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또 올리내요..
우선 답장써주신 디오프렌트님,크라시아님
정말 감사해여...아마 2~3편 정도만 더올리면
끝일께여요...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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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크는 정신없이 자고 있는 케이린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서 작아져 버린 케이린. 게다가.. 갑자기 풀썩 쓰러져 잠들다니. 한참을 무언가를 생각하던 지크는 머리를 거칠게 긁적이다가 결국 풀썩 고개를 박고 잠에 빠져 들었다. 아무래도 정신적인 피로가 너무 컸던 모양이었다.
그 때, 케이린의 작은 몸이 천천히 일어났다. 그 몸은 서서히 흐려지며 다시 커다란 어른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녀는 지크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그녀의 눈에는 슬픔이 가득했다. 그러나 그녀는 흠칫할 수 밖에 없었다. 지크가 쓱 일어난 것이었다. 그는 헤헷, 장난기 어린 눈빛으로 케이린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었다.
"날 속이려 들어? 절대 안돼. 빨리 말해. 왜 꼬마로 있는 거냐?"
지크는 이번에는 절대로 넘어가지 않겠다는 듯 단호히 말했고, 케이린은 한숨을 쉬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몰라도 되는 건데..?"
"시끄러. 친구로서 그런 것도 못하나? 만약 계속 그렇게 넘어가면 친구로서 혼내줄거다."
그의 눈을 한참을 쳐다보던 케이린은 침대 위에서 다리를 모아 쭈그리고 앉으며 조용히 말을 시작했다.
"내가 지금부터 말 하는거 절대로 아무말 하지 말고 들어. 만약 네가 한마디라도 끼어들면 말 안해."
그 말에 지크는 대답하려다 재빨리 입을 틀어막으며 고개를 깊숙히 끄덕였고, 그 모습에 힘없이 미소짓던 케이린이 입을 열었다.
"난 다른 세계 사람이야. 네가 차원과 차원을 건너다니니까 알 거야. 차원과 차원의 사람들은 다른 차원의 존재에 대해 잘 몰라. 그런 개념이 확대된 거지. 하지만 전혀 다르기도 해. 그 차원들은 넘어다니는 존재들이 많지만 세계와 세계는 절대 그래선 안돼. 만약 다른 세계의 존재가 넘어온다면 그 세계는 혼돈에 빠져들지. 난 어떤 일로 세계와 세계를 넘어다니게 됬어. 그 세계들은 모두.. 내가 원래 살던 곳에서 읽었던 책 속 세계였지. 너도 마찬가지야, 지크. 너도 책 속 주인공이었어. 훗, 정말 괜찮은 녀석이었는데."
그녀의 말에 지크의 눈이 커다랗게 벌어졌지만 그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틀어막아 놓은 입은 벌어지지 않았다. 케이린의 말이 이어졌다.
"책 속 이야기들이었으니까, 난 그 세계 사람들을 잘 알았어. 그 사람들이 가진 아픔, 그리고 좋아하는 것, 다 아니까 잘 해주려고 부단 노력했지. 하지만 세계는 날 받아들이지 않고 내쫓았어. 난 붙어 있으려 노력했지. 그렇지만 나로 인해 부셔지는 세계를 바라보긴 힘들었어. 너도 알겠지. 내가 처음 이 곳에 왔을 때,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지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세계는 그야말로 무너지고 있었다.
"난 세계를 떠나 다른 세계로 갔어. 그 때마다 난 한 인생을 한 셈이었고 영혼 하나를 얻은 셈이었지. 물론 내 몸안에 영혼이 많다는 게 아니야. 흠.. 천사들은 영혼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고 해. 만약 어떤 천사가 네 영혼의 냄새를 맡는다면 한 가지 냄새만 맡을 수 있겠지만 내게선 당황스러울 만큼 엄청나게 많은 냄새들이 날 거야."
잠시 케이린은 말을 멈추었다. 그녀는 지크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말했다.
"너, 내게서 네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의 모습을 보았지?"
그 말에 지크가 흠칫했다. 입을 틀어막고 있는 손에서 땀이 베어나고 있었다. 그랬다. 케이린의 모습에서.. 그의 양어머니었던 레니의 모습을 보았었다. 케이린은 슬픈 듯 고개를 돌렸고, 살짝 지나갔던 그녀의 깊고 슬픈 눈에 지크는 놀라버렸다.
"다른 사람들도 그럴거야. 당연해. 내가 그러려고 나도 모르게 노력했으니까. 가즈나이트들, 용제 전하, 그리고 등등.. 내가 책에서 봤던 사람들만의 아픔을 알고 있었기에 난 그들이 소중히 여겼던 사람들의 모습을 하려 노력했어. 영혼이 다양하니까 어렵진 않았지. 책에서 보지 못한 사람들일지라도 너무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봐 와서 그 사람들이 어떤 모습에서 편안함을 느끼는지, 행복함을 느끼는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지. 하.. 몸부림이었어. 이 세계에서 잊혀지지 않으려고, 붙어있으려고 필사적으로 몸부림 친거였지."
케이린은 내뱉듯이 말했고 그 말에 지크는 당혹감을 감추기 힘들었다. 그의 편한 친구 케이린이.. 저런..
"내가 다른 가즈나이트들의 힘을 쓸 수 있는 것도 영혼이 다양해서 이지. 내가 쓰는 다른 가즈나이트들의 무기도 바로 내 영혼의 일부들이지."
그녀의 말에 지크의 눈이 커다랗게 변했다. 케이린의 말에 놀라서만은 아니었다. 그의 얼굴에 바짝 다가와 있는 케이린의 얼굴.. 그의 손을 확 치운 케이린의 손, 그리고 입술에 닿아있는 이 물컹하고 따뜻한 것은..
풀썩.
지크의 몸이 풀썩 쓰러졌다. 잠든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케이린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의 입술을 살짝 닦아준 케이린은 미안한 듯 미소지었다.
"말해줬으니 이젠 그만 해. 하지만.. 알아선 안 돼. 넌 너무 착해서.. 아니, 가즈나이트들 모두 너무 착해서.. 이런 거 알면 힘들어. 안돼지. 그럼."
자신에게 말하는 듯 그녀는 나직히 중얼거렸다. 순간 그녀가 휘청거리며 침대 위로 털썩 드러누웠다. 그녀는 욱신거리는 머리를 짚으며 허무한 미소를 지었다.
"힘들군.. 미안 지크. 하지만 입술 대는게 가장 빠르고 덜 힘들지. 기억 지웠으니까.. 멍할거야. 분명 내가 말 해준건 기억하지만 내용만 기억하지 못하는 거지. 흠.. 한계.. 이군."
케이린의 눈이 파르르 감겼다. 그리고 다시 꼬마로 변해 있었다. 이불을 꼭 쥐고 잠들어 있는 케이린의 얼굴은 평화로워 보였다. 갑자기 그 작은 얼굴이 베게에 푹 파뭍혔다. 마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감추려는 듯.
푹.
지크는 인상을 찌푸렸다. 젠장, 아까부터 누가 배를 쑤시는거야..!
"이제 일어났네, 오빠?"
지크는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작은 꼬마의 얼굴에 피식 웃었다. 그는 케이린의 머리를 헤집어 놓으며 몸을 일으켰다. 케이린은 턱을 괴며 그에게 말했다.
"오빠 왜 여기 왔어? 나랑 휀 오빠랑 여기 있어야 하는데?"
휀 오빠라는 호칭에 지크는 배가 떨림을 간신히 억제했다. 웃음을 간신히 참고 있는 그에게 케이린의 공격이 다시 한번 쏟어졌다. 케이린이 지크의 귀에다 대고 속삭인 것이었다.
"그런데 지크 오빠? 휀 오빠 잘 삐진다? 휀 오빠 안 삐지게 하려면 뭐 줘야돼?"
"푸하하핫!"
지크는 결국 배를 붙잡고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케이린은 왜 웃냐는 듯 아리송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 때 문이 열리며 휀이 들어왔다. 그 냉철하고 카리스마적인 얼굴에 또 웃음을 참지 못한 지크는 허리를 꺾으며 숨이 막히도록 웃었고 휀은 싸늘하게 그를 바라보다 쾅 문을 닫고 나갔고, 눈물까지 찔끔거리는 그에게 케이린이 입술을 삐죽이 내밀며 말했다.
"거봐, 또 삐졌잖아."
"쿠하하핫! 어, 어머니! 우아악! 저좀 살려줘.. 크하핫!"
붉은 머리의 여자는 요염한 미소를 띄우며 자신의 앞에 있는 두 여성에게 말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 새 가즈나이트에 대한 정보를 캐내라는 임무야."
"호, 새로 가즈나이트가 임명됬다더니. 그렇지 않아도 가 보려 했는데 말이야. 지크라는 녀석은 영 비실비실 했어."
레베카는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며 말했고, 그 옆에서 츄우가 조심스럽게 그녀의 팔 근육을 콕콕 찌르며 말했다.
"우린 그 지크도 못 이겼었잖아."
"시, 시끄러! 그 새 가즈나이트는 이제 가즈나이트에 임명된지 1년도 안 됐다고! 우리가 질 리가 없잖아?"
