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선섬과 남해섬을 잇는 창선대교.
다리를 건너며 내려다본 짙은 초록색의 바다는 물살이 달려가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급히 흐른다.
과연 임진왜란 때 이 부근의 급한 물살을 이용한 전법이 개발되었음 직 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바다엔 눈길을 잡아끄는 설치물이 이곳저곳에 보였다.
아하, 그래 저게 말로만 듣던 죽방렴이구나.
유심히 보니 ‘V’자 형태로 커다란 대나무를 촘촘히 박고
꼭지점 부근에 둥그런 공간(멀리서 봐서 작아 보이지 아마도 직경이 10여미터는 되지 않을까?)이 있다.
(마치 배드민턴공처럼)
밀물 때에 고기들이 그 공간으로 밀려들었다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고스란히 갇혀 있다가
썰물 때 어부들이 수거(?)하는 형태이리라 생각해본다.
그 둥그런 부분을 보니 어린시절 시골집의 고구마 ‘퉁가리’가 생각이 난다.
방 윗목에 수숫대를 새끼줄로 촘촘히 엮어 사람 키보다 높게 둥그렇게 세우고
그 안에 고구마를 가득히 채워두면 그 겨울, 부모님께서는 든든해 하셨다.
위에서부터 조금씩 덜어내 쪄 식사대용을 하고,
가끔씩 썩은 고구마가 생기면 아까워하며 골라내곤 했다.
어린 우리도 배가 고프면 키가 닿지 않아 위로 꺼내는 대신
아랫부분을 슬그머니 좌우로 벌리고 한 두 개씩을 꺼내어
깎아 먹든, 구워 먹든 하던 그 시절. 지나친 비약일까?
[죽방멸치란 기존의 멸치잡이와는 달리 재래식 방식 즉 대나무를 이용하여 그물을 설치하는 방식으로 잡은 멸치를 뜻한다. 그래서 멸치의 은비늘이 그대로 살아 있고 멸치 몸체에도 상처가 하나 없는, 마른 멸치의 최상품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특히 그 은빛이 너무나 아름답기 때문에 은멸치 또는 은빛멸치로도 불린다.]
-자료가공-
이 죽방멸치는 시세가 보통 2kg에 25만원을 상회하니 가히 생선중의 생선이랄 수 있겠다.
일반멸치 가격의 10배에 가까운 가격이다.
이런 멸치는 누가 먹는 것일까? 그런 죽방렴이 20여 군데 이상 눈에 띈다.
돌아오는 길, 창선면을 경유하는 이 쪽은 차량통행이 엄청나게 많다.
차라리 아까 달려왔던 길로 다시 돌아갈걸(20여일 후에 다시 뛸 때는 왔던 길을 왕복하는 방법을 택했다).
힘이 든다. 잠시 쉬었다가자.
길가 바위에 앉아 옆을 내려다본다.
이름 모르는 길섶의 들꽃.
부끄럽게도 장미니 튜울립이니 안개꽃, 카네이션... 이런 이름들은 입에 익은데
저 꽃의 이름을 아무리 생각해봐도 알 수가 없다.
나아가 우리 꽃 이름은 아는 게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흔한 자운영도 나중에 알았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우리 꽃, 우리 풀에 대한 이름보다는 십중팔구는 외국 꽃 이름이 먼저 튀어나오지 않을까?
관광버스, 트럭... 이어지는 차량 굉음이 점점 무섭게 느껴진다.
어느 친구가 도로를 달리는 동안 모자를 여러 개 잃어버렸다고 말하던 생각이 난다.
커다란 차량이 지나가면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돌개바람에 모자가 논으로 날아가거나
도로 가운데 쪽으로 날려 가면 이미 뭉개진 모자를 되찾기도 그렇고 해서,
그냥 포기하고 달린다고 했던가.
해안을 고즈녁히 내려다보고 있는 양지 녘의 봉분 두개가 눈에 들어온다.
나란히 바다바라기를 하고 있는 저 분들은 틀림없이 부부이리라.
참 다정해 보인다.
산다는 것은, 그리고 사후에도 저리 다정히 함께 있다는 것은 아름답다.
도란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새 한 마리가 전선위에서 찌찌쯔쯔 반복음을 내고 있다.
손가락으로 총을 쏘는 흉내를 내면 과연 저 새는 날아갈까.
무협지의 지풍을 흉내 내며 마음을 모아봤다.
"너 날아가거라..." 시늉을 했더니 과연 저 새가 날아간다.
그는 내 살기(또는 치기)를 느낀 것일까?
그 새 한 마리 날아간 뒤편 하늘 아래, 푸른 바다 가운데 점점이 박혀있는 섬들이 보인다.
다도해... 다도해를 정말 실감한다.
점차 힘이 든다.
매일 매일 달리는 친구들에 비하면 형편없는 연습량이 바닥나기 시작한 듯 하다.
저만치서 어떤 할아버지가 경운기를 잡고 낑낑대고 있다가 내가 다가가니 손짓을 한다.
도와달라는 얘기겠지.
