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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중인 사건기록 활용하고
형소법 절차 따르지 않는 등
법이 정한 방법 지키지 않아
검찰·국회·헌재로 이어지는
탄핵 제도 정비하지 않으면
대통령제 헌법 정신 못 지켜
탄핵이 무효라는 게 아니고
불합리한 부분 바꾸자는 것
- 질의 :탄핵심판을 ‘리뷰’하고 있다고 들었다.
- 응답 :“박 전 대통령 탄핵은 국회와 대통령이 정면충돌해 대통령이 패배한 역사적 사건이다. 탄핵심판 뒤 학계에서 공개 토론을 하거나 연구 논문이 발표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법률 문화 발전을 바라는 마음에서 아쉬웠던 것들을 밝혀두기로 마음먹었다.”
- 질의 :왜 박 전 대통령 변론을 맡게 됐나.
- 응답 :“박 전 대통령과 일면식도 없었다.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의결한 날(2016년 12월 9일) 가족들과 해외여행 중이었다. 외국에서 청와대 측의 ‘도와 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검사로 20여 년 일했고, 헌재에서 연구관으로 2년 근무한 경력이 있다. 귀국한 뒤 청와대 관계자에게 전화했더니 ‘변호사가 네 명밖에 없다. 당신이 선임이다’고 했다. ‘대통령과 인연을 가진 고위직 출신 변호사들은 다 어디로 갔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일을 맡기로 했다.”
박 전 대통령과 일면식도 없었지만 …
- 질의 :탄핵심판 절차와 결론 중 어느 쪽에 문제가 있다는 건가.
- 응답 :“절차와 결론 모두에 수긍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 질의 :일부 보수 단체처럼 ‘탄핵은 무효다’고 생각하나.
- 응답 :“탄핵심판은 1심이 최종심이다. 엎질러진 물이다.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 과정을 교훈으로 삼아 그릇된 제도, 틀린 법률 해석을 바로잡자는 것이지 무효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 질의 :절차와 관련된 문제는 무엇을 말하나.
- 응답 :“탄핵심판도 분명히 재판이다. 법률이 정한 절차를 따라야 한다. 절차 문제의 대표적 사례는 수사 중, 재판 중인 사건의 기록을 헌재가 받아 심리에 활용하지 못하게 하는 헌재법(32조)을 위배한 것이다. 헌재는 최순실씨 등의 기록을 검찰에게서 받아 심리를 진행했다.”
- 질의 :박 전 대통령 주변인에 대한 수사기록 외에는 이렇다 할 자료가 없는 상황이라 불가피했던 것 아닌가.
- 응답 :“소추사유 증명 책임은 국회 측에 있다. 그런데 최씨에 대한 수사기록을 넘겨받은 헌재는 그 기록을 근거로 심리를 진행했고, 이에 따라 우리가 수사기록이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을 입증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소추위원 측은 예리한 진검(眞劍)으로, 대통령 대리인단은 목검(木劒)으로 다투는 지경이 됐다.”
- 질의 :그렇다 해도 사실이 아닌 부분을 입증할 수 있지 않았나.
- 응답 :“신청한 증인들이 불출석했다. 증인신청이 무더기로 기각되기도 했다. 헌재가 이정미 재판관이 퇴임하는 3월 13일 전에 선고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데 따른 일이다. 결국 사실관계가 정확히 규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심리가 끝났다.”
- 질의 :절차와 관련해 당시 형사소송법 적용 여부가 논란이 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 응답 :“헌재법 40조에 탄핵사건에 형사소송법을 우선하여 준용(準用)하고, 예외적으로 민사소송법을 준용한다고 적혀 있다. 형사소송 절차의 대원칙은 ‘공판중심주의’다. 법정에서 증인신문, 증거물 제출, 변호인 반대 신문을 거쳐 공소사실(탄핵심판에서는 소추사유) 인정 여부를 재판부가 판단한다. 그런데 헌재는 영상 녹화된 조서, 변호인 참여하에 작성된 조서의 증거 능력을 그대로 인정했다. 대기업 회장들은 모두 변호인 입회하에 조서를 작성했으므로 증인으로 부를 수 없었다. 증인신문만 제대로 이뤄졌어도 헌재의 사실인정은 달라졌을 것이다.”(※이에 대해 국회 소추위원 대리인단을 이끌었던 황정근 변호사는 “헌재법 40조에는 ‘헌법 재판의 성질에 반하지 아니하는 한도에서’라는 단서가 붙어 있다. 탄핵심판 절차는 일반 재판 절차와 다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 질의 :국회의 자체 조사 없이 탄핵소추가 진행된 것도 당시에 논란이 됐다.
