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를 새겨라!
본부간부회와 함께⑤ 50 ~ 75p중에서
신시대의 태양, 혁혁하도다!
신시대의 태양은 혁혁히 떠올랐다.
영광으로 찬란히 빛나는 광야가 펼쳐졌다.
창가의 영예로운 사제는, 모든 것을 이겨내고 승리했다.
그리고 다시 이케다(池田) 선생님과 함께 새로운 역사를 새기는
광포의 여정을 시작했다.
본부간부회를 승리의 마디로 삼아!
1987년 12월 4일, 이케다 선생님은 일년 만에 제339회 본부간부회에 참석해
정확히 30년 전(1957년) 12월 4일에 쓴 자신의 일기를 소개했다.
"(도다)선생님과 함께 싸우고 전진하며 끝까지 살아가는 것 외에
내 인생은 없다. 스승이 계시기에 내가 있다."
이어서 선생님은 일기에 적어놓은 미래의 지표를 이렇게 말했다.
"열살까지 … 김 제조업을 하는 평번한 어부의 아들이었던 소년 시절
스무살까지 … 자아를 자각, 병마와 투쟁
서른살까지 … 불법(佛法) 연찬과 실천, 병마를 타파하는 투쟁
마흔살까지 … 교학의 완성과 실천의 완성
쉰살까지 … 사회를 향한 선언
예순살까지 … 일본광포의 기반 완성"
그리고 선생님은 힘차게 말했다.
"저는 곧 예순이 됩니다. 일본 광선유포의 기반은 완벽하게 구축했습니다.
대방법(大謗法)의 나라 일본에 광선유포의 기반이 완성되면, 세계광포는
반드시 확실한 흐름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이케다 다이사쿠 전집》
이하 본부간부회 스피치는 모두 이 책에서 발췌)
숱한 고난을 이겨낸 '승리 선언'은, 벗의 마음을 울렸다.
훗날, 선생님은 이 일기를 <수필 신ㆍ인간혁명>에 이렇게 썼다.
"병약한 탓에 의사가 '서른을 넘기기 힘들다'고 말한 내 생명. 도다 선생님은
이런 나를 누구보다도 걱정하고, 끊임없이 엄애(嚴愛)의 지도를 해주셨다.
격렬한 법전(法戰)의 나날이 이어졌다. 병에 시달려 지칠대로 지친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삼장사마(三障四魔)와 벌이는 싸움이다. 울면서 어본
존께 부딪쳐라! 그리고 모든 것을 타개하라!' '언제 임종을 맞아도 유연하고
태연한 인생이어라. 신심이어라.' 생명을 꿰뚫는 엄부(嚴父)의 목소리였다.
또 어느 때는 ' 내 생명을 주겠다! 끝까지 살아라! 나를 대신해 반드시
끝까지 살아라!'고도 말씀하셨다." 가슴 뭉클한 사제 드라마다.
그리고 새로운 서원을 이렇게 썼다.
"그러나 일기에는 예순 이후의 일은 언급하지 않았다. 그때 나로서는,
그 이상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예순 이후 내 인생의 발자취를 예측해본다면, 이를테면 다음과
같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흔살까지 … 새로운 인간주의 철리를 확립
여든살까지 … 세계광포의 기반 완성
여든 이후에는 묘법(妙法)에서 설하는 불로불사(不老不死)라는 말대로,
영원히 광선유포를 지휘할 것을 결의한다."
1988년, 환갑을 맞은 선생님은 연초부터 정열적으로 투쟁을 시작했다.
각부 대표와 거듭 간담하고, 청년과 기념촬영을 했다. 1월 9일에는 제1회
전국청년부간부회에 참석해 2000년까지를 '창가학회 청년세기의 해'로 정하고
올해를 그 첫해로 하자고 제안했다. 15일에는 성인의 날을 기념하는 신주쿠구
와 네리마구 합동총회에서도 스피치했다. 집필투쟁도 이어졌다. 세이쿄신문
신년호에 장편시 '평화의 돔 개선(凱旋)의 노랫소리 ㅡ 히로시마의 깊은 사명
의 벗에게 보낸다'를 발표한 것을 비롯해, <대백련화>와 <소카신보>에 신년
시를 보내고 부인잡지에도 기고했다. 그야말로 '새로운 인간주의 철리를 확립'
하는 투쟁이었다.
1988년 1월 20일, 시나노마치 창가문화회관에 일본 전국에서 대표로 모인 동지
들의 가슴은 기대로 부풀었다. 이날 개최한 본부간부회부터 '제1회'로 정하고
새롭게 출발한다고 발표했다. (이케다)선생님은 스피치에서 먼저 '제1회'
본부간부회로 새롭게 출발하는 의의를 이렇게 말했다.
