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ttps://www.youtube.com/live/E8vui2UoPRU?si=F9Sd6gRsVr1aqE2W
자랑스러운 성도들 1:1~5
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2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3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니
4 그러므로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하노라
5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
공의의 하나님 1:6~12
6 너희로 환난을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7 환난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
8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9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10 그날에 그가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받으시고 모든 믿는 자들에게서 놀랍게 여김을 얻으시리니 이는 (우리의 증거가 너희에게 믿어졌음이라)
11 이러므로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은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
12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
[오늘의 말씀 요약]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가 데살로니가 교회에 편지합니다. 바울은 인내와 믿음으로 박해와 환난을 견디는 성도들을 자랑합니다. 공의의 하나님이 핍박자에게는 환난으로, 성도에게는 안식으로 갚으실 것입니다. 바울은 주님 이름이 성도들 가운데서, 성도들도 주님 안에서 영광받기를 기도합니다.
----------
자랑스러운 성도들 1:1~5
바울은 박해와 환난 가운데 있는 성도들을 위로하며 격려합니다. 편지 서두에서 그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말합니다. 그들의 믿음이 날로 더욱 자라고, 서로를 풍성하게 사랑하며, 박해와 환난 가운데서도 믿음으로 인내하기 때문입니다(3~4절). 이는 그들이 바울의 가르침에 순종한 결과입니다. 하나님이 고난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성도들을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단련하시기 위함이며, 악인들의 악을 드러내어 그들을 심판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고난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가 됩니다(5절). 믿음과 인내를 잃지 않고 고난을 이겨 내는 힘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입니다.
● 더 깊은 묵상
바울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자랑스럽게 여긴 이유는 무엇인가요?
나는 고난 중에 인내하는 힘을 어디에서 얻나요?
-----------
공의의 하나님 1:6~12
하나님은 성도의 고난을 간과하지 않으십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성도에게 환난을 끼친 자에게는 환난을, 환난당하는 성도에게는 안식(위로)으로 갚으십니다(6~7절). 예수님이 능력으로 다시 오시는 그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과 복음에 순종하지 않은 자들은 심판받을 것입니다. 그날에 악인은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을 것입니다(9절). 그때 주님은 성도들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고 높임을 받으실 것입니다. 바울은 성도들을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서게 하시고 모든 선을 기꺼이 감당하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성도들 역시 영화롭게 되기를 기도합니다(11~12절). 믿음의 성도는 고난 중에도 공의의 하나님을 신뢰하고, 선으로 악을 이기며, 장차 받을 영광을 소망합니다.
● 더 깊은 묵상
주님이 오시는 날, 하나님은 환난당한 성도들을 어떻게 신원해 주시나요?
주님이 갚아 주실 것을 알기에 내가 더 인내할 일은 무엇인가요?
===========
성도의 정체성과 자의식
심리학에서 자의식 또는 자기의식이란, 자신의 정체성을 바로 자각하고 의식화하는 것이다. 자의식은 한 사람의 소속과도 깊이 연관되어 있다. 자의식이란 자신이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 정확히 아는 것, 즉 ‘뿌리 의식’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민족이나 고향, 출신 성분이 자기의식을 형성하는 주요 요소지만,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 나라 시민이요 믿음의 공동체의 일원임을 아는 것이 바른 자의식이다.
바울은 이런 자의식을 가진 좋은 본보기다. 그의 서신들에는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부름받은 자라는 ‘소명 의식’과 하나님 나라를 활동 무대로 하는 사역자라는 ‘사명 의식’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그는 현재의 자신과 연결된 과거의 자신을 부인하지 않았다. 과거에 자신이 그리스도를 비방한 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음을 인식했다. 그랬기에 자신이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요 사도라 칭함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라고 겸손히 고백할 수 있었다. 이 땅에서 대가를 얻지 못하고 오히려 박해를 받으면서도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고전 15:10)이라며 충성할 수 있었다. 그에게는 세상적으로 자랑할 만한 학벌과 지식이 있었지만, 하나님 나라에서 무익한 것이라 하며 그것들을 전혀 자랑거리로 삼지 않았다.
