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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흐르도록 하라!
히 13:1~6
1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2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3 너희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너희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
4 모든 사람은 결혼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5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6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세상 사람들은 자신이 성공하기를 원합니다. 세상의 성공은 주인공은 자신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이루고 싶은 것이 성공의 기준입니다. 그러나 영적 세계의 성공은 내가 아닌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있습니다.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 내 안에서 이뤄졌을 때 그것을 성공이라고 말합니다.
마태복음 25장에서 주인이 충성스러운 종에게 하신 말씀 중에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하였습니다. 이를 영어 성경에서는 ‘Well done, good and faithful servant! ’이라고 하였습니다. ‘잘 하였다’는 것은 주인의 의도대로 성실하게 주어진 임무를 이루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성공입니다. 세상의 성공은 영원하지 않고 때가 되면 안개처럼 사라집니다. 그러나 영적 세계의 성공은 영원토록 빛이 나고 가치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거기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리워져 더욱 아름답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부르시고 택하신 이유는 영원한 성공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창 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복’이란 단어가 등장합니다. ‘네게 복을 주어’할 때는 ‘바라크 barak’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너는 복이 될지라’는 말씀에서의 복은 ‘베라카 berakah’라고 하였습니다. 이 복이 ‘바라크’인데 이것은 겸손하게 무릎을 꿇어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성공, 번영, 생산, 장수’ 등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의 결과를 ‘베라카’라고 하였는데 이는 근원에 대한 의미가 다분하게 담긴 복을 말합니다. 즉, 아브라함이 많은 복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으니 이제 이것이 흐르도록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갈3: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계승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한 사람들 역시 내게서 복이 흐르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이것이 영적 성공의 기준이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 사랑이 내게서 흐르도록 하는 것이 영원한 나라에 합당한 성도의 모습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첫 번째는 내게 있는 사랑이 쉼 없이 흐르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히 13:1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라고 하였습니다. “Keep on loving one another as brothers and sisters.” 여기서 사랑이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아가페 사랑이 아니라 수평적인 사랑을 말하는 ‘brotherly love’ ‘필라델피아 φιλαδελφία’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내게 받은 것을 흘려 내보는 것을 말합니다. 이미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넘치는 사랑을 받았습니다. 요 10:10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는 말씀은 ‘필요 이상의, 충분하고도 남은 여분의, 과도한, 지나친'을 의미합니다. 내 안에 예수님의 생명이 차고 넘쳐 이웃에 흘러가도록 하는 것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예수님의 사랑을 흐르게 하므로 나와 연관된 사람들이 복되게 할 수 있습니다. 시 1: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고 했습니다. 시냇가에 심긴 나무는 복되어 싱싱하게 자라고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형통하게 세워질 수 있습니다. 시 128:3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고 했습니다. 나 한 사람이 예수님을 바르게 믿어 사랑의 근원지가 되면 내 가정이 복되고 아름다워질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랑이 흐르도록 해야 할까요?
히 13:2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여기서 손님이란 낯선 사람을 말합니다. 그리고 나와는 상관이 없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호의적으로 대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에 관하여 신명기 10:18“고아와 과부를 정의롭게 판결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시는 분”으로 묘사합니다. 따라서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비로운 성품을 인간이 이 땅에서 직접 실천하고 보여주는 방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그네를 대접하라고 명령하실 때 항상 그들의 과거를 상기시키십니다. 신 10:19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자신들도 한때 연약하고 소외된 존재였음을 기억함으로써, 교만을 버리고 낮은 자의 마음으로 타인을 돕게 하려는 교육적 목적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나그네는 단순히 도움을 받는 자가 아니라, 때로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복을 가져다주는 '하나님의 대리자'로 여겨졌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나그네는 매우 위험하고 취약한 상태에 놓여 있었습니다. 특히 복음을 전하러 다니던 초기 전도자들은 나그네의 신분으로 성도들의 집을 의지해야 했습니다. 이들을 대접하는 것은 복음 사역에 동참하는 구체적인 행동이었으며, 기독교 공동체의 사랑과 결속력을 세상에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였습니다. 요약하자면, 성경에서 나그네 대접은 단순히 친절을 베푸는 것을 넘어,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실제적으로 표현하는 통로이기 때문에 강조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사랑이 흐르기 위해서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히 13:3 “너희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너희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사랑의 기준은 한마음을 품는 것을 말합니다. 상대의 아픔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함께 아파하는 것 이것이 사랑의 출발점입니다.
