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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15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 오창우 목사
오늘은 8.15 해방 기념주일이다.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나라를 다시 시작한지 66년이 되는 날이다.
우리에게 ‘해방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우리에게 ‘새로운 시작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미국에서 사업을 잘 하고 있는 인투이트 회사가 있다. 컴퓨터에 들어가는 소프트웨어를 생산하는 회사이다. 제품을 만들어 성공을 할 때도 있으나 실패를 할 때도 있다. 특이한 것은 실패할 때이다. 실패를 하였으면 전 직원들이 모여서 <실패 파티>를 열었다. 사장은 실패파티를 여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실패작을 내놓는 것이 실패가 아니라 실패에서 배우지 못 하는 것이 진정한 실패다.” 실패하였다고 망하는 것이 아니다. 실패로 인해 더 잘되는 길도 있다. 실패해도 연장전이 있고 재기전도 있다. 8.15해방 기념주일은 ‘실패파티’이다. 실패에서 더 잘되는 길이 어디에 있는가를 배워야 할 것을 찾아야 한다.
오늘 성경에는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애쓰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40년 전 가나안 땅 정복에 나선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다 죽는 실패를 했다. 하지만 그 후손들은 실패의 교훈을 가울 삼아 기적적으로 요단강을 건너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고 드디어 가나안 정복을 했다. 오늘 본문은 실패의 교훈을 가지고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된 이스라엘의 새로운 삶의 시작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어떻게 새로운 시작을 하는가?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하나님이 준비하신 계획과 은혜는 무엇인가?
A.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획(은혜)는 무엇인가?
1절 “여호와께서..”
“요단 서쪽의 아모리 사람의 모든 왕들과 해변의 가나안 사람의 모든 왕들이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말리시고 우리를 건너게 하셨음을 듣고 마음이 녹았고 이스라엘 자손들 때문에 정신을 잃었더라”
1) 요단 물을 말리시고 건너게 하신 여호와
2) 왕들의 마음과 정신을 잃게 하신 여호와
-하나님은 모든 것을 준비하셨다.
교육학에 ‘머시멜로 법칙’이 있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윌터 미셀 박사가 4살 되는 유아원 어린이 635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머시멜로 라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말랑말랑한 사탕을 앞에 두고 15분 동안 먹지 않고 참는 어린이에게는 큰 선물을 주겠다고 한 것이다. 그 중에 30%의 아이들만 시험에 통과하고 나머지 70%의 아이들은 유혹을 견디지 못해 30초도 지나지 않아 머시멜로를 먹어버린 것이다. 14년 후... 이 아이들이 청소년이 되었을 때 어떻게 성장을 했는가를 보았더니..참고 기다린 아이들은 정신력도 강하고 사회성도 뛰어난 아이들로 자랐지만 참지 못하고 먹어버린 아이들은 쉽게 짜증내고 사소한 일에도 싸움에 뛰어들게 된 것이다. 신앙생활도 더 큰 상을 바라고 인내하는 사람이 승리한다. 나를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살아가는 신앙인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며 승리하게 되어 있다.
요셉을 보라. 요셉이 애굽의 노예로 팔려오고 감옥의 죄수가 되어도 억울한 나의 감정에 무너지지 않고 다시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준비하시고 일하심을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함께 하셨고 형통하여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는 복을 받은 것이다. 아브라함을 보라. 아브라함도 외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의 제물로 바치라는 엄청난 시험 앞에서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준비하셨음을 믿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외아들 이삭이 죽으면 다시 살게 하시든지 아니면 다시 아들을 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에 외아들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칠 수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 준비하시는 하나님이다.
수천 대까지 복을 받은 다윗 왕과 초대 임금이면서도 당대에 끝난 사울 왕의 차이, 예수님의 부름을 받아 제자가 된 것은 같지만 위대한 사도가 된 베드로와 배반과 저주의 대명사가 된 가룟 유다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우리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차이이다.
찬송가 가운데..“믿는 사람들은 주의 군사니 앞서 가신 주를 따라 갑시다. 우리 대장 예수 기를 들고서 접전하는 곳에 가신 것 보라 믿는 사람들은 주의 군사니 앞서가신 주를 따라 갑시다.” ( 351장 1절) ‘앞서 가신 주를 따라 갑시다’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은 가나안 정복을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하셨다.
