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과 지혜는 다르다
▒ 법륜스님 (즉문즉설)
지식은 쌓이는 것이고, 지혜는 열리는 것이다.
지식이 쌓인다고 해서 지혜가 열리는 건 아니다.
금강경 읽고, 천수경 읽고.. 그런다고 지혜가 열리는 건 아니고
자기가 주체가 되는 마음으로,
적극적인 마음을 낼 때 지혜가 열린다.
지혜는 자발적일 때만 열린다.
▒ 월도스님 ('마음이 머무는 곳에 주인이 되면')
경전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거기에만 치중하면 지식에 그치기 쉬워요.
지혜는 스스로 깨달아 알아지는 것이지만,
지식은 누군가의 이론을 머리 속에 저장하는 것일 뿐이에요.
지식은 빌려 오는 것이고, 지혜는 찾아내는 것이에요.
지식도 비워야 해요. 지식과 지혜는 달라요.
지식은 머리로 아는 거지만, 지혜는 그 이상이에요.
사회에서는 많이 아는 사람을
훌륭하다 하고 아니면 무식하다 하지만,
진리는 지식을 통해서는 이해되지 않아요.
오히려 방해가 돼요.
그래서 진리를 추구하는 수행의 목표는 하나예요.
모든 잘못된 관념과 쓸데없는 지식을 말끔히 비워서,
잡초가 없는 청정한 마음으로 만드는 거예요.
▒ 지식과 지혜 (인터넷 검색 자료)
지식은 말과 글로
표현된 것을 보고 들으면서 배우는 것이고
지혜는 상황이나 나 자신으로 인해
깨달음으로 배우는 것이다.
지식은 습득하는 것이고, 지혜는 행하는 것이다.
지식은 사물을 넓게 아는 것이고,
지혜는 사물을 깊게 대하는 것이다
지식은 배워서 아는 것, 후천적인 것이고
지혜는 배우지 않았음에도
이미 배워버린 지식마냥 알고 있는, 선천적인 것이다.
지식은 전달할 수도 있고 가르쳐 줄 수도 있지만
지혜는 전달할 수도 없고 가르쳐 줄 수도 없다.
지식은 경험많은 사람에게 보고 배워 아는 것,
또는 학교에서 배워 알 수 있는 것이고
지혜는 누군가의 가르침이 아닌
본인 스스로의 대처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지식은 (인간적인 사상까지도 포함한) 대상에 관한
지(知)를 의미하는 것이고
지혜는 인간존재의 목적 그 자체에 관계되는
지(知)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지혜는 고요함 속에서 생겨난다고 한다.
유능한 어부는 어느 곳에 고기가 많은지 안다.
또 바람만 불어도 태풍이 올지,
비가 언제 올지를 '척' 보면 안다고 한다.
이런 것은 지혜에 해당한다.
그런데 '수초가 많은 곳에 고기가 많다' 또는
'물살이 어떻게 교차하는 곳에 많다' 라고 가르치는 것은 지식이다.
어느 때 소설가 이외수씨가
강원도 산골에서 어린 아이들이 고기잡는 것을 보았는데
신기하게도 고기를 잘 잡기에 물어보았다.
"어떻게 고기가 있는 것을 아느냐?"
이때 아이들 대답이 "딱~ 보면 알아요."
그래서 '딱'의 지혜를 알았다고 하며, 아이들은 딱 보면 아는데
자신은 아무리 봐도 알 수가 없었다고 했다.
코미디언 황기순도 '척 보면 안다' 고 했었다.
이때의 '척!'이나 '딱!'을 지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딱'이나 '척'은
이론이나 지식으로는 가르쳐 줄 수가 없는 것이다.
지식은 사회에서 배우는 모든 것이 지식이 된다.
불교에서 말하는 지혜는 직접 보는 것이다.
그래서 '지혜의 눈을 뜨라'고 하는 것이다.
▒ 국어사전
지식(知識): 어떤 대상에 대하여 배우거나
실천을 통하여 알게 된 명확한 인식이나 이해.
지혜(智慧/知慧): 사물의 이치를 빨리 깨닫고
사물을 정확하게 처리하는 정신적 능력.
불교; 제법(諸法)에 환하여 잃고 얻음과
옳고 그름을 가려내는 마음의 작용으로서,
미혹을 소멸하고 보리(菩提)를 성취함.
[비슷한 말] 지혜바라밀.
기독교;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 하나.
히브리 사상에서는 지혜의 특성을 근면, 정직, 절제, 순결,
좋은 평판에 대한 관심과 같은 덕행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대략 이렇게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 '지식은 머리로 아는 것,
지혜는 마음으로 체득한 바른 진리']
▒ 지혜가 열리는 순간
[카렌암스트롱 '축의 시대']
- 부처님이 녹야원에서 첫 설법을 하실 때 -
콘단냐(오비구 중에 한 명)는 붓다가 고귀한
진리들을 가르치는 것을 듣다가
그 가르침을 '직접적으로' 경험하기 시작했다.
그 가르침은 마치 콘단냐의 존재 깊은 곳에서 나오는 것처럼
안에서 '솟아올랐다.' 마치 그가 늘 알고 있던 것을
이제 인식하게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콘단냐처럼 이렇게 경험되고,
이런 느낌이 있어야 (체득해야) 비로소 지혜인 것이고
그렇지 않고 그저 머리로만 이해하는 수준이면
그 어떤 것이든 모두 지식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니까 다섯 비구가 똑같이 모여
똑같은 부처님 법문을 들었는데 콘단냐는 지금
지혜가 열렸지만 다른 비구들은 아직 지식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Daum Web 참조 -
- 그림 / 수안 스님 禪畵
첫댓글 감사합니다. 척!보면, 딱1 보면 아는 지혜를 키우는 부처님 지혜 공부할 기회가 되어 행복입니다.
반야언덕 오르소서. 나무반야바라밀 나무반야바라밀 나무반야바라밀 _()_
어서 어서 지혜의 눈이 뜨지길 願 해 봅니다. 고맙습니다. ()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나무관세음보살 _()_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