성도에게는 이런 자의식이 필요하다. 예수님 지체로서의 자의식은 성도를 강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목회자의 마음, 성도의 마음 / 이관직_ 두란노
============
한절묵상:데살로니가후서 1장 11절
이 땅의 소망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바울은 성도들의 공동체인 교회가 어떠어떠하게 되기를 바라기 전에, 먼저 교회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을 교회로 부르시고, 하나님이 교회를 통해 그분의 역사를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질타와 비난을 받는 교회의 모습은 작고 초라해 보입니다. 그럼에도 소망을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모든 교회를 붙들고 계신 하나님이 그 손을 놓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의로움과 선함을 지키는 삶은 주님의 몸을 이룬 지체의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필수 사항이다. - 스티브 파라
오늘의 기도
주님, 제가 겪은 믿음의 시련이 주님을 따르고 있다는 뚜렷한 증거임을 깨닫습니다. 제 눈물과 인내를 다 아시는 하나님이 갚아 주실 은혜의 때를 바라보며 수고와 헌신을 포기하지 않게 하소서. 주님을 대면하기까지 부르심에 합당한 삶으로 주님께 영광 돌리는 성도 되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212 겸손히 주를 섬길 때)
하나님은 우리가 부르심에 합당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선한 뜻과 믿음의 행위를 완성해 나가길 바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① 우리의 믿음이 더욱 더 성장하고, 성숙해져 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나누고 베푸는 사람이 더욱 더 풍성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자
② 우리가 그 어떤 고난과 역경 속에 있다고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넘어설 수 없으며, 그 십자가를 짊어지셨던 예수님께서 우리의 중보자가 되어 주셔서 우리의 짐을 덜어주시고, 우리를 평안으로 인도해 주실 것임을 굳게 믿고, 그 상황들을 믿음으로 잘 극복해 나가도록 하자
③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면서 하나님의 선한 뜻과 믿음의 행위를 완성해 나가고, 그 여정을 가면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사람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자
오늘의 말씀해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려면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인식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바울은 환난과 핍박 가운데 있는 데살로니가 성도에게
주님의 날에 있을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과 성도의 영광에 대해 바르게 일깨워 줌으로
그들을 격려합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아는 지식과 믿음이 자라면
시련과 고난을 이길 힘도 생깁니다. 어떤 상황과 환경에서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누리며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세워지려면 하나님을 아는 일에 더욱 힘써야 합니다.
- 묵상 질문: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은 어떻게 이룰 수 있나요?
- 적용 질문: 내 삶과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요?
1.은혜와 평강의 하나님(1-2절)
이 서신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가진 잘못된 재림관을 지적하기 위하여 보낸 편지입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 사도는 그들에게 문안하는 것을 결코 가벼이 여기지 않았습니다.
바울사도는 그들에게 한 아버지의 자녀들임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이 넘치기를 소원함으로 편지를 시작합니다.
우리도 항상 공동체 속에서 하나님을 함께 섬기고 한 아버지로 모신 성도들을 향하여 항상 축복하며 은혜와 평강를 기원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께로 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만이 참된 것임을 고백하며 사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묵상하기
하나님으로 부터 주어지는 은혜와 평강을 누리며 사는가?
2.감사와 격려
바울사도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엄청난 핍박 가운데서도 자신들의 믿음은 오히려 더 성장하고 서로의 사랑도 더 커져 간것을 말하며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환란과 핍박이 있다고 하여서 신앙이 퇴보하는 것은 아님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시련 가운데서도 우리의 믿음이 데살로니가 성도들과 같이 더 성장할 수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성도들에게 고통을 준 자들에 대하여는 하나님께서 그대로 갚으시고 그 환란을 당한 성도들에게는 안식으로 갚으시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우리는 깨닫고 우리에게 오는 어떠한 시련도 잘 감당하고 이겨내는 믿음의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묵상하기
나는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는 성도인가?
전도지 열공모습
3.교회를 위한 간구
믿음의 공동체는 항상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는 관계입니다. 바울사도 일행은 항상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을 기억하며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였다고 고백합니다.
바울의 기도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부르신 뜻대로 그분의 능력을 입어서 선한일을 많이 할 수 있도록 기도하였습니다. 성도들이 이렇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드러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이 가능합니다.
