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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 풀천지 둘째 추 재홍입니다. 반갑습니다.
저희 가족을 소개하기전에
먼저 풀천지에 대해서 말씀드려야겠네요.
농장이름을 알려서 농산물을 판매하기 위해 저희가 귀농한지는
8 년차가 되었지만 저희 마을에 4 년전에 인터넷이 들어오게 되었고
그때부터 풀천지 카페를 시작하여 열심히 꾸려오다보니
어느덧 풀천지가 저희가족의 로고가 되어버렸네요.
지금은 남들에게 우리 가족을 한마디로 대변하는게
풀천지라는 이름이니
풀천지 하면 저희가족을 얘기하는거라 이해해주시면 될거에요.
처음에 귀농운동본부에서 아빠에게 강의요청이 왔을때
평소에 아빠의 말씀을 그대로 옮기자면
방송국에 우리 가족이 출연하는 일이나
출판사에 우리 삶의 얘기로 책을 내는 일이나
또 이렇게 우리 가족의 건강한 귀농생활에 대하여
강의를 하는 일이나
그 어느것도 싫지도 않고 좋지도 않다고 늘 말씀하셨지요.
일년 내내 한눈팔지 않고 우리 가족의 리듬에 맞추어
열심히 농사를 지어야 되는 풀천지의 삶이
조금이라도 유명세를 타서 사람들과의 관계가 갑자기 늘어나면
이제 한창 부지런한 농부의 길에 매진해야 되는 우리들에게도
바람직 스럽지 않음을 이유로 이번에도 사양 하셨지요.
그런데 귀농 운동 본부 측에서 재미있는 유혹을 했더라구요.
농촌에 틀어 박혀 죽어라 농사만 짓다가 어느 세월에
아가씨와 만나 결혼을 할수 있겠느냐.이런 기회에
아들들 중에서 한사람이랑 같이 올라와서 강의도 하면서
인연의 물꼬를 한번 터보는게 좋지 않겠냐는거죠.
평소처럼 아빠께선 일단 거절하고 가족회의를 열어 보았는데
당연히 저희 형제는 반대를 하였지요.
맘편하게 살아보자고 모든 것 다버리고 농사를 선택했는데
아빠혼자 강의 하시는 것도 부담스러운 판에
우리까지 골치아픈 일에 휘말릴까봐 열심히 반대를 했지만
자식의 장래를 지나치게 염려해 주신 엄마께서
때가 되었다며 적극적으로 밀어 붙이시더라구요.
믿었던 아빠마저 결국 자식의 장래를 위하여
갑자기 우리도 귀농의 등불을 밝혀야 된다며
귀농 길잡이 역할을 핑계삼아
보람있고 소중한 경험이 될거라며 설득을 시작 하시더라구요.
그 말씀을 듣고 이렇게 강단에 한번 서보는 것이
앞으로 살아가는데 많은 도움이될 것 같고
여러 가지로 의미있는 일이 될 것 같아서
이렇게 아빠와 함께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서열로 따지나 결혼 연령의 시급함으로 따지면
당연히 형아가 먼저 올라와야 되었지만
풀천지의 성자로 불리는 형아의 부지런 함이
바쁜 농사철에 며칠씩 몸을 빼기도 그렇고
사실 제가 집에 남아있으면 가장 어영부영 하는 편이라
늘 농사를 최우선으로 생각하시는
아빠의 배려로 제가 먼저 올라오게된 측면도 있습니다.
어리고 부족한 제가 드리는 말씀이 미숙하더라도 양해해 주시고
실수하더라도 그러려니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뭐 사실 귀농 강의라는게 평소에 입버릇처럼 주장하시는
아빠의 말씀처럼 백번의 교욱보다
직접 몸으로 부딪쳐 보면 저절로 알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떻게 농사를 시작할 것인가에 대해서 도움을 드리기 위해
온 식구가 함께 농사짓는 아주 성공적인 귀농이 되어버린
저희 가족의 이야기가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여러분들께서 뜻을 두신 귀농의 삶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고 길잡이가 되는 좋은 말씀들은
저희 아빠께서 다 해주실 꺼기 때문에
제이야기는 그냥 가볍게 참고삼아 들어주시면 되겠습니다.
일단 저희 가족 소개를 드리자면
저는 학교를 다녔으면 한참 바쁠 고3 이지만
우리 나이로는 19 살 멋진 나이구요
여자 친구가 절실한 저보다 다섯 살 많은 형과
사십대 후반을 오르시는 엄마와
오십대 초반을 내려가시기 시작한 아빠 이렇게 네식구에요.
저희 가족이 귀농한지는 8 년째가 되었고
제가 학교를 그만두고 온가족 모두
함께 농사짓기 시작한지는 4년째가 되었는데요
형아는 저보다 오년전에 학교를 그만두고
8 년째 농사를 짓는 대선배님이 되는 셈이구요.
귀농을 하게된 결정적 계기가 무엇이었냐면
13 년전에 우연히 알게된 안현필 선생님의 건강책 때문이었는데
그 분의 건강책 네권이 저희 가족의 운명을 바꿔 놓았죠.
무엇보다 우리 가족을 너무도 괴롭혔던 형아의 아토피가
딱 한달 남짓 그 책의 건강법 그대로 실천했을 뿐인데
거짓말 처럼 완치되는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으니까요.
아토피가 얼마나 무서운 병인지 겪어 보신 분들은 잘아시겠지만
그 잘난 현대의학으로는 근 10 여년 동안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절대로 낫지 않던 병이었으니
우리가 올바로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줄 절실히 깨닫게 된것이지요.
