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의 글은
2018년 7월 23일 포스팅하였습니다.
사극의 대장정, 그 끝없는 투어는
54부작의 "대장금"에 이어 50부작의 "마의"를 넘어 14부작의 무협 드라마 "비천무"까지 시청하였습니다.
사극 2003년의 대장금과 2007년의 이산과 2010년의 동의와 2012의 마의는
이병훈의 연출로 사극의 정서가 비슷하였습니다.
지금까지 본 사극은 대부분 MBC사극인데
다른 방송국의 사극은 유튜브에 파편적인 조각 영상 밖에 없어 시청할 수 없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사극 "마의"의 마지막 50편이 없어
시청을 마무리하지 못하였습니다.
사극의 정서는 민속촌의 배경이 말해주듯
어린 시절의 향촌 마을과 유사하였습니다.
사극에 투영된 어린 시절의 문화는
더욱 사극의 향수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광장과 아스팔트의 태극기 물결에 흐르는 눈물의 상처를 스스로 치료하기 위해 시작한 사극의 투어는
놀랍게도 버킷 리스트로 손색이 없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사극에 투영된 시대상은
온고지신의 역사적 의미를 상기하였습니다.
향촌유벽한 순박한 삶의 정서를 가진 사극의 배경은
어린 시절의 정감어린 추억을 공유하였습니다.
문득 어린 시절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며
물과 불에 대한 기억은 세월의 정서를 그대로 녹였습니다.
물을 길어 먹는 역사는 사극의 고장이 되었고
장작을 패는 나무의 역사 또한 사극의 고장이 되었습니다.
지게를 지고 나무를 하고 도끼로 장작을 패는 모습은
사극의 어느 시대에 놓아도 그대로 그 시절의 문화를 대변하였습니다.
지게를 지고 산에서 나무를 하였던 어린 시절의 추억은
사극의 역사에 흐르는 정서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물을 깃는 모습은
어린 시절 향촌유벽한 삶의 추억이 사극에 그대로 투영되었습니다.
새마을 운동을 하기 전까지 시골의 모습은
물을 깃는 사극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기억을 떠올려 보면 어린 시절 물에 대한 추억은
낙동강의 물을 져다 먹은 기억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겨울에 얼음을 깨고 낙동강의 물을 길어 먹었던 시절은
먹는 물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억으로 상기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을 위의 산에서 솟아나는 도랑의 샘물을
물지게로 길어 물두멍을 채웠습니다.
마을 중앙으로 흐르는 도랑은
맑고 깨끗한 산의 골짜기 물 그대로였으며 마을의 정서를 풍요롭게 하였습니다.
부억에는 아주 큰 물두멍이 있어
항상 물두멍의 물을 채우는 것은 일상의 삶이 되었습니다.
급류의 끝자락에 위치한 도랑의 샘물은 바위에서 솟아나는 샘으로
마을 사람들이 모두 먹고도 남았습니다.
또한 소먹이러 다니던 산길의 모퉁이에 샘이 솟아 났는데
바위 틈새의 옹달샘은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항상 맑고 깨끗한 물을 제공하였습니다.
마을 어귀에도 두레박으로 길어 먹는 우물이 있었는데
주로 허드레물과 쇠죽을 끊이는 물로 사용하였습니다.
마을 앞에는 들판을 지나 낙동강이 흐르고
산 기슭에 자리한 마을은 산의 물로 수량이 풍부하였습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까지 호롱불 아레서 공부하였는데
중3 때 전기가 들어 올 무렵 집의 마당에 펌프가 설치되었습니다.
마중물을 부어 사용하는 펌프는
더 이상 물지게를 지고 물을 깃는 역사를 종식하였습니다.
그 후 고향 마을에도 수도가 들어 왔고
지금도 그 수도물은 어디에서 들어 왔는지 알지 못합니다.
아마도 군이 시로 편입되면서 수도 시설이 설치되었는데
강원도 산촌의 지하수를 수도로 이용하는 것과 같은 공동 시설은 아니었습니다.
어린 시절 여름에는 산에 소를 먹이러 다녔고
겨울에는 땜감을 위해 산에서 나무를 하였습니다.
비탈진 산길 나무를 해서 지게에 한짐 가득 싣고 산길을 내려왔던 추억은
사극의 정서에 그대로 반영되었습니다.
물지게를 지는 일은 몸의 균형과 리듬을 마추지 않으면
도랑의 샘물을 길어 옿는 동안 물통의 물은 절반이나 줄어 듭니다.
물지게를 지는데도 물통의 물을 절반이나 흘리는 초보와
물통의 물을 길바닥에 하나도 흘리지 않은 고수의 길이 있습니다.
물지게를 지고 몸의 균형과 리듬을 맞추는 고수의 길은
산에서 나무를 해서 비탈진 길을 내려 오면서 넘어지지 않는 고수의 길과 함께 익숙한 일상의 삶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직 작대기의 역활은
지게의 무거운 짐을 지고 일어서는데 지렛대 역활을 하며 비탈진 길을 내려 올 때
넘어지지 않게 균형을 잡아 줍니다.
물지게의 군형과 리듬, 그리고 지게 작대기의 역활은
투박한 사람의 모습에서 고수의 길을 일깨웠습니다.
중용의 지혜를 갖게 하는 물지게와 지게 작대기는
예레미야의 모레 언덕으로 바다의 한계를 정한 것과 전도서의 형통한 통한 날과 곤고한 날의 병행과
일용할 양식을 구한 아굴의 잠언을 궁구하게 하였습니다.
☞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내 허무한 날을 사는 동안 내가 그 모든 일을 살펴보았더니
자기의 의로움에도 불구하고 멸망하는 의인이 있고 자기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장수하는 악인이 있으니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하게 하겠느냐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우매한 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기한 전에 죽으려고 하느니라(전7:13-17)
☞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가 나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내 앞에서 떨지 아니하겠느냐
내가 모래를 두어 바다의 한계를 삼되 그것으로 영원한 한계를 삼고 지나치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파도가 거세게 이나 그것을 이기지 못하며 뛰노나 그것을 넘지 못하느니라(렘5:22)
☞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잠30:7-9)
이렇게 물지게와 지게 작대기에 투영된 사극의 온고지신은
무더운 여름을 잊게 하는 향촌유벽한 삶의 동경과 함께 얼음 냉수와 같이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