레베카는 당당하게 외쳤다. 그 외침에 츄우는 입가에 손을 가져가며 깔깔 웃었다.
"오오~ 가즈나이트를 박살내고 주신계의 공포로 자리잡은 우리들의 츄우! 그녀는 정녕 미모와 힘을 갖춘 완벽한 여성이었단 말인가!"
아란은 그녀를 무시하며 싱긋 웃었다.
"아무튼 재미있게 됬어."
"오빠, 오늘도 마물들 잡으러 가는거야? 며칠 째 싸움만 했잖아. 대장을 잡아야지! 그래야 빠방~ 한방에 끝나고!"
케이린은 다리를 흔들며 말했다. 지크는 얼굴을 구기며 애써 화를 억누르며 말했다.
"젠장, 나라고 있고 싶어서 있는 줄 알아? 난 임무도 아니었다고! 그건 그렇고, 너 정말 안 내려 올거야?"
지크의 등에 업혀있는 케이린은 이내 지크의 양 귀를 쫙 잡아당기며 뾰루퉁하게 말했다.
"욕하면 안돼요, 나쁜 아저씨. 그리고 담배 펴도 안돼구요."
케이린은 몸을 뻗어 옆에서 담배를 꺼내고 있는 휀의 손을 낚아 챘다. 담배를 휀의 반대쪽 지크의 귀에 꽂아 놓은 케이린은 지크의 등에 고개를 푹 기댄 채 헤헤 웃었다.
"그래도 좋은대. 나 지금 졸립단 말이야. 걸어가다가 잠들어서 꽈당~ 넘어지면 가즈나이트 임무도 못해~!"
"..지금 니가 졸고 있는 거냐?"
지크는 그렇게 으르렁 거렸지만 이내 케이린이 고개를 박고 잠이 들었기 때문에 투덜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그는 투덜대며 옆의 휀에게 말했다.
"어이, 대장. 이제 슬슬 체인지 할 때 되지 않았어? 좀 업으라고. 이 녀석 몸무게는 안 줄었나 은근슬쩍 무겁단 말이야."
휀은 싸늘한 눈으로 지크를 바라보았다. 그는 획 고개를 돌렸고 주머니에서 또하나의 담배를 꺼냈다. 그러자 지크가 황급히 말렸다.
"대, 대장! 그거 집어 넣으라구. 안 그러면 이 치수 모자라는 잔소리꾼 또 깨. 그냥 이렇게 조용히 재우자구."
그의 말에 휀은 묵묵히 담배를 주머니에 넣었고 그 모습에 지크는 차라리 서글픔까지 느꼈다. 우리의 당당하던 대장이 결국 이렇게 무너지는 건가. 지크는 케이린을 한번 더 추스렸고 묵묵히 옆에서 걷고 있던 휀이 말했다.
"어제 케이린에게 무슨 말 들었나."
그의 말에 지크는 인상을 구기며 케이린을 다시 추스렸다.
"웃차! 이거 진짜 무겁네. 무슨 말 들었긴. 왜 잠들었는지, 그냥 이것 저것.."
어느 새 지크의 발걸음이 멈춰있었다. 앞서가던 휀은 멈추어 서서 그를 돌아보았고 지크의 넋나간 표정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분, 분명히 들었는데! 젠장, 기억이 하나도 안 나! 들었는데.."
지크는 멍하니 서 있었고, 이윽고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어느 새 그들은 마물들이 자주 출몰하는 그 지역에 와 있었고 서서히 마물들의 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휀은 그냥 지크에게서 몸을 돌렸다. 지크를 상대하느니 차라리 저 마물을 상대하자. 자아붕괴의 시동이 걸림을 보여주는 그 표정에 휀은 돌아섰고, 마침내 지크의 자아붕괴가 시작되기 일부 직전, 지크는 머리를 치고 획 지나가는 무언가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뭐, 뭐야!"
지크는 갑자기 케이린이 등 뒤에서 뛰어내리자 놀라 그녀를 바라보았다. 케이린은 허겁지겁 달려가며 플렉시온을 뽑아드는 휀의 팔을 붙잡았다. 휀은 싸늘히 케이린을 돌아보았고 그의 앞에 나타났던 마물도 낮게 으르렁 댔다.
"크르르..."
"아, 안돼 오빠!"
케이린은 휀의 플렉시온을 든 손에 메달리며 외쳤다. 그녀의 눈이 일렁이고 있었다. 그녀 앞에 있는 마물은 요 근래 보았던 마물 중에서 그 원 모습이 가장 변하지 않은 상태의 마물이었다. 흰 털 가운데 검푸르게 일렁이는 줄무늬, 그 크기는 거의 10m는 되어 보였다. 케이린은 경악과 슬픔으로 젖은 얼굴로 그 마물을 바라보았다.
"호랑이가.."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 거렸다. 그러자 지크가 가죽 장갑을 죄며 헤헷, 하고 그 특유의 장난기 어린 웃음을 지었다.
"커다란 호랑이인데? 동물원에서 탈출했니? 그럼 이 지크님께서 돌려 보내주시지. 천국 동물원으로!"
"아, 안돼 오빠!"
케이린은 뛰쳐나가려는 지크를 막아섰다. 온 몸으로 막아서는 그녀의 모습에 지크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왜 그래? 나 지금 몸이 근질근질 하다고. 어린 애 보모하느니 저 친구랑 한판 뛰는게 낫겠는데? 보아하니 저 녀석 만만한 놈이 아니라고. 넌 알지 모르겠군. 어떻게 됬는 지 모르겠지만 시에같은 베히모스들 큼은 안 되도 펜릴이랑 맞먹는다고!"
"그래도 잠깐만!"
케이린은 휙 돌아섰다. 그녀의 몸이 다 돌아서자, 그녀는 커다란 어른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지크의 눈이 커다랗게 벌어지기도 전에 그녀는 거칠게 그 호랑이에게 외쳤다.
"지금 무슨 짓이야! 네가 금수의 왕이라는 거 잘 알아. 그 만큼 다른 동물들과는 다르고! 여기서 무슨 짓이야, 어서 원래대로 돌아가!"
그녀의 외침은 그 주변 일대를 쩌렁쩌렁 울렸으며, 그녀의 몸에서 풍겨나오는 기운은 지크와 휀을 놀라게 만들었다. 그들은 보지 못했지만 케이린의 검은 눈은 붉게 일렁이고 있었다. 호랑이는 아까 막 덤벼들려 했던 모습과 같지 않게 으르렁대며 케이린의 눈을 보고 몸을 낮추고 있었다. 케이린은 그 모습에 약간 안심을 하며 또 다시 외쳤다.
"돌아 가!"
그녀의 외침에 호랑이의 그 살기어린 붉은 눈이 흐려졌다. 그러나 이내 물에 빠졌다 나온 것 처럼 거칠게 머리를 저으며 다시 으르렁 거렸다. 그 모습에 휀과 지크는 플렉시온과 무명도를 쥔 손에 힘을 주었지만 케이린은 그들을 막으며 놀란 얼굴로 호랑이에게 말했다.
"인질이.. 있는 거야? 그런 거야?"
그 말에 호랑이는 덤벼들듯 털을 세우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케이린의 말을 알아듣는 그 모습에 지크는 또다시 놀라워했지만, 케이린은 지체하지 않고 외쳤다.
"구해줄께, 안내 해! 어서!"
그러나 호랑이는 포효하며 그녀에게 덤벼들었다. 지크가 움찔했지만, 케이린은 놀랍게도 그 거대한 호랑이의 발을 막아내고 있었다. 눌려서 그 목을 물려버릴 듯 위태로워 보였지만 그 거대한 몸 전체로 누르는 호랑이의 앞발을 꽉 잡고 케이린은 얼굴 가까이에서 폭사 되고있는 살기어린 호랑이의 눈에다 대고 거칠게 외쳤다.
"안내 해!"
그렇게 말하며 케이린은 호랑이의 앞발을 팍 밀쳤다. 그러면서 몸을 날려 공중에 떴고, 호랑이는 으르렁 거리며 몸을 낮추었다. 공격하기 일부 직전의 모습. 케이린의 얼굴에 노기가 스쳤다. 그녀의 눈이 호랑이의 눈보다도 더 붉게 일렁이는 것을 본 지크는 헛바람을 삼켰다. 케이린은 온 몸으로 쩌렁쩌렁 울리게 외쳤다.
"멈추고 안내 해!"
그 무서운 눈에 호랑이의 동작이 멈추었다. 케이린은 눈을 풀고 슬픈 표정으로 호랑이에게 다가갔다.
"위험해!"
지크는 무명도를 움켜쥐며 외쳤지만 호랑이는 공격하지 않았다. 다만 구슬프게 울부짖을 뿐이었다. 그 머리에 손을 댄 케이린은 이내 무릎을 꿇고 엄청난 크기의 호랑이를 천천히 끌어 안았다. 그리고 나직히 속삭였다.
"그래.. 내가 도와줄께. 어서 가. 따라갈테니. 가자."
그렇게 말하며 케이린은 빠르게 몸을 일으켰고 호랑이는 엄청난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어서 따라가요! 저 녀석이면 이 일대의 동물들을 마물로 만든 자에게 갈 수 있을 거에요!"
