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표적 2. 사건 발생 16일째. "뭐라구? 성주라양이 실종됐다구?" 특수수사과에 성주라의 실종신고가 통보된 건 그녀가 유여사 댁을 나선지 24시간이 채 되지 못해서였다. 어저께 오후 16시 30분에 약속이 있다면서 떠난지 하룻밤이 지나도록 집에 전화 한통 없었다는 것이었다. 관할 경찰서에 실종신고를 낸 성주라양의 부모에 의하면, 자정이 넘도록 딸이 귀가하지 않아서 딸이 갈만한 곳을 다 연락해보았지만 어느 한 사람도 주라를 만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뜬 눈으로 밤을 새운 그날 아침부터 딸을 찾는 전화가 쉴 사이없이 걸려오는데도 주라의 행방은 감감 무소식이었다. 영화촬영 시간을 알려주는 전화, FM 초대손님으로 나오게 되었으니까 잊지 말고 출연해 달라는 전화, CF 광고 계약을 오늘 낮에 해야 된다는 전화 등, 딸을 찾는 전화는 정오까지 계속 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점심시간부터는 펑크를 낸 딸을 질타하는 전화가 연속적으로 걸려왔다는 것이었다. 설마했던 성주라양의 부모는 딸의 신상에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진 거라고 믿고 부랴부랴 경찰서로 달려왔다는 것이었다. 성주라의 실종은 즉각 사건기자의 예리한 시각에 포착되어 석간신문 사회면에 2단 크기로 실렸다. 실종을 기정사실화하는 기사였다. 그리고 다시 하룻밤이 지나자 조간신문들은 일제히 올해의 미스코리아 진이었던 윤보혜의 죽음과 전년도 미스코리아 진인 성주라의 실종을 사회면 톱으로 올려놓았다. 사건 발생 17일째 되는 날, 서울시경 회의실에서는 긴급 수사회의가 열렸다. 국장 이하 시경 간부들이 참석한 수사회의는 시종 무겁고 침울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졌다. 회의를 끝마치고 특수수사과로 돌아온 오부장과 두 과장은 특수수사과 전원이 참석한 소회의실에서 성주라의 실종수사를 지시하였다. 특수수사과는 윤보혜의 탐문수사를 벌이고 있는 특수반과 지능반, 강력반, 체포반 등 모두 35명의 인원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오부장은 제1과는 윤보혜의 수사를 전담케 했고, 제2과는 성주라의 실종수사에 전력투구할 수 있도록 역할분담을 해주었다. 그런 다음에 오부장은 장과장과 2과장을 양 옆에 대동한 채 심각한 표정으로 수사 지시를 내렸다. "전년도 미스코리아 진인 성주라양의 실종은 올해의 미스코리아 진이었던 윤보혜양의 죽음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우리의 분석이다. 성주라양은 납치된 것이 분명하다. 이틀 밤이 지나도록 어느 곳에도 전화 한통이 없다는 건, 그녀의 신상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으리란 걸 삼척동자도 다 느끼는 사실일 것이다. 자, 2과의 특수반은 성주라양의 주변인물에 대한 23일 16시 30분을 전후한 알리바이를 빠른 시간 내에 확인, 2과장에게 보고하도록 한다. 면식범에 의한 납치일 가능성이 높은만큼 23일에 약속한 인물이 주변인물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능반은 유진숙 여사 댁에서부터 성주라양이 움직였을 거리들을 체크해본 다음 탐문수사를 벌여 약속 장소를 찾아내야 한다. 성주라양이 16시 30분에 출발했다면 17시나 17시 30분 정시에 이루어지는 보통의 약속시간을 계산에 넣길 바란다. 아, 그리고 강력반은 관할 경찰서로 가서 호텔, 모텔, 여관 등 숙박업소에 대한 검색, 탐문수사를 한다. 성주라양의 얼굴이 많이 알려진 편이라 수사하는데는 약간의 도움이 될 것이다. 에, 체포반은 성주라양의 아파트단지 내의 불량배, 유여사님 댁 동네쪽의 불량배나 전과자에 대한 수사를 벌이도록 한다. 오고 가는 길에 불량배로부터 납치되었을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 구체적인 사항은 2과장이 지시할 것이다." 오부장이 소회의실을 나가자 2과장은 2과 부하형사들에게 자세한 지시 사항을 내렸다. 2과장의 행동개시 명령이 떨어지기무섭게 2과 형사들이 썰물처럼 소회의실을 빠져나갔다. 소회의실은 교실처럼 넓어보였다. 오부장의 특별배려로 여전히 리베로 수사를 벌이고 있는 남형사와 윤형사는 두 미스코리아의 죽음과 실종을 연계해서 사건을 심도있게 분석해보았다. "강제납치가 분명하겠지?" 윤형사가 먼저 말했다. "그럴거야. 스케줄을 펑크내면서 자신만의 시간을 즐길 수도 있지만 현재로서는 납치된 게 틀림없어 보여."