유대인의 전통 법전인 탈무드(Talmud)에는 몸이 붙은 샴쌍둥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볼 것인지, 아니면 두 개의 인격체로 볼 것인지에 대한 지혜로운 판별법이 전해 내려옵니다.
탈무드에 따르면, 두 머리를 가진 아이가 태어났을 때 이들이 한 인격체인지 두 인격체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한쪽 머리의 눈을 가립니다. 그리고 다른 쪽 머리에 뜨거운 물을 붓습니다. 이때 눈을 가린 쪽의 머리도 함께 비명을 지르며 고통스러워한다면 두 몸은 하나의 영혼(인격)을 공유하는 한 사람으로 간주합니다. 반면, 뜨거운 물을 맞은 쪽만 비명을 지른다면 두 개의 독립된 인격체로 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하여 지음을 받았다고 하면 우리 또한 사랑해야 할 의무가 주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상처 입은 치유자’(The Wounded Healer)책을 펴낸 영성가 헨리 나우웬(Henri Nouwen)은 “자신의 상처를 통해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치유의 통로로 사용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이 책을 집필하였습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에게 닥치는 여러 일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였고, 열심히 하나님을 섬겼음에도 오는 많은 시련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시험에 대하여 벧전 4: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라고 하였습니다. 왜 이런 일이 내게 닥쳐 고통스럽게 하고 낙심하게 하는지 이해가 안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숨겨진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 있음을 세월이 지나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아픔에 직면한 사람을 위로하고 사랑을 전하기 위한 하나님의 분명한 뜻입니다.
제 큰딸이 요즘 눈물이 많아졌습니다. 저는 압니다. 이 아이가 아픔을 많이 겪었습니다. 그 세월을 보내느라 매우 괴로워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위에 자기와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같은 마음을 품고 울어 주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 아이에게 모든 것이 잘 갖춰진 평안의 세월을 보냈더라면 아픔을 겪는 이웃을 위하여 진실한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아픔의 세월을 보내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성령의 터치를 받았음이 분명합니다. 성령이 내게 임하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상대에 대한 이해와 공감력이 탁월해집니다. 아파하는 자와 함께 울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사회적 인격장애’(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로 알려진 ‘사이코패스’
(Psychopath)는 공감력이 현저하게 떨어진 사람을 말합니다.
단순히 ‘성격이 나쁜 사람’을 넘어, 과거에는 정신적으로 병든 상태를 의미했지만, 현대에는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한 인격적 결함을 가진 사람을 의미합니다. 사이코패스의 가장 큰 특징은 정서적 공감 능력의 결여입니다.
즉 타인에게 고통을 주어도 미안함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범죄 행위를 저지른 후에도 태연하게 행동하거나 오히려 피해자를 탓하기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감정이 매우 메말라 있어 진정한 슬픔이나 공포를 느끼기 어렵습니다. 타인의 고통을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지만, 가슴으로 느끼지는 못합니다. 이를 영적으로 보자면 마귀의 속성을 지닌 일종의 귀신들림의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나도 억울하게 갇혀 보았고 때로는 세상 사람들에게 무시와 학대를 받아 보았다면 그런 고통에 처한 이웃을 위하여 함께 마음을 나누며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얻었다면, 그간 겪었던 아픔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닙니다. 그 눈물은 진주와 같이 복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사랑은 소중히 여기는 마음에서 흐르게 되는 것입니다.
히 13:4 “모든 사람은 결혼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 결혼은 하나님의 사랑이 흐르도록 하는 첫 번째 교두보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창 2: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실천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아내는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첫 대상이 됩니다. 그 아내에 대하여 ‘돕는 배필’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히브리 원에서는 ‘에제르 네게드’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이것을 원문 그대로 해석하자면 ‘상대편이 보이는 곳에서 지지하고 조력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남자는 여자의 머리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남자는 여자에게 존경을 받아야 진정한 남자의 모습을 가질 수 있습니다.