넘실거리는 요단강물을 말리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육지같이 건너게 하시는 하나님, 아모리와 가나안의 왕들의 마음과 정신을 잃게 만드시는 하나님, 원수 마귀의 머리를 깨뜨리심으로 적들의 기세를 끊어 놓으심으로 먼저 싸우시는 하나님이다. 모든 것을 준비하시는 하나님!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획과 은혜이다.
그러면 나를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하시는 하나님 앞에..새로운 시작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B. 성도의 사명,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새로운 시작과 성공과 승리를 위하여 하나님은 두 가지를 명령하신다.
1. 2-9절 / “다시 할례를 행하라..”
“2 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3 여호수아가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할례 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니라 4 여호수아가 할례를 시행한 까닭은 이것이니 애굽에서 나온 모든 백성 중 남자 곧 모든 군사는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죽었는데 5 그 나온 백성은 다 할례를 받았으나 다만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난 자는 할례를 받지 못하였음이라 6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의 음성을 청종하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맹세하사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리라고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그들이 보지 못하게 하리라 하시매 애굽에서 나온 족속 곧 군사들이 다 멸절하기까지 사십 년 동안을 광야에서 헤매었더니 7 그들의 대를 잇게 하신 이 자손에게 여호수아가 할례를 행하였으니 길에서는 그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못하였으므로 할례 없는 자가 되었음이었더라 8 또 그 모든 백성에게 할례 행하기를 마치매 백성이 진중 각 처소에 머물며 낫기를 기다릴 때에 9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
-성도의 표징인 (할례)를 받아라
1) 하나님의 군사가 받는 할례(4-5)
2) 불순종의 저주를 끊는 할례(6-7)
3) 종살이의 수치를 떠나는 할례(8-9)
엄마와 딸이 정형외과를 찾았다. 나이가 60정도의 엄마는 의사에게 자신의 왼손을 내놓고 넷째 손가락을 잘라 달라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이끌려온 딸은 말없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잠시 후 엄마는 딸의 왼손을 잡고 원장에게 애원했다. “제 딸이 초등학교 때 농기구에 다쳐서 왼손가락 다섯 개가 다 잘렸습니다. 다행히 네 손가락은 접합 수술에 성공했는데 하필이면 네 번째 손가락은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우리 딸이 이번에 시집을 갑니다. 못생긴 제 손가락을 딸에게 줘 가락지를 끼워 주는 게 저의 소원입니다.” 딸은 말도 안 된다며 펄펄 뛰었지만 의사는 어머니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엄마의 손가락이 딸의 손에 이어지는 순간 엄마와 딸은 사랑으로 하나가 되었다. 하나님도 우리의 부족을 채워주시는 사랑을 주시기 원하신다. 그것은 할례를 행하라는 것이다.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할례를 행하라! 고 하나님이 명령하셨다. 할례는 남자의 성기 끝 부분을 잘라내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잘라낸 자리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을 붙여 주셨다. 할례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가는 새로운 시작의 징표이다.
할례는 아브라함이 제일 먼저 받았다(창 17:9∼11). 이후로 세상은 할례를 받은 사람과 받지 않은 사람,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으로 구분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후로는 할례가 세례가 되었다. 예수님 이후 이 세상은 세례를 받은 사람과 받지 않은 사람으로 구분이 된다. 할례나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구별된 거룩한 사람, 하나님의 백성의 의미로 성도라고 부른다. 거룩한 성도는 어떤 사람인가? 세례를 받은 사람은 받지 않은 사람과 어떻게 비교가 되는가? 돈인가? 아니면 권력인가? 세례를 받은 사람은 부자이고 권력자인가? 아니다. 무슨 차이가 있는가?
오늘 성경에 보면 적 앞에서 할례를 했다는 위험스런 장면이 나온다. 할례는 남자의 성기의 표피를 베어 내는 수술로 상처가 아물기까지는 고통스러운 시간이 계속된다. 창34장에 세겜 사람들이 할례를 받아 고통 중에 있을 때 야곱의 자녀들이 기습해서 죽임을 당했다. 만약에 지금 가나안 사람들이 쳐들어오면 꼼짝없이 죽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할례를 하라고 하시는 것은 어쩌면 아브라함에게 외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것과 다름이 없는 믿음의 시험이다. 여호수아의 이스라엘은 할례에 순종함으로 적들에 대한 두려움보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했다. 거룩한 백성의 자부심은 할례나 세례와 같은 의식을 한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얼마나 믿고 의지하는가? 에 있다. 당신은 어떤가? 세례를 받았을 때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사는 인생이 되었는가? 거룩한 백성이요 성도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할례를 받으라..고 하는 것은 사람이나 상황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라! 이다.
