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봉호(寶峰湖)
이 재부
석양이 물결을 애무하는 듯 찰랑이는 물빛은 칠보의 광채로 변화의 묘
기를 부린다. 가을빛이 물결에 스며들어 형용사로는 표현하기 힘든 보봉
호의 물빛을 바라본다 수면을 조용히 밀어내며 떠나가는 유람선은 이국
의 정취를 몸으로 말하는 듯 이색적인 면모를 물 속에 드리운다.
물위에 떠다니는 누각일까? 관광선 이라고는 하지만 배 같지 아니하다.
신선이 노니는 두 개의 정자를 알맞은 통로로 이어 놓은 것같이 배의 앞
과 뒤가 날렵한 누각의 지붕 모양으로 꾸며 저 있다 잔잔한 수면을 경계
로 둘씩 마주보며 네 개의 정자가 호수를 유영하는 듯 그림자 비치는 물
결이 관광객의 마음을 파고든다 털어 버리지 못하는 그리운 허상을 정자
턱에 앉혀놓고 물빛 속에서 노을을 만지며, 세월을 낚는 환상에 잠기게
한다.
배 모양은 무엇을 상징할까? 은하를 건너는 하현달 같기도 하고 견우
와 직녀가 만난다는 오작교인 듯 흔들림도 있다 멀리 산그늘에 홀로 떠
있는 배는 후원의 별당같이 호젓하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가 탄 배는 오붓한 한가로움이 없다 인생의 반환 점을 돌
아온 50대의 관광객은 대부분이 부부인 듯 남녀의 구별도 마음의 경계도
없이 떠들어댄다. 요지경 속을 드려다 보는지 환희의 감탄사를 연발한다.
아름다운 주변 경관에 정신을 뺏겼는가 무아의 경지에서 가슴을 맞대고
사랑을 만드는 사진을 찍어댄다. 환희의 순간을 유산으로 남기려 하는가,
진한 추억으로 자랑거리를 만들고 있는 게지.
보봉호는 인공과 자연이 함께 어우러진 호수란다 관광 버스에서 내리
면 마주 보이는 높은 산에 천길 폭포가 산 중턱에서 쏟아져 내린다 물안
개 가득한 산허리에 제비집 같이 매달려있는 초고층 누각은 무엇 하는 곳
인지 호기심을 충동질하며 관문에서부터 유혹의 눈빛을 보낸다 젊은 미
남, 미녀에게 멋있는 의상을 입혀 육체의 관능미와 다듬어진 예혼(魂)
을 연출해 내는 듯 아름다운 자연을 인공으로 재단한 기획이 경이롭다.
호수를 찾아가는 긴- 고개 길과 나가는 하산 길에 볼거리 배열은 물론이
요 아찔한 스릴까지 만끽할 수 있다.
걸어서 지친 다리에 휴식을 주려는 듯 승선장에 도착하자마자 차례로
배를 태워 의자에 앉게 한다. 안내원도 그때서야 할 이야기가 많은 듯 핸
드마이크에서 입을 떼지 않는다.
입구에 치장한 보봉폭포는 인공적으로 만들었는데 저녁 7시가 되면 자
동으로 수문이 닫혀 물이 흐르지 않는단다. 제비집 같은 고층누각은 보봉
호를 유람하고 내려가는 나선형 계단 길의 안전 장치라고 한다.
선착장에서 멀어질수록 인공보다는 수 억 년 동안 준비를 한 자연의 미
모와 신비성에 도취하게 된다 왜 이리도 곱게 산과 물이 천생 연분으로
조화를 이루는가 천태만상을 이루는 바위기둥과 명화의 병풍을 둘러친
듯 나무와 절벽이 어울려 물에 비친 형상은 많은 전설과 추억을 잉태하는
것은 자연스런 순리가 아닐까.
안내원은 손끝으로 바위의 형상을 지적하며 얽혀 있는 전설을 끝없이
끄집어낸다 서유기를 촬영한 곳도 찾아가 자랑 섞어 설명하지만 배 후미
에서는 벌써 술판을 벌리고 물결을 흔들며 술잔에 담기는 불꽃 노을을 가
슴에 부어 댄다.
세상이 아무리 출렁거려도 도인은 자기 길만 가듯 배는 승객에 관여하
지 않고 자연이 만들어낸 거대한 병풍에 접혀진 곳까지 골고루 찾아간다.
산모롱이 뱃길에 낡은 배 한 척을 매어 놓고 토가족 고유의상으로 인형
같이 꾸민 처녀가 노래를 부른다 애절한 음색에 무슨 사연을 담았는지
장단을 맞추는 관객의 손뼉소리가 풍파를 일으키다가 무정히 사라진다.
멀어지는 여인의 손 흔드는 표정엔 이별 같은 슬픔이 보여 안쓰럽기 짝이
없다 또 다른 산모롱이 뱃집에서도 청년이 혼자 서서 예쁜 의상을 자랑
하는 듯 두 팔을 흔들며 구애로 들리는 토가족 노래를 열창한다.
무슨 인연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기에 지나가는 관객에게 노래로 보시하
면서 손 한번도 잡아보지 못하고 무일푼으로 외로움만 씹어 삼키는가? 망
부석 같이 혼자 서있던 청년은 외로움에 지쳐 주저앉았는지 모습이 보이
지 않는다. 관객이 다 사라진 어두운 호수에 혼자 노 저으며 집으로 돌아
가는 삶의 외로움을 생각하다가 사색의 발상을 반대로 바꾸며 웃음을 속
으로 감춘다.
견우와 직녀의 사랑이듯이, 깊은 밤 별빛을 품어 안는 호심(湖心)과 같
이 물안개 밀어내고 밤마다 만나리. 맑은 호수에 몸 담그고 사랑의 자맥
질 치며 119.2m 호수의 깊이보다 더 깊은 사랑을 즐기고 있겠지. 지워지
는 뱃길을 되짚어가며 몇 번이고 호수를 돌아본다.
앞서가는 군중들 속에서 아내를 확인하고 꿈꾸던 보봉호를 떠난다 아
내에게 다가가 늙어 힘들지만 오기를 잘했다고 작은 소리로 말하니 피로
도 잊은 듯 밝은 눈빛으로 동의한다 폭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주며
아내의 얼굴에서 보봉호 물에 비친 환희를 다시 띄워 본다.
(2005.11.7 장가계 보봉호에서)
첫댓글 견우와 직녀의 사랑이듯이, 깊은 밤 별빛을 품어 안는 호심과 같이 물안개 밀어내고 밤마다 만나리.
맑은 호수에 몸 담그고 사랑의 자맥질 치며 119.1m 호수의 깊이보다 더 깊은 사랑을 즐기고 있겠지.
지워 지는 뱃길을 되짚어 가며 몇 번이고 호수를 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