"무엇이든 '같은 일'을 반복하다 보면 싫증도 나고 정체됩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회합일수록 한번 한번을 신선하고, 뜻 깊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러한
의미를 담아 최고회의에서 오늘을 '제1회'로 정하고, 새로운 결의로 1999년
12월을 향해 달마다 본부간부회를 개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아무쪼록 이러
한 의의를 이해하고, 매달 개최하는 본부간부회를 중요한 활동의 마디로 삼으
면서 '21세기를 향해' 당당하게 단결하여 거듭 전진하기 바랍니다."
찬동과 결의를 담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날, 선생님은 1981년에 세계예술문화아카데미가 수여한 '계관시인' 칭호의
의의를 "나는 앞으로도 '계관시인'의 한 사람으로서 벗을 격려하기 위해
아름다운 마음과 마음, 깊은 혼과 혼의 음률을 연주하는 시를 계속 써서 발표
하고자 합니다!" 하고 진심을 밝혔다. 그리고 니치렌대성인(日蓮大聖人)이
미노부(身延)에 입산하신 뒤 펼치신 투쟁을 언급하고 이렇게 힘주어 말했다.
"대성인은 미노부에서 8년 남짓한 세월 동안 정법홍통(正法弘通)과 영법구주
(令法久住)를 위해 심혈을 기울이셨습니다. 더욱 본격적으로 제자를 육성
하고 문하를 격려하셨습니다. 이른바 은둔이라든지, 하물며 은퇴는 당치도
않습니다. 마지막까지 말법 광선유포를 향한 격투의 연속이었습니다."
"늙고 병든 몸, 그리고 혹독한 자연환경, 안팎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난(難)
등, 여러모로 생각해봐도 이러한 상황에서 끊임없이 이만큼 많은 지도와 격려
를 하신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닙니다. 그 대자비와 열렬한 기백을 배견할
때, 얼마나 존귀한 어본불(御本佛)의 경애이셨는지 더없는 감동을 느낍니다."
"물론 차원은 다르지만, 대성인이 몸소 보여주신 대로 사명의 인생이 끝나는
마지막까지 광선유포와 일생성불(一生成佛)을 향한 발걸음을 멈추면 안 됩니
다. 도다(戶田) 선생님도 그러셨습니다. 저도 그럴 결심입니다."
광포 스승의 열렬한 말을 듣고, 동지의 눈은 더한층 빛났다.
'제1회'부터 새로운 본부간부회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선생님은 전 세계를
돌며 왕성히 격려행을 펼치고, 본부간부회 때마다 혼신의 힘을 다해 거듭
스피치했다. 학회원은 세이쿄신문에 크게 게재되는 선생님 지도를 손꼽아
기다리고 생명에 새기듯 숙독했다. 제1차 종문사건의 폭풍우를 이겨낸
창가의 사제는, 그 혼의 유대를 더한층 강화했다.
신시대의 여명을 알리듯 본부간부회도 거듭 발전했다. 1989년 8월 24일에
개최한 도쿄총회(시나노마치 창가문화회관)에서 처음으로 위성통신 시스템
시험방송을 실시해, 방면의 중심회관을 연결했다. 그뒤 본부간부회도 위성
통신 시스템을 이용해 음성과 영상을 전국의 각 회관으로 송출했다. 회원들
은 각지에서 선생님 모습을 보고, 목소리를 들으면서 본부간부회에 '참석'할
수 있는 기쁨을 가슴 깊이 느꼈다. 첫 위성중계 시험방송을 한 지 1년이 지난
1990년 8월 24일, 도호쿠 미야기에 있는 자오이케다기념강당에서 개최한
본부간부회에서 선생님은 전국의 동지에게 이렇게 외쳤다.
"오늘 제32회 본부간부회에는 전국에서 동지 20만여명이 참석했습니다.
위성중계로 회합의 모습을 각 회관에 동시에 전할 수 있게 된 지 오늘로
만 1년이 됩니다. 그동안 매번 많은 행사요원이 음지에서 묵묵히 송출작업을
지원했습니다. 저는 이곳에 오기에 앞서, 회합장소 밖에서 회합 영상을 전파
에 실어 하늘에 떠 있는 통신위성으로 보내는 중계차를 방문했습니다.
그곳에서 행사요원 일곱명이 최첨단 기기에 둘러싸여 좁은 공간에서, 땀투성
이가 되어 작업하고 있었습니다. 전국 회관에 최고의 영상을 보내고자
참으로 필사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부족하나마 시원한 주스를 드리고
그 노고를 치하하고 격려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음지에서 일하는 사람을 늘
소중히 여기며, 세심한 부분에 마음을 쓰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여러분의 모습이 전국에 잘 방송되고 있다고 보고를 받았습니다.
아무튼 축하합니다."
1990년에 접어들어 또다시 장마(障魔)의 폭풍우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종문(宗門)이 신도를 멸시하는 본성을 드러내고, 정성을 다해 종문을 외호한
창가학회를 파괴하려고 모략을 꾸몄다. '제2차 종문사건'이 일어났다.