가족간의 일체감을 중시하시는 아빠의 권유로
온 식구가 그 책을 정독하게 되면서
가족들이 건강의식에 눈을 뜨게 되었어요.
지금도 저희 아빠는 안현필 선생의 책을 알게 된것이
우리 인생의 축복이라고 가끔 말씀하세요.
자세한 얘기는 아빠께서 해주시겠지만
그 책을 읽고 모든 먹거리가 병들어있는 도시생활은
정말 사람 살곳이 아니란 걸 온 식구가 공감하고
5 년 정도 건강공부를 다같이한 다음에 귀농을 하게 되었고
지금도 저희 가족의 건강한 삶의 근원에는
그 책이 자리잡고 있지요.
저희 형의 별명은 풀천지의 성자인데요.
험하고 궂은일을 묵묵히 도맡아 해내는 우직하고 착한 심성으로
그런 별명이 붙었어요.
실제로 생일도 12 월 25 일 크리스마스 이고요.
다른 사람보다 유난히 느린 속도감때문에
바쁜 농사철에 아빠 한테 혼도 많이 나기 때문에
고행을 이겨나가는 성자라는 별명이 아주 딱 맞죠...^^
저희 형은 학교 다닐 때 어떻게 보면 가장 속 편하고
어떻게 보면 가장 불편할수 있는 생활을 했는데요.
예, 늘 꼴등을 맡아 놓고 했었거든요.
저는 형이랑 반대로 공부를 아주 잘하는 편이었고
당연히 그때는 형아는 꾸중을 더 많이 들었고
저는 칭찬을 더 많이 받았었죠.
그런데 함께 농사를 짓게 되니까 그런 등수의 차이가
아무런 의미가 없고
오히려 꼴등인 형아의 그런 묵묵하고 착한 성미가
참 농부가 되어가는 겸손한 마음가짐에 더 맞더라구요.
가끔 아빠께서 형아에게 꾸중을 하셔도 형아는 전혀
개의치를 않고 밝음을 잃지 않는 대단한 경지인데요.
아빠의 꾸중에 전혀 흔들리지 않는 형을 보면서 아빠께선,
“ 저놈은 이미 흙이 되고 바람이 되었다. ” 이렇게 말씀하시고
저한테는 “ 이런저런 재주 면에서는 재홍이가 잘하는 편이지만
진정한 농부로서는 너는 형아를 전혀 따라가지 못한다 ”
이렇게 말씀하시거든요.
농사가 인생을 피폐하게 만드는 공부의 굴레에서
얼마나 사람을 자유롭게 해주는가를 잘 느낄수 있고
사람의 착한 본성을 살려준다는 걸
늘 꾸준하게 밝은 저희 형의 모습에서 가끔 느끼곤 합니다.
엄마는 젊은 시절부터 남자 뺨치는 사업가셨어요.
아빠께서 늘 말씀하시길 아빠보담 엄마가 더 대단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시는데요 제가 볼때도 평소엔 엄마께서 늘 아빠 말씀에
잘 따라주시고 헌신적이신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주시지만
가끔씩 엄마의 강한기질이 보일때면 아빠의 말씀에 수긍이 가요.
풀천지에서 현실적으로 가장 큰 역할을 하시는분이 엄마세요.
원래 좋은 가정의 근원은 좋은 어머니라고 하잖아요 ?
특히 농사를 짓는데에 있어선 어머니들이 가장 큰 비중이 되는데
여기저기 돌보고 갈무리하는 일이 많고 중요하기 때문에
여자의 몫이 절대적이거든요.
평생을 살아온 도시를 떠나 낯선 시골로 귀농하신 분들 나름대로
열심히 농사 지으시겠지만 실은 저희가 귀농이 늦어진 이유가
무려 5 년동안 귀농을 반대하신
엄마의 당연했을 고집때문 이었음을 생각해 보면
이미 가족이 선택한 시골생활을 한번도 후회하지 않고
누구보다 부지런 하고 즐겁게 열심히 잘 해나가 심으로써
풀천지의 오늘이 존재할수 있었거든요.
귀농을 생각하시는 분들은 저희 엄마처럼 도시에서 잘 나갔어도
시골생활을 시작하게 되면 부지런한 농부보다
더욱 부지런한 아내가 되어주셔야 할것입니다.
엄마가 열심히 일하시는 모습을 볼때면
참, 엄마가 저렇게 열심히 일을 하시는데 나는 뭐하고 있는건가
저렇게 가족들을 위한 고마우신 노력을 하시니
나도 열심히 해야 겠구나, 하는 존경스러운 마음까지 생기는데요
유기농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풀매는 일만 보아도
저희 세 남자가 몽땅 합쳐서 풀매는 양이
엄마 혼자서 풀매는 양과 비슷하시니까요..
늘 미안하게 생각하여 세남정네 들도 부지런히 노력한 끝에
이제는 어느정도 두사람만 모이면 따라잡을수 있게 됐는데
한편으론 그동안 너무 열심히 하시어
힘드셔서 그런 것 같기도해 안타까울 때도 많네요.
그런데 또 엄마께서 하기 힘든부분은 세 남자들이 하고
서로서로 역할을 잘 나눠 지며
단점을 메꿔주는 상호 보완적 가족이 되다 보니
농사는 해가 갈수록 잘되고 익숙해지고 편해지고
그렇게 생성된 가족의 힘이란건 정말 세상에 못할 일이없을 정도로 대단해요.