우리도 바울의 심정으로 공동체에 속한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드러낼 수 있도록 도고하며 기도하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이빈다. 그리고 우리 자신들도 바울의 기도처럼 그리스도의 이름을 드러낼 수 있는 삶을 살도록 은혜를 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묵상하기
나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드러내는 성도의 삶을 사는가?
전도지 열공모습
어떤 자들은 환난 전 휴거를 주장합니다 깨어 있는 자는 환난을 당하지 않고 휴거한다는 솔깃한 주장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 환난 후에 강림하실 것이고, 우리도 환난 후 큰 나팔소리와 함께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 날 환난 후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마24:29~31)
그래서 예수님은 환난을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마24:13) 그
래서 사도들도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행14:22)
그래서 모든 교회는 환난을 당연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롬8:17~18) 그래서 모든 깨어 있는 교회들은 환난을 피하지 않고 믿음으로 이겨냈고 사도들은 그 점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하노라"(살후1:4)
그래서 환난을 불평하거나 원망하거나 피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환난을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는 증거로 여겼습니다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살후1:5)
그러므로 환난 전 휴거는 십자가의 환난은 피하면서도 영광은 받고 싶어하는 거짓 종교인들의 거짓 주장에 불과합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는 박해를 면하려 함뿐이라"(갈6:12)
그러므로 우리는 환난을 두려워하거나 피하려 할 것이 아니라, 어떤 환난에도 결코 끊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에 붙들려 반드시 이겨내기 원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8:37~39)
참으로 우리에게 환난만 있는 것이 아니라, 환난보다 더 큰,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주님의 넘치는 위로가 있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습니다 "환난을 받는 너희에게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살후1:6~9) 그러므로 그 어떤 환난에도 담대하기 원합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전도지 열공모습
지금도 열방의 선교사님들이 그 사역을 감당하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답답한 일들이 셀 수 없이 많이 있겠지만, 전도한 이들의 배반이나 겨우 쌓은 신앙을 쉬이 버리는 것보다 더 낙심되는 것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전도자의 믿음을 흔들고, 전한 복음이 진정한 진리인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할 뿐 아니라, 땀 흘려 행하는 그 사명이 하늘로부터 온 것에 대한 확신을 약화시킴으로 이후 연속해서 이뤄질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이들로 말미암아 희미해져 가는 것처럼 느껴지게 하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의 일행의 짧은 기간 전도로 이뤄졌지만, 그 연약함 가운데에서도 꾸준히 그 믿음을 굳게 지키고 성장하며 그들 안에 사랑이 풍성해졌으므로 바울은 이에 대하여 감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그들에게 불어닥친 핍박과 환난에도 불구하고 다른 교회들의 모범이 될 정도로 잘 이겨낸 그 인내와 믿음 역시 칭찬받아 마땅했습니다. 당장은 보이지 않지만 그들이 보여준 믿음의 삶에 대해 하나님께서 그분의 방법대로 보응해 주실 것이며,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역시 영광을 얻을 것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일상 가운데 때론 느리지만 신앙을 버리지 않고 계속해서 한 계단 한 계단씩 성장하여 성화를 이루려는 열심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은혜에 대한 최소한의 응답이자 감사의 고백으로 남겨져야 합니다.
신앙을 포기하거나 시험과 낙심으로 말미암아 미지근해져 버린 경우를 흔히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하나님께서 주시는 거룩한 마음이 아닙니다. 날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말씀으로 매 순간 새롭게 변화되어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쓰임 받는 거룩한 제자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전도지 열공모습
❝소망 안에서 고난을 견디는 삶❞
✔ 고난을 견디는 길은 무엇입니까?
➲ 기도와 격려로 동역을 이루는 삶이어야 합니다(1~4절).
바울은 실루아노와 디모데와 함께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기도하며 편지를 보냅니다(1~2절).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서로 사랑함이 풍성함’(3절)에 대하여 감사를 드린다고 고백합니다. 그들의 믿음과 사랑이 환난에 위축되지 않고 계속해서 자라고 있었습니다. 나아가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서도 그들이 간직한 인내와 믿음을 두고서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자랑(4절)하였다고 고백합니다.