그때까지 학회는 광선유포의 주체자로서 절복(折伏)과 홍교에 힘쓰고, 대성인
불법을 세계로 넓혔다. 그리고 350곳이 넘는 사찰을 건립해 종문에 기진하고,
총 7천만명에 달하는 회원이 등산회에 참가했다. 종문의 흥륭은 모두 학회
덕분이었다. 그런데 학회에게서 공양을 착취할 대로 착취한 닛켄(日顯)은,
발전을 이룬 학회와 세계가 상찬하는 이케다 선생님에게 당치 않게도 질투심
을 품었다. 그리고 큰 은혜를 입은 학회와 선생님을 떼어 놓으려고 획책했다.
닛켄은 일부 추종자들과 은밀하게 거듭 책략을 꾸며, 선생님을 추방하고
학회원을 종문에 예속시키려 했다. 이 '창가학회 분리작전'은 닛켄 스스로
'자른다는 의미'로 'CUT'의 'C'를 따서 'C작전'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계략을
주도했다. 이 모략을 꾸민 때는 1990년 연말이었다. 11월 16일, 도쿄도다기념
강당에서 개최한 제35회 본부간부회에서 (이케다)선생님은 베토벤 '교향곡
제9번'에 관해 스피치했다. "베토벤이 '환희의 송가'로 알려진 '교향곡 제9번'
을 작곡한 때는 1824년입니다. 일본에서는 에도시대 말기로, 베토벤이 서거
하기 3년 전인 쉰세살 때입니다. '교향곡 제9번'은 그가 완성한 마지막 교향곡
입니다. '교향곡 제9번'은 '합창곡'으로 유명하지만, 당시 합창을 하는 교향곡
은 그 유례가 없었습니다. 이른바 베토벤의 '새로운 사고'와 '새로운 도전'
으로 탄생해, 인류에게 선물한 작품입니다.
합창부분에서 부르는 '환희의 송가'는, 베토벤과 '같은 시대'를 산 독일의
대시인 실러의 시 '환희에 붙여'에 곡을 붙인 것입니다. 베토벤은 스물두세살
때 '인류애'와 '평화' 그리고 '환희'에 넘치는 이 시에 곡을 붙이려고 결심했다
고 합니다. 베토벤은 이 꿈을 계속 안고 끊임없이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30여년 뒤에 실현시켰습니다. 청춘의 결의가 훌륭하게 결실을 맺은 것입니다."
"귀도 들리지 않고, 구시대의 보수적인 사회에서 사람들의 압박도 있었습니다.
질투도 있었습니다. 병과 경제적, 가정적인 고뇌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베토벤은 지지 않았습니다. 싸웠습니다. 그리고 이겼습니다.
온갖 고뇌의 암운을 뚫고, 맑게 갠 푸른 하늘과 같은 '환희의 경애'로 자신을
끌어올렸습니다. '교향곡 제9번'은 그러한 인간 베토벤이 인생의 마지막 장을
승리한 증거입니다. 불법도 또한 '승부'입니다. 승부인 이상 당연히 적(敵)
도 있습니다. 고난의 연속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꿋꿋이 이겨냈을 때 진실로
영원한 행복이 있습니다. 광선유포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단연코 승리를!'
이라고 나는 목청껏 외치고 싶습니다." "그래서 한가지 제안을 하고자 합니다.
창립 65주년(1995년), 창립 70주년(2000년)에는 성대하게 '교향곡 제9번'을
합창하면 어떨까요. 구체적인 방법이나 내용은 다시 검토하기로 하고,
웅장하고 아름다운 세계광선유포의 전주곡으로 후세에 남기고 싶습니다.
니치렌대성인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환희 중의 대환희이니라.'
(어서 788쪽)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묘법을 수지한 우리가, 최대로 영원한
'환희'를 맛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환희의 송가'를 소리 높여 부를
이유가 있다고 확신합니다." 커다란 감동을 준 스피치였다.
그리고 이듬해 12월 16일, 제36회 본부간부회에서 교향곡 제9번 합창을 일본
어와 독일어로 소리 드높이 선보였다. 문화의 마음과 인간찬가의 혼이 넘친
본부간부회였다. 그러나 종문은 11월 본부간부회 스피치를 몰래 녹음해
고의로 내용을 위조한 출처불명의 테이프를 근거로 트집을 잡았다. 그리고
12월 16일자 소인이 찍힌 배달증명우편으로 '제35회 본부간부회 이케다 명예
회장 스피치에 관한 질문'이라는 제목의 문서를 학회본부에 보냈다. 그 내용
은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 환희의 송가를 독일어로 합창한 것은 외도예찬
(外道禮讚)이다' 등 여섯항목에 걸쳐 의문을 제기하고, 입수한 테이프를 근거
로 일방적으로 규탄했다. 매우 시대착오적이고 악의로 가득 찬 문서였다.