밭을 일구다보면 가끔씩 정말 집채만한 바윗돌이 나오는데
농사짓는데 불편하니까 그돌을 빼야 되잖아요.
혼자 안되면 둘이 둘이 안되면 세남자가 힘을 합쳐 하고
세 남자가 해도 안되면, 아빠께서 부드럽게
엄마 오시라 그래라, 그러면 상황이 끝나요.
어떤 바윗돌이라도 저희 네 식구 앞에서는 안 빠지는 돌이 없죠.
지금은 가족, 가문의 힘이라는 것이 거의 없어지다시피 했지만
옛날에 온가족이 모여 살고 함께 농사를 3대 4대 지을때는
한 가문의 힘이라는건 감히 범접할수 없을정도로 강했잖아요 ?
시골생활 8 년차가 되었지만 이제 시작이나 다름없는
저희 가족의 힘도 아직은 부족하고 미숙한점이 많지만
앞으로 온 가족이 열심히 시골 생활을 잘 지켜 나가면
차츰차츰 강해지리라 확신합니다.
하여튼 세상에 어떤 일이든 온가족이 함께 한다면
어떤 어려움이나 고난도 헤쳐나갈수 있을것 같고
못할일이 없을것 같다고 생각해요.
저희집에 찾아오시는 손님들이 귀농을 하는데 있어
가장 골치아프게 생각하시는 문제가
가족간, 특히 자식들을 설득하는 문제인것 같더라구요 ?
저희 가족은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냐면요,
가족간의 활발한 대화와 끈질긴 토론으로 해결했습니다.
저희 가족이 일할때는 항상 아빠를 중심으로
노닥거리다시피 일을 하니까 별로 힘든줄도 몰라요.
재미있고 기분 좋은 얘기들로 힘든 순간들을 잊어가지만
골치아픈 주제들도 자주 꺼내어 늘 우리의 나태한 마음들을
다잡아 주고 어려운 문제들을 함께 풀어나가는 노력들을
아끼지 않는 가족과의 그런 대화가 힘든 삶을 헤치고
이겨나갈 수있는 자양분이 되어 적지 않은 8 년의 세월동안
온 식구들이 불평불만없이
참 행복하게 농사를 잘지을 수 있는 해결책이 되더라구요.
그리고 저희 부모님이 어디를 갔다 오시면, 아빠의 입담으로
그 이야기를 아주 현장감 넘치게 재밌게 얘기를 해주시는데요,
실제 그 상황보다 아빠 얘기가 더 재미있을 때가 많아요.
그러시면서 어떤 판단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그 일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할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꼭 물어보시거든요. 그러니까 저희는 아빠 얘기를 듣는 내내
자연스럽게 아, 이건 이렇게 해야 되겠다, 내 생각은 이런데,
뭐, 이런 판단을 계속 하게 되죠.
그렇게 얘기를 해주심으로써 일찍부터 학교도 안다니고
사회 경험이 적은 저희 형제한테 꼭 필요한
간접적인 사회 경험과 사회성 판단력을 기르는 훈련도 되고
즐겁기까지 하니까 경쟁으로 시작해서 기계부품 선별하듯 끝나는
학교 교육보다 훨씬 사회적인 사람이 되겠더라구요.
제가 얼마전에 인터넷에서 앞쪽형 인간에 대한 글을 봤는데요.
아시다시피 앞쪽형인간이라 그러면
순간순간 판단하여 행동을 결정하는 앞쪽 뇌가 발달한 사람인데
늘 판단이 빠르고 결단력있고
사회성이 좋고 자존감을 지키면서
자기 자신의 능력을 잘 파악해서 늘 최선을 다하는
자신감 넘치는 향기있는 사람을 말하는데요,
그렇게 앞쪽형 인간이 될수 있는 훈련 방법이
TV 나 컴퓨터를 끄고 신문이나 책을 보고
글을 많이 쓰고, 자주 발표하고 어휘를 조합하는 연습을 하고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고
작은 일도 늘 결정을 내리는 습관을 들이고,
뭐 대충 이런것들이더라구요 ?
저희는 시골 내려오면서 핸드폰도 없애고 TV 도 없앴는데
공교롭게도 그런 훈련 방법이 아빠께서 저희에게 평생을
살아오면서 꾸준히 가르쳐주신 것들이랑 똑같다는걸 느끼면서
신기하기도 했지만 정말 고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저희 가족 농사의 근본정신이 뭐냐면
맛있게 먹고 즐겁게 일하자에요.
세상에 먹는 것만큼 중요하면서도 즐거운 일이 없잖아요 ?
저희집은 옛날부터 먹거리에 대한 노력이 남다른 집안이라
서울 살때부터도 잘 먹었지만
귀농을 해서는 우리가 직접 농사지은 깨끗하고 건강한 식품들로
매 끼니 때마다 깊은맛이 살아있는 음식을 먹게 되었지요.
건강한 식탁을 잘 준비하려면 땅을 살리는 농사가 중요한데
우리 가족의 유기농농사 이야기는 대한민국에서 최고라 자부하는
풀천지님의 강의로 미루기로 하고 농사를 잘짓는것도 중요하지만
수확후 갈무리에 정말 신경을 많이 써야 될거에요.
저희 가족의 농사는 일년의 반을 좋은 퇴비 만드는데 주력하고
나머지 농사의 반은 수확후 갈무리를 최대한 열심히 잘 하는데에 있어요.
그렇게 먹는 것 준비하는 즐거운 노력을 많이하고
건강한 음식에서 나오는 맑은 힘으로 농사일도 더욱 즐겁게
잘할수 있으니까 더 바랄게 없는 삶이죠.
