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AA (김광모 토요 칼럼) ( 2026. 9.12 )
여천/여수 석유화학단지 건설
<제1 스토리><제5 정, 비사 Story까지 갈 것임>
<제1정유에 이어 제2 정유의 탄생>
1. 국가 기간산업으로 제1차 에너지
기간산업 공장 건설
516 군사혁명 정부는 62년에 국가 1차 에너지를 자력으로 공급하기 위하여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1일 3만 5천 배럴의 정유공장을 짓기 위하여 국영기업체로 대한석유공사(KOCO 유공)를설립하였다. (KOCO Club 동우회 모임 회장 윤진만)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은 62년 2월 3일에 정유공장을 비롯하여 종합제철과 비료공장 그리고 발전소로 구성된 울산공업 센터 기공식에서 자손만대로 내려온 기근과 빈곤의 역사를 타파하고 단군시조이래 4천여 년간 민족의 숙원인 부귀를 마련하귀 위하여 이 자리에 모였다고 치사를 하셨다.
1964년 5월 7일 박정희 대통령은 울산 공업 센터의 중심인 울산정유 공장 준공식에 참석하셔서 울산공업센터 건설 시작의 성공은 혁명공약 4항에서 약속한 국민을 기근과 빈곤에서 해방시키는 첫걸음을 디디게 된 것이라고 하셨다.
공업입국과 수출제일주의로 경제 개발이 활발해지자 석유류 수요는 폭증했다.
박정희의 정유산업은 64년 유공의 3만 5천 배럴에서 시작하여 67년 5월 제2 정유공장을 건설하였다.
70년대 말에는
(제1정유 유공 28만 배럴
(제2정유 호유 23만 배럴)
(제3정유 경인 6만 배럴)
(계 57만 배럴)이 되었다
2. 제2 정유에 대한 박정희 대통령의
소신
정부는 60년대 중반 경제각의에서 제2정유는 민영화하기로 하고 정부(상공부)는 민간기업이 사업계획서를 제출케 하여 적격 실수자를 선정키로 결의했다.
정유 공장의 입지는 30만 DWT급의 유조선이 항만을 자유롭게 드나들며 하역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첫째 조건이었다.
제1정유가 울산공업셴터의 주축공장으로서 건설하는 입지로 울산이 정해진 것은 일제시에 일본이 원산에 있는 정유공장을 울산에 소개하기로 하여 짓다가 중단한 정유공장이 있었기 때문에 울산이 자동적으로 정해진 것이다.
이리하여 중동산 원유 해양수송에 따른 대형 유조선의 하역에 절대적 영향을 주는 것이 조수간만의 차였다.
대충의 남해안의 조수간만의 차를 보면 울산 0 meter에서 시작하여 부산 0.5 meter, 마산과 진해 0.7 meter, 거제 1 meter , 여천 3 meter
이다.
정유공장건설 사업겨획서를 작성함에 있어서 최선의 입지로서 조수간만의 차가 1 meter 이내이고 해변에 넓은 대지가 있는 진해나 마산을 선정함은 지극히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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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은 이와는 달리 제2정유는 입지조건이 좋지 않더라도 호남의 입구인 여천에 건설하여야 된다는 소신을 가지고 계셨다.
이러한 박정희의 소신을 박정희가 대구고보 동창으로 만나는 오직 한 사람인 기업인 서정귀(흥국상사 )를 만나 소신을 피력하셨다
서정귀 씨는 이 얘기를 듣고 러키의 구평회 상무에게로 가져 갔다.
상공부에 제2정유입찰 사업계획서를 제출할 시 삼성 효성 대림 등 3,4개 사는 진해, 마산, 거제를 입지로 하는 사업계획서를 제출했다.
러키만은 여천군( 지금의 여수시 )을 입지로 하는 사업계획서를 제출했다.
상공부는 박정희 대통령의 방침에 따라 여천에 입지를 결정한 러키를 실수요자로 선정하였다.
3. GS CALTEX 탄생
러키는 Major Oil의 하나인 미국의 Caltex와 합작회사로서 GS Caltex사를 설립하여 정유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Caltex는 67년 이래 한국에서 미국의 합작회사로 건재하고 있음)
여수의 조수 간만의 차가 약 3m여 서원워하역 부두를 설치하기는 불가능하므로 수심이 충분히 깊은 해상에 원유 하역시설(IMODCO Buoy)을 설치하여 해결했다.
제2정유 건설에 입지정보를 제공한 서정귀 씨는 동업자로 참가했다가 추후 보유주를 전부 러키에 매각하고 탈퇴하였다.
4. 박정희 대통령의 호남애착
박정희가 여수를 정유 단지로 지정한 이래 제2정유의 기공식과 준공식, 제7 비(남해화학)의 기공식과 준공식 그리고 호남 석유화학의 기공식에 모두 다섯 번이나 참석하여 치사를 하셨다.
박정희 대통령은 전남지역에 오실 때마다 Caltex의 Beach Hse에 유하셨다. (이는 다년간의 호정 공장장이셨던 김대기 선배가 확인하는 것임)
박정희 대통령의 호남에 대한 애착 은 대단한 것이었는데 항간에는 중화학 후 박정희 대통령의 호남 푸대접이라는 말이 떠돌아다녔다. 이것은 얼토당토 하지 않는 얘기이다.
이리하여 전남의 여수~ 광양만을 중심으로 동과 서쪽에는 국가산업의
2대 지주인 여천 석유화학과 광양 제철이 들어서게 되었다.
따라서 박정희 대통령의 비전으로 여수광양만 일대는 대한민국이 전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국가 산업단지가 되었다. (끝)
제2 Story로 계속
2026.9.12 김 광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