본디 실러의 원시(原詩)에서 '신(神)'이라는 말은 유일신교인 기독교의 신을
예찬한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있는 거룩하고 성스러운 힘을 찬미한 것이다.
'교향곡 제9번'이 시대와 문화를 뛰어넘어 널리 세계에서 사랑받는 이유는,
보편적인 주제를 노래했기 때문이다. '외도예찬'이라는 트집은 말도 안 된다.
학회는 이러한 비열한 종문의 책략에 '질문서'를 보내 어디까지나 사실에
근거한 대화를 요청했다. 그러나 종문은 학회의 요청을 거절했다. 나아가
종규(宗規, 종문의 규칙) 개정이라는 임시방편의 수단을 이용해 12월 27일,
종문이 흥륭하는 데 가장 공로자인 이케다 선생님을 법화강 총강두(모든 신도
의 대표)에서 파면했다.
해가 바뀌고 개최한 1991년 1월 6일 제37회 본부간부회에서 이케다 선생님은,
나치스의 횡포에 맞서 가장 인간적인 웃음의 힘으로 비인간적인 권위와 투쟁
한 채플린의 삶을 소개하고 동지에게 외쳤다. "광포라는 원정(遠征)의 도상
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생길수록' 장해(障害)와 '싸우면 싸울수록' 묘법의
'환희 중의 대환희'가 오체(五體)에 약동합니다. 어쨌든 늘 밝고 즐겁게
웃는 얼굴로 나아가기 바랍니다. 괴로워하거나, 마음에 압박을 받거나,
쓸데없이 감정적이 되면 무엇보다 자신이 손해입니다. 대성인도 슬퍼하실
것입니다. 상쾌하게 '정의는 유쾌하다'고 확신하면서, 사이 좋은 서민의
연대를 넓히기 바랍니다." 그리고 대성인이 <요리모토진장>에서 인용하신
중국의 고전 '신서(新序)'의 한 구절 "죽음을 두려워하여 말하지 않음은 용사
가 아니로다." (어서 1159쪽) 즉, 죽는게 두려워서 할 말을 하지 않는다면
용사가 아니라는 부분을 소개하면서 확신을 담아 말했다.
"위협에 굴복해 입을 닫으면 신앙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할 말을 '해야 할
때' 끝까지 감연히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마음은 지옥에 얽매이고, 정신은
패배하고 맙니다. 서민을 지키는 웅변의 사람이 되어라. 인간을 끝까지
지키는 용사가 되어라. 이것이 대성인의 마음이라고 배견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진실한 신앙자가 걸어가야 할 삶의 방식이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동지의 마음에도 투쟁의 불꽃이 퍼져나갔다.
(이케다)선생님은 훗날 제2차 종문사건이 일어난 당시를 이렇게 썼다.
"생각해보면 질투에 사로잡힌 음험한 닛켄 일파가, 광선유포를 향해 나아가는
우리 창가학회를 철저히 파괴하고자 1990년 말에 제2차 종문사건을 일으켰다.
거세게 우리를 비방하는 미치광이와 같은 모습에 모두 아연실색했다.
그러나 새해가 되자마자 정법정의(正法正義)를 내건 창가의 진열은 맹렬한
반격을 시작하고, 음험한 모략을 산산조각 냈다. "1991년 연초부터 나는
맹렬히 움직였다. 휘몰아치는 폭풍우보다도 강하고, 세차게 노한 파도와
같이 투쟁을 일으켰다. 크고 작은 회합에 참석해 반드시 정의를 외쳤다.
불법의 인간주의를 드높이 선언했다." "나는 전국을 동서남북으로 열심히
달렸다. 해외에 나가면 그곳에서 모든 동지에게 계속 격려를 보냈다.
지난 일년간 전 세계의 지도자, 지식인, 문화인과 100차례 이상 만나 대화했다.
모두 학회의 올바름을 깊이 인식했다. 아니, 정의로운 학회에게 힘이 되어
주었다. 세상 사람들은 현명하다." "그리고 5월 3일부터는 소설《인간혁명》
제11권을 '권력의 마성'과 싸운 '오사카' 장부터 재개했다. 나는 온 힘을 다
쏟았다. 말하고 또 말하고 끝까지 말했다. 쓰고 또 쓰고 끝까지 썼다.
아니, 니치렌 불법의 정의를, 창가사제의 혼을 소리도 아끼지 않고 외치고
또 외치고 끝까지 외쳤다. 이때 학회는 이미 승리했다. 이미 승리해
있었다." (<수필 인간세기의 빛>)
(이케다)선생님은 본부간부회 때마다 사제정신과 정의의 혼을 동지의 생명에
새기듯 끊임없이 지도했다. 도다 선생님의 생신인 2월 11일에 개최한 제38회
본부간부회에서는 창가 삼대(三代)의 사제를 이렇게 말했다.
