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이머우 감독의 영화 『인생(人生)』은 오래 전에 한번 본 적이 있는 영화이다. 두 번째로 보면서 『인생』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우리나라에서 원작 소설이 최초로 번역될 때, 그 제목을 “살아간다는 것”(개정판에서부터 “인생”으로 수정.)이라 옮겼다. 중국어 원어 “活着”이 그런 의미를 갖고 있는 것도 같다.
“活着”이란 말에는, 사랑하는 가족들이 다 죽어가더라도, 그래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할지라도 혼자서라도 살아가야 하는 것이 우리네 삶이라는 메시지가 담겨져 있는 같기도 하다. 소설 번역본 머리말에서 작가 위화(余華, 1960 - )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람은 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위해 살아가지, 그 이외의 어떤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그렇지만, 중국어 자체의 의미로는 가능한 번역인지 어떤지 알 수 없지만, 나는 “活着”을 “살아남기”로도 옮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부잣집 아들이, 노름이나 하고 처자식을 돌보지 않았던 부잣집 아들이 격변하는 시대상황 속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는 이야기로도 읽히기 때문이다.
“살아남기”라는 말은, 어떤 고난을 상정하고 하는 말이다. 194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의 굵직한 사건들만 들더라도 국공내전, 대약진운동, 문화혁명과 같은 일들이 있었다. 그러한 격동 속에서 부잣집 아들이 어떻게 살아남았는가를 말하는 것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어려운 시대, 어려운 역사는 주인공 푸구이(원어가 富貴라는 설이 있지만, 원작 소설을 볼 때는 福貴로 되어 있다. 따라서 이 글에서도 우리나라 번역 소설의 표기를 따라서 ‘푸구이’로 쓴다.)에게는 운명과 같았다. 개인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나라를 선택할 수도 없고, 시대를 선택할 수도 없는 것이 개인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모두는 다 “운명”을 살아간다고 볼 수 있지만, 1940년대에서 1960년대의 중국을 살았던 중국인들에게 그 운명은 더욱 가혹한 것이었다.
그 시대는 “빈민이 제일 좋아”(貧民好)라고 할 수 있는 시대였다. 애당초부터 빈민이었다면 더욱 좋았을 시대였을지도 모르지만, 푸구이는 그렇지 못했다. 다행히 그 자신의 도박으로 인해서 후천적으로 빈민이 되었다. 뜻하지 않은 신분세탁(?)을 한 셈이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룽얼(龍二) 대신 그가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집을 잃지 않았다면 지금 죽은 사람은 나지”라고 말하면서, 푸구이는 이제 빈민이 된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온전히 혁명적인 생각에 동조했던 것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생존을 위해서는 “빈민이 좋다”라는 인식을 했을 따름이다. 그는 아내 자전(家珍)과 함께, 그가 빈민임을 증명해 줄 서류를 물에 젖은 빨래 속에서 다시 찾아낸다. 여기저기 찢어진 서류일망정, 그것이야말로 앞으로 그와 그의 가정을 지켜줄 부적이 될 것이었다. 사진 액자 속에, 이리저리 맞추어진 종이 조각(서류)을 고이 넣어서 벽에 걸어둔다.
그런 중에서도 위기는 찾아온다. 바로 아들 유칭(有慶/不賭)이 공동식당에서 일으킨 소동 때문이었다. 농아(聾啞)인 누나 펑시아(鳳霞)를 골려주는 또래 아이들에 대한 유칭의 복수극이었다. 국수의 면 위에 잔뜩 양념을 넣고서는 그 아이의 머리 위에 부어버렸던 것이다. 처음에 푸구이는 “아이들 사이에서 일어난 일”로 인식한다. 어른 싸움을 만들지 말자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국수물을 뒤집어쓰고 울고 있는 아이의 아버지가 하는 말에 기가 꺽인다. “공동식당을 깨부수는 것은 대약진운동을 깨부수는 것이라”는 말에 말이다. 푸구이는 아들 유칭의 엉덩이를 심하게 때린다. 그에게는 어떻게든 죽은 듯이 살아남아야 했기 때문이다.
영화 “인생”에서 가장 큰 비극은 1960년대의 문혁 중에 딸 펑시아가 죽었던 일이라 할 수 있다. 그 이전에 유칭이 교통사고로 죽은 것도 불운이긴 했지만, 분만 중에 딸 펑시아가 죽은 것만큼은 시대의 결과라 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펑시아는 아기를 낳은 뒤, 과다출혈로 죽는다. 이 당시 산부인과 병실을 지킨 의사는 없었다. 의사들은 “반동학술의 권위자”로 몰려서 모두 쫒겨 났기 때문이고, 어린 여학생들(홍위병)이 의사노릇을 했기 때문이다. 의사가 정상적으로 진료를 했더라면, 펑시아는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 40년대의 국공내전에서 공산주의는 승리했고, 근 20년 나라를 다스렸다. 하지만 민중들에게 그 시절은 어떤 의미가 있었던 것일까? “닭이 자라면 거위가 되고, 거위가 자라면 양이 되고, 양이 자라면 소가 된다.” 50년대만 하더라도 “소가 자라면 뭐가 되는냐?”는 유칭의 물음에, 푸구이는 “공산주의가 된다”고 말해준다.
하지만 이제 1960년대 문혁의 광풍(狂風)을 맨몸으로 맞고 난 뒤, 푸구이는 그러한 믿음조차 잃어버린다. “소가 자라면 뭐가 되는냐”는 외손자 만두의 물음에, 할아버지 푸구이는 대답을 하지 못한다. “공산주의가 된다”는 소리를 감히 하지 못하는 것이다. 마음 속에서 믿음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한 믿음도 다 사라졌고, 아들과 딸마저 다 죽은 뒤에도 여전히 푸구이는 살아간다. 그때는 이미 “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위해 살아가는” 것일 뿐, 특별히 삶의 의미를 물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인생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적어도 푸구이의 인생은 그렇다. 그에게는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그래도 할아버지로서 미래에 대한 희망만은 버리지 않는다. “만두는 행복한 시대를 살 것이다.” 어떤 희망적 근거가 있어서가 아니라 손자를 위한 최소한의 축복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2014. 4. 14)
첫댓글 감사합니다. 삶에서 행복, 을 묻기가 버겁고 그저 살아남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위안과 힘이 될 수 있는 작품이라 봅니다.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