그 말에 지크와 휀의 눈이 빛났다. 그들도 빠르게 기를 숨기며 달리기 시작했고, 케이린 역시 달렸다. 지크가 케이린에게 나직히 물었다.
"그런데 갑자기 왜 안 하던 짓 하고 그런거냐? 저 녀석 앞발에 맞으면 온 몸이 으스러지겠군."
"하지만.."
케이린의 얼굴이 흐려졌다. 그녀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내 고향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던 동물이지, 호랑이는. 호랑이는 영물이야. 그냥 호락호락하게 저렇게 마물이 될 리가 없어. 겉 모습이 거의 변하지 않았잖아. 분명 그냥 마물이 되어 사람들을 헤치진 않았을 거야. 사정이 있을거라고."
그 진지한 모습에 지크는 쳇, 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그의 표정 역시 밝았다. 그 역시 알았다. 예전에 그가 소중히 여기던 강아지를 생각해 내며 지크는 자기 자신에게 툭 농담을 던졌다. 저거 구해도 애완동물로 기르긴 그런데. 저 놈 주신계로 가져갔다간 피엘이 난리를 피겠군.
"다 왔다."
케이린이 나직히 중얼거렸다. 휀은 싸늘한 눈으로 그 일대를 훑어 보았다. 한참을 달려 온 곳. 깊숙한 골짜기 아래 자리잡은 폐허가 된 신전. 휀이 차갑게 외쳤다.
"나오시지."
그 말에 폐허가 된 신전 깊숙한 곳에서 사람의 실루엣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호랑이가 구슬프게, 그러나 거칠게 으르렁 거렸다.
"크르르.."
이윽고, 사람들의 실루엣이 진해지며 누군지 구별이 갈 만한 정도가 되었다. 그들의 모습에 지크의 눈이 커다랗게 변하며 그가 외쳤다.
"어이, 너희들이 여긴 무슨일이야?"
근육질의 여자가 손 관절을 꺾으며 핏, 웃었다.
"그럼 너는 여긴 무슨 일이야?"
지크는 장난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여기 이 친구 애완동물이 잊어먹은게 있다고 해서."
그렇게 말하며 익살스럽게 케이린을 바라보았고, 케이린은 싱긋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애완동물은 아니라고. 저런 거 키우면 주신께서 나 자를거라고. 갈 대도 없는데."
그 말에 신전에서 나온 세 여자가 흠칫했다. 붉은 머리의 여성이 매력적인 미소를 흘리며 천천히 케이린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케이린의 턱을 두 손가락을 살짝 들어 올리며 얼굴을 가까이 했다.
"미남이군요. 아주 예쁜데? 새로 임명된 가즈나이트인가요?"
"그래요, 데스 발키리 아란양."
그 말에 아란은 미소지었다. 그녀는 입술을 핥으며 고혹적으로 미소지었따.
"우리 먹이가 될 자인가? 여긴 무슨일로 제발로 찾아오셨죠? 우리야 고맙지만."
"저 쪽 츄우 양 손에 들려있는 이 호랑이 새끼와 이 호랑이, 그리고 다른 마물이 된 동물들, 당신들 짓인가요?"
여전히 케이린은 부드럽게 웃고 있었다. 그러나 아란은 흠칫했다. 케이린의 눈을 정면으로 마주친 것이었다. 검은 눈동자. 그러나 마치 새까만 수정구를 그대로 박아 놓은 듯 아무것도 비치지 않았다. 슬픔도, 기쁨도, 분노도, 그 어떤 감정도 드러나지 않는 눈. 아란의 손이 천천히 케이린의 목을 타고 내려왔다. 목 한 가운데 다다른 그녀의 눈이 꿈틀댔다. 흔히 있어야 할 목젖이 없던 것이었다. 그녀는 미간을 좁히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케이린은 싱긋 웃었다. 아란은 훗, 하고 웃으며 차게 말했다.
"여자였군."
"그래요."
케이린의 말에 레베카와 츄우가 크게 놀란 표정으로 케이린을 바라보았다. 레베카가 떫은 표정으로 말했다.
"가즈나이트는 모두 남자가 아니던가?"
"예외는 있는 법이죠. 그럼 내 부탁 좀 들어주시겠어요?"
"훗, 싫은걸?"
그렇게 말하며 레베카는 츄우의 손에 들려있던, 잠들어 축 늘어진 새끼 호랑이를 들어 올렸고, 호랑이는 눈을 부라리며 으르렁 거렸다. 그 위협적인 모습에 레베카는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호랑이를 던졌고, 그녀의 주먹이 무섭게 새끼 호랑이를 향해 날아갔다.
퍼억!
"크아아앙!"
골짜기를 무너뜨릴 듯 진동하는 그 포효소리에 레베카의 눈이 찌푸려졌다. 그녀는 쳇, 하고 몸을 뒤로 물리며 말했다.
"새끼가 더 감촉이 좋은데."
그녀는 배와 등에 커다란 구멍을 남긴 채 피를 뿜으며 쓰러지는 거대한 호랑이를 무시하며 말했고, 그와 함께 흠칫했다. 저만치 있던 케이린이 자신 앞에 있던 아란을 지나쳐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왔던 것이었다. 레베카와 츄우는 긴장했다. 그러나 케이린은 그녀들 앞에 있던 호랑이들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새끼 호랑이는 땅에 떨어지며 정신을 차렸고, 쓰러진 거대한 호랑이를 보더니 끙끙대며 그 얼굴을 핥았지만, 쓰러진 호랑이는 일어설 줄 몰랐다. 레베카의 일격에 완전히 죽은 것이다. 케이린은 손을 들어 새끼 호랑이를 안아 올렸다. 새끼 호랑이는 그르렁거리며 마구 케이린을 할퀴고 반항했지만, 케이린은 나직히 말했다.
"미안. 하지만 얌전히 있겠니? 내가 도와줄께."
그녀의 말은 마법처럼 새끼 호랑이를 진정시켰다. 그 모습에 레베카는 떫은 표정으로 턱을 긁적이며 츄우에게 말했다.
"저 친구 동물 애호가였어? 몰랐는데?"
그러나 그 말에 아랑곳없이 케이린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새끼 호랑이를 꼭 껴안았다. 그녀의 손이 호랑이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그녀의 품 안에서 새끼 호랑이는 이내 잠들었다. 케이린은 팔짱을 낀 채 차가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휀에게 호랑이를 넘기며 나직히 말했다.
"잠깐 맡아 주세요. 오늘은 제가 할께요."
그렇게 말하며 케이린은 휀의 눈을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휀은 눈으로 차갑게 말했다. 네가 그럴 형편이 못 될텐데. 케이린 역시 그 아무것도 담기지 않는 눈으로 말했다. 아뇨, 형편이 되요.
케이린의 몸이 돌아섰다. 케이린은 싱긋 웃으며 데스발키리들에게 말했다.
"나에 대해 정체를 캐 뭍고 싶으시겠죠? 당신들보다 늦게 임명된 가즈나이트이니, 당신들에겐 만만할테고. 소개하죠, 난 유의 가즈나이트 케이린. 당신들 소개는 필요 없어요, 다 아니까."
그 말에 아란은 훗, 하고 웃었다.
"좋아. 오늘 넌 우리랑 한판 붙어줘야 겠어. 네 힘을 확인해 봐야겠거든."
그 말에 케이린이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천천히 그녀의 손에 머리로 올라가며 얼굴로 넘어온 머리카락들을 쓸어 넘겼다. 그리고 그 아래 드러난 무서운 얼굴에 아란은 흠칫 했다. 그녀의 얼굴은 휀의 얼굴만큼이나 차갑고 살기가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 눈은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몸에서 뿜어지는 알수 없는 카리스마에 침을 꿀꺽 삼킨 데스발키리들에게 케이린이 훗, 하고 웃으며 손을 천천히 들었다.
"내가 가즈나이트가 된 지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해서 얕보면 안돼요. 오늘.."
데스 발키리들의 눈이 경악으로 커졌다. 대기를 훑은 케이린의 손을 따라 천천히 아지랑이 피듯 그 모습을 드러내는 저 물체는 분명 휀의 플렉시온이었다. 그러나 휀의 플렉시온은 아직 휀의 손에 있었다. 케이린의 손이 번개처럼 다 형성된 플렉시온의 손잡이를 낚아 챘다. 그녀는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플렉시온에 입맞추었다.
"멋진 모습을 보여드리죠."
파앗! 하며 케이린의 모습이 사라졌다. 아란은 이를 갈며 자신의 검을 꺼내들었다. 레베카와 츄우 역시 당황하며 무기를 꺼냈다. 잠시 후, 그들은 자신들을 향해 날아오는 케이린의 강한 공격에 서둘러 무기로 막았지만, 그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케이린을 제외하고 마지막으로 가즈나이트가 되었던 레디에 대한 자료를 알고 있는 그녀들은 이 힘을 믿을 수 없었다. 게다가 케이린이 구사하고 있는 이 검술들은.. 그녀들이 자료를 통해 자주 보았던..
"젠장.. 이건 저 광황의 기술이잖아!"