"일찍이 일본이 전쟁의 광기에 물들어 사람들이 신념을 굽히는 속에, 마키구치
(牧口) 선생님은 오로지 홀로 대성인의 '입정안국(立正安國)'의 정신을 위해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이것은 학회의 영예로운 역사입니다. 그리고 수많은
퇴전의 무리가 겁쟁이처럼 우왕좌왕하고, 스승이라고 부르던 마키구치 선생님
을 미워하고 배신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약하고 부질없습니다. 이해(利害)
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의 마음은 무섭습니다. 그속에서 오로지 홀로 도다
선생님만이 '나는 마키구치 선생님의 제자'라며 사제의 길을 관철하셨습니다.
마키구치 선생님과 함께 투옥된 도다 선생님은 '당신(마키구치 선생님)의
광대무변한 자비는 저를 감옥에까지 데려가 주셨습니다.' 하고 말씀하셨습니
다. 보통 사람 같으면, 감옥에 들어가게 만든 사람에게 감사할 리가 없습니다.
욕을 하거나 불평을 해도 당연합니다. 더구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감옥
안의 냉엄한 상황은 지금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어느 누가 기뻐하겠습니까.
그러나 도다 선생님은 마키구치 선생님에게 진심으로 감사하셨습니다.
여기에 학회의 근본인 '사제정신'을 남기셨습니다. 광선유포를 위해서는
설령 내 몸이 어떻게 되든 '불이(不二)의 정신'으로 삼세(三世)에 걸쳐
어디까지나 함께 나아간다. 이것이 인생의 사제입니다. 마키구치 선생님과
도다 선생님은 바로 그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도다 선생님과 나 또한
그렇다고 확신합니다."
제39회 본부간부회(3월 4일)에서 선생님은, 대성인이 민중을 속이는 악승(惡
僧)을 엄하게 꾸짖으신 점을 언급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법화경의 정신과 '어서'의 가르침대로 광선유포의 대도(大道)를 걷고 있습
니다. 이 아름다운 불자(佛子)의 세계가, 사악한 획책으로 파괴되어서는 결코
안 됩니다. 정법을 믿기 때문에 그러한 책략을 날카롭게 간파하고, 설령
상대가 누구든 감연히 맞서는 것이 대성인 정신에 걸맞은 행동입니다."
제40회 본부간부회(4월 10일)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중, 특별고등경찰의 감시
속에 개최한 좌담회에서 마키구치 선생님이 당당하게 '입정안국'의 정의(正義)
를 말씀하신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선사와 은사의 혼이 담긴 말을 소개했다.
"마키구치 선생님은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하는 겁쟁이는 대성인 문하가 될 수 없다' 이것이 마키구치 선생님의 신념
이었습니다. 이 강철 같은 신념은 그대로 도다 선생님에게 이어지고, 나도
제자로서 엄연히 이어받았습니다. 도다 선생님은 자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
다. '난(難)을 만나 신심을 그만두려는 겁쟁이는 학회에는 필요 없다.
나 홀로 남겨지면 거기서부터 다시 광선유포의 투쟁을 하겠다. 불퇴의 동지
들이 모여 신심과 광포의 엄연한 학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 의연한 '사자왕
의 마음'이 학회정신입니다." 그리고 학회의 진실을 남기고자 5월 3일부터
《인간혁명》 연재를 시작하고, 나아가서는 속편 소설《신ㆍ인간혁명》의
집필 구상을 발표했다. 기쁨이 박수가 되어 회합 장소를 감쌌다.
그리고 제41회 본부간부회에서는 민중의 '신념'과 '단결'이 역사를 연다고
말하고, 제42회에서는 '난'이 곧 '안락(安樂)'이고 험난함과 용감하게 싸우는
'강한 자기' 생명을 확립할 때 '현세안온(現世安穩)'이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리고 정의에 꿋꿋이 사는 사람은 푸른 하늘과 같은 인생이 된다고 강조하고
(제43회), 새로운 세계를 여는 '새로운 사고'가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제44회) 이케다 선생님 입신기념일에 개최한 제45회 본부간부회에서는
'정법(正法)'을 지키고 '청류'를 끝까지 지키고자 악과 벌이는 투쟁에 타협할
수 없다는 진심을 피력했다. 제46회 본부간부회에서는 진실한 불법은 늘
화합승(和合僧)을 파괴하려는 안팎의 적과 끊임없이 싸우는 사람이 있기에
전해졌다는 사실을 참석자에게 말했다. "세계는 넓습니다. 불법은 영원합니
다. 눈앞의 사사로운 일에 분동되거나 작은 일에 얽매이면 너무나도 어리석습
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위한 불법이고 인생일까요. 우리는 몇천년, 몇만년의
스케일로 미래를 내다보면서, 전 세계를 무대로 유유히 광선유포의 길을
넓히고자 합니다." 이케다 선생님 스피치는 동지에게 희망이고, 학회가
나아가야 할 항로를 비추는 나침반이었다. 본부간부회 때마다 불법의 진수
(眞髓)와 정법을 관철하는 삶의 방식을 가슴에 새긴 학회원은, 극악과의 투쟁
에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파사현정(破邪顯正)의 대화를 위해 꿋꿋이
달렸다.