내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지지하라고 보내주신 아내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사랑의 출발점이 됩니다. 잠 5:18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고 했습니다. 사랑의 핵심을 ‘concentration’ 집중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는 것도 졸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않으시며 눈동자 같이 지키시며 사랑해 주셨습니다. 내 아내를 사랑하므로 자녀를 사랑할 수 있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아내의 마음을 상하게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침소를 더럽히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아내와 나만의 사랑의 공간이 있습니다. 이 공간을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지난 시간 솔로몬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솔로몬의 인생이 헛되다고 고백하였던 여러 이유 중의 하나는 한 여인을 자신의 모든 것을 드려서 사랑하는 것에서 벗어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솔로몬은 후궁이 700명이고, 첩이 300명에 이르렀습니다. 이 숫자는 당시 주변 이방 국가들과의 정략결혼을 통해 세력을 확장하려 했던 솔로몬의 정치적 계산을 보여줍니다. 성경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연합하는 창조의 원리(창세기 2:24)를 저버린 솔로몬의 말년과 그 이후의 결과를 매우 엄중하게 경고합니다. 가장 치명적인 결과는 솔로몬의 마음이 하나님을 떠난 것입니다. 이방 여인들은 자신들이 섬기던 밀곰, 그모스, 몰록 등 가증한 우상들을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들어왔고, 솔로몬은 이들을 위해 산당을 지어줌으로써 이스라엘 전체를 영적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솔로몬에게 진노하시며, 그의 사후에 나라가 나뉠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전무후무한 지혜를 가졌던 솔로몬이었지만, 수많은 여인에게 둘러싸인 그의 말년은 지혜롭지 못했습니다. 전도서에 나타난 그의 고백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도(道)를 잃어버린 삶은 결국 “헛되고 헛되며 모든 것이 헛되다”는 허무주의로 귀결되었습니다.
사랑은 분산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은 아들을 통하여 행하시기 때문에 아들을 사랑하시듯 그에게 속한 모든 사람을 수억분의 일로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들 안에서 일대일의 관계로 사랑하십니다. 이처럼 사람도 한 인격과 인격으로 사랑해야 했습니다. 솔로몬은 이러한 사랑을 하지 않았습니다. 말 2:15 “그에게는 영이 충만하였으나 오직 하나를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만드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라 그러므로 네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맞이한 아내에게 거짓을 행하지 말지니라”고 했습니다. ‘영이 충만하였으나’라는 말씀은 문자적으로 ‘영이 남을지라도’란 뜻입니다. 이는 곧 하나님의 무한한 창조적 능력을 지시하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본 구절은 하나님께서 남자(아담)와 함께 할 많은 여자를 지으실 수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고 오직 한 여자(하와)만을 지으신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함이라고 했습니다.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여 서로 사랑하므로 경건한 자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자녀가 반듯하게 자라나 하나님을 섬기고 바른길을 갈 수 있는 자녀가 태어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에도 사랑이 메마른 역기능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혼란을 겪고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문제아가 생기는 것을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사랑은 여유있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쫓기는 사람, 조급한 사람, 욕심에 치우쳐 불안정한 사람은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히 13:5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사랑하기 위하여 현재 내게 주어진 것을 만족하게 받아들이십시오! 마음에 안식이 있고 여유가 있을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게 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랑이 흐르는 복된 삶을 누릴 때 율법의 완전을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 어떤 것 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소유한 자요, 나는 그의 소유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모든 것을 얻었습니다. 모든 것이 우리의 것이 되었습니다. 이 감격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이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돕는 분으로 나타나 그에게 친근한 관계를 유지하도록 하십니다.
세상에서 아니 우주에서 가장 부유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한 자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기꺼이 우리의 소유가 되기 위하여 이 땅에 아기 예수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실 때는 처녀이신 마리아의 몸을 빌려 성령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평생은 성령과 함께하셨습니다. 십자가의 죽음도 성령으로 함께 하셨기에 그 고통을 이기시고 결국은 사망마저도 이기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당신을 소유할 수 있도록 성령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내 안에 성령이 계시고 나는 성령의 지배 아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향하여 그 사랑을 흘려보내는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히 13:6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는 말씀이 성취되어 세상에서뿐 아니라 영원까지 아무도 해하지 않도록 지켜 보호하여 주십니다. 내 안에 사랑이 흐르면 위로부터 내려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임합니다. 더욱 구체적인 사랑의 흔적을 누릴 수 있기에 두려워 하거나 염려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이르기까지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