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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성직자여서 편리한 때도 있다. 어느 교우가 병이 위중하여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 전염병 같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중환자실에도 담임 목사의 방문을 허용해 준다. 때로는 큰 수술을 앞두고 환자와 의료진의 손길에 하늘의 특별한 축복과 인도하심을 구하는 기도를 드리기도 한다. 이러한 방문이 환자에게 위로와 격려가 될 것이고, 그러면 그것은 치료 효과에도 상승작용을 할 것이라 믿기 때문일 게다. 목회자의 역할을 존중하고 기대해 주는 저들의 사고가 고맙다.
오클라호마주의 폴스 밸리란 곳에서 한 백인 교회를 담임할 때의 일이다. 연노하신 노인 그룹 중 마가렡이란 구십대 전직 간호사 할머니 한 분이 계셨다. 그분은 참 따스하고 인자한 어머니 같은 분이었다. 그가 몸이 아파 병원에 입원을 하고 큰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의 아들 내외가 근처에 살았지만 저들도 같이 늙어가는 중이었고 큰 병들로 고생하는 자녀들이어서 어머니를 제대로 도울 수 없었다. 그래서 내가 입원 수속을 도와드렸다. 다음 날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 담임 목사가 할머니를 위해 하늘 아버지께 특별히 기도하겠다고, 큰 염려하지 마시라고 당부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뒷날 아침 꼭두새벽같이 수술실 간호사에게서 급한 전화가 왔다. 수술 일정이 조금 앞당겨져서 이른 아침 할머니 수술을 시작하려는데, 글쎄 담임 목사가 오셔서 기도드려주겠다 약속을 했으니 그가 기도드리고 난 후에 수술을 받을 수 있다며 버티신다는 것이다. 나는 급히 옷을 챙겨 입고 30분 거리를 달려가서 그를 위해 기도를 드리고 수술을 받으시게 할 수 있었다. 수술실에는 이미 모든 준비가 완료되어 있었고 할머니와 의료진들은 모두 수술실 문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가렡은 수술 경과가 아주 좋았고 그 후에도 여러 해를 행복하게 사셨다.
병원을 일상적으로 방문하다 보니 나는 환자에게 치렁치렁 매달린 온갖 현대 의료 장비들을 자주 대한다. 얼마 전의 일이다. 한 자매가 입원해 있는 시내 모 병원 중환자실을 찾았다. 그녀의 상태는 매우 위중하여서 그의 몸에는 여러 장비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고 모니터들이 즐비하였다. 우리는 잠시 함께 성경 말씀을 펼치고 하나님의 약속들을 되짚은 후 간절히 기도를 드렸다. 자매는 눈물을 그렁이며 기뻐하였고 우리는 하늘에 감사를 드렸다.
마무리 인사를 나눌 즈음 한 간호사가 오더니 양해를 구하며 환자의 상태를 점검하겠다고 한다. 아주 예의 바르고 전문 직업인의 품위를 잘 갖춘 간호사였다. 자신이 할 일을 간단히 설명하더니 환자의 의료 상태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참 편리한 세상이다. 밴드를 팔에 두르니 자동으로 공기 주머니가 팽창하고 맥박이며 혈압, 그리고 그 밖의 몇몇 수치들이 전광판에 나타난다. 그리고 그 정보들이 스크린에서 파일로 자동 처리되는 것이다. 간호사로 일하기 참 편리하고 쉬운 세상이 됐다. 컴퓨터에 꽤나 익숙한 내게도 이것은 뭔가를 깊이 생각해 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광경을 한참 바라보다가 간호사에게 말을 건넸다. “참 좋은 세상이에요. 이렇게 편리할 수가...”. “그래요. 첨단 장비들 덕분에 제 업무의 많은 부분들이 자동으로 이뤄진답니다” 라고 간호사가 미소를 지으며 맞장구를 친다.
그런데 짓궂은 질문을 하나 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되물었다. “그래도 환자는 여전히 많고 일은 여전히 바쁘지요?”. 그는 내가 목사인 줄 처음부터 알았던 모양이다. 마침내 얼굴빛을 바꾸며 나를 쳐다보더니, “그래요, 목사님. 사실 편리해 지기는 했어도, 바쁘기는 여전히 마찬가지고, 오히려 일의 양만 더 늘고 더 복잡해진 것 같아요. 기술이 발달된 게 꼭 좋은 건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라는 것이다. 우리는 같이 한참 웃었다. 나는 아주 오랜만에 진실을 들었다. 그렇다. 기계들 덕분에, 눈부시게 발전하는 문명 세계에서 이제는 좀 더 여유있게 살아야 하는데, 왜 이렇게 더 바쁘기만 한가? 그리고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야 하나? 이제는 겨울 바람을 맞으며 물지게를 지지 않아도 된다. 싸늘한 방 안 공기를 덥히려고 새벽부터 아궁이 군불을 지피지 않아도 된다. 가파른 산에서 무거운 나무짐을 지지 않아도 되고 톱 날을 손으로 벼르지 않아도 된다. 여인네들도 보리쌀을 삶지 않아도 되고, 아침 저녁에 동네 우물에 가지 안아도 되며, 눈물 흘리며 가마솥에 불을 지피지 않아도 된다. 십리나 떨어진 장에 걸어다니지 않아도 된다. 대형 마트나 구멍가게들이 주변에 널렸다. 심지어 택배 제도도 얼마나 편리하게 일반화 됐는지 모른다.
분명 살기에 편리하고 아주 좋아졌다. 우리의 일손을 많이 덜어준다. 그런데도 이상스레 가족 간에 오손도손 얘기할 시간은 없다. 그저 바쁘기만 하다. 그럼 우린 괜히 손해만 봤다. 따뜻한 정과 아름다운 추억만 잃은 거다. 그렇다고 내가 모든 문명과 담을 쌓고 지내자는 것은 아니다. 그저 옛날이 그리워서 그런다. 나 같은 사람 어디 또 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