1991년 11월 8일, 종문에서 '해산권고서'를 보내왔다. 본디 학회는 독립된
종교법인이다. 법적으로도 전혀 무의미한 통지였다. 그리고 사회의 상식과
동떨어진, 권위적인 권고서의 내용은 비웃음거리가 될 뿐이었다.
11월 23일에 개최한 제48회 본부간부회에서 이케다 선생님은 모든 동지에게
확신에 차 말했다. "우리는 지금까지 십여년간 승속화합을 위해, 어떤 일이
있어도 오로지 인내했습니다. 늘 종문을 일으켜 세우고 지키며 비호하려 했습
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종문이 위기에 처한 상황을 보면서, 더 이상 침묵
하는 것은 오히려 대악(大惡)이 됩니다. 후세를 위해 진실을 전해 남겨야
합니다. 지금 목청껏 외쳐 대악의 뿌리를 근절하지 않으면, 대성인 불법은
소멸하고 맙니다. 이것이 우리가 우려하는 일이고, 진심 어린 외침입니다.
본디 '신심의 혈맥'은 대성인과 이어진 혈맥입니다. 우리는 대성인을 믿고
우러르며, 날마다 신앙에 힘씁니다. 대성인은, 정법은 이 '무이(無二)의 신심'
에 맥동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광포의 도상에서는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만납니다. 순풍에 돛을 단 듯한 인생만 있을 수는 없으며, 풍랑이 없으면
항해의 기쁨도 없습니다. '선악불이(善惡不二)' '선악일여(善惡一如)'입니다.
생명은 '무명(無明)'과 '법성(法性)'이라는 양면이 있습니다. 깊은 차원에서
는 무명이라는 어둠이 있기에 법성이 빛납니다. 이것은 광선유포의 전진
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탁악세(五濁惡世)이므로 크건 작건 악과 충돌
하는 일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주객이 전도되어, 피해자가 가해자처럼 알려
지는 일도 현대의 실상입니다. 그것을 변독위약(變毒爲藥)함으로써 신심이
깊어지고, 지혜와 복덕을 늘릴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모두
불의(佛意)라고 받아들이고 묘법에 살아간다. '불법은 승부'라는 일념으로
끝까지 승리한다. 이 불굴의 신념을 관철하여 미증유(未曾有)의 광포발전을
실현한 것이 우리 학회의 역사입니다." 광포 스승의 외침에,
벗은 새롭게 불퇴전을 서원했다.
이 본부간부회의 닷새 뒤인 11월 28일자로 종문은 학회에 '파문통고서'를
보냈다. 근거가 되는 성훈 한 구절도 제시하지 않은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파문'은, 사종문(邪宗門)에게서 '혼의 독립'을 선언하는 사제 승리의 날이
되었다. 그로부터 열흘 뒤 개최한 본부간부회(12월 8일)에서 이케다 선생님
은 엄연히 말했다. "창가학회의 출현으로 대성인 불법은 사실상 '세계종교'
로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른바 대성인이 자신의 직계로서 학회에 불칙(佛
勅)의 '종자(種子)'를 심어주셨습니다. 그 종자가 활발하게 성장해 바야흐로
전 세계로 가지를 뻗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대성인은 더욱 현란한 꽃을 피우
고 열매를 맺기 위해 '작은 뜰'의 문을 열고 넓디넓은 신세계를 나타내셨습니
다. 20세기에 탄생한 우리 '창가학회'가 바로 니치렌대성인 직계인 '광선유포
대교단'이라는 자신감을 갖고, 이처럼 깊은 의의와 사명을 확신하기 바랍니다.
아무쪼록 자유롭게 그리고 구원의 동지, 형제로서 사이 좋게 '위대한 창가학회'
를 지키고 학회와 함께 번영하면서, 이 인생 그리고 법전(法戰)을 당당하게
꿋꿋이 승리하기 바랍니다." 광포 스승과 함께 투쟁하는 동지의 마음은
상쾌했다. 학회는 사종문의 속박에서 벗어나, 세계종교로서 비약하기 위해
더욱 대화의 기세를 더했다.
1992년, '창가르네상스의 해'가 막을 열었다. 이케다 선생님은 새로운
인간주의 철리를 확립하는 투쟁을 일본 전국 그리고 해외에서 펼쳤다.
1월 11일부터 13일까지 가나가와에서 벗을 격려하고, 28일부터는 아시아를
방문해 한달 동안 홍콩을 비롯해 타이, 인도에서 여러 행사에 참석, 귀국한
뒤 그대로 오키나와로 갔다. 2월 27일에는 오키나와연수원에 있는 오키나와
평화회관에서 개최한 제51회 본부간부회에 참석해 "말법에는 법화경 행자
(行者)가 반드시 출래하리라. 그러나 대난이 오면 강성한 신심은 더욱더
기뻐하느니라. 불에 장작을 더하면 성해지지 않는 일이 있겠느뇨.