할례에는 하나님에 대한 철저한 믿음의 요구가 있다. 하나님의 군사가 받는 할례(4-5), 불순종의 저주를 끊는 할례(6-7), 종살이의 수치를 떠나는 할례(8-9)이다. 그렇다! 믿음에 대한 열망 없이 하나님의 준비된 축복을 받을 수는 없다. 믿음의 사람으로 승리하시기를 바란다.
2. 10-15절 / “유월절을 지켰으며..”
“10 또 이스라엘 자손들이 길갈에 진 쳤고 그 달 십사일 저녁에는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켰으며 11 유월절 이튿날에 그 땅의 소산물을 먹되 그 날에 무교병과 볶은 곡식을 먹었더라 12 또 그 땅의 소산물을 먹은 다음 날에 만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소출을 먹었더라 13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 서 있는지라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그에게 묻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적들을 위하느냐 하니 14 그가 이르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으로 지금 왔느니라 하는지라 여호수아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고 그에게 이르되 내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15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하니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
-공동체의 삶인 (유월절)을 지켜라
1) 땅의 복을 받는 유월절(10-12)
2) 보호의 복을 받는 유월절(13-15)
병든 군인을 치료하는 군의 의무 장병을 양성하는 자운대의 국군의무학교 정문의 커다란 돌비에는 이런 글자가 새겨져 있다. <살려야 한다!> 상처 입은 군인을 살려내야 한다는 절박감이 돌비에 서릿발처럼 새겨져 있다. 의무학교 돌비에 새겨진 이 말은 교회의 사명이기도 하다.
교회 공동체가 세상의 공동체와 다른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교회가 사회봉사단체와 차별화 된 것이 무엇인가?
유월절은 유대의 공동체가 모이는 날이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모여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성도 간에 교제를 나누는 날이 유월절이다. 예수님 이후에는 예수님의 몸 된 교회공동체가 모여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성도 간에 교제를 했다. 한마디로 사람을 살리는 일, 믿음으로 살리는 일, 하나님이 살리신다는 것을 보여 주고 위로한 것이다.
이스라엘백성들은 유월절 절기에 모여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출하여 자유인이 되게 하신 하나님, 가나안땅, 축복의 땅으로 인도하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가족이 모여 유월절 당시에 먹었던 양고기와 누룩 없는 떡을 먹고 이웃의 소외된 성도 들을 초청하여 같이 기쁨을 나누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교회 공동체 역시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받은 은혜를 기념하는 성찬식을 거행하며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성도들 간에는 가져온 음식들을 나누면서 서로 위로하고 격려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초대교회는 가진 것을 서로 나누는 일들을 통해 가난하고 어렵게 사는 이들을 살리는 아름다운 공동체였다. 유월절은 공동체가 믿음으로 살리는 날이다.
며칠 전 세상에서 실천하자는 기독리더들의 모임인 ‘샬롬을 꿈꾸는 나비행동’이 발족되었다. 신학자, 목회자, 시민운동가, 정치인, 변호사 등 각계 인사 320여명이 모였다는 아름다운 기사가 신문에 실린 것을 보고 감사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나비행동의 구체적인 실천으로 첫 번째로 선택한 것이 바자회를 열어 그 수익금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로 했다는 것이 아쉬웠다. 물론 바자회수익금으로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은 귀한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기독인들이...세상의 봉사단체처럼 바자회 수익금이 아니면 실천행동이 없는가? 이다.
예수님은 전도하러 가는 제자들에게서 전대를 놓고 가라고 하셨다. 아무 것도 가지지 말고 몸만 가지고 가라! 하나님이 하신 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할 말을 주시고 하나님께서 먹을 것을 주시고..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믿고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다. 그런데..오늘의 교회는 예수님의 생각과 많이 다르다. 예배당 건물이나 위치..시설과 서비스가 좋아야 한다고 한다. 사실 그렇다. 하지만 이것이 교회의 본질은 아니다. 교회는 믿음의 공동체이고 믿음으로 서로 위로 하고 격려하는 곳이다. 이를 위해 돈도 쓰고 사업도 하는 곳이다. 무엇이 먼저인가? 돈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다. 기도하는 믿음,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그 믿음으로 세상을 살리고 나라와 백성, 세계를 살리는 것이다. 돈 돈 돈 하지 말라...없으면 일은 작게 하거나 안하면 되지만 기도하는 일.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일..믿음으로 사는 일은 돈이 없어도 할 수 있고 믿음이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 교회 공동체이고 유월절 공동체의 정신이다.