몸이 안좋으신 분들은 아빠와 술한잔 나누며
상담을 해보시면 손해볼일은 없을겁니다.
한가지 불행한점은, 점점 외식이 괴로워져요.
어쩌다가 쉬기도 하고 기분전환겸 일부러 밖에서 먹는 음식은
늘 조미료맛만 나고 이상한 냄새나고...
맛있는거 먹으러 나간다 해도 우리집 음식보다 나은적이 없고
어딜 놀러나가도 고생만하다 돌아와선 가족들 모두 이구동성으로
우리집이 최고라 그러구요...^^
어떤 여행가가 평생동안 전세계를 돌아다녀도 찾지못한
가장 행복한 곳을 은퇴후 자기집 뒷마당에서 편히 쉬다가
비로소 찾을수 있었다는 말을 실감하며 살고 있네요.
이제, 저의 이야기를 할까 하는데요,
제가 지금 19 살이니까
4년전 학교를 그만둘 당시엔 중학교 2학년이었구요.
지금도 그렇지만, 정말 머리에 피도 안말랐을 그 나이에
어떻게 해서, 왜 농사를 짓게 되었는가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말씀을 드릴려고 합니다.
제가 학교를 그만두게 된 이유에 대해서,
학교생활에 잘 적응을 못하고, 어떤 사고를 쳐서 그만두었기를
은근히 바라시는 분들도 많더라구요 ?
글쎄요, 공부 잘하고 정신이 똑바로 박힌 학생이라면
농사 지을 이유가 없을거란 생각과
자기 자식들이 농사를 짓지 않으려고 하는것을
합리화 하시고 싶어서 그런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제 학창 시절을 조금 말씀 드리자면
참, 이런 말씀 드리긴 쑥스럽지만
일단 서울살때부터 공부는 늘 1등 했구요.
운동도 잘했고, 친구들한테 인기도 있었고
싸움도 잘하는 편이었고 예, 한마디로 잘나가는 편이었어요.
물론 학교생활에 대한 스트레스가 전혀 없는건 아니었죠.
친구들과의 문제도 그렇고 공부가 꼴등도 스트레스를 받지만
일등은 꼴등보다 더 심한 스트레스를 받게 되더라구요 ?
일등을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열심히 해야 되고...
꼴등은 시험 등수가 조금이라도 올라가면
그 집에선 축하 파티가 열리고
부모님이 “ 공부하는데 뭐 필요한건 없니 ? 먹고싶은건 더 없니?
오늘은 참 좋은 날이다. ” 이런 대화가 오가고
1 등의 시험 점수가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너 정신 똑바로 안차릴래? 그렇게 할려면 차라리 집어쳐 임마 ” 이러시고 운 나쁘면
얻어 터지기 까지 하니까요.
근데 저는 그것에 대해선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달리는 말에는 채찍질하고 잘달리지 않으려는 게으른 말한테는
낚싯대 끝에 당근 매달아서 뛰게 하는것과 똑같다고 생각했고,
모든 부모님이 잘하는 자식은 더 잘했으면 좋겠고
못하는 자식은 안쓰러워서 그런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그때 제 공부의 목표가 무엇이었냐면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초등학교 1 2 학년 까지는
보통 장래희망이 그렇듯이 부모님께서 저한테 바라셨던 건데요
“ 재홍아, 너는 꼭 최고가 되어라 ”
무엇이든 잘하다 보니 집안의 희망이 되었고
사회 정의를 구현하는 힘있어 보이는 검사가 되고 싶었지요.
그러다가 초등학교 3 학년때 선생님께서
“ 재홍아, 과학자가 되라. 시시콜콜 사람들 잘잘못 따지는일에
쫀쫀하게 애쓰지 말고 과학자가 되어서 세계를 상대하거라. ”
지금 생각해보면 세계를 상대한다는 일은 진짜 텃밭에 풀 한포기 뽑는 것보다 못한 피곤하기만한 일인데, 그당시엔 그 말이 아주 뭔가 그럴듯~하고 뿌듯하게 들리더라구요.
그래서 나름대로 과학자의 꿈을 키워 나가면 되겠다 싶었는데
이번엔 아빠께서 과학이 세상에 미치는 해악에 대해서
겁을 주시며 나중에 닥쳐올 죄책감을 감당할수 있겠냐며
파고 드시는데 고민 되더군요.
그러다 어느날 우연히 TV에서 사암침법으로 유명하신
한의사 금오 김홍경 선생님의 강의를 보게 됐어요.
근데, 이건 뭐 한의학 강좌가 아니고 코미디 프로 같더라구요.
무슨 코미디언이 나와서 강의한다 싶을 정도로 재밌으면서
거침없는 강의속에 시원한 웃음이 넘치고
모든 관객들을 끌어들이는 마력이 있더라구요.
뭐 사람을 고쳐주고 그런것 보다도
과학자나 판검사처럼 냉정한 직업과는 아주 대조적으로
한의사가 되면 저렇게 열정적인 사람이 될수 있구나 하는 것이
참 매력적이더라고요.
그래서 함께 TV 를 보시던 아빠의 음모에
자연 스럽게 빠져들게 되었지요.
건강한 삶을 위하여 의인의 길을 꿈꾸던 우리 가족에게
자연 치료에 대한 모든 것을 마음대로 행할수 있는
한의사는 꼭 필요한 직업이었으니까요.