대해(大海)에 중류(衆流)가 들어가나 그래도 대해는 강물을 되돌려 보내는
일이 있느뇨. 법화대해(法華大海)의 행자에게 제하(諸河)의 물이 대난과
같이 들어가도 되돌려 보내거나 나무라는 일이 없다. 제하의 물이 들어가는
일이 없으면 대해는 있을 수 없으며, 대난이 없으면 법화경 행자가 아니로다.
천태가 가로되 '중류는 바다로 들어가고, 장작은 불을 성하게 함'이라고 운운"
(어서 1448쪽)이라는 성훈을 인용해 혼신의 힘을 다해 지도했다.
"학회는 말법탁세인 지금, 대성인의 불의불칙(佛意佛勅)을 이어받아 출현한
불가사의한 '광선유포 교단'입니다. 성훈에 씌어 있듯이, 반드시 대난을 받습
니다. 그러나 어떤 일이 있어도 '법화대해'의 대경애로, 넓은 마음으로 받아
들이면 됩니다. 대해도 다양한 강물을 받아들입니다. 받아들여야 비로소
대해가 될 수 있습니다. 계속되는 난(難)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면서 전진하는
양분으로 삼았기에, 오늘날 학회는 크게 발전했습니다. 세계광포의 대해를
전개했습니다. 어쨌든 '모든 것은 내 생명을 풍요롭게 하는 자양분이고
영양분'이라는 넓은 경애로 새롭게 출발하기 바랍니다."
나아가 선생님은 2월 29일, 10년 만에 오이타를 방문했다. 3월에는 시즈오카,
4월에는 아이치를 방문하고, 4월 26일에는 주부이케다기념강당에서 개최한
제53회 본부간부회에 참석했다. '대성인 근본'에서 벗어난 오노승(五老僧)의
모습과, 진정한 제자 닛코(日興)상인이 펼친 호법(護法)의 투쟁을 언급하면서
"우리는 닛코상인의 정법엄호의 정신 그대로 나아갑니다. 대성인이 남기신
'민중을 위한 불법'을 끝까지 지키기 위해 '현대의 오노승'과 싸우고 있습니다.
우리의 투쟁이 바로 '바람 앞의 등불'과 같던 정법을, 말법만년을 위해 전하는
'영법구주(令法久住)'의 투쟁입니다." 하고 확신을 담아 말했다.
선생님의 격려행은 이어졌다. 5월에 간사이에 가서 지도하고, 20일에는
제54회 본부간부회에서 대성인 직결의 신심을 힘주어 말했다. 6월 8일부터는
유럽과 중동을 방문, 7월 5일에 귀국하기까지 독일, 오스트리아, 이집트, 터키,
이탈리아를 방문해 온 힘을 다해 한사람 한사람을 격려했다. 7월 19일부터는
시즈오카, 8월 1일부터는 나가노, 8월 27일부터는 홋카이도, 9월에는 다시
가나가와를 방문했다. 선생님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10월 12일부터
시작한 제8차 중국방문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중국에서 바로 오사카로 갔다.
그리고 10월 22일에는 효고에 있는 간사이이케다기념묘지 공원 안에 있는
단바이케다강당에서 개최한 제59회 본부간부회에 참석했다.
"지금 누가 봐도 '정법' '법화경(法華經)'은 이미 창가학회밖에 없습니다.
'법을 넓히는 사람'은 학회고 학회원입니다. 이러한 학회와 학회원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바로 정법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정법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을 이번에는 대성인이 소중히 여기십니다. 시방(十方)의 제불(諸佛)이
소중히 여깁니다. 이 한 가지 사실만 알면 인생은 반석과 같습니다.
불법 진수의 실천이 여기에 있습니다." 하고 말했다.
1992년의 대미를 장식하는 제61회 본부간부회는 12월 19일, 미에에 있는
주부이케다기념묘지 공원에서 개최했다. 선생님은 먼저 "이 일년간 여러분의
힘으로 십년에 필적하는 투쟁을 연전연승하는 역사로 장식했습니다." 하고
동지의 분투를 치하하며 이렇게 말했다. "니치렌대성인은 전 인류를 구하는
정법을 전 세계에 넓히고자 오로지 홀로 일어섰습니다.
'인류구제', 이것은 대성인이 '평생 꿈꾼 희망'이었습니다. 이만큼 장대한
꿈은 없습니다. 존귀한 꿈은 없습니다. 우리 창가학회도 또한 대성인의
유명(遺命)인 '세계광선유포'라는 '희망'을 위해 투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을 착실하게 실현했습니다. 이보다 더한 기쁨은 없습니다.
