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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군단의 '차세대 안방마님'으로 입지를 굳히고 있는 유강남은 타격감이 절정이던 6월 중순 내야 땅볼을 치고 1루로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감행했다. 어떻게든 살아나가려는 투혼이었다.
결과는 좋지 않았다. 1루에서는 아웃 판정이 내려졌고, 어깨 타박상을 입은 유강남은 다음날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고 말았다. 양상문 감독은 "1루에서 그렇게 슬라이딩을 하지 말라고 했는데"라며 아쉬움을 표현했다.
1루 슬라이딩은 프로 지도자들이 금기시 하는 플레이 중 하나. 부상의 위험 크고, 오히려 스피드를 살려 달려나가는 것보다 1루에 도달하는 시간도 느리다. 유강남이 딱 그런 경우였다. 하지만 유강남의 플레이를 다그칠 수만은 없었다.
유강남의 1루 슬라이딩은 젊어진 LG의 '팀 컬러'를 설명하는 하나의 예다. 유강남은 "매 타석이 절실하다"며 자신의 슬라이딩 이유를 설명했다. 유강남 뿐만이 아니다. LG에는 경기 중 몸을 던져 구르고 부딪히는 선수들이 많다. 물론 타구단에서도 볼 수 있는 플레이들. 그러나 LG이기 때문에 특별한 장면이기도 하다.
◆ 도련님 야구, 모래알 조직력으로 상징되던 LG 야구
LG는 KBO리그 역사상 가장 긴 암흑기를 겪은 구단이다. 2002년 한국시리즈에 진출, 준우승을 차지한 이후 2012년까지 무려 10년 동안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다. 10년 간 LG가 기록한 순위를 나열하면 6-6-6-8-5-8-7-6-6-7이 된다. 그 사이 LG 야구에는 선입견인지 사실인지 단언키 어려운 이미지가 입혀졌다.
절실함이 없어 보인다는 뜻의 '도련님 야구'. 혹자는 '샌님 야구'라고도 불렀다.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하다는 뜻에서는 '모래알 조직력'이라는 표현이 동원됐다. 최근 널리 알려진 '탈(엘)지 효과'의 모태(?) 격인 '유망주들의 무덤' 역시 LG가 암흑기 동안 자주 들었던 말이다. 이같은 수식어들을 종합해보면 LG는 그야말로 최악의 팀이었다.
핑계없는 무덤은 없다고 했던가. 암흑기와 함께 온갖 부정적인 말들이 범람하는 동안 LG 선수들, 코칭스태프는 "단지 그렇게 보일 뿐"이라고 강변했다. 일견 틀리지 않는 말이었다. 성적이 좋지 않을 땐 뭘 해도 욕을 먹게 마련이다.
당시 LG 선수들은 "웃으면 성적이 안 좋은데도 웃고 있다고 욕하고,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 그러니까 야구를 못한다고 욕한다"며 답답해 했다. 부정적인 이미지를 씻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성적을 내는 것이라는 뻔한 대책도 매년 반복됐다.
하지만 냉정히 말해 암흑기 시절 LG는 도련님 야구, 모래알 조직력을 부정할 수 없는 모습을 자주 드러냈다. 구단의 선수 관리에도 허점이 있었다. 선수가 SNS 상으로 감독을 비난했고, 투수와 포수가 경기 중 마운드 위에서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높은 순위의 지명을 받고 2군에 머물며 코칭스태프의 관리가 어렵다는 뜻에서 '왕자님들'이라 불린 무리도 있었다.
◆ 변화의 시작 2013년, 그토록 바라던 성적을 잡다
2012년 김기태 감독(현 KIA 타이거즈 감독)이 LG의 사령탑으로 취임했다. 김 감독을 선임하면서 백순길 LG 단장은 "도련님 야구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 LG 선수들을 잘 이끌어줄 적임자"라고 말했다. 좋은 표현으로 '개성이 강하다'던 LG 선수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기 위해서는 김기태 감독의 강력한 카리스마가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김 감독의 취임 이후 LG는 조금씩 달라졌다. 김 감독은 근성을 강조하며 팀 체질 개선에 나섰고, 2012년에는 전력이 약하다는 평가에도 전반기까지 선전한 끝에 7위로 시즌을 마쳤다.
이어진 2013년에는 드디어 '성적'을 잡았다. 신구조화를 앞세워 순항하던 LG는 시즌 최종전에서 페넌트레이스 2위를 확정, 플레이오프에 직행했다. 박용택, 이동현 등 LG에서만 뛰어온 선수들을 '울보'로 만든 11년만의 포스트시즌 진출이었다.
오랜만에 가을야구를 경험하면서 LG 야구에 대한 이미지도 상당 부분 바뀌었다. 더이상 필요 이상의 조롱과 비아냥을 받는 일은 없었다. 2014년에도 LG는 김기태 감독의 시즌 초반 사퇴라는 돌발 변수를 극복하고 양상문 감독의 취임과 함께 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다.
성적만으로는 LG의 이미지가 완전히 바뀔 수 없었다. 여전히 LG는 몇몇 스타 플레이어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팀이었다. LG에는 도련님의 반대말이라 할 수 있는 '마당쇠, 돌쇠'같은 우직함, 허슬플레이가 필요했다. 젊은 선수들이 쑥쑥 커나가며 보여줘야 할 모습이었다.