레베카는 무섭게 날아드는 플렉시온을 힘겹게 막아내며 외쳤다. 당황하기는 아란과 츄우도 마찬가지였다. 새 가즈나이트의 능력을 시험하기 위해 이 곳에 왔는데 상상밖으로 휀의 기술을 쓰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이었다.
"크아악!"
이윽고 레베카와 츄우는 몸에 큰 상처를 입은 채 땅위에 털썩 쓰러졌다. 아란 역시 입술을 깨물며 팔에서 흐르는 피를 막았다. 다시 모습을 드러낸 케이린이 따스한, 그러나 아직 살기가 흐르는 눈으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돌아가세요. 오늘은 이만하면 된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하며 케이린은 몸을 돌렸고, 레베카가 울컥한 표정으로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기, 기다려!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고!"
그러나 케이린은 이미 휀에게서 잠든 새끼 호랑이를 안아 든 채 빠르게 모습을 지우고 있었다. 지크는 헤헷, 웃으며 손을 꺾었다. 사실 그도 속으로 내심 놀란 상태였다. 리오의 기술을 쓰는 것가 그룬가르드를 쓰는 것 까진 봤지만 휀의 기술까지 쓸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는 익살맞게 웃으며 레베카의 이마를 툭, 쳤다.
"이봐, 저 녀석 지금 기분이 안 좋다고. 대장 기술 쓰는거 못 봤어? 너희들 광황 이길 수 있냐? 니들 때로 덤벼도 안 돼. 뭐, 기분 안 좋으면 나랑 대장이 상대해 주지. 어때, 대장?"
그러나 휀은 이미 등을 돌려 돌아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지크는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며 손으로 입가를 살짝 가리며 나직히 말했다.
"거봐, 대장 또 삐졌잖아."
우드득!
지크는 휀 주변의 아름드리 나무가 반쪽나는 것을 보고는 기겁하여 몸을 일으키고는 데스 발키리들에게 호기어린 표정으로 한마디 던졌다.
"오늘은 그냥 간다! 하지만 케이린을 연구하려는 건 포기해. 나도 알아내려고 무지 애 썼지만 영 안 돼더라고. 그럼 몸 조리 잘해라."
지크는 뒤로 손을 흔들며 천천히 걸어갔다. 그들의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던 츄우가 떠듬떠듬 말했다.
"도, 도대체 저 유의 가즈나이트라는 여자는 뭐야? 어떻게 휀 라디언트의 기술을.."
"쳇, 내가 어떻게 알아? 빌어먹을!"
레베카는 땅을 내려치며 화를 버럭 냈다. 또 다시 무너진 자존심이 그녀를 더 아프게 했다. 아란은 깊어진 눈으로 씩 미소지었다. 천천히 입술 근처에 뭍은 피를 핥은 그녀는 나직히 말했다.
"기다려. 이건 아직 시작에 불과하니까."
"오빠아~ 우유, 우유 먹이면 돼?"
"야, 호랑이가 우유를 어떻게 먹냐? 고양이도 아니고. 큼지막한 살코기를 먹여야지!"
지크는 케이린의 머리를 콩 박으며 말했고, 케이린은 이마를 쓰다듬으며 휀의 코트자락을 잡아 당겼다.
"오빠, 그럼 나 고기 사다 줘!"
케이린의 말에 휀은 싸늘하게 케이린을 내려다 보았다. 그의 손이 마침내 플렉시온을 향했고, 지크는 기겁하며 그를 말렸다.
"이, 이봐, 대장! 꼬마의 말이라고!"
그러나 플렉시온은 케이린의 목을 향했고, 휀은 나직히 말했다.
"한번만 더 귀찮게 하면 죽여버리겠다."
"힝, 또 삐지지 말고 빨리이~! 난 아가랑 놀거야! 오빠아~!"
그러나 케이린은 대담하게도 플렉시온을 밀치며 그의 다리에 매달렸고, 휀은 잠시 살기어린 표정으로 지크를 바라보았지만 지크는 어색한 미소를 띄며 손을 저었다.
"어, 어이 대장. 저 꼬마가 원한건 대장이었다고!"
휀은 여전히 지크를 노려보고 있었고, 마침내 지크가 체념하고 투덜대며 일어서려 할 때, 케이린이 외쳤다.
"그럼 뺏었던 담배 다 돌려줄께! 오빠 담배 펴도 암말도 안하고!"
그 말에 휀의 몸이 멈추었다. 그는 차갑게 케이린을 자신의 다리에서 때 냈다. 케이린이 그 검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자신을 바라보자 휀은 차가운 눈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지크가 불안해 하며 케이린을 자신의 등 뒤로 감추려 할 때, 휀은 천천히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지크가 멍하니 의아한 표정을 짓자, 케이린은 그의 의아함에 답해주듯 손을 흔들며 휀을 향해 외쳤다.
"오빠~! 많이 사와!"
그날, 이 근방 정육점이란 정육점은 하얀 코트에 금발머리를 지닌 한 미청년에게 몽땅 다 털려버렸고 그 이후 그 근방의 정육점에서는 하얀 코트에 금발머리를 가진 사람이 근처에 나타나기만 하면 치를 떨며 가게 문을 닫았다는 전설이...
지크는 어느 새 호랑이를 껴안고 잠든 케이린의 모습에 씩 웃었다. 그는 둘을 침대 위로 올릴 까 고민하다가 아무래도 호랑이는 안 될 것 같다는 느낌, 그리고 서로 꼭 껴안고 있다는 점을 보아 그냥 바닥에다 재우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여 바닥 깔개를 밑에 깔아주고 이불을 덮어주고는 나왔다. 그는 뿌듯한 미소를 지었고 이윽고 떫은 표정을 지었다. 완전.. 애아빠 다 됬군. 그러다 그는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에.. 내가 오기 전엔 그럼 대장이 맨날 이런 일을 했다 이건가? 그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가누려 애썼다. 킥, 기절하면 안아다 날랐겠지. 때 쓰는거 다 받아다 주고.. 지크는 어젯 밤 고기를 방에 가득 쌓이도록 한 가득 가져와서는 케이린의 기습 볼 키스를 받고는 잠깐 휀의 얼굴에 스친 멍한 표정에 배를 움켜 쥐었다. 쿠헤헤.. 이거 케이린 대장하고 오래 붙여 놓아야 겠어.
지크가 음흉하고도 휀의 앞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상상을 하고 있을 때, 방 안에선 케이린이 눈을 뜨고 있었다. 꼬마 케이린은 힘들게 손을 들어 살짝 저었다. 그러자 방 외벽을 타고 희미한 빛의 막이 생겼다. 그 막이 생성되자 마자 케이린은 잔뜩 몸을 웅크리고는 끙끙대기 시작했다. 그녀의 온 몸에는 흠뻑 땀이 젖어 있었다. 그녀의 눈가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물론 그녀의 정신은 어른일 때와 별반 다를바 없지만 몸이 어린아이여서 인지 더 쉽게 눈물이 나오는 듯 했다. 파리하게 질린 얼굴, 벌겋게 달아오른 볼. 요즘 그녀가 잠이 많이 오는 것은 영혼의 힘을 손상된 육체가 완전히 감당하지 못해서 그것을 잠재우기 위해 에너지를 많이 소모해서 였다. 게다가 오늘 그녀가 좋아하는 호랑이가 당하는 모습에 흥분하여 - 아마 그녀의 몸이 좋지 않아 제정신이 아닌 상태여서 일 것이다. - 휀의 기술까지 쓰는 바람에 오늘 너무 에너지를 많이 소모한 것이었다. 그녀가 끙끙 앓는 모습에 곁에 누워 자고있던 호랑이가 일어나더니 케이린의 볼을 핥으며 함께 끙끙댔다. 그러자 파르르 눈에 뜨며 케이린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끼이잉.. 끼잉..."
"걱정 하지 마."
케이린은 살포시 웃었다. 그러나 이내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몸을 틀었다. 호랑이는 끙끙대며 그녀의 곁에 누워 그녀를 안았고, 그 모습에 케이린은 힘이 났는지 무리해서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자기 덩치만큼 커다란 호랑이를 품 안 가득 안고 웃었다.
"옛날.. 내 아기같아.."
순간적으로 케이린의 얼굴에 슬픈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수많은 인생들을 스쳐 지나가며 결혼도 해 보았고 아기도 가져 보았다. 그러나.. 모두 세상을 무너뜨리는 그녀의 저주받을 힘에 아기도 죽고 말았었다. 케이린은 그때의 악몽이 되살아나는지 그 조그맣고 귀여운 얼굴에서 가득 눈물을 흘렸다.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호랑이는 낑낑대며 핥아 주었고 케이린은 호랑이를 안으며 소리죽여 울기 시작했다. 호랑이는 마치 케이린의 마음을 알 듯 그대로 얌전히 있었고 한참 후 몸을 땐 케이린은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호랑이에게 웃어보였다.
"너.. 내 친구할래? 너한테.. 처음으로 나 우는 모습 보여줬는데. 친구 할래?"
호랑이는 말을 알아 듣는 것 처럼 고개를 끄덕였고, 케이린은 호랑이의 털을 헤집으며 조용히 말했다.
"내 예전 아기 이름이.. 케이였어. 내 이름에서 따 온거였어. 네 이름 케이로 할께. 좋아?"