대성인은 "니치렌과 동의(同意)란다면 지용의 보살이 아니겠느뇨." (어서
1360쪽)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대성인과 '동의'로, 세계광포라는
'같은 뜻'을 목표로 나아가는 '지용보살의 교단'입니다. 대성인과 '동의',
대성인에 '직결'하는 '정통교단'입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막힘이 없습니다.
무한한 희망에 살아가고, 무한하게 발전합니다."
어느 시기까지 SGI 멤버는 함께 모이는 것이 아니라 각자 본부간부회에 참석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어느 날, 이케다 선생님이 해외지도 일정을 세우고
있던 우리에게 이렇게 제안하셨습니다. "제가 본부에 있으니 SGI 멤버를
본부간부회에 부릅시다. 각국에서 단 '한 사람'이라도 대표가 참석하면
반드시 거기서부터 세계광포가 넓혀집니다. 본부간부회에 참석한 '한 사람'
에서 파동이 퍼집니다." 그때부터 연수를 열 때마다 흐름이 생기고, SGI
멤버에게 하나의 커다란 리듬이 만들어졌습니다. 지금도 각국 멤버는 본부
간부회에 참석하는 일이 큰 목표가 되었습니다. 광포의 스승을 구도하는
멤버의 모습에 감동하고, 동시에 세계광포 신시대를 연 선생님의 선견지명에
놀람과 감동으로 가슴이 벅찹니다.
1996년 5월 24일에 개최한 본부간부회는 제100회를 맞이한 기념회합이었다.
이 자리에서 이케다 선생님은 예전에 소개한 도다 선생님 지도를 언급하면서
다시 한번 본부간부회의 중요성을 말했다. "도다 선생님은 학회에서 개최하는
간부회에 매우 엄격하셨습니다. 어느 날 선생님이 편찮으셔서 간부회를 개최
할지, 말지 문제가 되었습니다. 본부는 개최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도다)선생님은 회합을 개최하지 않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반드시 해야 한다. 내가 있든, 없든 해야 한다'고 엄연히 말씀하셨습니다.
(도다)선생님은 본부간부회를 참으로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본부간부회
에는 그만큼 중요한 의의가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동지를 칭찬하면서
(이케다)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100회의 본부간부회를 개최하는 동안,
우리 창가학회는 온갖 난을 이겨냈습니다. 악승이 배신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전 세계 역사상에도 그토록 나쁜 성직자는 없다고 모두가 외칠 정도의 비열함
도 있었습니다. 공양을 탐내고, 사람들을 노예처럼 부리고, 자기들은 놀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의 피와 땀으로 쌓아 올린 것까지 파괴하고, 자기 것
으로 하려 했습니다. 불전(佛典)에는 '제육천(第六天)의 마왕'이 설해져
있습니다. 바로 그 권속의 모습이었습니다. 그 밖에도 온갖 삼장사마가 밀어
닥쳤습니다. 그러나 창가학회는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미동은 커녕
일찍이 없던 큰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위대한 승리입니다."
환희 찬 박수가 울려 퍼졌다.
"100회 본부간부회까지 우리는 한회 한회를 존귀한 불도수행의 마디로 하여,
그때마다 금강불괴(金剛不壞)의 복덕을 쌓았습니다. 금강불괴란, 금강과
같이 단단해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세간의 성공이나 행운은
무너지기 쉽습니다. 환상과 같습니다. 그러나 부처의 경애는 일단 쌓으면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다. 생생세세(生生世世) 복운(福運)이 가득 넘치고
즐거워서 어쩔 줄 모르는 인생이 이어집니다. '불법은 승부'입니다.
성불(成佛)할 수 있느냐, 없느냐입니다. 그 승부는 일생동안에 정해집니다.
'일생성불(一生成佛)'의 신심입니다. 그러므로 '열심히 노력하세요'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끝까지 신심한 사람이 최후의 승리자입니다.
긴 안목으로 보면 제목을 끝까지 부른 사람, 꿋꿋이 행동한 사람에게는
누구도 대적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제안했다.
"본부간부회는 제가 회장에 취임한 1960년 5월부터 1987년 12월까지 339회.
그리고 1988년 1월을 다시 제1회로 하여 오늘 본부간부회로 제100회가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동의한다면 다음 본부간부회를 새롭게 제1회로 하여 출발
하면 어떻겠습니까?" 동지의 표정은 한층 더 밝게 빛나고 웃음이 넓혀졌다.
찬동과 환희찬 박수는 한동안 그칠 줄 몰랐다.
첫댓글 이케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에서 지지 않아야 합니다. 광포를 위해 싸우는 여러분을 제천이 지키지 않을 리 없습니다.
모든 것에는 반드시 의미가 있습니다. 큰 괴로움이 있기에 성장합니다. 부처의 경애를 열 수 있습니다.
변독위약의 묘법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흔들리면 안 됩니다. (중략)
신심은 영원한 희망에 사는 것입니다."
(법련 2018년 4월 22, 23p)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