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가 망하자 아버지 사계를 따라 당나라 안서에 가서 음보로 유격장군에 등용되고, 20세 때 장군에 올랐다.
747년 토번과 사라센제국이 동맹을 맺고 당을 견제하려고 동진하자,
행영절도사에 발탁되어 군사 1만을 인솔, 파미르고원을 넘어 사라센제국과 동맹을 맺은 72개국의 항복을 받고
사라센제국의 동진을 저지, 그 공으로 좌금오대장군동정원이 되었다.
755년 안녹산이 반란을 일으키자 출전, 선발군으로 나가,
패전한 우군을 구원하기 위해 담당지역을 무단이동한 사실에 대하여,부관이 과장하여 밀고하여 처형되었다.
다케다 신겐. [카이의 호랑이].
아버지인 다케다 노부토라를 추방하고 가문을 상속한다.
군정, 외교, 모략등 모든 면에서 뛰어난 명장으로, 무적이라 불린 기마 군단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라이벌인 우에스기 겐신이 있었기 때문에 생각처럼 판도를 확대할 수 없었다.
시나노의 여러 호족들을 제압하고 가와나카지마에서 겐신과 결전을 벌이지만
수 차례의 결전으로도 결착을 맺지 못하고 양국은 엄청난 인적, 물적 손실을 입는다.
스루가 이마가와, 사가미 호조가와 삼국동맹을 맺었지만
이마가와가가 몰락하자 동맹을 파기하고 스루가로 침공하였다.
그러자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사위인 적자 요시노부가 이것에 반발하여
모반을 일으키려 한다 하여 유폐하여 죽게 하고만다. 후계의 자리는 4남인 가쓰요리에게 이양된다.
스루가 제압 후에는 상락에 관심을 가진다.
도토우미에서 오다의 동맹국인 도쿠가와군을 가볍게 격파하지만
귀국 도중에 진중에서 지병인 폐결핵이 악화되어 병사.
호조가가 우에스기가와 화해하면 카이 다케다가와 연합하는 등,
외교를 구사해 강적들을 상대로 나라를 유지했다.
남송의 무장. 무목. 악왕.
농가에 태어났으면서도 문무에 힘써, 가까운 국경방위의 의용군에 참가.
수많은 군공을 세우며 두각을 나타내고, 점점 그 지위를 높인다.
그 후, 남송에 침공한 금과 대치하고, 중원회복을 목표로 점점 전과를 올려가게 된다.
명성이 높아지는 한편으로는, 다른 관료나 군벌과의 협조가 부족해 점점 고립.
금과의 화평을 주장하는 진회가 재상으로 취임하자, 무고한 죄를 뒤집어쓰고 처단된다.
그 등에는 진충보국이란 문신이 새겨져있었다고 한다.
후에 명예를 회복하고, 현재는 구국의 영웅이 되어 관우와 함께 무묘에 합사되어 있다.
고구려 명장. 수나라 군이 고구려를 침범하자 적진에 가 형세를 정탐하였다.
후퇴작전을 이용하여 적군을 지치게 만든 다음,
거짓 항복을 하여 후퇴하는 수나라 군을 추격, 살수에서 크게 무찔러 대승하였다(살수대첩).
침착 대담하고 지략과 무용에 뛰어났으며, 시문에도 뛰어났다.
자는 여해. 본관은 덕수.
전라좌수사로 재임 중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수군을 이끌고 출진하여 일본의 보급선을 무너뜨렸다.
삼도수군통제사로 승진, 23번의 극도로 불리한 전투에서 모두 대승하고 마지막 해전인 노량해전에서 유탄에 맞아 전사하였다.
세계 전쟁사상 가장 뛰어난 해군지휘관 중 하나로 뽑히는 해전의 신.
삼국시대 위왕조를 세운 인물. 이름은 조조 자는 맹덕.
사태를 기민하게 살피고 권모술수에 능하고 이름이 나기를 좋아함. 무에 대해서 능하며 문학에도 재예가 비상함.
기도위로 황건적 토벌에 참여한 것을 시초로 등장하기 시작하여 동탁을 죽이려다 실패하고 돌아가
의병을 일으켜 산동 지방에 기반을 닦았다. 헌제가 궁지에 빠졌을 때는 시간을 지체 않고 그를 맞아 들여 호령 천하 하는 명분을 삼았다.
기회를 보는 데 빠르고 문무를 겸전하여, 육십 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줄곧 출장입상하여 천하를 주름잡았다.
모든 면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였지만 사람을 너무 수단적으로 삼은 것이 그를 잔인하게 평가하게 한 이유가 됨.
그는 문학을 사랑하여 많은 문인들을 불러들였으며, 자신도 재능이 뛰어나, 이른바 건안문학)의 흥륭을 가져오게 했다.
후세에 조조는 간신의 전형처럼 여겨져 왔는데,
근년에 이르러 중국 사학계에서는 그의 재평가를 둘러싼 논쟁이 일기도 하였다.