호랑이는 긍정하듯 케이린의 어깨에 머리를 얹고 볼을 부볐다. 케이린은 힘없이 웃으며 호랑이를 꼭 껴안았다.
"고마워.."
이내 케이린은 잠들었다. 호랑이는 케이린을 간신히 끌어왔고 지크가 만들어준 잠자리에 케이린을 눕히고 자신도 케이린 옆에 꼭 붙어 누웠다. 잠시 후, 방을 감쌌던 막은 서서히 사라졌고, 두 친구의 숨소리도 천천히 고르게 변했다.
"히잉.. 졸린데에.."
케이린은 정말 한참만에 바뀌는 역할에 익숙치 않은 듯 몸을 돌려버렸고 지크는 득의양양한 웃음을 지으며 케이린을 통째로 들어올려 획획 공중에서 흔들었다.
"아악!"
케이린은 비명을 지르며 지크를 마구 때렸고, 지크는 허헛, 하고 웃었지만 자신의 다리를 무는 호랑이의 등장에 크게 놀라 그만 뻥 차고 말았다. 아직 새끼인 호랑이는 너무 강했던 지크의 발차기에 그만 저만치 날아가 벽에 부딪쳐 버렸고, 그 광경을 본 케이린은 거칠게 몸부림 쳐 지크의 팔에서 벗어나 호랑이에게 달려갔다.
"케이야! 흐응, 케이야!"
케이린은 울상을 지으며 케이를 껴안았고 당황한 지크가 다가오자 케이린은 매섭게 지크를 노려보며 케이를 막아 섰다. 케이린은 케이를 막아 서고 지크가 마치 케이를 죽이려는 양 거칠게 외쳤다.
"싫어! 하지 말란 말이야! 괴롭히지 마!"
그녀의 예상 외의 반응에 지크는 놀라 뒤로 물러났다. 케이린은 독하게 표정지으며 막아서고 있었다. 지크는 마치 아기를 악당의 손에서 막아내는 엄마의 표정을 하고 있는 케이린의 얼굴에 놀랐다. 그러다 끄응, 하면서 케이가 일어서자 케이린은 획 돌려 케이를 꼭 껴안았다. 이리저리 살펴보던 케이린이 갑자기 풀썩 고꾸라졌다. 지크는 당황하여 케이린을 안아 일으켰다. 그리고 케이린의 몸이 불덩이인 데에 놀랐다. 그는 급히 휀에게 데려가 보이려 했지만 자신의 바지를 끄는 케이의 모습에 멈칫했다. 잠시 케이와 실랑이하던 지크가 인상을 찌푸리며 케이린을 다시 보았고, 케이린의 열이 완전히 사라지고 푹 잘만 자고 있는대 또 놀랐다. 그는 케이린을 안고 털썩 자리에 주저 앉았다. 케이는 기다렸다는 듯 지크의 품 안에 뛰어들어 케이린의 뺨을 핥았고, 지크는 한숨을 쉬며 머리를 거칠게 긁었다.
"젠장, 애가 또하나 늘었군. 애 하나만 더 늘면 심장이 남아나질 않겠어."
케이린을 깨우는데 실패하고 오히려 심장만 벌렁벌렁한 채 나온 지크는 밑에서 들여오는 소란한 소리에 껄렁한 표정을 짓고 내려갔다.
"어디 시비만 걸어봐라. 혼내 주겠어."
그는 마치 싸움하고 싶어하는 개구장이처럼 환호성을 지르며 내려갔고, 밑에서 보이는 광경에 축 늘어져 버렸다.
"당장 내 앞에서 이 돼지죽을 치우지 못할까?"
"이, 이봐! 지금 나이도 어린게 뭐가 어째!"
"죄송합니다, 제 친구가 말이 험해서.."
주인장에게 허리를 굽신거리며 사과하는 붉은 장발의 청년과 음식을 싸늘한 눈초리로 노려보며 여관을 날려버리겠다느니 하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하고 있는 블루 블랙 머리칼의 남자. 지크는 계단에서 풀쩍 뛰어 리오의 등을 강타했고 주인과 함께 넘어질 뻔한 리오는 형제의 등장에 후훗, 웃으며 그의 머리를 헤집어 놓았다.
"네가 여긴 무슨 일이야? 아, 슈렌이 네가 케이린 쫓아 왔다던데, 그럼 여기에 휀과 케이린이 있는거야?"
"응."
지크는 그 답지 않게 축 늘어져 말했고, 바이칼의 머리도 평소와 다르게 무성의하다고 보일 정도로 힘없이 헤집어 놓았다. 그 모습에 고개를 갸웃한 리오가 후훗 웃었다.
"무슨 일 있어? 케이린한테 뭐 확인하러 왔다던데, 그래 뭐라고 했어?"
"몰라. 무슨 말은 했는데 기억도 안나."
"저런 멍청이가 뭘 기억하겠나."
"헹, 리오, 또 애인 끌고 온거야? 임무할때 그렇게 노골적으로 애정행각 하다 나중에 주신 할아범한테 걸리면 어쩌려고."
"닥치지 않으면 베겠다!"
"헤헹, 그래 용제 전하께서는 종이 접기 잘 되어 가시나?"
바이칼은 싸늘한 눈으로 지크를 노려보았지만 이미 지크는 그 모습에 흥미를 잃고 축 쳐져서는 리오의 귀를 잡아당겼다.
"어이, 형제. 2층 세번째 방에 애완동물 하나랑 애 하나 있어. 좀 깨워 봐. 아무래도 난 꼬마와는 연관이 없나봐. 사바신이랑 레디는 어떻게 애들 뒤치닥거리 했는지."
의외의 지크의 모습에 리오는 훗 웃으며 별말없이 올라갔고 잠시 후, 리오는 양 어깨에 케이린과 케이를 태운 채 내려와 아리송한 표정으로 지크에게 말했다.
"얌전히 예쁘게 일어나던데? 지크, 너 주부 노이로제 아니냐?"
케이린은 싱긋 웃으며 리오의 귀에다 대고 말했지만 그 말은 공교롭게도 지크와 바이칼, 그 홀 사람들에게 다 들렸다.
"하아, 난 정말 고민이 많다니까? 휀 오빠는 맨날 삐지지, 지크 오빠는 노이로제 있고. 오빠들이 7이니까 그 뒤치닥거리 어떻게 하라고."
케이린은 어깨를 으쓱이며 깜찍하게 말했고 홀 사람들은 허헛, 웃어버렸다. 케이린은 리오의 팔에 매달려 내려섰고, 케이와 함께 바닥에서 잠시 뒹굴었다. 케이의 모습에 바이칼이 싸늘하게 말했다.
"왠 고양인가."
그러자 케이린은 케이를 안아 올려 - 온 몸을 다 사용해서 - 바이칼의 무릎위에 얹고는 싱긋 웃었다.
"안아 보고 싶으셔서 그러는 거죠? 한번 안아 보세요. 아프게 하면 안 돼요?"
그녀의 말에 얼떨결에 케이를 안은 바이칼은 의외로 얌전한 그 모습에 굳은 표정을 풀었고 그 모습에 케이린은 어느새 리오 옆으로 달려가 또 귓속말했다.
"난 바이 오빠가 호랑이도 좋아하는 줄 몰랐어. 그냥 한번만 안아보라고 줬는데 계속 안고 있네?"
그 말에 바이칼은 얼굴을 붉히며 케이를 내려놓았지만 케이린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에이.. 부끄럼 타긴."
아마 그녀가 꼬마가 되어서 어른 모습일때의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면 어떻게 될까. 케이린은 훗, 하고 웃었다. 어쩔 수 없어. 난 사악하거든? 테이블에 턱을 얹은 케이린은 씩 웃었다. 오늘은 누구 무릎에 앉아서 밥 먹을까? 그 때, 저 쪽에서 휀이 내려왔고, 케이린은 쏜살같이 그에게 달려갔다. 휀의 무릎에 앉으며 케이린은 헤헷, 웃었다. 어쩌지? 난 휀 무릎에 앉는게 제일 좋아. 게다가..
휀은 리오와 바이칼의 경악 어린 시선을 무시하며 음식을 시켰고, 케이린과 휀 앞에는 음식이 나왔다. 휀은 아무 말없이 식사를 시작했고 그가 한쪽에 아무도 모르게 덜어놓은 음식과 조그맣게 잘린 고기를 먹으며 케이린은 미소지었다. 제일 친절하거든. 나중에 다 먹으면 음료수도 시켜주고.
케이린은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향긋한 오후, 예쁜 노을빛 아래 그녀의 집 앞 정원의 꽃들은 하늘거렸고 그녀와 썩 어울리는 하얀 원피스와 땋아 올린 머리는 우아한 모습을 만들어냈다. 그녀는 자신에게 달려오는 조그만 꼬마 아이를 두팔을 가득히 벌리며 안기길 기다렸다. 해맑은 미소, 아이를 내려 놓은 짙은 금발의 남자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누가 보아도 평화롭고 아름다운 가정이었다. 케이린은 자신에게 한껏 안긴 아이를 안고 한바퀴 빙글 돌며 환하게 웃었다.
