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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68주년 광복절이다.. 며칠전 또한분의 위안부 할머니가 일제의 아무 보상은 커녕 사과한마디 못받고 가슴에 70여년 한을 품고 세상을 떠났다. 저승가서도 잊지못할 일제치하의 굴욕 어쩌면 일본하늘에서 구천을 떠돌 며 한서린 노래를 부르며 저승도 못갔을지도 모를일이다. 이후 해방된지 69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일제의 상처에 눈물흘린 할머니들이 있다.
일본은 1944년 한일강제병합시절 전라도와 충청도 지역에 국민학교 6학년 13살 15살 꽃다운 조선소녀들을 중학교를 보내주고 돈도벌고 잘먹이고 입 힌다고 부모님을 꾀어 무려 4-500 여명을 일본으로 데리고 갔다. 현해탄 건너온 첫날은 일본 신사와 관광지를 구경시켜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다음날부터,지금도 남아있는 미쓰비시중공업 군수공장에 강제로
끌고가 힘든 노역을 밤낮으로 뼈가 부러지도록 일을 시켰다. 밥도 형편없이 주고 반찬은 단무지 몇개 배가 고파서 공장에서 사용하는 풀을 먹기도 했다고 그래서 병이생겨 죽어간 소녀도 많았다고 한다. 밤이면 달을보고 (달아 너는 우리한국땅 우리집도 비추고 있느냐) 달을보고 별을 보고 향수를 달래는 것도 잠시 일본넘이 와서 운다고 발길로 차고 폭행
이 수시로 있었다고 한다. 공장에서 일하다 손가락이 잘렸는데 옆에서 보던 일본넘이 그손가락을 공중으로 던지며 가지고 놀더라고 할머니는 진술한다. 얼마나 무시했으면 인간의 탈을 쓰고 그런짓까지 했을까. 그외 정신대 문제 팔라우로 끌려간 소녀들 사할린 노동자들 일본은 우리국민을 짐승만도 못하 게 대하며 짓밟고 마음에 아물지 않는 평생지울수 없는 큰상처를 냈다.
해방이 되었어도 몇년을 더 강제 노역을 했고 고국에 돌아와서는 더 큰 고통 이 기다리고 있었다. 일본에 가서 몸버린 여자 취급을 받아 결혼해서도 파혼의 아픔을 당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팔순이 넘은 나이 노역 후유증으로 온몸은 하루라도 약없이는 못사는 할머니들은 오늘도 고통속에서 하루를 보낸다. 일본 양심있는 국민모임은 이사실을 알고 억울하게 죽어간 조선소녀들을 위
해 위령비를 세우고 제도 지냈다고 한다. 강제병합 100주년때인 2010년에는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본인 손자가 방문 명성황후 릉을 찾아 눈물을 흘리며 사죄를 했다고 한다. 이렇듯 일본에도 양심있는 사람이 있어 그나마 위로가 되는것은 아닐까. 일본인의 강인한 정신 모든게 완벽한 사고방식은 본받아 야 하지만 과거의 역사는 결코 잊어서는 안되며 자라나는 어린아이들에게도 이런 사실을 알게해 다시는 이런비극이 없어야하고 하루빨리 선진국이 되어 전세계가 우리 대한민국을 우러러 보게 해야 할것이다.
(케이블방송 다큐프로를 보고 옮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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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런 개만도 못한 쪽바리놈들이 아직 살고 있으니 하느님 쪽바리놈들 모두 처주시요. 그리고 서럽게 가신 위안부라는 더러운 이름을 가지고 떠나신 님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 드립니다. 님들이여 편안히 안식하소서.
일본땅덩어리 물속으로가라앉아라.준것만큼받아야지.../
일본도 정치하는 놈들이 표만 보이고 다른것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잘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O^
이런넘들과 한 하늘에 살아야 하다니 더러운 종자들
우리 모두 일본놈들을 욕하기 전에
왜 우리나라가 그 잔악한 일본놈 손아귀에 들어갔는지 역사를 되새겨봅시다.
국력이 약하기 때문이었지 않습니까
이제 그런 수모 겪지 않을려면 우리 가 스스로 강력해지면 됩니다.
일본놈들
그들은 강자에게는 아부 아첨하는 족속들
우리가 통일되어 국력이 강해지면
그들은 미국이나 중국보다 더 우리에게 잘 하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뼈아픈 과거역사
되새기며 대한민국 부국강병의 나라로 만들어 갑시다.
경제 부국이되고, 머리도 부국이 되어야 합니다..
글 감사합니다....
섬나라의 쪽바리
어제를 생각하며 오늘을 충실하게 살아가며 다시는 프눈물 흘리는 역사를 만들지 말아야 하는데 ... 작금의 현실은 미친놈들이 너무 날뛰니 고게 문제가 아닐가 합니다. 각성합시다. 감사~!
좋은자료 참 고맙습니다!
어떻하면 쪽발이 원수를 갚을 수 있을까????????
좋은자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