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꽃이 활짝 폈네.
하이얀꽃 이파리
눈송이처럼 날리네.
향긋한 꽃냄새가
실바람 타고 솔솔
둘이서 말이 없네.
얼굴 마주보며 생긋
아카시아꽃 하얗게 핀
먼 옛날의 과수원 길.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
옛 생각이 외로워/ 휘파람 불면// 고운 노래 귓가에/ 들려 온다/
둘러 봐야 아무도/ 보이지 않고// 저녁놀 빈 하늘만/ 눈에 차누나"(〈보리밭〉).
박화목 작사 윤용하 작곡으로 널리 알려진 노래 〈보리밭〉. 6·25때 고향 황해도
해주에서 부산으로 내려온 박화목(1922~2005) 시인은 1952년 피란지에서 이
시를 완성했다.
월남민 박화목의 많은 시들이 향수를 노래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도 같다.
"꽃피는 봄 사월 돌아오면/ 이 마음은 푸른 산 저 넘어"로 시작되는 〈망향〉이
그렇고 "아카시아꽃 하얗게 핀/ 먼 옛날의 과수원길"로 끝나는 〈과수원길〉 또한
그러하다. 그에게 고향은 시의 근원이다.
김공선이 곡을 붙여 가히 국민가요의 반열에 오른 이 시는 60년대 초 정부가
가난한 문인들에게 불하한 불광동 문화촌에서 한 번도 이사하지 않고 평생을
살았다는 박화목 시인의 정갈하고 고운 정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유독 맥주를
좋아해 술을 한잔 하는 날이면 고향 해주와 젊은 날 떠돌던 하얼빈 이야기로 밤을
지새웠다는 그. 시인은 가도 노래는 남는다. 이제 '먼 옛날의 과수원길'은 우리
모두의 꿈의 무대가 되었다. 하얀 꽃잎이 지는 날, 누군가와 얼굴 마주 보며 말없이
그 길을 걷고 싶다. 시의 위력이다.
-신수정 문학평론가
※오늘로 애송 동시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연재를 사랑해 주신 독자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조선일보 문화부
첫댓글 고운 동시입니다 꽃삽 어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