"그래, 케이야, 아빠랑 잘 놀다 왔니? 엄마 안 보고 싶었어?"
"응, 안 보고 싶었어."
그 말에 케이린의 몸이 움찔했다. 그녀는 자신의 목에 얼굴을 묻고 있는 아이를 내려다 보았다. 아이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케이린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엄마가 날 죽였으니까."
케이린의 눈이 경악으로 벌어졌다. 그녀의 하얀 원피스는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고, 아이의 목은 천천히 떠올랐다. 아이는 해맑게 웃으며 날카로운 이빨을 번뜩였다.
"엄마가 날 죽였잖아."
"아니야!"
케이린은 아이의 몸을 내던지며 뒷걸음쳤다. 그녀의 얼굴이 공포로 새하얗게 질렸다. 그러나 아이의 몸은 천천히 일어났고, 목과 따로따로 노는 그 몸에 달린 너덜너덜한 팔이 옆으로 뻗었다. 그 손을 맞잡은 남자 역시 상체의 절반이 짓이겨져 있었다. 그 처참한 모습으로 그들은 케이린에게 환하게 웃어보였다.
"당신이 날 죽였잖아, 케이린."
"아니야.. 내가 아니야.. 내가 원한게 아니야.."
"날 사랑했나, 케이린?"
"엄마, 날 사랑했어?"
맑던 목소리는 이제 피로 얼룩진 주변과 함께 빙글빙글 돌며 처절하게 외쳤다.
"살인마!"
"악마!"
"아니야.. 아니야.."
케이린의 눈이 풀렸다. 그녀의 새까만 검은 눈은 인형 눈 같았다. 그녀의 손이 천천히 입을 막았다. 비명을 틀어막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물러서지 않았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저 두 사람. 그녀는 그렇게 처절하게 공포에 떨며,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아까처럼 팔을 벌렸다. 목과 몸이 따로 놀던 그 아이는 그녀에게 천천히 달려오기 시작했다. 이윽고 아이는 케이린이 숨이 막히도록 격하게 그녀에게 안겼다. 케이린은 꼭 눈을 감았다. 아이의 목에서 떨어진 피가 그녀의 얼굴을 적셨다. 그리고 그녀를 꼭 껴안은 아이의 손이 천천히 그녀의 목가로 올라왔다. 케이린은 다 느끼고 있었다. 아무리 그녀가 몸부림치며 평범한 어머니로, 아내로, 여자로 지내고 싶어도 그녀는 강력한 영혼의 소유자이자 전사였다. 그녀는 질끈 눈을 감아버렸다. 주르륵,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이윽고 그녀의 목가에서 차디 찬 감촉이 느껴졌다.
"으응.."
케이린은 천천히 눈을 떴다. 일렁이는 눈 앞에선 눈을 동그랗게 뜬 바이칼이 있었다. 그는 미간을 좁히며 자꾸 케이린 옆으로 다가가려는, 그래서 자신의 자리를 빼앗으려는 아기 호랑이 케이를 밀치며 케이린의 목을 타고 내려오는 눈물을 닦아주고 있었다. 그는 갑자기 케이린이 눈을 뜨자 당황스러워 하며 획 손을 땠다. 한 손은 여전히 낑낑대며 케이린의 눈물을 핥는 케이를 쓰다듬고 있었다는 것을 당황하여 감추지 못했고, 그것을 본 케이린은 눈물로 엉망이 된 얼굴로 훗, 웃었다. 분위기가 풀리자 바이칼은 헛기침을 하며 물었다.
"무슨 꿈을 꿨길래 그렇게 우나."
그의 얼굴은 약간 붉게 변해 있었다. 만약 원래 모습의 케이린이었다면 완전히 무시했겠지만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케이린은 대여섯살밖에 안 먹은 꼬마의 모습이었고, 어린 아이에게 약한 우리의 용제 전하는 결국 그렇게 말을 던지고 만 것이다. 그의 옆얼굴을 본 케이린의 손이 천천히 눈가로 올라왔다. 그녀의 눈에는 아직도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이 눈물은 꿈의 공포로 인한 눈물이 아니었다. 바이칼, 그 착한 용제 전하, 그녀가 소녀였을 때 가장 좋아했던 그 사랑스런 분, 자신이 어쩜 그 분도 케이처럼 죽이진 않을 까 하는 공포때문이었다. 그러나 케이린은 강한 여자였다. 아니, 자신을 잘 숨기는 여자였다. 그녀는 훌쩍이며 답했다.
"흐응, 지크 오빠랑 사바시 오빠가, 케이 막 잡아다가, 구어먹으려고 그러고, 흐응, 그러고, 바이 오빠가, 케이 구해주려고, 막 싸우다가, 흐앙, 다쳐서, 흥, 리오 오빠가 사탕 구하러 갔는데, 훌쩍, 휀 오빠가 고기 가져다가 사탕 다 사버리고, 그래서 다른 바이 오빠가 나쁜 귀신들 다 죽이고.. 그래서.."
그녀의 앞뒤 맞지 않는 말은 계속 됬고, 바이칼은 한심스러운 기분을 느끼며 케이린을 살짝 흘겨보았지만 어린 아이는 아직 무서웠는지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그 때, 기가막힌 타이밍이게도 케이린은 고개를 들어 바이칼을 바라보았고 그 귀여운 얼굴에 까만 눈이 눈물로 젖어 도움을 구하는 눈빛으로 자신을 향하는 것에 그만 바이칼은 자신도 함께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느끼며 애써 얼굴을 차갑게 만들었다. 그러나 손은 케이린을 안아 올려 자신의 옆에 앉히고 있었다. 그는 무뚝뚝한 얼굴로 주머니에서 새하얀 손수건을 꺼내 케이린의 눈가를 세심하게 닦아 주었다. 그는 자신의 무릎위로 올라오는 케이 위에 손을 얹고는 천천히 말했다.
"꿈은 다 말도 안돼는 것이다. 그딴거 때문에 우느니 차라리 지크 녀석의 웃기지도 않는 코메디 보고 우는 게 나을거다."
그 말에 케이린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는 침대 가에서 다리를 천천히 흔들며 물었다.
"바이 오빠는 울어봤어? 언제 울어봤어?"
그 말에 바이칼은 움찔했다. 그는 슬쩍 케이린의 눈치를 보았지만 그 눈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기에 바이칼은 흠흠, 헛기침을 하더니 조용히 말했다.
"울어 봤어."
"언제?"
케이린은 더 추궁하듯 물었고, 바이칼은 자신도 모르게 다 답하고 말았다. 하긴, 휀도 말려드는 페이스이다. 순진한 바이칼이 어찌 그 사악함을 피하겠는가.
"예전에.. 리오가 나 때문에 죽으러 나갔을때."
"정말?"
그 말에 케이린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바이칼은 멋쩍은지 고개를 케이린에게서 고개를 돌렸고, 케이린은 폴짝 침대에서 뛰어내려 바이칼 위에 있던 케이를 바닥에 내려놓더니 그 위로 올라갔다. 바이칼은 당황하여 "뭐, 뭐냐!" 라고 외쳤지만 케이린은 걱정된 다는 듯 그 조그만 손을 들어 바이칼의 볼에 대 눈가에 손가락을 살짝 대며 물었다.
"오빠 지금은 안 울지? 안 울꺼지?"
그렇게 말하며 케이린은 연신 바이칼의 눈가를 살폈고 바이칼은 얼굴을 붉히며 그 손을 내리고는 케이린의 허리를 잡아 케이 옆에 내려놓고는 일어섰다. 그는 얼굴을 가리듯 고개를 돌리며 나직히 말했다.
"안 울거야."
케이린은 환하게 웃으며 다행이라는 듯 미소지었고 케이와 함께 아침 인사 격으로 함께 뒹굴었다. 잠시 호랑이가 꼬마 아이를 잡아먹으려는 듯한 장면이 연출되었고 잠시 후 케이린은 무언가가 생각 난 듯 케이를 살짝 밀치며 바이칼에게 물었다.
"오빠? 다른 오빠들은 어디있어?"
"또 그 마물들 처리하러 갔다."
"어? 왜 난 안 데리고 갔지?"
케이린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러나 바이칼은 차마 케이린이 몸을 흔들어 깨워도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 지금이 그녀가 30시간을 자고 일어난 것이라는 것도. 지크는 투덜대는 듯 하면서도 걱정 되 안달이 난 표정으로 리오와 휀에게 끌려 나갔었다는 것은 더 말하면 안 돼는 것이고. 케이린은 입술을 삐죽이며 케이에게 말했다.
"힝, 나만 빼 놓고 갔어. 하지만 바이 오빠가 우리랑 잘 놀아 줄거야. 그치?"
그 말에 바이칼은 움찔했다. 그러나 케이린의 눈빛공격은 무서웠다. 게다가 케이 마저도 바이칼을 올려다 보고 있었다. 바이칼은 꿀꺽 침을 삼켰지만 지금 그를 구해줄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바이칼이 그렇게 케이린의 마수에 걸려 꼼짝달싹도 못 한채 부디 지크를 비롯한 가즈나이트들이 늦게야 여관에 돌아오기를 간신히 바라고 있을 무렵, 지크와 리오, 휀은 피의 바다 한가운데 서 있었다.