◆ 두 번째 드라마, 성적 그 이상을 바라보는 양상문 감독
양상문 감독은 성적 그 이상을 바라보고 있다. 힘겨운 경쟁을 벌여 포스트시즌 진출에 만족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그말은 즉, LG를 언제든 우승 후보로 꼽힐 수 있는 항구적인 강팀으로 만들겠다는 뜻이다.
2014년 반전 드라마를 이끈 양 감독은 2015년 처참한 실패를 맛봤다. 내심 우승까지 노려봤지만 시즌 내내 하위권에 머문 끝내 9위로 시즌을 마감한 것. 그리고 다시 맞은 2016년, 양 감독은 큰 폭의 변화를 시도했다. 실패로 끝나는 듯했던 양 감독의 시도, 본격적인 '리빌딩'은 서서히 그 성과를 드러내며 두 번째 드라마를 써내려가는 중이다.
양상문 감독의 리빌딩을 단순히 젊은 선수들을 많이, 자주 기용하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된다. '팀컬러'를 변화시키려는 것이 핵심이다. 젊은피들의 비중을 높이는 것에는 팀컬러를 바꾸고 동시에 미래를 대비하는 두 가지 목적이 내포돼 있다.
다소 파격적일 수 있는 '투수 류제국'을 주장으로 선임한 것이 시작이었다. 류제국이 추구하는 선수단 분위기는 기존 LG의 경직된 분위기와는 상반됐다. 이는 곧 양 감독이 바라는 것이기도 했다. 주장과 사령탑이 '코드'를 맞춘 셈. 류제국은 사령탑의 퇴진을 요구하는 현수막이 잠실구장 관중석에 내걸렸을 때 공식 인터뷰를 통해 양 감독에게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변화에는 고통이 따르는 법. 당연히 새로운 분위기에 반감을 드러내는 선수들도 있었다. 팀 성적 역시 전반기까지는 바닥을 향해 치닫았다. 그러나 현재는 선수들 대부분 새로운 분위기에 적응을 했고, 팀 성적도 5할 승률에서 '-14'까지 내려갔던 것이 '+2'로 올라섰다. 현재로서는 2년만의 포스트시즌 진출 가능성도 매우 높은 편이다.
LG의 새로운 분위기는 젊은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마음껏 뛰놀며 기량을 펼칠 수 있는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류제국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어린 선수들과 벽을 허물고 편안한 선후배 관계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단, 선후배 사이에 지켜야 할 선은 넘어서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인다.
선수 구성과 전술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지난해부터 외야의 개편 작업을 시작, 한 베이스 덜 주는 수비력을 갖췄다. 올 시즌을 앞두고는 겁없이 뛰는 야구를 강조해 한 베이스 더 가는 공격을 시즌 초반부터 꾸준히 시도하고 있다. 물론 아직 주루 면에서는 보완해야 할 점이 많지만, 그동안 LG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던 근성있는 수비와 주루가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이다.
◆ 활짝 열린 기회의 문, 젊은 선수들의 절실함을 깨운다
올 시즌 LG의 경기에서는 절실해 보이는 선수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수비 시 야수들은 내외야를 가리지 않고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몸을 날린다. 흔히 말하는 허슬 플레이가 한 경기에도 몇 차례 씩 나온다. 1루 슬라이딩과 비슷한 비효율적 행위지만, 타구에 맨손을 갖다댄 투수도 있었다. 타자들이 아웃을 당한 뒤 아쉬움을 넘어 분노를 표출하는 장면도 종종 목격된다.
주장 류제국의 든든한 조력자였던 봉중근은 올 시즌 스프링캠프에 앞서 "(젊은 선수들이) 경기 때 주눅이 드는 것이 문제"라며 "삼진 먹고 들어와서 욕을 한 번 할 수도 있고, 화도 낼 수 있는데 자꾸 눈치만 본다. 그러니까 실력이 안나왔던 것"이라고 변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봉중근이 바랐던 모습이 현재 LG에서는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2011년 넥센 히어로즈에서 1년을 뛰고 FA 이택근의 보상선수로 LG 유니폼을 입은 윤지웅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윤지웅은 2014년부터 3년째 LG에서 뛰고 있다.
"처음 LG에 와서 느낀 팀 분위기는 밖에서 듣던 것보다 훨씬 자유스러웠다. 하지만 하면 안되는 것들도 많았다. 그런데 제국이형이 주장을 맡으면서 분위기가 점점 더 편해지고 있다. 제약이 많이 없어진 것이 오히려 선수들을 경기에 더 집중해 열심히 뛰게 만드는 것 같다."
기회의 문이 열렸다는 근본적인 변화가 젊은 선수들을 춤추게 한다. 아무리 팀 분위기가 좋고, 선수들이 절실해도 경기에 뛸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꾸준한 노력을 이어가기 어렵다. 올 시즌 베테랑들의 비중이 줄어든 것은 결과적으로 젊은 선수들의 절실함을 깨웠다.
LG 야구는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 자신감이 없어 보인다던 LG의 젊은 선수들은 "나도 뛰고 싶다"는 의지로 눈빛을 반짝인다. 이제는 LG가 도련님 야구, 모래알 조직력이라는 수식어에 완전한 작별을 고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