시골에서 경운기를 다루어봤거나 적어도 옆에서 지켜보기라고 했던 사람들은 안다.
엔진이 탑재되어있는 앞부분과 적재함이 달려있는 뒷부분을 분리하면
무거운 엔진 때문에 손잡이 부분이 하늘로 들린다.
그 손잡이를 내리누르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데 그 할아버지가 바로 그런 상황에서 힘들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오가는 사람 드문 섬의 길가에서 혼자 어려움을 겪고 계시다가
내가 다가가니 얼마나 반가웠을까.
당연히 도와 드려야지.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다.
내 육중한(?) 체중을 이용하여 손잡이를 아래로 내려드려 몰고 가시기 쉽게 해드렸다.
그러면서 나는 기대했다.
‘그래, 젊은이 고맙네.’아니면 ‘그래, 고생했다, 잘 가그래이...’
그런데 하시는 말씀은 의외였다. 무표정한 얼굴로 손을 저으면서 ‘빨리 가라’ 이었다.
이런 경우가 있나, 고맙다는 말은 못할망정 빨리 가라는 단 한 마디라니.
한참을 달려오면서 상황을 다시 생각해봤다.
그러다가, 달리는 도중에 무릎을 칠 수는 없고, 마음으로부터 느낌이 왔다.
그렇다.
그 노인은 고맙다는 표현을, 최대한의 감사를 그렇게 표현하신 것이다.
배낭을 메고 열심히 달려가는 사람이 자신 때문에 멈춰 서서,
순간이나마 힘을 썼으니 단 한 순간이라도 빨리 가라는 얘기다.
재구성하면 이럴 것이다.
‘(젊은이 고맙네. 나 때문에 시간을 지체했으니 어서어서) 빨리 가거래이...’
이렇게 사람 사는 것은 되씹어보면 그 마음을 알 수 있는 경우가 얼마나 많을까...
저만큼 돌아오는 삼천포대교가 눈에 보인다.
이제는 몇 킬로미터만 달리면 집에 이르리라.
나는 오늘 무엇을 만났던가?
항상 새로움을 잉태하고 있는 바다.
하늘에 첨탑이 닿아있는 바닷가의 낮은 교회.
건강한 일손들이 분주한 고깃배.
실력 있으나 내비추지 않은 겸손한 마라토너.
송아지 부르는 슬픈 어미 소.
난쟁이 아저씨와 그의 고추 밭.
경운기를 몰던 할아버지.
이방인처럼 나를 바라보던 꾀죄죄(적어도 입성으로는)한 섬 어린이.
천방지축 살아온 그 아까운 세월...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진솔한 인간들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성실하게 살아가다 돌아간다면 그것으로 족하리.
최근 ‘선물(The Present)’ 이란 책을 읽었다.
‘현재’도 되고 ‘선물’도 되는 의미 있는 제목.
많은 사람들이 훌륭하다고 말하지만
그러나 그 이전에 톨스토이는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일찍이 갈파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 마주하고 있는 사람에게, 선행을 베푸는 것이라고.
그러니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선물이란 책은 그중의 일부분을 떼어 내어 분량을 늘린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이다.
잘 살자.
잘 살자.
잘 살자.
그러나 어떻게?
......
그 날, 싱그러운 해풍 속에서 섬 해안을 돌고 돌아 지친 몸으로 집에 오니
아뿔싸, 집에 나를 두고 나갔었나보다.
넌 누구니? 하고 묻는 내가 거기에 그대로 있었으니까.
나는 지금부터, 그동안 방안에 죽치고 있었던 나와 대판 설전을 벌여야 할 것 같다.
과연 변화는 있을 것인가.
첫댓글 계속해서 잘 달리고 있구만? 진짜 마라토너가 완성돼 가니 참 흐뭇하더...
어르신의 마음까지 헤아리시고.... 집착하지 않고 달리시는 와우님의 자태가 부럽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나보다 더 지독한 넘, 그만 도라라. 글고 글좀 짝달막하게 써라. 먼 소설쓰냐? 젠장 성질 급한 넘 창선섬 돌다 죽겠네. 어이, 와우 형. 언제 안 초대하냐? 야 치사빤스야. 좀 초대함 해라. 술은 내가 살께 횟판만 몇접시 사라. 아~~ 5월말 종합소득세 신공가 먼가 골 빠게진다. 돈도 없는데 왠 세금??!!
3백6십5일 오픈되어 있음. 초대불요. 암 때나 오세요. 회는 물론 쏘주도 대접해드림. 그리고 사돈 남말 하지 마세요. 풀 가지고 멀 그렇게 오래 우려먹는거여? 내년 동마까지?
도토리 키재기들을 하시는것 같습니다. 지는 좁쌀이지만 바빠서 좋은글들 다 읽지도 못하고 급하게 꼬리표만 부칩니다 와우님! 너무서둘러 끝낸건 아닌지요. 삿갓님 충격받고 싱겁게 피니쉬라인 끊을까 걱정됩니다. (그럴 양반도 아니겠지만 서도....)
아녀, 난 아마도 3년은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