"마, 말도안돼.."
지크의 턱이 힘없이 벌어졌다. 리오 역시 경악에 찬 눈으로 사방을 거칠게 돌아보았다. 휀의 포커페이스는 깨지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그는 담배 하나를 물고 말았다. 그들이 도착한 옆 마을은 온통 피로 물들어 있었다. 넘치는 것은 오로지 시체, 시체. 리오는 이를 갈며 눈을 적외선 시아로 바꾸었다. 생명 반응을 찾아보려는 것이었다. 벌써 이런 마을이 7개 째. 케이린이 악몽에 시달리며 자고 있던 24시간동안 그들은 그녀의 곁을 지켰다. 어쨋든 친구이자 가즈나이트이니까. 그러다가 안절부절 못하는 지크의 뒷덜미를 잡고 나온지 지금이 6시간 째. 그들은 이런 마을 7개를 뒤지며 생명을 찾았지만 그 어디서도 생명은 찾을 수 없었다. 그들이 케이린의 곁에서, 즉 여관에서 쉬고 있던 시간은 약 하루하고도 4시간. 그 시간동안 천여명이 넘는 사람들을 이렇게 기척없이 다 죽일 순 없다. 지크는 이를 갈며 붉게 변한 벽을 사정없이 후려갈겼다. 퍼억! 하고 벽이 뚫렸지만 그는 아픔은 느끼지 못하는 듯 했다. 지금은 가슴이 더 아팠으니까.
"빌어먹을!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지크의 어깨가 부들부들 떨렸다. 휀은 싸늘하게 주변을 돌아보았다. 지금 그 역시 적외선 시아로 바꾼 상태였다. 사람을 찾아 어떻게 된 것인지 물어볼 참이었다.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리오의 눈이 흉안으로 변했다. 그는 울부짖으며 털썩 무릎을 꿇었다.
"크흑!"
그의 주먹이 바닥을 강타했다. 팔꿈치까지 땅에 뭍혀버렸다. 이렇게 넋을 놓고 사람들을 다 죽게 만들다니! 리오의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떨어졌다. 조그만 아이를 안고 죽어있는 엄마, 한 노인을 덮은 채 세동강이 난 청년의 시체, 동생의 손을 꼭 쥔 채 목을 잃은 꼬마 아이..
그렇게 그들의 임무는 끝났다.
7명의 가즈나이트들은 동시에 이런 비참함을 맞았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도 모른 채, 그 어떤 기운도 느끼지 못한 채 이렇게 사람들을 죽도록 내버려 둔 것이다. 리오, 지크, 휀이 있던 차원 만이 아니었다. 사바신과 레디가 가 있던 차원에서는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하룻밤만에 몰살당해 있었고, 폭주한 사바신을 말리기 위해 레디도 고군분투 해야 했고, 바이론은 그가 악신계를 1/5를 날려버렸을 때 만큼이나 사람들이 죽어 있는 모습에 쓴웃음을 져야 했다. 슈렌은 막 차원에 도착했을 때 이미 천만명 가까이 있던 한 국가가 완전히 몰살당해 있었다. 그렇게 7명의 가즈나이트는 약 1억에 가까운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죽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했다. 누가 죽였는지, 어떻게 죽었는지는 전혀 알아내지 못한 채. 그러나 그 사건은 그날 이후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그 뒤로 100여 년이 흘렀어도.
그 끔찍한 사건이 있은지 100년이 흘렀다.
케이린은 손을 내 저으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저.. 그게.. 리오?"
케이린은 리오에게 도움의 눈빛을 간청했지만 리오 역시 완강했다. 그녀는 팔짱을 끼며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
"지크 너 한테 말해 줬잖아!"
그녀의 외침에 지크는 움찔했다. 그가 머뭇거리자 사바신은 주먹을 우두둑 꺾었고, 레디도 굳은 얼굴로 팔짱을 꼈다. 리오는 훗, 하고 웃었지만 그의 굵은 근육은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고 슈렌 역시 말리지 않고 있었다. 바이론은 크크큭, 웃으며 광기어린 얼굴로 케이린을 노려보았고 휀 마저 담배불을 껐다. 그 모습에 힘입어 지크는 당당하게 외쳤다.
"나 머리 나빠서 다 까먹었다! 그러니까 다시 불어!"
그 한심한 대답에 힘이 빠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케이린은 벗어날 구멍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마지막 발악같이 처연한 눈빛을 보냈지만 7명의 가즈나이트들은 완고했다. 당연했다. 100년동안 어린 꼬마애를 데리고 7명의 보모가 되어 있어야 했다. 그들의 거친 기색에 케이린 옆에 있던 케이가 으르렁 거렸다. 이제 케이도 더 이상 새끼 호랑이가 아니었다. 그 어미보다 더 커진 15미터 짜리 초대형 호랑이로 성장해 있었고 특훈덕에 이젠 그 예전 베히모스와 맞먹는 전투력을 자랑하여 가즈나이트들을 돕고 있었다. 어찌된 노릇인지 수명이 늘어나 지금 케이는 100살이 넘었지만 한창이었다. 그러나 가즈나이트들은 함께 케이를 노려보았다. 케이린은 김빠진 미소와 함께 케이를 거두었다. 하긴, 그럴만도 했다. 레디와 사바신은 다른 가즈나이트들보다 늦게 가즈나이트가 되었다는 이유로, 그리고 고아원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케이린을 가장 많이 떠맡았다. 케이린이 자신을 사바시라고 부르는 것을 처음 10여년 동안은 고치려 애썼지만 결국 포기했다. 레디는 가장 순해서 케이린에게 가장 심하게 뒤흔들린 대표적인 케이스다. 케이린과 가장 친한 친구였다는 이유로 항상 부름을 받았던 지크는 케이린의 눈빛공격으로 케이의 격투 훈련 상대가 되어 주어야 했다. 리오는 여성들과 대화하는데 갑자기 케이린이 "아빠!"라고 부르는 바람에 큰 봉변을 당했던 것이 한두번도 아니었고, 나중엔 리오와 함께 있을 땐 항상 자신을 케이린 스나이퍼라고 사람들에게 소개하며 아빠라고 불러 리오를 곤란에 빠트렸었다. 게다가 항상 바이칼이 함께하면 그는 바이칼 얼굴 보기도 힘들었으니, 그가 소외감을 느끼는 것도 당연했다. 슈렌은 자신의 피아노를 케이린에게 빼앗기고 피아노 강습까지 해 줌으로서 결과적으로는 주신계 천사들 사이에서의 인기도를 높혔고 케이린의 어리광을 가장 잘 받아주었으며 잘 때는 동화책까지 읽어주어 가장 높은 점수의 보모였다는 소문도 돌고 있었다. 휀과 바이론 역시 마찬가지였고, 두 가즈나이트의 살인 비율과 담배, 술이 함께 줄었다는 사실은 주신계엔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주신계 천사들 사이에선 휀과 바이론의 무릎에 앉아 식사를 하는 케이린의 모습, 그리고 그들의 손을 붙잡고 걷는 모습등등 이 찍힌 사진이 나돌았고 그 사진은 휀과 바이론의 고군분투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상자만 냈을 뿐 그 근본 뿌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 외에도 케이린이 바꾸어 놓은 가즈나이트의 이미지는 수없이 많다. 그런데 그 문제의 꼬마 케이린이 이젠 사라진 것이다. 어제 우연히 케이린은 지크에게 이제 꼬마가 되지 않을 것이다, 라는 말을 했고 지크는 갑자기 사라졌다. 그런데 하루도 안 돼서 가즈나이트들이 다 모인 것이다. 케이린은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지크에게 물었다.
"도대체 뭐라고 했길래 다 모인거야?"
그러자 지크는 사악한 미소를 득의양양하게 지었다.
"너 꼬마 안 됀다고. 그러니까 이제 청문회 할 차례라고."
케이린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녀는 어깨를 으쓱여 보이며 웃었다.
"자, 질문 받을께요! 물어 보세요!"
그러자 지크가 냉큼 물었다.
"왜 꼬마가 됬던 거야! 왜 돌아왔고!"
그러자 사바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케이린은 훗 하고 웃었다.
"카로시타와의 전투에서 육체가 크게 손상입었죠. 그래서 영혼의 힘을 견뎌내지 못했기 때문에 에너지 손실을 줄이기 위해 어린아이로 있었던 거에요."
그녀의 말에 모두들 그리 놀라는 얼굴은 아니었다. 그도 그럴것이 100년동안 갖은 생각을 다 하며 그 이유를 추측해 왔으니까. 그녀의 말은 그들의 추측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었다. 그러자 이번엔 리오가 입을 열었다.
"꼬마로 있을 때 어른일 때의 기억을 가지고 있던 건가?"
그 말에 모두의 눈초리가 획 바뀌었다. 꼬마 케이린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영악한 녀석이었다. 자신이 꼬마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이용했고 그녀의 외모나 눈빛은 상대를 꼼짝도 못하게 만들었다. 케이린은 이번만은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아뇨. 하지만 어른일 때는 꼬마일 때의 기억을 가지고 있죠."
