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간 동안 대한민국 안방극장의 웃음을 책임 지던 대표 코미디 프로인 ‘개그콘서트’가 시청자들에게 더 이상 자연스러운 웃음을 전달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프로그램 폐지의 아픔을 맛보게 됩니다. 한때 이 프로그램에 애착을 가지고 응원했던 팬으로서 실로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웃음을 선사하는 고정적인 일자리를 하루아침에 잃어버린 개그맨들은 이후 스스로 생존하기 위한 새로운 도전들이 시작됩니다. 요즘 가장 핫(Hot) 한 인기 음악 장르인 트롯 경연에 도전하여 새로운 변신을 시도하거나 또는 각종 예능 프로그램이나 리포터 활동 등 다양한 영역에서 눈물겹게 자신들의 끼를 펼쳐 보이고 있습니다.
이름도 일일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수많은 예능 프로그램이 미친 듯이 난무하는 요즘, 어느 종합편성 채널에서는 개그맨 부부들이 나와서 개그맨 특유의 수다 공간을 마련하여 서서히 시청자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는 프로그램 하나가 눈에 띕니다. 사실 프로그램 내용보다 더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은 알쏭달쏭 한 제목입니다. 그 이름은 ‘1호가 될 순 없어!’입니다.
코로나가 한창 창궐하기 시작하던 지난해 상반기에 다소 충격적이고 자극적인 소재로 화제가 되었던 ‘부부의 세계’라는 인기 드라마를 패러디하여 ‘개그판 부부의 세계’라는 콘셉트로 지난해 5월 20일 첫 방송을 선보인 이래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예능 프로입니다. 갑작스럽게 무대가 없어진 개그맨들의 공간이 확보되었다는 데에 의미를 두고 응원하고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이 가진 매력은 그 어느 예능 프로에서도 다루지 않았던 ‘개그맨 커플’에서만 볼 수 있는 웃음을 동반한 리얼한 부부의 세계를 공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혼 1호’가 될 수는 없지만 ‘1호’가 탄생할 것 같은 아슬아슬한 긴장감과 그럼에도 ‘1호’가 되지 않기 위한 개그맨 부부들의 희로애락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며 웃음과 감동 제공합니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1호가 될 순 없어’라는 프로그램 타이틀의 탄생 배경이 궁금해졌습니다. 검색해보니 이 프로그램에서 MC를 맡고 있는 개그우먼 박미선 씨가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언급한 ‘개그맨 부부 중 이혼한 커플이 없는 이유는 다들 (이혼) 1호가 될 순 없어서’라고 언급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2019년 기준 대한민국의 이혼 건수는 11만 800건이라고 합니다. 꾸준히 증가하는 대한민국의 이혼율에 비해 전혀 이혼을 하지 않는 특별한 부부 군단이 있는데 그들은 바로 그들의 일상이 코미디인 개그맨 부부들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들이 이혼하지 않는 진짜 이유는 ‘1호’ 탄생이라는 ‘두려움’ 때문이라는 개그 같은 구실이 인상적입니다. 결국 오점과 불명예로 상징되는 ‘(이혼) 1호’라는 타이틀을 갖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1호’의 상징적 의미는 ‘불명예’입니다.
사실 ‘1호’라는 말은 어감은 좀 다를 수 있지만 ‘1등’이라는 말로 대체해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긍지와 명예를 상징하는 ‘1등’을 의미할 때 상황은 완전 달라집니다.
사람이 자라면서 나이가 차게 되면 자연스럽게 학교라는 배움 공동체에 편성됩니다.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학습이 이루어지고 그들이 속한 같은 공동체 안에서 학업성적에 따라 우열을 가려 서열이 매겨지게 됩니다.
그 공동체 안에서는 단 하나뿐인 1등이란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누군가 1등이 있으면 어떤 누군가는 서열상 자연스럽게 꼴찌라는 불명예의 자리를 차지해야 하는 아픔을 겪기도 합니다. 한때는 이 학업이라는 단순한 성적의 서열이 그 사람의 됨됨이까지 과대 포장되어 평가되는 모순된 학창 시절을 경험해야만 했습니다. 불행히도 그러한 관행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으며 학업성적은 곧 삶의 성공이라는 방정식으로 그릇되게 보편화되어 있어 가슴을 아프게 만들기도 합니다.