믿음은 주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을 통해 더욱 견고해지고, 깊어집니다. 그러므로 배운 말씀에 순종하여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무엇보다 개인과 공동체의 믿음이 계속해서 성장해 갈 수 있도록 영적인 일에 하나가 되어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서로를 돌아보며, 돌봐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요, 자매 됨을 인정하여 일상과 신앙을 구체적으로 나누고, 그들의 기쁨과 슬픔이 무엇인지를 함께 이해하고, 공감해 줄 수 있는 공동체로 나아가야 합니다. 내 자신이 기도와 격려로 돕고, 돌봐야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살펴 그들의 참 동역자가 되어 소망 안에서 현재의 고난을 견딜 수 있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전도지 열공모습
➲ 믿음과 인내로 상급을 바라는 삶이어야 합니다(5~10절).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받은 고난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고난을 겪는 것을 통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얻게 하시기 때문(5절)입니다. 즉, 고난과 환난은 성도와 성도가 아닌 자들을 구분하는 시금석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환난을 견디며 믿음을 지킨 자를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주님이 재림 하실 때에 안식으로 갚아 주실 것(7절)입니다.
반대로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은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게 될 것이고(9절), 성도들에게 괴로움과 고통을 준 자들에게는 그대로 갚아 주실 것(6절)입니다. 이 모든 일들은 주님께서 오시는 그 날, 이루어질 것이며, 주님을 찬양하는 백성에게 영광을 받으실 것(10절)입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바울이 전한 이 복음을 믿었습니다.
온갖 고난과 환난을 통과하여 믿음과 사랑을 지킨 사람들은 하나님의 복된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아울러 환난과 고난은 주님을 믿는 자들의 믿음을 단련시키고, 훈련시키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 환난과 고난이 천국의 영광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지켜내기 위해 고난을 받는 것을 너무 힘겨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현재 직면해 있는 고난 때문에 장차 주어질 소망을 놓쳐버린다면 내 인생의 모든 것을 놓친 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기왕 믿음을 지켜내기로 결단했다면 어떤 환난과 고난 앞에서 끝까지 인내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장차 내 자신에게 약속된 하늘의 상급을 바라보며 믿음과 인내로 흔들림 없이 믿음을 지켜내므로 소망 안에서 고난을 견딜 수 있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 소망과 중보로 영광을 누리는 삶이어야 합니다(11~12절).
바울과 그의 일행들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위하여 항상 기도하고 있음을 상기시킵니다. 그들의 기도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그의 부르심에 합당한 사람이 되게 해 주시며 또 그의 능력으로 모든 선한 뜻과 믿음의 행위를 완성해 주시를...’(11절,새번역)바라는 기도입니다. 또한 그들로 인하여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그들 또한 영광을 받게 되기를 기도합니다(12절).
바울은 일생 동안 예수님의 종으로 살면서 주님의 이름을 높이는 데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내 자신 역시도 나와 교회 공동체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찬양하고, 영광을 돌리는 일에 집중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삶을 위해서는 내 자신의 삶만 생각하여 분주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변을 돌아보아 신앙의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 있는지를 살피는 단계에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어려움을 품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결같은 중보기도는 어려움 가운데 자들에게 영적인 힘을 불어넣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늘 영광을 바라보며, 지속적으로 그리고 전심으로 중보하며 다른 사람을 섬김으로 함께 소망 안에서 고난을 견딜 수 있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모든 사람이 환난 중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도록 기도와 격려로 동역하는 삶을 살아갈 뿐만 아니라 믿음과 인내 그리고 소망 중에 중보하는 믿음의 열정을 통해 하나님의 참 평안을 누리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살후 1:1~12절)...
전도지 열공모습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2절 환난을 당하는 성도에게 든든한 품이 되어 주시고, 은혜와 평화를 공급하십니다. 겉으로 보면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박해를 받고 있었지만, 실상은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와 평화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그곳은 하나님의 품이고, 우리가 어떤 형편에 처하든지 거기엔 반드시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가 깃듭니다. 현실이 까마득할수록, 은혜와 평화가 가득한 품에 우리를 안고 계시는 하나님을 떠올립시다.
