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고대 기독교의 영성 Ⅱ. 리용의 이레니우스
1. 리용의 이레니우스
2세기 중엽 강력하게 성장한 영지주의는 중기 플라톤주의 영향을 받은 혼합주의 운동이었다. 영지주의는 불완전한 신 데미우르고스(Demiurgos)가 감각적 물질세계를 창조했고, 타락한 인간의 영혼은 지성 세계에서 떨어져 물질세계의 포로가 됐다고 말한다. 따라서 영혼은 비밀리에 전수되는 영지(靈智, gnosis)를 받아 각성하고 지성 세계로 복귀해야 하는 데 그것을 구원이라고 가르쳤다. 영지주의자에게 역사와 자연 세계는 영혼의 그림자일 뿐 어떤 의미도 없었다. 인간의 불행은 죄 문제가 아니라 지성 세계에 대한 무지였다. 예수는 하나님께로 복귀하는 영지를 전하러 온 영적 존재이고, 그의 육체와 삶은 다 거짓 현실(假現)이다. 19세기 독일 신학자 하르낙은 영지주의는 우주적 무질서 가운데 안전한 길을 찾기 위한 실천적 기술(영지)을 능력으로 믿었다고 지적했다. 다시 말해 인간의 본성을 지성으로 보고, 영적인 기술을 구원으로 대치했던 영지주의 사고는 현대 문명의 구조와 아주 유사하다.
이레니우스(Irenaeus of Lyons, 130~200
이레니우스(Irenaeus of Lyons, 130~200)는 소아시아 서머나에서 태어났고, 사도 요한의 전승을 이어받은 폴리갑에게 신앙 교육을 받았다. 폴리갑은 제자 폰티우스(Ponthius)를 선교사로 고울 켈트족에게 파송했고 폰티우스는 성공적으로 선교하여 리용의 주교가 됐다. 이레니우스는 170년경 리용의 장로가 되어 폰티우스의 사역을 도왔다. 177년 리용에 큰 박해가 일어났고, 이레니우스는 성장하는 이단의 폐해에 대한 항의서한을 전달하기 위해 로마로 갔다. 그는 로마 주교가 몬타누스를 옹호하는 것과 폴리갑 학파 출신의 친구가 영지주의자 발렌티누스 사상을 신봉하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이레니우스가 리용에 돌아왔을 때 폰티우스 주교는 이미 순교한 상태였다. 그는 리용의 주교가 되어 박해상황에 있는 교회를 돌보고, 남부 고울 지역(현 프랑스)을 선교하며, 최선을 다해 이단을 연구하여 신학적으로 논박했다. 그의 가장 중요한 작품은 『이단 논박』(Adversus Haereses, 182~188년 기록)과 『사도적 가르침의 논증』(Demonstration of Apostolic preaching)이다. 이레니우스는 202년 세베루스(Severus) 황제가 저지른 살육에서 수천의 교인들과 함께 순교했다.
이레니우스는 교회사에서 사도 시대(1세기)와 속사도 시대(2세기 전반)를 지나 변증가 시대(2세기 후반)에 활동했다. 그러나 당대의 철학으로 신앙을 변증한 변증가들과는 달리 이레니우스는 성경과 사도적 전통으로 이단에 대처하며 교회의 신앙을 지켰다. 영지주의는 기독교에 심각한 지적인 위협을 가했는데 그는 정교한 신학적 용어를 발전시켰고 사도적 전승의 범위를 한정하면서 “교회 최초의 조직신학자”가 됐다. 이레니우스는 동방과 서방교회의 교량 역할을 했고, 서방 신학의 기초를 놓은 테르툴리아누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영성사에서 이레니우스의 중요한 공헌을 살펴보자. 그는 구약과 신약의 연속성을 주장했고(『이단논박』 Ⅳ.7-8) 창조에서 종말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구속사를 강조했다. 하나님은 역사 밖의 ‘원리’가 아니라 결정적 사랑으로 역사(시간)와 자연 속에 들어와 구원하시는 인격적 하나님이다. 그는 가현설을 논박하면서 성자의 성육신을 방어했다. 성육신하신 말씀은 신-인으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중재하고 관계성을 회복시킨다.(Ⅲ.18.7)