- 응답 :“국회법 130조는 ‘탄핵소추를 발의할 때 본회의 의결로 법사위에 회부해 조사하게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해야 한다’가 아니고 ‘할 수 있다’다. 국회가 제시한 박 전 대통령 소추사유 중 헌법 위배 부분엔 구체적 사실이 적시되지 않았다. 이런 일을 막기 위해 탄핵소추 의결 전에 법사위에서 조사하도록 국회법을 고쳐야 한다.”
헌재, 대통령 헌법 위배 과도하게 해석
- 질의 :그밖에 탄핵심판 과정에서 중대한 오류가 있었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 응답 :“국회에서 의결한 소추사유와 헌재가 파면을 결정한 사유가 일치하지 않는다. 국회 의결 당시 가장 중요한 소추사유는 ‘박 전 대통령이 대기업 회장들을 상대로 재단에 출연을 요구하고, 그 대기업들이 2개 재단에 360억원을 출연케 함으로써 뇌물을 수수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소추위원 측은 나중에 이를 소추사유에서 제외했다. 그 상태로 국회에서 다시 표결했다면 과연 3분 2 이상이 동의했을까?”
- 질의 :헌재는 ‘사인의 국정 개입 허용과 대통령 권한 남용’을 사실로 인정했는데.
- 응답 :“헌재는 자기 책임 원리를 위반했다. 박 전 대통령이 전혀 관여하지 않은 최순실씨 등 주변인의 잘못까지도 헌법 위반 사실로 인정해 박 전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었다. 헌재 결정문에 ‘김종은 내부 문건을 최순실에게 전달하고, 최순실의 요구 사항을 정책에 반영하는 등 최순실에게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차은택의 지인들은 최순실의 요구사항대로 미르를 운영하는 등 최순실의 사익 추구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고 돼 있는데, 박 전 대통령이 이에 공모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 질의 :헌재는 박 전 대통령에게 ‘헌법 수호 의지’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것 역시 잘못됐다고 생각하나.
- 응답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헌재는 ‘피청구인이 검찰 조사나 특별검사에 의한 수사에 응하지 않았고,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을 거부한 점에 비추어 보면 피청구인의 헌법수호 의지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특검이 청와대 압수수색을 시도할 때 박 전 대통령은 직무 정지된 상태라 이를 막을 권한이 없었다.”
- 질의 :왜 이토록 끝난 재판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나.
- 응답 :“헌법 정신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언론이 대통령 주변인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고, 검찰이 그 주변인을 수사한 뒤 대통령을 공범으로 판단했다는 사실만으로 국회에서 탄핵소추를 의결하고, 헌재가 헌정 공백을 신속히 해결한다는 구실로 수사기록을 근거로 탄핵을 인용하게 된다면 대통령 지위는 매우 취약해진다. 이것은 우리 헌법이 추구하는 권력기관의 견제·균형에 부합하지 않는다.”
- 질의 :그런 상황을 막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
- 응답 :“미국에선 대통령이 탄핵당하면 부통령이 잔여 임기를 맡는다. 정권이 바뀌지 않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대통령이 파면되면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뽑게 돼 있어 탄핵이 정권 교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탄핵이 고도의 정치 게임으로 변질할 수 있다.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헌재는 헌법 위배의 범위를 과도하게 넓게 해석해 헌법 원리를 변형시켰다. 재판 형식을 빌린 정치를 했다고 본다. 헌법 개정 때 이런 일을 막을 수 있는 근원적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이상언 논설위원 lee.sangeon@joongang.co.kr
(상세한 내용은 17일에 발매되는 『월간중앙』 5월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