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는 오늘도 나에게 조용히 다가와 귀에 대고 속삭이셨다..
"나 바둑~; (소근소근)"
"아버지..; 그냥 말씀하세요! 제발 귀에 대고 속삭이지 말구요..ㅠㅠ;;"
"그냥 말하면.... 재미없잖아~~ 하아~~;;"
아버지가..
이상해지셨다..-_-;;
넷바둑이란 온라인게임이 있다..
그냥 말 그대로 온라인으로 바둑을 두는 것인데..
컴퓨터를 업그레이드 하고 랜을 설치한 뒤..
컴을 마련해준 아버지를 위해 뭔가 감사할 것이 없을까 생각하던 도중..
평소 바둑을 무척 즐겨하시는 아버지를 위해..
넷바둑을 권유해 드렸다..
완전 컴맹이신 아버지는 처음엔 조금 꺼려하는 듯 하더니..
이내 온라인에서 쟁쟁한 고수들과 접전을 펼치게 되자..
완전히 넷바둑에 중독되버리고 마셨다..
예전에 아버지가 일을 끝내고 돌아오셨을 때..
내가 컴을 하고 있으면..
"맨날 컴 앞에 앉아 오락이나 하고 말이야!! 남자가 좀 생산적인 일을 해봐!"
라고 하시던 분이....;
지금은 귀가 하시면..
"늘아..이따 나 바둑 콜? ^^* (깜찍윙크;;)"
-_-;;
깜찍윙크를 하시며까지 나에게 애교를 부리는 건..;
말했다시피 아버지는 완전히 컴맹이라 컴을 어케 키는지도 모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컴이 켜있는 상태로 내가 앉아있으면..
가로채기 할 딱 좋은 상황이기에 일말의 양심으로 윙크를 보내시는 것이다..;
차마 우리 아버지시지만..;
제발 윙크만은 좀..;;
전 비위가 약하단 말이예요..;;
여튼 이렇기 때문에..
천리안에서 항상 채팅만 하는 난..
곤란한 경우가 종종 생긴다..
재밌게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난입해서 자리를 빼앗는 덕분에..
얘기 중간에 나가게 되는 경우가 많이 생겨서..
대화하던 사람들에게 미안한 경우가 생기기 문이다..
또 가끔은 열심히 여자를 꼬시다가;;;;
중간에 난입을 하시면..
꼭 눠야 할 떵; 을 못눈거 마냥 찝찝하기 그지 없다..-_-;;
그래서 가끔 난 아버지에게 죄송하지만 이런 핑계들로;
내 자리를 지키곤 한다..
"(일부러 꽉 찬 대국실 들어가서;;) 아버지 오늘은 사람이 많아서 접속이 안되네요.."
"(도스화면에서 아무 글씨나 막 친뒤;) 바이러스 걸렸어요.."
"(랜 꺼놓은채;) 인터넷 연결이 안된다!! 망할 adsl;"
"(컴 전원 모두 끈채) 켜 보세요..-_-;;"
그럴 때마다..
쓸쓸하게 뒤를 돌아 방을 나가시는 아버지의 눈가엔..
약간의 물기가; 고이면서..
안방에서 어머니와 허탈한 표정으로 고스톱을 치시곤한다..;
가끔 안방에서 '홍단' 대신에 '아다리!' 란 말이 간간히 들려올때면;;
난 죄를 지은 불효자가 된 기분이 되곤 한다..;
뭉클~;
아버지 죄송해요..
하지만 여자 꼬시는데 분위기 파악 좀..-_-;;
. . . . .
20살이 지나고 성인이 된 이후로..
내가 아버지를 보는 시선은 어렸을 때완 많이 달라졌다..
어렸을 때는..
위엄과 경외의 대상..
언제나 든든해보이는 어깨를 지닌 강한 사내였었다..
그런 아버지가..
약간 나이를 먹은 지금..
이젠..
내 위에 서 있던 강한 남자가 아닌..
약간은 지치고..
쓸쓸해보이고 고단한 주름살의 사내가 되어..
날 바라보고 있다..
아버지의 어깨를 보고있노라면..
웬지 뭉클해지는 게..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는게 쉽지 않은 일이 되어버렸다..
그런 아버지가..
오늘도 나에게 말을 건낸다..
"늘아.. 스타크래프트가 뭐냐?"
"네?-_-;"
"그게 그렇게 유명하다면서?;"
"네..;"
"너 그거 잘하냐?;"
"네..뭐 좀..;;"
"호오..있지? 켜봐라.."
"넹;"
아버지의 나이 50을 바라보는 꺽어진 40대..
인생이란 고단한 톱날에 깍여..
거칠거칠해진 주름진 손으로..