앞으로 한의사의 길을 가기로 잠정 합의를 보고
한의학과 관련된 책들도 읽어보고 그러다가
시골로 이사와서는 약초꾼으로 유명하신 최진규 아저씨처럼
약초에 대해서도 통달한 약초꾼 한의사가 꿈이었어요.
그때는 만약의 경우에 집에 무슨 문제가 생기더라도
장학생이 되고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꼭 한의사가 되려는 열망이 있었는데요,
근데 어떤일이 있었냐면
그때 유기농 약초농사를 시작하신 아빠께서
서울의 젊고 의식있는 한의사 아저씨들과 형님 동생의 관계를
맺게 되셨는데요, 자세한 내막은 아빠께서 얘기해주실 거에요.
그 한의사 삼촌들이랑 1 년에 한두번 모임을
서울에서는 망년회, 저희 집에서는 여름휴가 식으로 모였는데요.
제가 중학교 1 학년 때 겨울에 연말을 맞이해
부모님이 서울에서 한의사 삼촌들과 망년회를 하시고 오셔서는
수심이 가득하신 얼굴로 하시는 말씀이
한의사 삼촌들이 제가 한의사 된다 하니까 극구 말리더라는거죠.
이유인즉슨, 한의사란 직업이 겉보기와는 달리
얼마나 힘든 직업인줄 모른다는 거에요.
지금은 공부잘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정말 최고 중의 최고만이
한의사가 될수 있는데 그 치열한 경쟁을 뚫고
한의사가 된다고 해서 고생끝 행복 시작이 아니고,
더 괴로운 삶이 기다린다는 거죠.
날마다 환자들 틈바구니에서 시달리고
아픈 사람들 하소연과 푸념만 듣고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는 거죠.
설사 그런 문제를 활인을 하는 자신의 보람이라 생각한다고 해도
모든 업종이 그렇겠지만 까딱 잘못하면 점점 늘어나는
한의원들끼리의 경쟁에서 도태 될수있는 위험도 감수해야 되고...
참, 그당시 저의 꿈이었던 한의사의 삶을 직접 살고 계신 분에게
그런 얘기를 들으니까, 진짜 눈물이 나오더라구요.
정말 온 정성과 마음을 다해서 열심히 해도
행복이 없고 희망이 없는 세상에 대한 엄청난 답답함과
인생을 무슨 ACE 잡는 사람만이 최고인 포커판처럼 짜놓은
어른들에 대한 원망으로 울기는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러니 학교를 더 다닐 이유도
공부를 열심히 해야할 목표도 없어져 버리니까
제가 아빠한테 그러면 저는 이제 더이상 학교를 계속 다닐
이유가 없으니 당장 학교를 그만두게 해달라고 말씀을 드리니까
아빠께서 그렇게 성급히 결정하지 말고
일단 1 년정도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여러 가지로 생각해본 후에
그래도 니 뜻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하자고 하셔서
1년동안 학교를 더 다니면서 고민을 거듭한 끝에
결국 학교를 그만두고 가족들과 함께 농사를 짓게 되었는데요.
사실 저도 처음에는 농사가 좋아서 지은건 아니었구요,
아까 말씀드린 저희 가족이 귀농하여 건강한 삶을 살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던 안현필 선생님 건강책의 영향으로
제 손으로 직접 생명의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건강한 삶의
실천이 뜻깊은 일이라는걸 어느정도는 알고 있었는데요.
뭐 딱히 다른 할 일도 없으니 그냥 한번 농사나 지어보자.
지금 생각하면 참 건방진 마음으로 시작 했어요.
그런데 막상 몇 년 농사를 지어보니까 처음의
철없던 생각과는 달리 정말 끝내주는 일이란게 느껴지더라구요.
아무래도 농사지으면서 가장 문제가 되는 판로 문제에 대해서
아직까진 제가 책임을 지지않아 마음고생 덜한 측면도 있겠지만
가장 큰 매력인 사회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자유감을 빼고서라도
일단 농사는 자기 만족도가 아주 높은 직업인것 같더라고요.
날마다 해마다 똑같은 일을해도 할때마다 새롭고 재밌고 설레고
자신의 터전을 가꿔나가는 성취감이 가득하기 때문에
내가 나의 인생을 살아간다는 자존감도 느끼며
삶 자체에 도취되어갈수 있는 정말 대단한 직업이었습니다.
저희집에 오시는 손님들이 저희한테 가장 많이 물어보시는게
친구가 없어 심심하지 않느냐, 농사짓는 일이 힘들지 않느냐,
결혼은 어떻게 할려고 그러느냐,
이런 삶을 선택한걸 후회하지 않느냐, 주로 이 네가지인데요.
일단 심심하지 않느냐 ?
저도 처음에는 심심하기도 하고, 가끔 친구들이랑 만나서
놀기도 했는데 농사일이 바빠지고 시골 생활의 참 재미를
어느정도 알게 되니까 점점 친구들이랑 삶의 방식도 틀려지고
생각하는 주제와 즐거움의 종류가 틀려지니까
나중엔 친구들을 만나도 별 재미도 없더라구요.
예 저희 아빠 말씀을 빌리자면 농사는 정말 심심할 틈이 없고
살떨리게 재미있는 일인데요.
농사를 지어서 직접 작물을 길러먹는 재미를 맛보고
생명의 경이와 환희를 느끼는 것도 좋지만
농사외의 일들이 정말 재미있거든요 ?
제가 원래 딴짓거리를 좋아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전 농사보다 그 외의 시골 생활이 더 재미있더라구요.
