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삶은 어쩌면 무언가를 끊임없이 기다리는 과정의 연속일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내일의 성공이든 간절히 바라는 꿈이든 혹은 마음을 다해 연모하는 누군가이든 말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기다림 중에서도 가장 밀도가 높고 온몸을 떨리게 만드는 것은 단연 사랑의 기다림일 것입니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그의 명작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통해 이 기다림의 열병을 절절하게 그려냈습니다. 주인공 베르테르는 나는 그녀를 보지 않고는 하루도 견딜 수 없다고 고백합니다. 그에게 샤를로테를 기다리는 시간은 단순히 시계바늘이 흘러가는 물리적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의 삶 전체를 지배하는 우주이자 존재의 이유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비극은 그 기다림의 끝에 가혹한 현실이 버티고 있을 때 찾아옵니다. 이미 약혼자가 있는 로테를 향한 마음은 애초에 이루어질 수 없는 평행선이었습니다. 희망은 남아 있으나 나는 점점 무너진다던 그의 독백은 결국 로테의 결혼과 함께 더 이상 내게 아침은 없다라는 절대적인 절망으로 추락하고 맙니다. 기다림이 깊었던 만큼 그를 집어삼킨 어둠도 깊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기다림의 아픔과 절망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우리 곁의 시 한 자락에서도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부산이 낳은 천재 시인 김민부는 그의 시 기다리는 마음을 통해 사랑을 기다리는 이의 애타는 심정을 노래했습니다.
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주오 월출봉에 달 뜨거든 날 불러주오 기다려도 기다려도 님 오지 않고 빨래 소리 물레 소리에 눈물 흘렸네. 시 속의 화자는 해가 뜨건 달이 뜨건 종소리가 울리건 바다에 바람이 불건 상관없이 그저 나를 불러달라고 호소합니다. 조건 없는 기다림이자 온 감각을 님이 올 길목에 열어둔 상태입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고요를 깨는 빨래 소리와 물레 소리 그리고 야속한 파도 소리뿐입니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님을 향해 화자는 결국 눈물을 흘립니다. 하지만 시인은 여기서 완전한 파멸을 말하지 않습니다.
눈물 흘린다가 아닌 눈물 흘렸네라는 과거형 표현 속에 슬픔의 시간을 지나온 뒤에도 여전히 가슴 한 구석에 품고 있는 희미한 희망의 끈을 남겨둡니다.
베르테르가 절망 끝에 자신을 던져버린 것과 달리 시인은 눈물로 얼룩진 과거를 지나 담담히 다음 아침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베르테르의 파멸적인 열정과 김민부 시인의 애절한 눈물은 우리에게 하나의 진실을 속삭입니다. 사랑이란 본디 눈부신 희망으로 시작해 가슴 시린 기다림을 지나 때로는 깊은 절망의 늪을 건너야 하는 고단한 여정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 기다림의 시간이 비록 달콤하기보다 아프고 끝내 원하는 결말을 얻지 못해 눈물 흘릴지라도 우리는 그 과정을 통해 비로소 성장합니다. 타인을 그토록 간절히 원해보고 그 부재로 인해 깊이 절망해 본 사람만이 타인의 슬픔을 이해하고 삶의 깊이를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저마다의 님을 혹은 저마다의 로테를 기다리며 희망과 절망 사이를 위태롭게 오가고 있을지 모릅니다. 설령 그 기다림의 끝이 눈물일지라도 낙담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눈물은 우리 영혼을 더 단단하고 깊게 만들어줄 성숙의 다른 이름일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