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사제들 “민주주의 위해 국정원 해체해야”정의구현사제단, 서울광장에서 시국미사 봉헌
문양효숙 기자
승인 2013.09.24 09:46:14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대표 나승구 신부, 이하 사제단)이 23일 오후 7시 30분 서울광장에서 ‘국가정보원 해체와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전국 시국기도회’를 열고, “온갖 불법으로 민주주의 존립을 위협하는 국정원을 해체하라”고 촉구했다. 이날 기도회에는 전국 15개 교구의 사제 300여 명을 비롯해 수도자 · 신자 및 시민 5천여 명이 참석했으며, 1부 문화제, 2부 시국 미사 순으로 약 3시간 동안 진행됐다.
미사를 시작하며 나승구 신부(서울대교구)는 “우리 그리스도교는 회개하는 이의 눈물을 고귀하게 여긴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 잘못은 자신이 품고 살아가야 한다”며, 국정원이 부정의 자리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정화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나 신부는 “누구의 잘못이라도 회개하면 용서가 된다는 하느님의 크신 자비를 믿는다”며 “누구도 죄 때문에 타락의 나락에 떨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 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기도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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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일 서울광장에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국가정보원 해체와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전국 시국기도회’를 열었다. ⓒ문양효숙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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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23일 오후 7시 30분 서울광장에서 ‘국가정보원 해체와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전국 시국기도회’를 열었다. ⓒ문양효숙 기자 |
강론에서 하춘수 신부(마산교구)는 인터넷 선거 여론 조작, 수사 과정에서의 증거 삭제, NLL 대화록 공개, 진보정당에 대한 내란음모 혐의 뒤집어씌우기, 검찰총장 흔들기 등 국정원의 계속되는 공안사건을 열거하며, “국정원은 이제 온 국민이 걱정하는 ‘걱정원’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고 비판했다.
하 신부는 “국가 설립 이념과 체제를 옹호하고 지켜야 할 국가기관이 오히려 민주주의 가치를 정면으로 위반하고 국민을 우롱하는 오늘의 작태는 국민으로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또 “음지에서 조용히 움직여야 할 정보기관이 보란 듯이 정치 이슈를 공작하고 있으니, 국민들은 국정원이 언제 또 기이한 일을 모의할지 우려한다”며 “이런 국정원이라면 차라리 해체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하 신부는 “예수의 십자가는 민주주의와 닮았다”며 “예수의 십자가가 어리석은 군중들의 숱한 모함과 폭력, 극심한 고통 속의 의연한 희생이었듯, 민주주의도 많은 이들이 고통과 희생을 마다하지 않고 자유와 평등을 외치며 지켜 왔다”고 말했다. 하 신부는 “진실과 정의를 위한 민주시민의 저항이 때로 참으로 고되고 참담한 과정을 필요로 하지만, 진심 어린 외침은 민주주의의 또 다른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사가 끝날 무렵 발언에 나선 성염 전 주교황청 한국대사는 “한국 천주교 평신도들이 오늘 여기에 모인 것은 먼저 독재정치와 인권유린으로 점철된 지난 50년간의 갖가지 사회악에 눈을 감고 입을 다물어온 신자들의 비겁함을 사죄하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정의를 갖추지 못하면 공권력은 사법적 권한을 갖지 못한다”는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의 말을 들어 “국가정보원이 대통령선거에 앞장섰으므로 사법적 권한을 갖지 못하며, 따라서 영구히 해체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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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도회 참가자들이 촛불을 들고 민주주의 회복을 염원하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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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당 문재인 의원이 시국기도회에 참여했다. ⓒ문양효숙 기자 |
한편, 사제단은 미사에 앞서 시국선언문을 발표해 “지난봄부터 진상규명과 국정원 개혁을 요구하는 각계각층의 호소가 잇달았고 한국 천주교회 역시 전국 15개 교구 사제와 수도자들이 뜻을 모아 시국선언을 발표하는 등 절차 민주주의의 훼손과 오염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하였지만, 이 모든 호소는 무시되었다”고 비판했다. 사제단은 이어 “최근 청문회에서 보았듯이 정부와 여당은 진실 규명을 위한 노력들을 방해하고 조롱했으며 명백히 드러난 사실마저 또 다른 거짓말로 얼버무리는 억지를 부렸다”고 지적했다.
사제단은 “고질이 돼버린 거짓의 암세포를 말끔히 치유하지 않는 한 우리 사회는 그 어떤 희망도 가질 수 없다”며, 정부에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국정원의 즉각적 해체 ▲원세훈, 김용판 등 국정원 사태와 관련된 범법자들 처벌 ▲국민 앞에서의 정중한 사과와 정화 ▲법과 원칙에 따른 진상규명 등을 촉구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시국선언문 (전문) |
국정원 해체, 민주주의 회복
“진실로써 재판하는 이가 없다. 거짓을 이야기하며 재앙을 잉태하여 악을 낳은 자들뿐이다” (이사 59,4)
1. 지난 정부 내내 교회는 슬프고 괴로웠다. 대자연을 파괴하고 시민들을 삶터에서, 노동자들을 일터에서 내쫓는 광경을 바라볼 때마다 국가의 존립이유가 과연 무엇인지 거듭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때문에 국가와 자본이라는 두 거대권력 사이에서 사람을 지켜줄 아름다운 정부의 탄생을 그 어느 때보다 더욱 간절히 기도하였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가 이런 소망을 이뤄주기를 진심으로 염원하였다.
