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삶의 목표 (잠 11:18-21)
이 시간에 “성도의 삶의 목표”라는 제목으로 오늘 말씀의 은혜를 받고 자합니다.
목표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천양지차이입니다. 목표에는 법칙이 있다고 합니다. 목표의 제 1법칙은 “아무 것도 겨냥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명중시킬 수 없다.” 즉 목표를 세우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공 유무의 차이는 목표의 차이입니다. 그만큼 목표가 중요합니다.
이런 말도 있습니다. 실패한 사람은 용서할 수 있어도 목표가 없는 사람은 용서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실패가 두려워 목표를 세우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성취하지 않겠다는 말과 같기 때문입니다. 마치 실패가 두려워 땅에 묻어두었던 게으르고 악한 종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충성된 종은 실패를 무릅쓰고 주인을 위해 모험을 했습니다. 목표에는 단기 중기 장기가 있는데 우리 성도의 삶의 목표도 그렇습니다.
그럼, 성도의 삶의 목표는 무엇일까요?
1. 하늘의 상을 목표해야 합니다.
18절 “악인의 삯은 허무하되 공의를 뿌린 자의 상은 확실하니라” 여기 상이 나옵니다. 악을 뿌린 자는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공의를 뿌리며 수고한 자는 하늘의 상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상을 주신다 하시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상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열심히 하라고 보너스로 신설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을 무시하지 않아야 합니다. 상을 무시하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3:14) 하늘의 상을 바라보고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공의를 뿌린 자의 상은 확실하다 했습니다. 심는 대로 거두는 법칙은 영원불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합당하게 늘 뿌리십시오. 수고하고서도 상을 못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가면 우리가 예상했던 것과는 상이 다를 수 있습니다. 상이 많을 줄 알았는데 별 것 없고 보잘 것 없을 줄 알았는데 상이 클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누가 하남을 사랑했느냐? 누가 더 십자가 아래 내려가서 섬겼느냐를 보시기 때문입니다. 잘못하면 수고하고서도 상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마6:1-2에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하셨습니다. 꼭 하나님 앞에 하늘의 면류관, 큰 상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영원한 생명을 목표로 해야 합니다.
19절 “공의를 굳게 지키는 자는 생명에 이르고 악을 따르는 자는 사망에 이르느니라” 여기 생명은 히브리어로 ‘하야’라고 하는데 ‘생명, 소성, 구원’ 등으로 변역되는 영적 생명을 포함하는 의미입니다. 영원한 영생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어떤 아랍 사람들이 사막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가지고 있던 식량도 다 떨어졌습니다. 그들은 방황하다가 사막 가운데 한 작은 샘터를 발견하고 거기서 물은 마셨지만 배가 고파 죽어갑니다. 그래서 둘러보니 얼마 전 거기에 천막을 쳤던 흔적을 발견했고 또 어떤 주머니 하나를 주웠습니다. 값비싼 진주가 가득했습니다. 기뻤을까요? 조금도 기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 진주를 한 움큼씩 쥐고 사방에 던지며 외쳤습니다. "겨우 진주였단 말인가?" 배가 고파 죽어가는 마당에 진주가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생명이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막8:36에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그랬습니다. 육신의 생명도 귀하지만 영원한 생명은 더 귀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마5:29-30) 하셨습니다.
내 생명만 중요할까요? 타인의 생명도 귀합니다. 그래서 예수 믿었으면 이제 우리 목표는 전도가 되어야 합니다.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것이 이미 생명 가진 자의 사명이며 의무이며 책임이며 목표입니다.
3. 하나님의 영광을 목표해야 합니다.
20절 “마음이 굽은 자는 여호와께 미움을 받아도 행위가 온전한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 하나님께 미움 받지 말고 하나님께 사랑 받고 기뻐하심을 받자는 말입니다.
소요리 문답 제 1문답에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이 목적이 고전10:31에 나옵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엡5:10에는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제일의 목적이 바로 인간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기쁘게 해주십니다. 영국의 청교도 소설가 리차드 백스터(Richard Baxter ; 1615~1691)는 왜 인생이 기쁨이 없는가에 대해 “성도에게 기쁨이 없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무엇을 구하든지 허락해 주십니다. 요일3:22에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에녹의 죽음도 면제해 주셨습니다. 세상 살면서 천국의 영광 속에서 살게 해 주실 것입니다.
4. 장성하고 온전한 믿음을 목표해야 합니다.
21절 “악인은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하지 못할 것이나 의인의 자손은 구원을 얻으리라” 손을 잡는 것은 유대감을 뜻합니다.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힘을 결집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유대감을 갖는 이유가 뭘까요? 그런 결속을 가지고 힘을 얻어 의인을 대항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의인은 하나님이 보호하시므로 거기서도 구원을 받고 그들은 자기가 저지른 악의 결과에 의해 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성도에게 주시는 은혜가 심히 큽니다.
그토록 완벽한 최악의 상황에서 구원함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입니다. 이것은 또한 장성하고 성도의 온전한 믿음을 보여줍니다. 작은 일에 넘어지는 그런 믿음이 아니라 어떤 시험에도 승리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일에도 시험 들지 않고 승리하고 승리하는 완전한 믿음, 이것이 우리의 목표여야 합니다.
그래서 엡4:13-14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바로 이런 믿음이어야 합니다.
성숙해야 합니다. 장성해야 합니다. 어린아이가 되면 안 됩니다. 히5:14에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여기 지각은 ‘아이스데테리온’으로 영적분별력을 말합니다. 장성한 특징이 몇 가지 있는데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가 분별력입니다.
분별력이 있기에 미혹 당하거나 시험 당하지 않습니다. 왜 시험에 듭니까? 우매무지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현상만 보고 시험에 듭니다. 그러나 신령한 사람은 살상을 보고 영적인 것을 보고 신앙과 지혜로 대처합니다.
바울에게 귀신들려 점치는 여자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이라고 외치며 바울을 높일 때 바울은 어떠했습니까? 보통 사람 같았으면 기분이 좋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험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무척 괴로워 하다가 그 안의 귀신을 명하여 내쫓았습니다. 참으로 예수님처럼 영적으로 장성한 믿음을 목표로 하시기 바랍니다.
5. 주신 은혜 잘 감당하며 주님만을 목표하시기 바랍니다.
22절 “아름다운 여인이 삼가지 아니하는 것은 마치 돼지 코에 금 고리 같으니라” 돼지 코에 금 고리, 이것은 천부적인 아름다운 미인일지라도 바른 품행을 갖추지 못한다면 무가치할 뿐 아니라 웃음거리밖에는 되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아름다운 외모에 내적인 아름다운까지 갖추면 그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있겠습니까?
이처럼 항상 조심해야 할 것이 주신 은혜를 잘 감당해야 합니다. 고전10:12에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경고합니다. 성공했을 때 조심해야 할 네 가지 만이 있습니다. 교만 거만 자만 태만입니다. 이렇게 되면 끝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할수록 좋은 만도 있습니다. 성령충만, 하나님만, 예수만, 주님만,,,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감당하지 못하고 유성처럼 빛을 잃고 땅에 떨어졌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모르고 날뛰지 말고 첫째도 겸손, 둘째도 겸손, 셋째도 겸손하시기 바랍니다. 오직 주님만 목표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목표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목표를 가지셨기에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예수님도 목표의 예수님입니다. 목표가 있으셨기에 죄악된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우리 모두 하늘의 상을 목표하고, 영원한 생명전도를 목표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예수님 닮아 장성한 온전한 믿음을 목표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agas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