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들이 기억해야 할 한국교회 위인들 [63]
제암리 교회 신자들(~1919년 4월 15일)
화성 향남읍 제암리에서 이장 안종후가 중심이 되어 1905년 마을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1919년 3월이 되어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퍼져나갔을 때 제암교회 청년들은 4월 5일에 모여서 발안 장날 만세운동을 대대적으로 일으키자고 결정했습니다. 이미 3월 31일 발안 장날에 일어난 시위, 4월 3일 화수리와 수촌리 시위로 일본경찰이 예의주시하고 있었습니다. 일본경찰은 헌병을 중심으로 즉시 검거반을 구성했고, 수촌리를 습격해서 방화를 했으며, 그 지역 일대를 수색해서 204명을 검거했습니다. 이 시기에 중위 아리타 다케오가 보병 11명과 함께 4월 13일 발안에 도착했고, 제암리 토벌 계획을 세웠습니다. 마을에 사는 남자들을 모두 교회당으로 모이게 했는데 “만세시위 진압 과정에서 너무 심한 매질을 한 걸 사과하러 왔다”는 말로 거짓말을 해서 집단 살육을 준비했습니다. 교회당에 모이자 군인들이 교회당을 포위하고 출입문과 창문을 큰 못으로 박아 폐쇄하고 일제히 사격을 가해서 모두 학살해버렸습니다. 필사적으로 빠져나오려는 신자들도 처참하게 총살했고, 마을 가옥 31채를 모두 불태워버렸습니다. 이 교회당에는 기독교 신자들뿐만 아니라 천도교 신자들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1946년 4월, ‘삼일운동기념비’를 제암리 마을 입구에 세웠졌는데, 비석 뒷면에는 박세영(1902~1989)의 시와 이주홍(1906~1987)의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돌아간 분들’이라는 희생자 29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안정옥, 안종린, 안종락, 안종엽, 안종환, 안종후, 안경순, 안무순, 안진순, 안봉순, 안무순, 안유순, 안필순, 안명순, 안관순, 안상용, 조경칠, 강태성, 강태성 부인 김씨, 홍원식, 홍원식 부인 김씨, 홍순진, 김정헌, 김덕용, 김흥렬, 김성렬, 김세열, 김주남, 김주업, 김흥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