5-10절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 하나님 나라를 위해 고난을 겪은 사람에게는 최종적인 영광과 안식을 안겨 주시고 하나님과 복음을 거부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에서 영원히 쫓겨나는 형벌을 내리실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시대정신이 주도하는 사회에 살면서도, 거기에 동화되거나 굴복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게 살아갑시다. 명예보다 정직을, 돈보다 생명을, 전쟁보다 평화를, 독점보다 나눔을, 경쟁보다 공존과 상생을 선택합시다.
11,12절 우리를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존재로 빚으심으로, 우리를 통해 그리스도가 영광을 받으실 뿐만 아니라 우리도 영광스러운 그리스도를 닮아 가게 하십니다. 내가 선한 뜻을 품고 믿음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하나님이 능력으로 이루시는 일입니다. 나의 변화야말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증거입니다.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3,4절 시련 속에서 신앙이 더욱 성숙해지고 풍성해집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복음을 따라 살면서 박해를 받았지만, 하나님께 더욱 충성했으며 서로 더 풍성히 사랑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낳은 결과였기에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드렸고,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충성이 맺은 열매였기에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자랑했습니다. 시련, 역경, 고난은 우리의 신앙을 시들게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성도의 신실함은 시련의 땅에서도 믿음과 사랑과 인내(소망)를 꽃피웁니다.
기도
공동체-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과 약속된 영광을 바라보며 믿음의 길, 좁고 협착한 길로 가게 하소서.
전도지 열공모습
데살로니가후서 1:1~12 믿음과 사랑이 자란다.
데살로니가전서 말씀이 끝나고 바로 이어서 데살로니가후서 말씀이다.
바울서신의 시작은 언제나 문안인사부터 시작한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두 단어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빈다.(2)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찌어다.(2)
아버지 나에게도 날마다 은혜와 평강을 부어 주옵소서.
은혜의 본질과 핵심은 예수그리스도이다.
내가 행한 것이 비록 아무것이 없어도 내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나에게 구원이 이루어진 사실
이것이 본질적인 은혜요 하나님의 선물이다.
데살로니가교인들을 향한 문안 인사가 끝나자 마자
또 교인들을 칭찬하고 격려하고 있다.
바울의 이런 모습은 본받자.
바울은 먼저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감사드리는 이유를 세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바울은 감사하는 습관의 사람인가 보다.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찌니(3) 하신다.
감사도 습관인가 보다.
감사도 본질적으로는 하나님께 대한 성도가 가지는 태도가 감사이다.
바울은 감정과 관계없이 환경과 관계없이 상황과 관계없이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다.
좋을 때만 감사가 아니라 힘들 때도 괴로울 때도 고통 중에도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자.
계약이 되어도 계약이 안 되어도 손해를 보았어도 감사해 보자.
전도지 열공모습
바울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이유는
1. 너희 믿음이 더욱 자라기 때문이요(3)
2. 각기 사랑함이 풍성하기 때문이요(3)
3. 핍박과 환난 중에서 인내와 믿음을 인하여 감사하고 있다.(4)
데살로니가전서의 기록 때에는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인하여 감사했었는데
전서와 후서의 감사의 늬앙스가 조금은 다르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소망 이란 말씀을 의도적으로 제외하고 있다.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들 사이에 재림에 대한 오해나
잘못된 사상을 가지고 있은 것 때문이다.
내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이유와 바울이 감사하는 이유가 좀 차이가 있다.
나는 나에게 유익하고 내가 잘 될 때에 기뻐하고 감사한다.
그러나 바울은 내가 중심이 아니라 주님이 중심이다.
내 중심에서 주님 중심으로 감사의 조건을 옮겨가자.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포기하고 싶고 때론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에도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시 하나님을 찾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낙심 가운데 소망을 주시고,
허무 가운데 의미를 불어넣으시니
오늘도 감사와 기쁨으로 주신 사명 겸손과 순종으로 감당하기로 결단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삶과 사역 위에 기름 부어 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풍성하게 채워 공급하여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온갖 재해로 말미암아 고통받고
신음하는 이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회복과 치유의 역사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날마다 아버지의 은혜와 긍휼을 구하는
거룩한 제사장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