산에 올라가서 버섯따고 약초 캐고 무성한 나무숲 꼭대기 까지 오르내리며
머루랑 다래 돌복숭아,오미자같은 동화속 과일도따고
땔감 마련하고, 나무다듬어서 장식품만들고 조각하고 절구통파고
제가 제일 좋아하는 낚시 하고 개울가에서 물고기 잡고
가끔씩 키우게 되는 야생동물들 돌보고 이런 일들이
너무 재미있으니까요
다만 하고 싶어도 바쁜 농사일에 밀려
시간이 없어서 못하는 일이 더 많지만 그만큼
단순한 생활 같지만 풍족한 삶이라고 봐야 겠지요..
특히 야생동물과의 만남은요,
그 생동감 넘치는 자연과의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에 대한 감동이,
어쩔땐 전율스러울 정도로 짜릿하면서
정말 애틋한 사랑을 함께 나누게 되는데요.
그동안 산골 촌놈 생활을 하면서 멧돼지 만나기부터 시작하여
산토끼 다람쥐 꿩 뱀 청설모 너구리 두더지 산비둘기
부엉이 새끼 노랑 할미새 딱새등 숱한 야생동물들을
잡기도 하고 길러보기도 하였는데 가장 기억에 남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픈 새끼노루 사랑이 얘기를
잠깐 해드릴게요.
귀농한지 이년째 인걸로 기억되는데요
윗동네 사시는 할아버지 덕분에 젖도 떼지 않은
어린 노루를 데려다 코에 분유 묻혀가며
갓난 아기처럼 길렀던 적이 있었는데요.
풀을 먹게되기 시작하면서
여름날 평상에서 밥을 먹을때면
우리 밥도 뺏어먹는등 애완견은 저리가라 할정도로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이름을 사랑이라 짓고
특히 자신을 제일 이뻐하는 엄마를 졸졸 따라다니며
밭을 매러 갈때도 아가처럼 종종종 따라다니며
주변에서 놀다가 해가지기 시작하면 엄마의 옷깃을
작은 입으로 잡아 당기며 그만 들어 가자고 보챌때면
가슴 가득 뜨겁게 전해오는 야생동물과 교감할 때 느껴지는
그 감동, 환희는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하물며 어른들도 그런데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런 자연과의 교감을 가지면서 자라게 해준다면
그보다 더 자식에게 훌륭한 사랑이 어디 있겠어요
정말 나중에 자식이 커서 부모님께
“ 이런 삶을 살게 해주시어 정말 감사합니다. ”
라고 말할수 있는 감사한 사랑을
베푸시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사실은 저희 형제가 부모님한테 그래요,
이런 행복한 삶을 살게 해주시어 감사하다고...^^
근데 딱 한가지 농사짓다 심심한 경우가 있어요.
이건 제가 아주 잘 알죠.
왜 잘 아냐면 제가 상당히 게으른 편이라 잘 아는데요.
해야할 즐거운 일들은 많은데 그저 힘들고 귀찮다는 이유로
포기하고 어영부영 하기 시작하면 농사는 아주 심심해지죠.
그러니까 농사짓는데 심심한거 걱정하시는 분들은
게으른 소질이 있는분이라고 봐도 무방할거에요.
그런데 이렇게 제가 시골 생활을 재미있게 할수 있는
가장 큰 요인이 뭐였냐면요,
어렸을때부터 아빠께서 저희를 자연과 많이 접하게 해주셨어요.
부모님이 아무리 바쁘셔도 주말마다 함께
제가 환장하게 좋아했던 낚시를 가고 산에 가고
비가 와서 그렇게 못할때는 대형 서점에서
좋은 책들에 푹 파묻히게 해주셨어요.
비록 서울서 살았지만 자연이주는 즐거움을 알아가면서 크다보니
나중에 귀농을 하고 농사를 짓는 삶에 별 거리낌이 없더라구요.
그러고 보면 역시 가족들을 무사히 꼬셔서 귀농에 성공하시려면
저희 아빠처럼 꾸준하게 노력하시는 고도의
사전 밑작업이 참 중요한것 같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힘들지 않느냐 ?
제가 좀 특이해서 그런진 모르겠지만
저는 운동을 하거나 농사를 짓는 일이 힘들수록 재밌더라구요 ?
물론 저희 아빠께서 남들처럼 돈을 많이 벌기위해
무리하게 일을 하여 잠도 제대로 못자고
일에 늘 찌들게 되는, 그런 삶을 아주 싫어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루하루 열심히 일해서 만족할 수 있는,
그런 선에서 삶을 짜 나가시니까 성립이 되는 이야기지만요.
물론 저희도 바쁘게 꼭 해야만 하는 일이 있을땐
교대로 한숨씩 붙여가며 밤새워서 할때도 있지만요..
아직까지 농사일 힘들어서 못해먹겠다 !
이런 생각이 한번도 든적이 없구요.
온 몸의 맥이 풀릴정도로 고된일을 해도 뭔가를 해내고 말았다는
성취감, 쾌감을 느끼면서 힘들 수록 재미있는 삶이 되더라구요.
실제로 농촌 생활이 힘들다고 말하시는 분들을 보면
육체적인 고통보다 정신적인 무력감이 더 큰모양이더라구요.
그리고 세 번째, 결혼은 어떻게 하나 ?
여기 계신 젊은 분들, 특히 아직 결혼하지 못하신 분들은
시골에 틀어박혀 농사만 짓고 있으시면 결혼은 어떻게 하나 ?
이런 걱정을 많이 하실텐데요.