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는 건 아닐까?" "면식범의 소행이 분명하다면 이미 숨이 끊어졌을지도 몰라." 남형사가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그래. 그럴 가능성이 있어. 범인은 사체를 유기했을지도 몰라." "성주라양이 마음 놓고 만날 수 있는 사람은 몇 안 될거야. 윤보혜를 독살한 범인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보여." "나도 그렇게 생각해. 성주라양의 실종으로 인해 공통점이 하나 부각되었어. 전년도 미스코리아 진과 올해의 미스코리아 진이라는 점이야. 어쩌면 범인은 미스코리아를 상대로 하고 있는지 몰라. 그것도 왕관을 쓴 진만을 상대로 말이야." "성주라양의 주변인물 중에 성도착증 증세를 가진 정신병자가 존재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남형사가 말했다. "홀에 모였던 사람들 중에서?" 윤형사가 반문하듯이 물었다. "여왕 같은 미스코리아들을 죽임으로 해서 어떤 쾌감을 맛보려고 살인을 저지를 수도 있어. 이를테면 <미스코리아는 영원히 내 것이다>하는 그런 육욕적인 심리가 거대한 소유욕으로 발전해서 자기 손으로 죽이고야 마는 증세 같은 거 말이야."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옆에서 미스코리아들의 향기로운 숨결을 자주 듣게 된다면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결국은 사랑인 셈이지. 그러나 자신은 미스코리아를 가질 수 없는 몸이고, 곧 그 아름다운 미스코리아들은 꽃과 벌처럼 사람을 찾아 다른 남자의 품으로 떠날거고, 혼자만의 짝사랑인 셈이지. 그래서 극도의 외로움에 빠진 범인은 위기에 처한 어미 고양이가 자기 새끼를 가차없이 물어죽이는 행위처럼 아름다운 미스코리아가 다른 남자의 육체에 더렵혀지기 전에 자기 손으로 죽여버릴 수도 있지." "홀에 있던 남자들 중에서 그런 정신병자가 누가 있겠어?" 윤형사가 말했다. "있지, 딱 한 명이 있어." 남형사는 조용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게 누군데?" "바로 김진건 아나운서야. 그 사람은 10년 동안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사회자를 맡아왔어. 진은 언제나 그 사람 앞에서 탄생되었어. 가장 가까운 곳에서. 윤형사, 기억나?" "뭐가."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서 15명의 본선 진출자가 가려졌을 때의 인터뷰 말이야." "무슨 인터뷴데?" 윤형사는 기억조차 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남형사를 바라보았다. "나도 지금 정확한 인터뷰 대사가 기억나진 않지만 그때 느끼기로는 윤보혜와 김진건 아나운서의 인터뷰는 폭소가 터질만큼 인상적이었어. 김진건 아나운서가 윤보혜에게 첫사랑을 해본 경험이 있느냐고 했을 때 윤보혜는 김진건 아나운서를 복 첫눈에 반했다고 대답한 말 말이야." "그랬었나? ......그거야 순간적인 재치로 농담에 가까운 얘기잖아." "물론 별 생각없이 웃어넘길 수 있는 얘기야. 그러나 김진건 아나운서는 그 말을 받아서 세월이 우리를 갈라놓았다고 하면서 어떤 남자와 결혼했으면 좋겠느냐고 살짝 화제를 돌렸던 걸로 기억해." "대단한 기억력이군." "당연할 수밖에. 난 4번인 윤보혜를 처음부터 진으로 꼽고 있었으니까." "뽑힐 여왕이 뽑혔으니까 기분이 좋았겠네?" 윤형사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질투하는거야?" 남형사가 웃으면서 말했다. "얘기나 계속해." 윤형사가 뾰로통한 얼굴로 말했다. "분명히, 생각해보고 말 것도 없이 두 사람의 대화는 아무 의미도 없는 인터뷰일 수도 있어. 그러나 김진건 아나운서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의 인터뷰 대사는 많을 걸 암시해. 마치 속마음을 숨기듯 우리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이라고 못박고 얼른 어떤 남자와 결혼했으면 좋겠느내고 한 말은 그의 심리의 흐름 상태를 대변해주고 있어." "비약도 엄청난 비약이야. 그건 단순한 인터뷰일 뿐이야. 그런 농담 같은 말 한 마디로 살인동기를 부여한다는 건 지나친 논리야." 윤형사는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윤형사는 남자의 속성을 잘 모르는군. 흔한 말로 열 여자 실다는 남자 없어. 그게 상대가 미스코리아라면 어떤 남자건 본성을 가지고 있게 마련이야. 