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승랑
《 삼론종(三論宗)이란 구마라지바(鳩摩羅什)가 번역한 『중론』(中論)·『십이문론』(十二門論)·『백론』(百論)을 근본경전으로 하여 성립된 학파로서, 모든 존재는 연기(緣起)할 뿐 독자적인 존재성, 곧 자성(自性)은 없다고 보고 특히 공(空)을 강조하였다. 중국에서 삼론종이 성하게 된 것은 6세기 후반부터 7세기 후반까지 1세기 동안이었는데 고구려에서도 삼론종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져 많은 승려를 배출하였다. 그 가운데 중국에 체류하던 승랑(僧朗)은 중국 삼론종의 기초를 닦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 한길사, <한국사>》
2.혜자
《승려 혜자는 쇼토쿠 태자의 스승이 되었으며, 혜관은 불교 전파에 큰 공을 세웠다. 일본 나라 시에서 발견된 다카마쓰 고분벽화가 고구려 수산리 고분벽화와 흡사한 점에서 고구려의 영향력을 살펴볼 수 있다. / 교과서 260쪽》
3.원측
《현장(玄斡, 602∼64년)은 인도에서 가지고 온(645년) 『유식삼십송』(唯識三十頌)의 주석서 『성유식론』(成唯識論)을 번역해냄으로써 중국 불교계에 하나의 전기를 마련했다. 현장의 문하에는 원측(圓測)·신방(神昉)·지인(智仁)·승현(僧玄)·순경(順璟) 등 신라 승려들이 많이 있어서 새로 전래된 유식학의 선양에 학문적인 기여가 컸다. 그 가운데서도 원측(613∼96년)은 일찍이 당나라에 가서 진제(眞諦) 계통의 섭론종, 즉 구유식(舊唯識)을 배우고, 이어 현장이 귀국하자 다시 신유식(新唯識)을 배워 유식학자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굳혔다. / 한길사, <한국사>》
4.혜초
《신라 불교가 성숙해 가는 시기에도 많은 승려들은 중국에 가서 새로운 불교를 전수해 왔다. 중국을 넘어 인도에까지 가서 불교를 공부하고 오는 승려도 있었다. 그 중에 혜초는 자신이 돌아본 인도와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의 풍물을 생생하게 기록한 왕오천축국전을 남기기도 하였다. / 교과서 245쪽》
《혜초(慧-惠-超)는 704 ~ 787 까지 8세기, 격동의 삼국 시대를 살았던 신라의 고승이다. 그는 723년(성덕대왕 22년) 20세의 나이로 당나라 광저우(廣州)에 가서 인도 출신 승려 금강지(金剛智)의 제자가 된 뒤 그의 권유로 나신국(裸身國)을 경유하여 인도 동해안에 도착, 불교 성적(聖跡)을 순례하고 파미르 고원을 넘어 727년경 당나라 안서도호부(安西都護府)가 있는 쿠차(龜玆)를 거쳐 733년 당나라 장안(長安) 천복사(薦福寺)의 도량(道場)에서 금강지와 함께 '대승유가금강성해만주실리천비천발대교왕경(大乘瑜伽金剛性海曼珠實利千臂千鉢大敎王經)'이라는 밀교(密敎) 경전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 <혜초와 왕오천축국>中 앞부분》
5.김교각
《唐 開元末, 新羅國王子金喬覺, 至 九華 棲止, 苦行十餘年
당나라 개원(712 - 741)말 신라국 왕자 김교각이 구화에 이르러 거처를 정하고, 10년동안 고행하였다. / 구화산지(九華山志) 中》
★항주 영운사: 중국 선종 10대 사찰 중 하나. 김교각 스님을 지장보살로 모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