건한삼걸 중 일인, 대원수. 회음후
회음의 빈가 출신으로 젊었을 때에는 자주 주위로부터 바보 취급을 받았다. 진승,오광의 난이 일어나자
항량,항우 군에 참가하나 진언을 들어주지 않자 도주.
한중에 좌천되어 있던 유방군의 관직에 올라 소하의 눈에 띄어 '국사무쌍'이라 평가받는다.
이윽고 유방에게 파초대원수로 임명되어 정예를 이끌고 항우에 가세한 위,은,조,대,연.제를 차례대로 평정.
해하전에서 십면매복을 펼쳐 항우를 격파하고 한의 천하통일을 이끈다. 그러나 통일 후 한신의 능력을 두려워한 유방이
반역죄로 처형한다.
임회군 하상현 출생으로 초나라의 명장인 항연의 손자이다.
광개토대왕.
소수림왕의 정치적 안정을 기반으로 최대의 영토를 확장한 정복 군주.
396년 친히 수군을 거느리고 백제를 정벌하여 58성을 차지,
400년에는 신라 내물왕의 요청으로 5만의 원군을 보내어 왜구를 격퇴시켰으며,
동예(東濊)를 통합하고(410), 신라와는 하슬라를 경계로 삼았다.
또 연나라의 모용 희를 반격하여 신성·남소의 700여 리의 땅을 탈취,
410년에는 동부여를 정벌하여 64성을 공파, 요동지역을 확보함으로써 만주의 주인공으로 등장하였다.
세계 역사상 가장 넓은 대륙을 점유한 몽골 제국의 창업자이자 초대 대칸이다.
어릴 때의 이름은 테무친이었다. 몽골의 여러 부족을 통합하고, 중국과 중앙아시아,
동유럽 일대를 정복하여 인류 역사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지닌 몽골 제국의 기초를 쌓았으며,
능력주의에 기반한 강한 군대를 이끌어 역사상 가장 성공한 군사, 정치지도자가 되었다.
중국사에는 원 태조로 기록된다.
하동 해량현 사람으로, 자는 운장. 유비와 도원에서 결의한 이래 고난을 같이하였다.
삼국지 연의가 이루어졌을 때는 이미 민간에서 널리 신으로 모셔졌을 때라, 관공이란 칭호로 등장한다.
작자도 전편을 통하여 충의의 화신으로서 주인공을 삼아 그려냈다.
사수관 싸움에서 동탁 수하의 맹장 화웅을 단칼에 베어 용명을 떨친 이래, 계속 삼국 명장으로서의 명성을 지녔다.
한 대 곤경에 빠져 조조를 의지했으나, 끝내는 단기로 오관참장하고 유비 가족을 모셔 의기를 빛냈으며,
뒤에 형주를 차지해 앉아 움직이지 못할 위엄을 보였다. 그러나 지나친 자존심이 화근이 되고 양양을 뺏으려 추병한 사이,
오의 기습을 받아 궁지에 빠진 끝에 죽음을 당하니 건안 24년 10월의 일이요, 향년 59세였다.
자주 영검을 보이어 여몽을 죽이고 아들 관흥을 시켜 원수를 갚게 하는 등, 어디까지나 신격화시켜 그려져 있다.
중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재신의로 신봉되어 민간의 신앙이 대단하다.
첫댓글 게임으로 하고싶다
서양사랑처럼 그려놨네
또환드립인줄알앗는데 ㅋ
이순신 장군님은 진짜...ㅎㄷㄷ...신이다 레알
극도로불리한23번의 전투▶준비된 전투와 몇차례의 극도로 불리한전투 ㅇㅇ 명량해전아니면 이순신느님은 준비된 전략과 유리한 고지로 이끌고와서 전쟁을 이끄셨제ㅋ
ㅇㅇㅇ 이길 수 있는 싸움만 하셨음.. 지혜로운 자는 이겨놓고 싸움에 임하며, 어리석은 자는 싸우고나서 승리를 구한다.. 이말이 딱 맞는듯.
한신은 좀 눙물나네... 차라리 제나라왕일 때 말듣고 천하삼분지계나 했음 좋은데
다들 천수를 못누리고 처형당하거나 죽임당하네
존나 잘생겻다
시발 생긴거 왜케 좆간지나게 그려놨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관우는 사실 업적으로만 보면 B급 무장에 불과한데, 관우가 죽고 나서 형주지방인가에 큰 홍수가 났다 그러더라..그래서 형주 사람들이 관우의 원혼때문이라고 생각해서 위령제 계속 지내다가 그게 발전되서 종교화 되었음..그래서 관공->관왕->관성대제->장수신 ㅋㅋ 신 등극욬ㅋㅋ 그래서 명장 반열에 오른듯
중국사 전체를 놓고 하는 말임..그가 세운 업적이라고 해봤자 중국사를 놓고보면 그렇게 대단한건 아니지
척준경
명장 하면 이성계라메. 백전 백승이라며
척준경, 이의민
황인종 맞냐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