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루를 가리키는 ‘이 돌’의 몸속에서 홍매, 댓잎, 물소리, 새소리가 생명의 핏줄로 연결되어 함께 호흡하고 있다. 서화가의 먹(墨)으로 ‘이 돌’을 쓰다듬고 어루만지면 돌의 몸속에 잠들어 있던 홍매의 빛깔과 댓잎의 향기와 새의 날갯짓과 물의 무늬가 꿈틀꿈틀 일어선다. 그 빛깔과 향기와 날갯짓과 무늬는 붓이 화선지에 열어 놓은 초록의 길을 따라 한 줄기 혈액처럼 돌의 본향을 향해 귀향하듯 흘러가고 있다. 생태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생명권(生命權)의 평등이 이자규의 시 속에서 실현되고 있다. ‘다음 세대를 잇는 인간 세상을 위한 물소리 새소리’에서 드러나듯 기후 위기 시대의 대안사회인 ‘생태사회’를 구현하려는 미래지향적 전망을 담았다. 생명권의 평등을 토대로 삼아 인간과 자연의 상호부조가 원활히 이루어지는 생태사회. 이 미래지향적 대안사회를 지향하는 추진력은 이런 생명의식에서 우러나온다.
이자규
ㆍ2001년 『시안』 등단
ㆍ시집 『우물 치는 여자』, 『돌과 나비』, 『아득한 바다 한때』, 『붉은 절규』 (시산맥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