요즘 세상이 결혼 연령이 자꾸 늦어지다보니 피끓는 젊음들이
혈기를 주체하지 못하고 방탕한 탕아가 되지 않으면
황금같은 청춘을 사랑도 못해보고 헛되이 늙혀버리는
가련한 세상이기 때문에 처음엔 저도 걱정이 많이 되더라고요.
사실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 보면 제 나이만 해도 벌써
아들 재롱을 볼 나이 잖아요.
물론 저보다 다섯 살 많은 저희 형은
지금 결혼 적령기가 되었다고 결혼 시켜달라고 하다가
부모님께 속없다고 욕만 얻어먹고 조용해졌긴 하지만요...^^
문제는 아빠가 50대 이시다 보니까 찾아오시는 여성분들은 보통
50 ~ 60대 70대 노후 준비를 생각하는 분들이 대부분이니까
좀 젊은 분들이 와야지 어떻게 엮어볼텐데, 하는 고민을 했더니
점점 저희의 자연과 함께하는 삶의 가치가 알려지고 높아지면서
연령층이 40대에서 30대 후반의 비교적 젊은 아주머니들로
그리고 인생의 방향을 잡지못해 방황하는 30대 노처녀 노총각들,
그리고 드디어 20 대의 활발한 아가씨들로 ~ 낮아지더라구요.
두달전쯤에는 25살 26 살의 방송국 신참 작가 누나들이
온 가족이 농사를 짓고 사는 삶이 궁금하다고 하여
방송과는 전혀 상관없이 휴가내고 찾아온 적도 있구요.
최근에는 10대의 풋풋한 여학생들까지 부모님과 함께 찾아오고..
점점 젊은 분들이 저희 삶에 관심을 갖고 찾아오시니까
저희는 저희의 삶을 잘지키기만 하면 별 걱정이 없을것 같네요.
여러분들께선 아직 그런 단계가 아니시기 때문에
방법은 딱 한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농사짓는 귀한 청춘이 대접을 받기는 커녕
결혼도 못하고 외로이 늙어가는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잘못된 사회구조로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는데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여기 계신 여러분들부터 농촌 총각과 결혼하시고
따님을 맡기시는 실천을 하시면 된다고 생각해요.
또 그렇게 하실수 있도록 귀농운동본부 주최측에서
책임을 지셔야 하구요.
실제로 저희 마을에 귀농하신 분들 중에도
귀농학교 동기로 눈이 맞아 결혼해서 농사지으며
행복하게 사시는 분도 있거든요 ?
그러니 서로 용기를 내시고
그래, 농사짓는 일이 틀림없이 행복하고 좋은 일이야,
하지만, 나는 안해. 내 딸은 안돼! 이러지 마시구요
꼭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시는 사고의 전환점을 찾으셔서
함께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마지막 후회하지 않느냐 ?
어차피 가족과 함께하는 삶이 굉장히 중요한데
저희가족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면
5 년동안 줄기차게 반대해오신 엄마께서 결국 체념을 하시고
귀농을 허락 하시자마자 꾸준히 노력해오신 아빠께선
바로 귀농을 결행하게 되었는데 막상 산골 귀농생활을
시작하게 되면서 걱정과 불안 뿐이었던 엄마께선 마음을 다잡고
잘해 보자는 불타는 각오 뿐이었고 오히려 가장인 아빠께서
과연 우리 식구가 힘들고 낯선 귀농생활을 잘 해나갈수 있을까
내색은 할수 없었지만 은근히 고민이 되었었나봐요.
그러던 어느날 귀농한지 6 개월쯤 지난것 같네요.
산에서 들에서 밭에서 온갖 풍성한 먹거리들로
황제의 밥상이나 다름없을정도로 매일 자연의 축복을 대하다보니
갑자기 후회감이 밀려들었던 모양이에요.
이런 풍족하고 좋은 생활을 놔두고 그동안 그 복잡한 서울에서
먹고살기 위해 아득바득 애를 쓰며 살았던 지난 세월이
너무나 아까웠던 생각이 들게된 거지요.
생각잖은 식구들의 뜻밖의 고백을 들은 아빠께서도
가슴으로 뜨거운 것이 올라오며 어쩌면 우리 가족은
귀농의 어려움을 반드시 이겨내고 성공할수 있겠다는
확신을 할수 있었다고 해요.
저는 한번도 농사를 선택한것에 대한 후회를 해본적이 없어요.
아빠께서 그동안 농사가 최고의 직업이라 말씀하시는걸
처음엔 귓등으로 흘려듣다가 직접 지어보면서 저도 이 세상에
농사보다 더 좋은 직업이 없다는 걸 느끼게 됐어요.
그래서 저는 농사에 충분히 우리의 젊음과 인생을 바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저의 꿈과 희망을 심었기 때문에 앞으로도 쭉 농사를 지을거구요
제가 농사를 짓는다는건 저의 행복한 미래를 보장 받을수 있는
가장 확실한 일이 될겁니다.
다만 제가 마지막으로 한가지 바라는일이 있다면 저희같은
삶의가치를 진정으로 믿어주시고 아껴주시는 분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혹시 우리의 삶이 궁금하여
풀천지를 방문하고 싶으신 분들은 주저하지 마시고
풀천지의 방문 원칙대로 마음은 가볍게 양손은 무겁게
풀천지의 산그늘을 찾아 주시면 되겠습니다.
아빠의 귀한 강의 시간을 부족한 제가
두서없는 말씀들로 어지럽혀 드린 것 같네요.