교회는 영혼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는 곳이다. 교회 공동체의사명은 사람을 살리는 것인데...사람을 살리는 것이 돈이 없으면 못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우리는 천국갈 때 아무 것도 가져가지 못한다. 하지만 이 땅에서 살던 신앙인격과 삶의 자취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물론 사람을 살리는 일에는 돈이 필요하다. 구제도 돈이 있어야 하고 선교를 하려고 해도 교육을 하려고 해도 예배당을 건축하려고 해도 돈이 있어야 한다. 문제는 교회 공동체가 많은 일을 하려다 보니까...돈이 필요하고 부자가 눈에 들어오고...가난하고 돈 없는 사람들이..갈 교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돈 돈 돈..이 없으면 아무 일도 못하는 곳이 교회라면...세상 기업과 다를 바가 무엇이라는 말인가?
저는 가끔 식당에 가서..내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 교회 다니는 사람으로 세상 사람과 차별화 되려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 여러분 식당에 가서 종업원들을 하인 대하듯하고 작은 흠만 있어도 비난하는 것은 세상사람도 하는 일이다. 반대로 예수님의 말씀대로 섬기는 일을 해야 한다. 저는 종업원들이 내 식구라고 생각을 하니까..웬만하면 참고 도와주려는 마음이 생긴다. “내 가족이다!”라고 생각을 하고 시장에 가서 물건을 살 때에도 너그럽게...지하철을 타고 택시를 탈 때에도 믿는 사람이 안 믿는 사람과 어떻게 달라야 하는가, 어떻게 섬길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행동하라. 가정에서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아내에게, 자녀들에게 어떻게 섬김의 말과 행동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그렇게 살려고 한다. 여러분은 어떤가?
세상에서의 힘은 가짐에서 온다. 지식을 가짐으로 학력을 과시할 수 있고, 물질을 가짐으로 재력을 누리고, 권세를 가짐으로 권력을 행사하게 된다. 따라서 사람들은 더 많은 힘을 얻기 위해 좋은 학교에 진학하고, 많은 물질을 모으고, 높은 권세를 얻으려고 한다. 그러나 교회의 힘은 세상과는 다르다. 교회의 힘은 신자의 수에 비례하거나 화려한 예배당을 가지고 있다거나 세속적·정치적 영향력을 가짐에서 오지 않는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섬기는 일에서부터 나온다. 예수님은 너희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다. 우리는 믿음으로 사람을 살리는 공동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다시 시작하기를 바란다.
한국 교회는 선교 초기부터 사람 살리는 곳으로 인식돼 왔다. 강력한 복음 전파와 희생적 의료선교, 삶으로 가르치는 미션스쿨을 통해서였다. 그러나 그런 교회를 국민들은 불신의 눈초리로 보고 있다. 영혼을 살리기 전에 교회의 생명력부터 복원하자. 잃어버린 경건의 능력을 회복하자. 주여, 살려주소서!
“여러분, 바다가 왜 바다인지 아십니까?” “바다는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기 때문에 바다랍니다.” 육지에서 바다로 흘러들어 오는 강물은 육지의 여러 곳을 통과해 오는 동안 온갖 더러운 쓰레기와 폐물, 오물과 배설물, 세균과 독극물 등으로 오염될 대로 오염돼 바다로 흘러들어 온다. 그러나 바다는 그 더러움을 하나도 마다 않고 받아들여 짠 염수로 정화해 깨끗한 해수로 만든다. 받아들이기 때문에 바다이다. 하나님은 바다와 같다. 우리의 모든 것을 다 받아 주신다. 하나님이 나를 아시고 나를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하셨음을 믿고 믿음으로, 믿음의 공동체로 나아갈 때 하나님은 축복하실 것이다.
(351장을 같이 부른다.)
오늘은 해방 66주년 기념주일이다. 해방의 의미는 두 가지이다. 해방 자체의 의미와 해방 이후의 참으로 자유를 누릴 수 있는가이다. 다시 작한 날.. 한국교회인 우리들이.. 대한민국을 살리고 세계를 살리는 소망의 성도와 공동체가 되기를 바란다.
C. 왕이요 제사장 된 성도의 기도
“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새로운 시작으로 복을 받게 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