아버지는 열심히 scv를 조종하고 계셨다..-_-;;
"이게 돈 벌어오는 그거란 말이지?;;"
"네..돈 벌어오는 거예요..;"
"어어..저 가스는 뭐냐? 천연가스냐? 아님 독가스냐?;;"
"그냥 가스예요..;;"
"적은 어딨어?"
....
"아버지!! scv로 러쉬를 가면 어떡해요!!;"
"왜?;"
"일꾼이잖아요!!;"
"이게 마린 아니였어?-_-;"
"네..;"
"음.."
"어라.. 뭐가 터진다? 이거 화면에 뭐라고 나온거냐?"
"elliminate요;; 아버지 군대가 전멸했다고요..;;"
"..........."
승부욕 강한 아버지는..
다른 말로 똥고집;; 강한 아버지는..
넷바둑과 함께 스타크래프트에도 중독되는 사태가..;
언젠가 한번은 꼭 이겨보고 스타크래프트를 끝내겠다는 아버지..
싱글미션에서 치트끼 까지 써드렸지만..;
전적은 22전 0승 0무 22패;
그리고 아버지의 전쟁은 계속 되어가고 있다;;
언제나..
scv를 마린으로 착각하시면서;;
. . . . .
아버지와 예전보다는 많이 가까워졌다는 걸..
몸으로 느낀다..
더 이상 아버지를..
예전처럼 차갑게 대하고 싶지는 않다..
이젠 내가 아버지를 돌봐드릴 차례고..
아버지도 언제까지나 강한 사람이 아닌..
눈물도 있고 정도 있는..
친구같은 존재인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버지 아들이라서 다행이예요..
건강하세요..
. . . . .
그리고 다음 날 접속했을 때..
이상한 메일 한 통이 와 있었다..
[sun2@xxxx.com:이쁜순이;] 어머.. 옵빠!! -_-*;;
옵빠..
바둑 왜 일케 잘 둬? >_<;
꺄아~ 나 옵빠한테 시집갈래!>_<;;
후우 야자 끝내고 왔더니 너무 피곤하다..
내년이면 고3인데 나두 이젠 공부해야 될까봐..
옵빠.. 옵빠는 대학생이니까..
다음다음 해엔 옵빠랑 같은 학교 다닐지도 모르겠다..^^;
옵빠 그럼..
이만 빠 -_-/
이따 넷바둑에서 콜?;^^
..........
-_-;;
아버지;;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시는거예요!! -_-;;;;
카페 게시글
유쾌방
#아버지가 이상해지셨다..;;━ㅡ* (엽.공.카라는 카페서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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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마지막 굉장한 역전이오.대략 어이업ㅂ소.하하.
어제 아버지가 일하시다가 기계에 손을 다치셨는데 어찌나 내 자신에게 화가나던지.......ㅠ.ㅠ 아버님 연세가 많으셔서 일을 그만두시라고 말하고 싶지만 일그만하게 할만큼 금전적인 여유가 없어서요......ㅠ.ㅠ 이글을 보니까 다시 생각이 나네요..ㅠ.ㅠ
너무 화목해 보여요~ 우리아빠도 넷바둑 중독..-_- 가끔 술너무 많이 마신날에는 모니터를 마우스로 착각하고 "이거 왜일케 안움직이냐" 하시면서 모니터를 앞뒤로 땡겨가며 두실때도 있어요..-_-
헐 상당히 가슴 찡하고 재미있는 글이구려
감동적이면서 엄청난 반전....
아틀란티스님 글읽구 순간 푸하핫 웃었다는....^^
ㅡ.ㅡ 짱이다乃
멋지다!!!!
심한 반전 이었소~~하하..
울아빠두 넷바둑광인데...ㅋㅋ 가끔 모니터앞에 앉은 아빠의 옆모습을 볼때면..ㅋㅋ 목이 앞으로 쭈~~욱 빠져서 모니터안으로 들어갈거 같다니까..ㅋㅋㅋ사랑하는 우리아빠~
울아부지는 세이고스톱에 그만 푹 빠지셨다오...-_-;
참 아햏햏하오..-_-;;
ㅋㅋㅋㅋ눈물이글썽하려다 나중에 웃음이픽..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마지막이 압권이오...........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카도라햏힘내시오
아카도라햏힘내시오
아버지가 참 귀엽소. 므흣~ 저희아빠는 한게임 고스톱 중독이시오.;;
울 어무이도 한겜 맞고에 푸욱~ 빠지셨다오. ㅋㅋ
우리 어머님은 세이 고스톱ㅋㅋ
울 아버지 로또 1등얼마인지 확인한다음 넷마블 고스톱 하신다오 저번에 새벽 4시쯤에 주무셨소이다 쿵쿵따도 같이한다오-ㅁ-
정말~짱이네요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