얘기 하기를 좋아하셔서 춘양 방송국 이란 별명을 가지고 계신
아빠의 명강의는 사실 저도 기대가 되지만
일단 제가 먼저 모두 발언 식으로 말씀 올렸으니
혹시 질문 있으시면 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럼 나름대로 마음고생한 저와 달리
본인의 이야기 실력만 믿고 강의 준비를 하나도
하지않은 풀천지 님을 소개 합니다.
첫댓글 과연 풀천지 님의 분신 답습니다. 흠이라면 너무 매끄러워서 19세의 청년 글이라고는 언듯 생각이 가질 않습니다. 몇날 며칠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게 나타나는 군요. 경험에서 우러 나오는 살아 있는 글, 아주 잘 보았습니다.
로마노님의 따뜻한 애정이 풀천지 가족에게로 고스란히 스며오는 귀한 마음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재홍이는 좋은 삶을 위하여 더욱 열심히 노력하는 농부가 될것입니다...
차분하고 소근소근하게 쓴글이 매력적이고 설득력있게 들립니다~ 핵교댕길떄 공부잘한 사람이 글도 잘 쓰나? ㅎㅎ 멋진 재홍이 ~!! 화이팅~!!
팔불출 아빠같은 풀천지의 소감이지만 재홍이의 강의를 일부러 맨 뒤에 앉아서 들어 보았지요. 물론 저야 재홍이의 강의 원고 내용을 알고 있었는데도 생각보담 재미있더군요. 얼마나 흐뭇 했는지 모를 겁니다...^^ 모두 다 서리태 형님의 지속적이고 전폭적인 지지 때문이었음을 감사 드립니다...^^
감명을 주는 강의임에 분명합니다...^^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공감할수 있는 이야기이므로.......수고하셨군요... 이번 강의는 분명 멋진 경험일거라 생각되어지네요...화이팅~~^^
부족한 점이 많은 글을 애정으로 살펴주심을 감사 드립니다. 재홍이에게 강의와 데이트로 이어지는 이번 서울여행은 참으로 귀하고 멋진 경험이 된것 같습니다. 늘 아껴주시는 고요님의 따뜻~한 애정에 행복함을 전해 봅니다...^^
외식이 즐겁지않다는 글에 동감합니다 이글을 보고나니 귀농에 힘보다 걱정이 앞서네요 나도 저토록 할수있을까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일에 회의를 느낌니다 또 다시 고민에 늪으로 빠집니다 생태48기나 도시농부8기 어느쪽이던 해야겠네요 힘주심 감사!.....
네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저희는 올바른 건강공부가 귀농에 가장 큰 힘이 되었습니다. 아무쪼록 푸른 초원의 행복 길을 잘 찾아가시길 바랍니다.
감동 그자체입니다.귀농의 정수를 보여주는군요!!파이팅!!케네다가의 1등주의는 많은부작용/아이슈타인원자탄발명은많은고통을멋진수반햇어요/가문에맞는훌륭한며느리가있으야화룡점점을이룹니다...파이팅!!
감사드립니다 ~ 훌륭한 며느리의 필요성을 역설해 주시니 무엇보다 반갑습니다...^^ 풀천지의 가장 큰 걱정과 소원이 좋은 며느리를 한시바삐 얻는 일입니다...^^
부모님도 마찬가지지만 두 형제의 용단에 경의를 표할 뿐입니다.
따뜻하고 힘찬 격려에 큰 힘을 얻을 것입니다... 감사드립니다.
짝~짝~짝~~~~~~~~~ 늦게 보았습니다
긴글을 읽어주시는 깊은 애정에 감사드립니다...^^
정말 솔직하고 진솔한 마음이 묻어나는 글이네요. 자기 주관이 확실하고 꿈이 있는 젊은이의 모습니 보기 좋습니다.
재홍이 대신 풀천지가 깊은 감사 드립니다. 님의 힘찬 격려에 큰 힘을 얻어봅니다...^^
어제 가입하고 오늘 정독하고
이글 하나만으로도 풀천지 전부를 안것 같습니다
가족간의 사랑과 믿음과 화평이 한눈에 들어 옵니다
정말 멋진 가정입니다
가장 기분좋게 쑥쓰러워 해봅니다 ~
좋은 삶을 찾아가는 님의 정성에 찬사를 보내며
풀천지와의 인연이 서로의 행운이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우리 아들보고 한번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네요
오늘 성년의 날이라는데 이글을 선물로 줘야 할듯 하네요
고마워요
요즘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중1 아들에게 들려주고 싶네요.
저는 입이 아프게 우리 딸에게 읽어 주었습니다. 인생을 느그적거리며 남들이 사는대로 살다 사십이 훌쩍 넘어 버린 저에게는 가슴 져며옵니다. 주체적 삶! 가슴이 떨립니다.
웃고 너무기특하고 대견하고 특히 부모님의 교육방식이 너무 대단합니다.
부모님이 이끌어 주셨기에 정말 자랑스런아들이 보기 좋네요.
늘건강하시고 지금처럼 늘 행복하세요.
아이들과 외국에살면서 항상 동경하던 가족의 삶을 엿볼수 있었던 멋진 가족소개서였습니다.
제가 만약 시집보낼 딸이 있었더라면, 당장 풀천지 밭으로 보냈을텐데요... 저는 이제 겨우 7살아들, 4살딸의 엄마라서...사실 제 아들을 보내고 싶어집니다. 제대로 된 농사를 배우고 오라고요. 공생을 실천하며 몸소 배우고 오라고 보내고 싶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