2. 하지만 대통령 선거과정에 국가정보원이 조직적인 공작을 전개함으로써 민의를 왜곡했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상상조차 못했던 불법의 자행에 우리 모두 경악하였다. 심지어 근소하게 엇갈린 결과마저 사전에 조작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들마저 끊이지 않고 있다. 믿을 수 없지만 만일 사실이라면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3. 지난봄부터 진상규명과 국정원 개혁을 요구하는 각계각층의 호소가 잇달았다. 한국천주교회 역시 절차민주주의의 훼손과 오염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하였다. 전국 15개 교구의 사제와 수도자들이 뜻을 모아 시국선언을 발표한 것은 한국천주교회 역사상 초유의 일이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심각한 위기에 빠져있는지 보여주는 현상이었다.
4. 하지만 이 모든 호소는 무시되었다. 최근의 청문회에서 보았듯이 정부와 여당은 진실규명을 위한 노력들을 방해하고 조롱하였으며 명백하게 드러난 사실마저 또 다른 거짓말로 얼버무리는 억지를 부렸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가려질 일이 아니다. 남북정상대화록의 본의를 왜곡하여 선거에 도용한 일이나 국정원이 이를 무단 공개한 일 등은 여론조작을 위한 댓글공작과 함께 반드시 처벌을 받아야 할 중범죄들이다.
5. 우리는 거짓이 지어내는 비참한 결과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나라의 소중한 젖줄을 죽음의 늪으로 만들어버렸던 이명박 정권이 기실 현 집권세력임에도 반성은커녕 떳떳한 국책사업이었다고 강변하는 것도 그 사례다. 살려보겠다던 사업의 구실도 그랬지만 살려냈다던 결과에 대한 평가도 모두 견강부회하는 거짓말들이다. 아예 고질이 되어버린 거짓의 암세포를 말끔히 치유하지 않는 한 우리사회는 그 어떤 희망도 가질 수 없다. 불의를 미워하고 정의를 사랑하는 마음은 점점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고 우리는 인간다움 그 자체를 상실하고 말 것이다. 우리가 국정원이 저질렀고 경찰청이 덮어버린 공작들을 중대한 범죄로 규정하고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것은 바로 이런 까닭에서다.
6. 이제라도 다 같이 욕심을 비우고 현실을 정직하게 성찰해야한다. 그래야만 우리의 미래가 불안하지 않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의 결단과 솔선수범을 바란다. 대통령이 나서서 정치개입과 여론조작 등 지금까지 국정원이 저질렀던 민주주의에 대한 불법적이고 일탈적인 해악과 범죄들을 낱낱이 드러내고 법의 심판에 따라 엄중하게 처벌하기 바란다. 그때 비로소 역사가 바로 설 수 있고 대통령 자신 역시 ‘대선무효’라는 불명예를 씻고 떳떳하게 국민 앞에 나설 수 있다.
7. 동료 사제와 청정하신 수도자 제위, 그리고 사랑하는 교우님들과 동료 민주 시민 여러분께 삼가 부탁한다. 거짓에 의한, 거짓을 위한 통치가 이토록 순조로워진 것은 악을 방관한 우리 모두의 책임이기도 하다. 앞으로 닥칠 공안정국 아래 우리의 일상은 용산참사와 쌍용차 해고사태, 4대강과 밀양송전탑 건설 강행, 제주 강정 구럼비와 같은 파괴와 불법의 반복일 가능성이 크다. 이승만 독재와 박정희 군사독재에 맞서 싸우던 저항의 정신으로 거짓축출과 민주주의 회복 운동에 함께 해주기를 바란다.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만이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정신의 등불을 꺼뜨리는 일이 없도록 서로 돌보기로 하자.
8. 한국천주교회의 평신도와 수도자들 그리고 사제들의 뜨거운 열망을 담아 우리는 아래와 같이 호소한다.
첫째, 국정원은 지금까지 저지른 온갖 불법으로 자신이 얼마나 민주주의 존립을 위협하는 해악적 존재인지 스스로 충분히 증명하였다. 그러므로 더 이상 존립할 이유가 없다. 당장 해체되어야 한다.
둘째, 원세훈, 김용판 등 국정원 사태와 관련된 모든 범법자들은 엄중히 처벌되어야한다.
셋째, 청와대는 법과 원칙에 따른 검찰의 진상규명 노력을 제지하려는 음모를 즉각 중단하라. 죄를 덮기 위해 또 다른 죄를 부르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도 없다.
넷째, 박근혜 대통령은 이상의 불법을 깨끗이 정화한 다음 국민 앞에 정중하게 사과하고 새롭게 신임을 구하라. 그래야만 ‘대선무효’라는 오명을 씻을 수 있다.
9. 우리가 먼저 빛의 소명을 다짐하자. 9월은 한국천주교회의 순교자성월이다. 하느님 공경과 이웃 사랑을 위해 아낌없이 목숨을 바쳤던 순교자들의 정신으로 시대의 짙은 어둠을 밝히자.
2013년 9월 23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
▲ 23일 ‘국가정보원 해체와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전국 시국기도회’ 동영상 (제공 / i Kol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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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양효숙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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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도회가 열린 서울광장에서 국정원 문제 해결을 위한 평신도 1만인 묵주기도 100만단 봉헌운동 참가 신청을 받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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