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어
민물고기의 귀족이라 불리는 송어는 연어과에 속하는 냉수성 물고기로 산천어 열목어 홍송어 등과 사촌지간이다. 이 중 열목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우리가 여름철에 회로 즐겨 먹는 송어는 모두 양식한 무지개송어로 1965년 미국에서 전략적으로 도입했다. 미국은 19세기 후반 뉴질랜드로부터 무지개송어를 도입했다니, 지구를 한 바퀴 돌아서 우리나라까지 온 셈이다. 성장속도가 빠르고 면역성이 강한데다, 맛과 영양이 뛰어나 양식어종으로는 제격이다. 무지개송어는 베스나 블루길과 달리 닥치는 대로 토종 물고기를 잡아먹지 않기 때문에 하천에 방류된 것들도 다른 어종과 잘 어울려 산다. 덕유산 골짜기 같은 곳에서는 계곡에 가로막을 설치해놓고 무지개송어를 양식하기도 한다.
송어는 전 세계적으로 고루 분포되어 있어 예로부터 전 지구인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독일 작곡가 슈베르트는 어느 해 여름 오스트리아의 깊은 산속인 슈타이어 계곡으로 휴가를 떠났다가, 맑은 계수(溪水)에서 유영하는 송어를 보고 <송어(Die Forelle)>라는 아름다운 가곡을 작곡하여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그런데 1980년대에 송창식‧윤형주‧김세환 트리오가 이 가곡을 번안하여 부르면서, ‘거울 같은 강물 위에 숭어가 뛰어노네.’ 하며 제목을 <숭어>로 잘못 붙이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슈베르트의 가곡 이름도 <숭어>로 알게 되었다. 덕분에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슈베르트의 <숭어>’로 실렸다가 2010년에 와서야 <송어>로 개정되었다. 개그맨 이윤석은 한술 더 떠 숭어 낚시를 하는 어부에게 마이크를 들이대고는, ‘슈베르트의 가곡 숭어 알지요? 이게 바로 그 숭어예요.’ 하며 아는 척을 했다. 어부가 슈베르트의 <숭어>를 알아서 어따 써먹겠는가.
송어회를 여름에 많이 먹는 이유는 사람들이 위생 문제로 여름 한 철은 바다고기 회를 꺼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송어회도 제철은 겨울부터 봄까지다. 양어장의 송어들이 11월부터 2월까지는 사료를 거의 먹지 않기 때문에 육질이 더욱 단단하고 맛이 진해지는 것이다. 무지개송어는 생후 1년째가 가장 맛있다. 회뿐만 아니라 구이 튀김 매운탕 등도 일미다. 미국에 사는 자연산 무지개송어는 산란기가 4월~6월이지만, 국내에서 양식하는 무지개송어는 산란주기가 바뀌어 10월~3월에 알을 낳는다. 알은 한 번에 2~3천 개씩 낳는다. 미국에는 낚시면허제가 있는데, 어종별로 크기와 수의 제한이 엄격하여 이를 위반하면 면허가 취소되어 2년 동안 낚시를 못한다. 물론 2년이 지나더라도 다시 면허를 내야 한다. 우리나라에도 낚시면허제를 도입하자는 여론이 있었지만, ‘국민의 기본권’ 운운하는 반대에 가로막혀 20년째 국회에 계류되어 있다. 미국인들에겐 ‘국민의 기본권’이 없어서 면허제도가 시행되고 있단 말인가? 촛불집회도 그렇고 태극기집회도 그렇고, 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백성들이다.