그녀의 말에 모두의 어깨가 움찔했다. 케이린은 사악하게 씩 웃었고 모두들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피했다. 이번에는 휀이 차갑게 물었다.
"왜 말 하지 않았나."
그의 말은 짧았지만 모두들 빠르게 이해했다. 카로시타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왜 말하지 않았는가. 특히 지크의 얼굴은 구겨져 있었다. 만약 육체가 손상을 입어 영혼을 통제하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면 그 고통은 컸을 텐데.. 그런데 그녀는 한마디도 없이 깜찍한 꼬마의 모습으로 지냈던 것이다. 케이린은 당연한 게 아니냐는 듯 환하게 웃었다.
"말할만한 게 못됬는데요?"
"젠장, 말할게 못되?"
지크는 나직히 말했다. 케이린은 미안한 듯 미소지었다.
"미안, 미안. 하지만 정말 그랬다고."
"그렇게 쓰러져 잘 정도면 고통이 컸을 텐데, 큭큭..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바이론이 크크큭, 웃으며 외쳤다. 케이린은 손을 들어 손가락을 양쪽으로 까딱거리며 후훗, 웃었다.
"에이, 하나도 안 아팠는데요? 그리고 원래 성장기 어린이는 많이 자야해요."
그녀의 미소는 해맑았고, 언제나 그랬듯 그 미소는 그들이 가슴속에 누군가를 불러 일으켰다. 그런 분위기에서 도저히 청문회(?)를 지속할 수 없었다. 그때, 문이 벌컥 열렸다. 모두의 시선이 동시에 그 쪽을 향했다. 100년 전, 처음 가즈나이트가 되었을 때의 모습을 회상하며 케이린은 살짝 미소지으며 케이의 목 언저리를 쓰다듬었다. 100년 동안, 그녀는 이제 이 세계에 완전히 적응해 있었다. 그리고 그 고통스럽지만 행복했던 순간들은 그녀가 다른 세계의 존재라는 것을 그녀의 머릿속에서 지워놓고 있었다.
방안으로 뛰어든 사람은 피엘이었다. 그녀의 얼굴이 새파랗다. 그녀가 항상 침착하다는 것을 아는 가즈나이트들의 얼굴이 헬쓱해졌다. 피엘이 외쳣다.
"큰일났어요!"
"무슨일인가."
휀은 차갑게 말했다. 피엘의 얼굴은 마치 주신이 땡떙이 치고 도망갔을 때 나오면 적절했을 표정이었다. 피엘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지금 악신계에서 양측 용족들에 대해 무차별 적으로 살육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서룡족과 동룡족 모두 지원 요청을 해 왔습니다!"
그 말에 모두의 얼굴색이 싹 바뀌었다. 말도 안 됀다. 마족들과 드래곤의 싸움에서.. 그렇게 밀린다고? 리오는 다급하게 외쳤다.
"마족들을 드래곤들이 막지 못한다는 겁니까?"
"그건 아니지만 데스발키리들이 함께 있다고 합니다."
리오의 흑적색 눈썹이 심하게 꿈틀거렸다. 데스발키리를 막지 못한다..? 그도 그랬다. 100년이 지났다. 그녀들은 무섭게 발달하며 그들을 따라잡고 있었다. 만약 케이린이 새 가즈나이트가 되지 않았다면 지금 그들은 데스발키리들과 모두 상대하면 어려운 싸움을 해야 했을 것이다. 리오는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지, 지금은 어떤 상태입니까?"
그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잘 아는 피엘은 안경을 고쳐쓰며 서류를 들썩이더니 빠르게 말했다.
"서룡족은 지금 간신히 막고 있지만 먼저 데스발키리들이 공격하는 바람에 드래고니스가 위험합니다. 동룡족은 그나마 좀 나은 편이지만 그 쪽도 위험한 상태입니다. 서둘러 지원해야 겠어요."
바이론은 큭큭대며 그의 다크 팔시온을 쓰다듬었다.
"크크큭.. 귀염둥이야, 오늘 아주 흠뻑 피를 먹여주지.. 오.. 오랜만에 먹어보는 마족의 피겠구나.. 큭큭..."
그의 말과 같이, 모두들 심각해했다. 피엘은 들고있던 서류를 추스리며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모두들 지원가야 합니다. 네명씩. 우선은 휀님과 바이론님께서 한 군데씩 가시는 게 좋을 듯 한데.."
"내가 동룡족 쪽으로 가지."
휀이 간단히 말했다. 바이칼과 만나면 또 티격태격 할 태니까. 바이론은 큭큭거리며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고, 그렇게 결정되었다. 피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휀 님께서 동룡족 지원을, 바이론님이 서룡족 지원을 맡으시고, 나머지 분들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전 서룡족 지원을 하겠습니다."
리오는 굳은 얼굴로 말했다. 지금 바이칼이 몹시 걱정하고 있었다. 지크는 손을 들며 헤헷, 웃었다.
"내가 빠지면 리오 감시 못해. 용제 전하랑 스캔들 나면 곤란해."
그러자 사바신은 얼굴을 찌푸리며 레디의 어깨에 팔을 얹고는 툭 한마디 던졌다.
"저 녀석이랑 같이 있으면 위험해. 나랑 레디는 동룡족 지원을 하지. 어떄, 레디? 너도 그럴거지?"
레디는 거절의 말을 하지 못하고 머리를 긁적이며 웃을 뿐이었다.
"뭐, 저도 사바신만 보내면 불안하니까 함께 가도록 하죠."
마지막 남은 슈렌과 케이린을 피엘이 바라보았다. 케이를 쓰다듬고 있던 케이린의 고개는 살짝 틀고 있었고 피엘은 그녀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케이가 그녀의 다리에 얼굴을 부비며 낮게 으르렁 거리고 있는 것을 보고는 케이린의 마음을 짐작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누구보다도 케이린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것이 케이였다. 케이린의 얼굴은 좋지 않았다. 서룡족과 동룡족. 그녀의 손이 순간적으로 오그라들며 케이의 털을 움켜잡았다. 그녀의 고민은 진했지만 짧았다. 그녀는 낭랑히 말했다.
"동룡족 지원 하겠습니다."
그녀의 말에 곁에 있던 슈렌이 눈을 살짝 뜨며 묵묵히 입을 열었다.
"그럼 제가 서룡족 지원하죠."
그렇게 모든 가즈나이트들이 나누어졌다. 지크는 케이린의 머리를 다 헤집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어이, 케이는 나 빌려줘. 솔직히 내가 다 훈련 시켰잖아. 그녀석 앞발에 채였던 옆구리가 아직도 쑤셔."
그러자 케이린은 훗 하고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지크가 아프다는 그 옆구리를 푹 한대 주먹으로 쳐주고는 싱긋 웃었다.
"웃기지 마. 네가 케이 데려갔다간 너 살아남지 못해. 케이는 나 없으면 못자. 그리고 아프긴 뭐가 아파? 거기다 케이 머리 끼고 멀쩡히 돌리더니만."
지크는 웃으며 케이 앞에 앉았다. 그는 케이를 고양이 다루듯 얼러주며 물었다.
"어이, 너 나랑 같이 갈래? 서룡족 고기 맛있다구."
그러나 케이는 으르렁 거리며 그를 바라봄으로써 지크로 하여금 배신감에 젖게 만들었다.
"쳇, 자식. 내가 절 얼마나 강하게 키워줬는데."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초조해 하는 리오를 데리고 빠져나갔다. 오랜만에 함께 임무를 맡은 형제들끼리 가는 그 모습에 케이린은 미미하게 웃었다. 그녀는 다시 담배를 꺼내는 휀의 손으로 빠르게 손을 가져갔고 휀은 교묘하게 피했다. 100년동안 계속된 전쟁이다. 그들의 침묵에 싸인 싸움은 가면 갈수록 더 정교함을 더해갔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 휀은 또다시 담배를 빼앗겼다. 그녀는 싱긋 웃으며 그 담배를 톡 던졌고 공중에서 담배는 타버렸다. 케이린은 사바신과 레디의 어깨에 양 팔을 얹으며 휀과 그들을 쭉 돌아보며 후훗, 하고 웃었다.
"내가 말하지 않았던가요? 대장도 그렇고 사바시도 그렇고 모두들 그냥 보내면 불안하다고?"
그녀의 말에 사바신은 인상을 구기며 가볍게 그녀의 머리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그 사바시라는 말좀 그만 해. 그리고 우리가 니 보모였지 니가 우리 보모였냐?"
"글쎄? 그건 레디한테 물어보는게 낫지 않아? 레디?"
우리의 물의 가즈나이트 레디는 가장 강력한 가즈나이트 광황과 가장 강력한 물리력의 가즈나이트의 명성을 결정짓는 중대한 결정을 이렇게 끝맺었다.
"후훗, 우리 얼른 가야 하는거 아닌가요? 동룡족 위험하다던데."
"우앗! 잊고 있었어! 가자앗! 출동이다!"
"멍청한 놈."
"케이? 가자!"
"크르르릉.."
케이린은 케이의 등을 살짝 쓰다듬었고 그녀의 다리를 스치며 케이는 우아하게 걸어갔다. 그 거대한 몸집에 케이린은 미소지었지만, 왠지 불안한 출발이었다. 아주 불안한.
아란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