 놈을 잡을 수 있었던건 그 다음날인가 다다음날인가 새벽쯤이었을
것이다.
다시 새벽에 모기를 때려잡기 위해 일어났다가 화장실을 가려고 하는데 문득 전기
콘센트 옆에 꼼짝도 안하고 있는 예의 그 새끼 탕론을 발견했다. 장인께서 애기를 위해
사오신 해먹(그물침대)이 장애물이 되어 접근하기에 용의성은 없었다. 하지만 천장에
있다면 승산이 없겠지만, 아래쪽이라면, 더구나 새끼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는 계산을
하며 해먹을 구석으로 천천히 밀면서 조금씩 접근해 나갔다. 백랑의 접근을 눈치챘는지
놈은 재빨리 바닥으로 내려왔고 해먹의 쇠받침을 사이에 두고 몇 번이나 양쪽으로 대치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러나 여느새 놈은 백랑이 뻗은 손 안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었고 중학교때
과천 계곡에 가재 잡으러 갔다가 도롱룡을 잡았을 때의 짜릿함이 밀려 들었다. 잘라진
놈의 작은 꼬리만이 마치 살아있는 듯이 바닥에 요동을 쳤다. 주위를 아무리 둘러 봐도
잡은 새끼 탕론을 넣어둘 만한 것이 보이지 않았고 어쩔 수 없이 면봉을 다 뺀 면봉 봉지에
꼬리와 함께 넣어 짚을 채우는 수 밖에 없었다. (후에 여관 옆의 마트에서 작은 플라스틱 통을
구입하여 옮겨 주었다)
그 때부터 탕론과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뭘 잘먹는지 몰라도 날벌레를 좋아할 것 같아
모기를 봉지에 넣어 줬지만, 죽어 있는 것은 먹지 않았고, 살아 있는 것만 먹었는데
그것도 밤에 자는 사이에 먹기 때문에 모기를 먹는 모습은 관찰할 수가 없었다. 함께
넣어둔 꼬리도 없어진 것을 봐서는 잘린 꼬리도 먹은 것이 분명하다.
백랑 마눌은 이해가 가지 않는단다. 베트남 사람들 다 싫어하는 도마뱀을 잡아서
기른다고... 하지만, 백랑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의든 타의든 탕론은 베트남의
상징이나 다름이 없다. 옛날 사이공 킥(Sigong Kick)이라는 밴드의 앨범 자켓에도
탕론의 그림을 넣어 디자인이 되어 있었듯이, 여행객들의 뇌리에는 벌써 베트남을
떠올리며 그 징그러우면서도 귀여운 탕론의 각인이 되어 있는 것이다. 놈을 한국에서
잘 키울 생각으로 벌써 백랑은 흥분이 되어 있었다. 베트남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를
집에서 항상 볼 수 있도록 키운다는 사실이... 하지만, 결국 그 꿈은 실현되지 못했다.
백랑은 마눌에게 이놈이야말로 유빈이 동생이라고 설득시켰는데, 온 처가 식구들에
그 얘기를 전하는 바람에 순식간에 백랑과 백랑 마눌은 탕론의 아빠 엄마가 되어
버렸다. 8살의 어린 처제는 한술 더떠 백랑더러 탕론이란다.
점점 놈의 먹이를 대주는게 힘에 부쳤다. 모기를 살아 있는 채로 잡아야 하니, 얼마나
힘들던지, 날개미나 거미를 넣어줘 봐도 먹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 여관 현관문 틈에
숨어 있던 새끼 탕론 또 한 마리를 발견하고 옆에 있던 청년의 도움을 받아 잡게 되었다.
그 놈은 꼬리를 완전히 다 잘라내 버렸는데, 통에 들어가자 마자 씩씩거리고 돌아
다니며 걸리적 거리는 날개미를 입으로 물어 던져버렸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는
것이다. 먹이도 먹지 않았고 끝내 그 놈은 다음날 싸늘하게 식어버린 모습으로 통의
바닥에 고이 누워 있었다. 결국 위기 상황에서 침착하지 않고 흥분을 하게 되면 더 빨리
최후를 맞이 하게 된다는 교훈을 남기고......
공항에서 새끼 탕론이 든 통을 카메라 가방에 넣어 들여 옮으로써 모든 검색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한국에 들어와 공항버스를 내릴때 까지만 해도 기운은 없어 보여도
살아 있었지만, 정류장에서 집으로 걸어오는 동안 (버스로 한 정거장 거리라서) 결국
새끼 탕론은 운명을 달리 하고 말았다. (원인은 둘 중 하나다, 숨이 막혀서 거나 날씨가
너무 추워서 - 그 날따라 날씨가 장난 아니게 추웠다.) 탕론을 키우겠다는 백랑의 꿈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탕론이 왜 한국에는 없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베트남은 더운 날씨 때문에 집이
외부와 오픈 되어 있는 형태로 되어 있고 집집마다 켜놓은 불빛을 따라 들어온 날벌레를
쉽게 들어와서 먹을 수 있지만, 한국의 집은 추위 때문에 외부와 완전 차단되는 형태로
되어 있으며 불빛을 보고 들어오는 벌레도 그다지 없다. 결국 베트남은 (특히 남부)
탕론이 번식할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을 지닌 셈이다.
탕론의 서거를 아직 베트남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로 통보했더니 다음에는 처남을
시켜서 크고 씩씩한 놈들을 많이 잡아 놓겠다고 한다. 요즘엔 애완용 도마뱀도 많이
키우는데, 도마뱀 대신 탕론을 키워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단지 성공 여부는
미지수이지만 말이다. 다음에는 탕론 양육 성공담을 쓸 수 있는 기회가 꼭 오길 바란다.
봉지에 갇혀 산 모기와 죽은 모기 사이에서 사색에 잠긴 탕론
통에 갇힌 모습이다.
후레쉬를 터트려 찍으니 적나라한 살색이 드러나며 뱃속이 훤히 비취는 모습이 조금 징그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