개인적으로 송어회를 맛있게 먹은 횟집이 두 군데 있었다. 첫째는 초등학교 동기가 운영하던 산북송어장이었다. 동굴에서 나오는 찬물에서 길렀기 때문에 살이 차진데다, 콩고물과 초장에 비벼 먹는 독특한 식법으로 맛의 시너지효과까지 가져다주었다. 송어장 안에 소규모 동물원까지 만들어 어법 번창했었는데, 그놈의 IMF 때문에 그만… 둘째는 가평의 깊은 산속에 있는 송어장이었다. 용균네 동네에서 고개를 넘어가면 만나는 골짜기다. 거기서는 가로 25㎝, 세로 10㎝, 두께 2㎝쯤 되는 석판을 냉장고에 넣어놓았다가 앞앞이 그 위에 회를 얹어주었는데, 술자리가 끝날 때까지 두어 시간 동안 석판이 식지 않아 차고 신선한 맛이 유지되었다. 송어 얘기를 꺼내놓고 먹는 얘기만 잔뜩 하여 송어 보기가 영 민망하다.
우리나라의 자연산 송어는 산란기인 9~10월에 바다에서 강으로 올라오는 회유성 담수어다. 주로 동해 수계에 많이 서식한다. 송어가 알을 낳기 위해 상류로 올라오면 산천어들이 마중을 나가 함께 어우러져 맑은 계곡으로 올라간다. 송어가 적당한 산란장을 찾아 자갈을 파고 알을 낳으면, 산천어가 몸을 부르르 떨며 그 위에 정액을 뿌린다. 산란을 마친 송어는 며칠 이내에 다 죽는다. 부화된 치어들은 계곡에서 겨울을 난 뒤, 봄이 되면 송어는 강을 따라 내려가 바다에서 성장하고 산천어는 계곡에 남아 성장한다. 같은 알에서 깨어났으되 유전자의 선택에 따라 바다로 갔다가 회유한 송어는 60㎝, 계곡에 남은 산천어는 30㎝까지 자란다. 유전자가 자신을 최적의 상태로 보존하기 위해 생명체에 부린 마술이다.
숭어
자, 그럼 어디 슈베르트의 숭어도 한 번 구경해볼까? 숭어를 민물고기에 넣은 것은, 이놈들이 여름에는 연안이나 강 하구까지 올라와 살다가 수온이 내려가기 시작하면 먼바다로 나가기 때문이다. 즉, 해수와 담수에 양다리를 걸치고 사는 별난 어종이다. 덕분에 연안과 강 하구에 사는 어민들은 숭어 잡이로 짭짤하게 수입을 올린다. 서울 근교에서는 임진강 숭어가 유명하다. 어획하는 동네마다 이름도 제각각이어서, 모쟁이 모치 준거리 등 100여 가지에 이른다고 한다. 보리가 피는 초여름에 잡히는 숭어를 보리숭어, 겨울에 잡히는 숭어를 참숭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예로부터 선조들의 식탁에 자주 올랐으며, 영산강 한강 대동강에서 잡히는 숭어를 ‘3대 숭어’라 하여 최고로 쳤다. 봄 도다리, 가을 전어, 겨울 숭어라는 말도 있다. 참숭어 맛이 최고라는 뜻이다.
숭어는 동물성 먹이를 주로 먹지만 튼튼한 위와 긴 창자를 가지고 있어 식물성 먹이도 잘 소화시킨다. 불포화지방이 많아 예로부터 보양식으로 각광을 받았다. 100가지 생선 중에 맛이 으뜸이라 하여 수어(秀魚)라 불리기도 했다. 다른 물고기에 비해 값도 싸기 때문에 바닷가나 하구에서는 가장 흔하게 먹는 물고기 가운데 하나다. 육질의 탄력은 한때 우리 국민들이 가장 선호하는 횟감이었던 넙치의 1.7배라고 하니, 한 번도 안 먹어봤지만 각중에 구미가 당긴다. 오죽 맛있으면 ‘참숭어 나간 자리 뻘도 맛있다’는 말까지 있을까. 숭어가 뛰니까 망둥이도 뛴다는 속담이 있는 걸 보면, 숭어는 예로부터 양반 대접을 받았던 것 같다. 『동의보감』에도 ‘숭어는 오장을 이롭게 하고 백약과 잘 어울린다.’고 기록되어 있다.
첫댓글 어차피 나는 물고기에 대해서는 잼뱅이다.
숭어도 좋고 송어도 좋으니, 그저 쐐주 한 잔에 곁들여 먹어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