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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어머니는 밤마다 내게 책을 읽어주셨다. 조용한 방 안에서 들려오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손끝으로 책장을 넘기며 한 글자, 한 문장씩 소리 내어 읽어주실 때면, 나는 마치 그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글자에 생명을 불어넣었고, 나는 그것을 들으며 책 속의 세상을 상상하곤 했다. 그때는 그저 책을 소리 내어 읽는 것이 당연한 일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제 와 돌아보면, 어머니가 들려주시던 이야기는 단순한 말소리가 아니라, 글을 소리로 전달하는 특별한 행위였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낭독’이었다.
낭독은 글을 있는 그대로 읽는 것, 문장을 따라가며 소리로 옮기는 것이다. 낭독을 하면 문장이 또렷해지고, 글자가 더 선명해진다. 특히 어려운 책이나 낯선 글을 읽을 때, 소리 내어 읽으면 이해가 더 쉬워지곤 했다.
학교에 들어가면서도 낭독은 계속되었다. 국어 시간마다 교과서를 돌아가며 읽었고, 가끔은 발표 시간에 글을 소리 내어 읽기도 했다. 그러면서 나는 낭독이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문장을 정확하게 전달하려면 발음에 신경 써야 했고, 적절한 속도와 억양도 필요했다. 어머니가 들려주시던 낭독이 왜 그렇게 편안하고 듣기 좋았는지도 이해할 수 있었다. 좋은 낭독은 듣는 사람에게 안정감을 주고, 글의 의미를 더욱 분명하게 만든다.
그런데 중학생이 되었을 때, 나는 또 다른 ‘읽기’의 방식을 접했다. 국어 선생님께서 시 수업을 하시던 날이었다. 선생님은 칠판에 ‘낭송(朗誦)’이라는 단어를 적으셨다. 그리고 우리에게 물으셨다.
“낭송이 뭔지 아는 사람?” 누군가 조심스럽게 “소리 내어 읽는 것요”라고 답했다.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요. 하지만 그냥 읽는 것과는 조금 다르죠. 낭송은 감정을 담아 읽는 거예요. 예를 들어, 이 시를 한번 낭송해 볼까요?”
선생님은 책을 펼치고 조용히 한 구절을 읊기 시작하셨다. 목소리는 평소보다 부드러웠고, 때로는 강약이 느껴졌다. 단어마다 감정이 실려 있었고, 마치 시의 의미가 목소리를 타고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나는 순간 놀라움을 느꼈다. 같은 글을 읽는 것이지만, 단순히 소리 내어 읽는 것과 감정을 담아 읊는 것은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날 이후, 나는 시를 읽을 때마다 낭송을 해 보았다. 조용한 방 안에서 혼자 시를 읊을 때, 나는 그 단어들이 가진 감정을 더 깊이 느낄 수 있었다. 때로는 슬프게, 때로는 기쁘게, 때로는 조용히 음미하며 읽었다. 그러면서 낭독과 낭송의 차이를 더욱 선명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낭독은 문장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책을 읽을 때, 뉴스 기사를 전달할 때, 오디오북을 녹음할 때처럼 듣는 사람이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읽는 것이 중요하다. 낭독을 할 때는 감정보다는 정확한 발음과 또렷한 전달이 우선이다.
반면, 낭송은 감정을 담아 표현하는 것이 핵심이다. 주로 시나 문학 작품을 읽을 때 사용되며, 운율과 리듬이 살아 있어야 한다. 단어 하나하나에 감정을 실어야 하고, 목소리의 높낮이와 강약을 조절해야 한다. 그래서 낭송을 잘하면 같은 시라도 전혀 다른 분위기로 전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별 헤는 밤’이라는 윤동주의 시를 낭독한다고 가정해 보자. 단순히 문장을 읽는다면, 우리는 그저 시의 내용을 전달하는 데 그칠 것이다. 하지만 낭송을 한다면, 그 시에 담긴 외로움과 그리움을 목소리로 표현해야 한다. 달빛 아래에서 조용히 별을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을 생각하며 읊는다면, 듣는 사람도 그 감정을 함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낭독과 낭송이 모두 중요한 이유를 깨달았다. 낭독은 우리의 언어 능력을 키우고, 글을 정확히 이해하도록 돕는다. 반면, 낭송은 감정을 표현하는 능력을 기르고, 문학 작품을 더 깊이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는 낭독을 하고, 때로는 낭송을 하면서 글과 더욱 가까워지는 것이 아닐까.
어느 날, 나는 문득 어머니가 읽어주셨던 동화책을 다시 펼쳤다. 조용히 그 글을 읽으며, 어릴 적 들었던 어머니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그분의 낭독에는 따뜻한 정서가 담겨 있었고, 그 덕분에 나는 책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내가 시를 낭송하며 또 다른 감동을 느끼고 있다.
낭독과 낭송, 이 두 가지가 모두 우리 삶 속에서 소중한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낭독을 통해 배움을 얻고, 낭송을 통해 마음을 나눈다. 글을 소리 내어 읽는다는 것은 단순한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글 속에 담긴 의미를 되새기고, 누군가와 감정을 공유하는 아름다운 과정이다.
앞으로도 나는 책을 낭독할 것이고, 때로는 시를 낭송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에게 따뜻한 목소리로 글을 읽어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