열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는 부모 심정과 같다고나 할까. 김진건 아나운서가 올해의 진과 전년도 진을 육욕적으로 생각하고 소유욕에 집착한 나머지 살인을 저지를 수도 있는 일이야. 더군다나 김진건 아나운서는 두 진의 향기로운 숨결을 들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있었어. 파라노이아(註: 편집병. 정신병의 일종으로 피해.과대.연애망상증 따위가 있음) 증세가 있다면 살인은 일어날 수 있어." "말도 안 돼. 한 남자가 여러 여자한테 미쳐서 하나씩 죽인다. 그건 나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살인동기야." 두 형사에게 최초의 의견대립이 발생하고 있었다. "뚱뚱하고 마귀할멈처럼 못생긴 여자들이 아니고 엄격한 심사를 거쳐서 인정된 미스코리아들이라니까. 그것도 20세 전후의 꽃띠 나이들이야. 처녀성을 간직한 최고의 미녀들이라니까." "그럼 앞으로 제3의 제4의 미스코리아가 연속해서 살해될 수도 있다는 얘기야?"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어. 실제로 진인 두 미스코리아가 죽었거나 실종되었잖아. 두 명의 진이 말이야." 윤형사는 얼굴색이 약간 변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성주라양은 실종된 거지 살해당한 건 아니잖아." "난 살해당했다고 확신해. 이후에도 아름다운 표적은 얼마든지 있어. 나비향양도 아름다운 표적이 될 수 있어. 제3의 희생자가 미스코리아가 된다는 건 대형 거울을 보듯 분명한 사실이야." "난 도무지 아해할 수가 없어. 극단적으로 표현한다면 자기 것이 아니면서 남주기 아깝다고 무고한 미스코리아를 죽인다는 게 도저히 이해가 안 돼." "그러게 남녀 관계란 영원한 미스터리랬잖아. 결국 정신병자 짓인걸 뭐. 우리는 과학적인 논리에 따라 사실 여부를 가리면 되는 거니까, 비록 두 진의 살인동기가 비현실적인 면이 있다손 치더라도 윤형사가 협조 좀 해줘. 난 윤보혜의 과거를 더 깊이 파고 들어가야 하니까 시간이 모자라." "그래, 좋아. 시간 낭비하는 셈치고 김진건 아나운서를 한번 만나보지 뭐. 어차피 윤보혜의 용의자이기도 하니까." "고마워, 윤형사. 난 윤형사가 이럴 때 최고 아름답더라." "이미 물건너간 칭찬이야. 오늘로서 남형사의 심보를 다 알았어." "뭘? 내가 뭘 어쨌다구." "열 여자 마다 않는 짐승이라는 걸." 윤형사는 정말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예를 들면 그렇다는 거지. 나한테 미스코리아 한 트럭이 실려와도 안 갖는다. 트럭만 갖지." "당연히 그러겠지. 소유할 수 없으니까 트럭에 묻은 미스코리아들의 향기로운 향수라도 맡아야 하니까. 킁킁대면서 말이아." 윤형사는 소회의실 문을 열고 나가면서 입술을 삐죽 내밀고 힘껏 문을 닫았다. "어디 가는거야?" 남형사가 문을 열고 뒤따라가면서 빠르게 물었다. "가긴 어딜가. 월급 받는 처지니까 밥값하러 가는거지. 이따가 수사회의에서 봐." 남형사는 복도를 걸어가는 윤형사의 뒷보습을 보면서 의미있는 미소를 지었다. "아름다운 표적. 그대는 나의 아름다운 표적이지. 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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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5.07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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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혜
08.05.27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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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건 아나운서가 표적이 될수도 있겠네요!! 아는사람이기에 만나서 따라갔을수도 있으니까요!!
김성갑
17.11.20 17:12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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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진건 아나운서가 표적이 될수도 있겠네요!! 아는사람이기에 만나서 따라갔을수도 있으니까요!!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