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석혜수(釋慧受)
혜수는 안락(安樂) 사람이다. 진(晋)의 흥녕(興寧) 연간(363~365)에 서울에 와서 노닐었다. 푸성귀를 먹으며 고행하여, 항상 복업을 닦았다. 어느 날 왕탄지(王坦之)의 장원을 지나다, 방문하였다.
꿈에 문득 장원 안에 절을 세우는 꿈을 꾸었다. 이와 같은 일이 몇 번 되풀이되자, 혜수는 왕탄지를 찾아가, 한 칸의 집을 지을 땅을 빌리려 하였다. 그러나 감히 말을 꺼내지 못하였다. 이전에 장원을 지키던 장원지기인 송기(松期)를 찾아가, 이를 말하였다. 송기가 말하였다.
“왕씨 집안의 장원은 아마도 도모하지 못할 것입니다.”
혜수가 말하였다.
“지성으로 감응하면, 무엇 때문에 얻지 못할 것을 근심하겠는가?”
곧 왕탄지를 찾아가 그의 뜻을 진술하였다. 그러자 왕탄지는 크게 기뻐하여 곧 허가하였다.
처음에는 작은 집을 한 채 세웠다. 저녁마다 다시 꿈에 푸른 용이 나타나, 남쪽에서 와서 당간으로 화하였다. 이에 혜수는 사미를 거느리고 시험 삼아 신정강(新亭江)에 이르러 찾아보았다. 그러니 긴 나무 하나가 흐름을 따라 아래로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혜수는 말하였다.
“반드시 내가 꿈에 본 나무일 것이다.”
이에 사람을 고용해서 끌어올려 바로 세워서, 당간으로 삼아 한 층으로 꾸몄다. 도인과 속인들이 다투어 모여들어, 모두 그 신령하고 기이함에 감탄하였다.
왕탄지는 곧 장원을 희사하여 절로 삼았다. 혜수의 본고향 이름을 따서, 안락사(安樂寺)라 불렀다.
이 절의 동쪽에는 단양(丹陽) 수령 왕아(王雅)의 저택이 있고, 서쪽에는 동연(東燕) 태수 유투(劉鬪)의 저택이 있으며, 남쪽에는 예장(豫章) 태수 범영의 저택이 있었다. 모두 보시하여, 절을 이루었다. 그 후 사문 도정(道靖)과 도경(道敬) 등이 다시 보수하고 꾸미기를 더하여, 지금까지도 크게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