육체를 입은 말씀이 우리와 친교로 들어오지 않았다면…우리가 어떻게 아들의 양자 됨에 참여할 수 있었을까? 또한, 그는 삶의 모든 단계를 통과하면서 하나님과 모든 친교를 회복하셨다.(Ⅲ.18.7)
이레니우스는 성육신이 인간의 육체 구원을 위한 것임을 강조해서 정교회의 신화(theosis, deification) 구원론의 기초를 놓았다.(Ⅴ.14.1) 그는 육체 구원이 없다면 그리스도의 피와 성찬의 떡과 잔은 우리의 구원과 무관하다고 말한다.(Ⅴ.2.2)
그는 인간의 운명에 대해 상대적으로 낙관적이다. 이것은 인간 본성의 완전 타락과 노예 의지를 강조한 서방교회 영성과는 차이가 있다. 하나님의 섭리는 인간이 최종적으로 하나님을 보게 하는 것이다. 창조 때 부여된 ‘하나님의 형상’은 순종으로 하나님과 관계 맺는 능력이다. 비록 범죄 후에 생명 나무가 있는 낙원에서 추방됐지만, 하나님은 인간에게 연민을 갖고 육체의 죽음을 통해 영원한 죄짓기를 멈추게 하셨다.(Ⅲ.23.6)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의 손상된 ‘하나님 형상’은 회복되는 것이고(Ⅲ.28.2) 성장을 통해 완성에 이르는 것이다.(Ⅳ.37.7)
이레니우스의 성육신, 육체 구원의 신학은 총괄갱신론으로 종합된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새로운 인간성의 총화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 계획은 하나님의 창조 때부터 계획되어 있는 것이고, 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완성되었으나 종말에 완전히 드러난다.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인해 죄가 들어왔고 죄를 통해 죽음이 [세상을: 역주] 장악했다. 또한, 마찬가지로 한 사람의 순종으로 인해 의가 들어왔고, 의가 과거에 죽었던 그 사람 안에 생명의 열매를 맺게 할 것이다. … 말씀 하나님은 당신 안에 아담을 모아서 아담을 총괄 갱신하면서 동정녀 마리아로부터 태어나셨다. … 첫째 아담이 흙으로 지어졌고 하나님이 그의 창조주인 것처럼, 자기 안에서 총괄갱신 하시는 두 번째 아담도 하나님에 의해 사람으로 지어졌고, 그는 첫째 아담의 유형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다시 흙을 취하지 않고 마리아를 통해 육체를 취하셨는가? 그것은 구원받아야 할 새로운 육체를 창조하지 않기 위함이다. 아담 안에 존재했던 그 육체가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어야 해서 그 유형이 보전된다.(Ⅲ.21.10)
이레니우스의 총괄갱신교리에는 창조 세계의 구원도 포함된다. 창조 세계는 갱신되며 생명력을 회복하며(Ⅴ.32.1, 33.3-4), 하나님의 설립하신 창조 세계의 본성과 본질은 멸망하지 않고 세상적 풍조는 사라지게 된다.(V. 36.1) 하나님의 아들들의 자유 안에서 창조 세계도 속박에서 자유한다.(V.36.3)
이레니우스는 삼위일체론이 완성되기 전에 성령 신학을 발전시켰다. 그는 하나님께서 말씀과 성령을 통해 세상을 창조했고(Ⅳ.20.1), 성경도 말씀과 성령에 의해 이뤄졌다고 말한다.(Ⅱ.28.2) 그리고 종말에 그리스도 안에 총괄갱신은 성령이 그리스도인과 연합하고 그 안에 거주함으로써 이룰 수 있다.(Ⅴ.20.2)
이레니우스의 신학은 역사와 자연을 영적으로 다시 해석하게 했고, 영성의 본질이 지성이 아니라 관계성이라는 것을 회복시켰다. 또한, 육체 구원이 기독교 복음의 본질인 것도 재확인했다. 인간의 운명에 대해 종말론적 총괄갱신이라는 미래적 시각으로 재해석하는 길도 열어놓았다. 오늘날 창조 세계와 생명의 중요성이 재고되는 오늘날 이레니우스의 영성은 신선한 지평을 열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