경쟁 사회에서 서열을 정하는 삶의 방식은 학교라는 교육 제도권을 벗어나도 여전히 예외 없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군대를 가도, 취업을 할 때도, 각종 자격을 취득할 때도 끊임없이 적용됩니다. 요즘 다양하게 펼쳐지는 각종 경연 대회에서도 이런 현상은 쉽게 눈에 띕니다. 트로트 음악 장르 경연의 원조로 부상한 어느 가요 경연이 대중의 인기에 힘입어 여기에 몰린 참가자 수가 1만 5천여 명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들 참가자들이 지역 예선과 이어지는 수 차례의 엄격한 심사를 통하여 100여 명으로 좁혀지며 이어서 또다시 수많은 경쟁을 통하여 단지 몇 사람만 선발되는 최종 결승 무대가 주어집니다. 그리고 우열이 없어 보이는 이들을 다시 순위를 매겨 서열을 정하는 게임을 합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경연에 걸려있던 엄청난 상금과 부상을 1등을 차지한 한 사람에게 몰아줍니다. 1등만이 오롯이 영광과 부를 누리는 경쟁 사회의 단면을 씁쓸하게 목도하게 됩니다.
1등이라는 자리는 부와 명예를 한 번에 차지할 수 있는 매력적인 자리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자리가 단 하나뿐이라는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를 차지하고자 혈안이 되고 비상식적이고 때론 비윤리적인 방법들이 동원되기도 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1등이란 자리에 올라서면 과연 행복할 것인지 묻게 됩니다. 그 자리는 언젠가 자신보다 더 뛰어난 다른 사람에게 물려줘야 하는 것을 알면서 그 자리를 지켜야 하는 혹독하고 고독한 싸움을 벌여야 합니다.
1등이라는 자리는 분명 명예로운 자리이긴 하지만 외로운 자리이기도 합니다.
이런 이유로 ‘1등’이라는 개념을 ‘1호’라는 말로 환원하여 다시 생각해 봅니다.
우리의 삶의 방식과 교육제도가 1등보다는 1호를 지향하는 쪽으로 목표와 인식이 바뀐다면 조금은 삶이 편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경쟁에서 1등이 되는 것은 어려워도 1호가 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 아들의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 하나가 생각납니다.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학교에서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등반 자원팀을 꾸려 3주간의 일정으로 아프리카로 떠나게 됩니다. 해발 5500미터의 고지를 올라가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총 8명이 참가하여 4명의 학생들이 정상을 밟게 됩니다. 체력이 약하다고 생각한 아들이 당시 등반대장인 전문산악인의 도움을 받아 어렵게 정상을 밟게 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등반대장의 도움을 받다 보니 아들은 맨 꼴찌로 정상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힘들게 오른 정상에서 정신을 차린 아들은 자기 자신과 가위바위보를 한 후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 킬리만자로 산 정상에서 자신과 가위바위보를 한 사람은 자신이 유일한 사람일 것이다’라고…
1등으로 정상에 밟지는 못했지만 정상에서 가위바위보를 한 사람은 자신이 1호라는 것입니다.
얼핏 들으면 싱겁고 엉뚱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1등을 고집하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면서 1등 대신에 1호로 살아가는 삶의 기막힌 방법인 듯합니다.
몇 년 전 서대문에서 김밥 가게를 오픈 한 후배가 기존의 김밥과는 차원이 다른 독특하고 맛도 기막힌 더덕 김밥을 고안하여 가격도 기존의 가격과는 다른 고가의 김밥을 선보였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김밥 가게가 서대문의 명물 맛집이 되었습니다. 기존의 김밥 집은 수없이 많지만 나만의 레시피를 가진 독특한 명품 김밥 집 1호점을 성공리에 탄생시키는 것을 보면서 1등보다는 1호가 되고자 하는 기발한 생각의 발상이 오늘을 살아가는 새로운 지혜로운 삶의 방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1등과 1호의 적절한 사례를 대중음악계의 판도를 뒤덮은 작년 트롯 경연에서 찾아보면 쉽게 이해가 됩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전체 참가자 중에서 당당히 1등을 차지한 임영웅 씨와 준결승전의 문턱에서 비록 탈락했지만 태권 트롯이란 새로운 장르를 선보이며 태권 트롯가수 1호가 된 나태주 씨의 경우입니다. 이 가수가 1등을 차지한 임영웅 씨 못지않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음은 1호가 갖는 독특한 매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사물이나 발명품들은 거슬러 올라가면 어느 것이나 그 최초가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 최초로 만들어 사용했거나 그 만든 물건에 이름을 붙였을 것입니다. 여기서 가장 처음을 바로 ‘1호’라는 의미로 정의할 때 살아가면서 비록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나만의 삶의 1호를 만들어 보는 것도 꽤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1등은 될 순 없어도 1호가 될 수는 있습니다.
<늘푸른언덕>
첫댓글 장문의 글
잘보았습니다.
그런데 코메디프로 재미있는 데 왜 폐쇄시킨지 ? 고위 정치인들 풍자한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