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행에 힘을 실어준 건, 다름 아닌 박근혜 대통령의 휴가 사진이었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울산으로 깜짝 휴가를 떠났다. 십리대숲과 대왕암공원을 둘러보고 신정시장에서 돼지국밥을 즐겼다. 미러 선글라스와 검정 롱스커트, 크로스백으로 완성한 휴가 패션만큼이나 푸르른 십리대숲과 대왕암공원의 시원한 풍경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울산이 숨겨둔 매력이었다.
동해 바다와 영남 알프스를 끼고 있는 진짜 울산은 가는 곳마다 싱그럽고 푸르다. 태화강 따라 이어진 십리대숲, 푸른 동해 바다를 마주하는 대왕암공원뿐 아니다. 고래잡이 전진기지였던 장생포, 외고산 옹기마을엔 이야기가 넘쳐난다. 슬도와 몽돌해변의 비경도 아름답다.
‘대통령 특수’를 맞아 들썩거리는 울산에 다녀왔다. 속초에 이어 포켓몬 고 열풍까지 분 바람에 울산의 여름은 어느 해보다 뜨거웠다.
간절곶엔 ‘포켓몬 고’ 바람까지… 가는 곳마다 싱그럽고 푸르다
태화강변 ‘십리대숲’의 비밀
‘대숲에선 제법 바람소리까지 일었다. 청명하고 볕발이 고른 날에도 대숲에서는 늘 그렇게 소소한 바람이 술렁이었다.
이미지 크게보기태화강을 따라 이어진 십리대숲은 도심의 힐링 공간, 피톤치드를 듬뿍 마시며 피서를 즐기기에도 그만이다. /류열 영상미디어 기자
그것은 사르락사르락 댓잎을 갈며 들릴 듯 말 듯 사운거리다가도 솨아 한쪽으로 몰리면서 물소리를 내기도 하고 잔잔하였는가 하면 푸른 잎의 날을 세워 우우우 누구를 부르는 것 같기도 하였다.’
울산 도심을 가로지르는 태화강을 따라 10리(약 4.3㎞)에 걸쳐 대나무숲이 이어진다 하여 이름 붙은 ‘십리대숲’. 숲길을 걷는 동안 최명희가 ‘혼불’에서 묘사한 대나무숲 풍경이 눈앞에 그대로 펼쳐졌다. 섭씨 35도에 육박하는 숲 바깥의 폭염이 무색하게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바람이 물으면 숲이 답한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십리대숲 입구를 찾다가 잠시 길을 헤맬 때 대나무 그늘 아래 어르신들이 일제히 손짓하며 길잡이가 돼주었다. “여기 아닌교!” “이짝으로 가이소!” 십리대숲의 시작점인 오산광장 앞에는 대통령 휴가 사진이 전시 중이다. 대통령이 다녀갔다는 소식에 십리대숲을 찾는 방문객이 크게 늘었다. 대통령이 걸었던 길을 따라 걷고 사진을 찍었던 위치를 찾아 인증샷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울산시에 따르면 지난해 대비 주말 1일 방문객이 2000명에서 9427명으로 5배 가까이 늘었다. 생태해설사 손외수씨는 “방문객들이 늘어서 힘들 때도 있지만 대통령이 다녀간 뒤로 울산이 전국적으로 많이 알려지고 십리대숲 찾는 사람이 많아져 뿌듯하다”고 했다.
입구를 벗어나 산책로로 들어서면 한적한 대나무숲이다. 피톤치드로 샤워하며 산책로를 걷기도 하고, 죽림욕장에 한자리 잡고 눕거나, 통통거리는 대나무를 두드려보는 등 숲을 즐기는 방법은 가지각색이다. 생태해설사와 함께 걸으며 대나무의 생태와 십리대숲 숨은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좋다(예약 052-229-3144).
지난달 28일 울산 십리대숲을 걷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청와대 제공
박 대통령은 십리대숲을 걸은 뒤 “환경을 되살린 도심 내 힐링 공간”이라고 했다. 한때 ‘죽음의 강’이라 불리며 오폐수가 흐르던 태화강은 이제 맑은 물이 흐르고 연어와 철새가 찾아오는 생태하천으로 거듭났다. 태화강 전망대에선 십리대숲을 비롯해 태화강 줄기와 대공원 일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전설 깃든 대왕암공원의 야경
울산 바다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는 대왕암공원은 대통령 코스의 하이라이트다. 공원 입구에서 대왕암까지 가는 길은 100년 넘은 해송이 우거져 신비한 기운이 감돈다. 러일전쟁 때 세웠다는 울기등대를 가리기 위해 심은 소나무는 자라서 멋진 숲이 되었다. 등대를 지나 흙길 따라 내려가면 동해 바다를 향해 뻗어나가려는 암석들이 기세를 뽐낸다. 그 경치가 아름다워 동해의 ‘해금강’이라고 불렸다.
대왕암은 그중 단연 돋보인다. 신라 문무대왕의 왕비가 문무대왕을 따라 동해의 호국 용이 되어 바위 아래 잠겼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문무대왕이 묻힌 수중릉은 이곳 대왕암에서 38㎞ 떨어진 경주 앞바다에 있다.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겠다며 용이 된 왕과 왕비의 전설이 뭉클하다.
동해의 해금강이라고도 불리며 울산 바다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대왕암공원. /류열 영상미디어 기자
더위를 피하고 싶다면 해가 진 뒤 찾아도 좋다. 야간 조명으로 이색 운치를 즐길 수 있다. “대왕암 일출도 끝내준다 아입니까? 새벽에 해무가 대왕암 감싸고 있으면 용이 춤추는 것 같고예.” 박정훈(56·자영업)씨가 울산 홍보대사를 자처하며 말했다.
대왕암을 중심으로 왼편으로 이어진 해안 산책로를 따라가면 일산해수욕장, 오른편으로 가면 슬도가 나온다. 해안 산책로는 울산 앞바다와 해안 절경, 송림을 함께 즐길 수 있는 트레킹 코스다. 신라 왕들의 여름 휴양지였고 수심이 낮고 모래가 고와 해수욕 즐기기에 좋은 일산해수욕장, 파도 소리가 아름다운 슬도까지 울산 바다의 매력에 흠뻑 빠진다.
살 거리, 먹거리 넘치는 신정시장
“맛 좀 보이소!” “뭐 드리까예?” 박 대통령은 신정시장을 방문해 돼지국밥으로 점심을 먹고 옛날과자, 고춧가루를 구매했다. 1970년 초 형성된 신정시장은 울산 도심에 위치한 대표적 상설 시장. 울산시청과 가까운 데다 채소와 과일, 생선 등 먹거리부터 잡화, 의류까지 없는 게 없다. 돼지국밥, 칼국수 등 먹자골목이 있어 든든한 한 끼도 즐길 수 있다.
휴가 중인 박근혜 대통령이 28일 오전 울산 신정시장을 방문해 시민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왼쪽) 사진 오른쪽은 대통령 특수를 맞은 신정시장. /청와대 제공·류열 영상미디어 기자
대통령 다녀간 뒤로 신정시장 방문객도 1일 평균 2000명으로 크게 늘었다. “대통령…” 운만 떼도 “이리 가가꼬 절로 한 바퀴 돌았다 아입니꺼” 하며 시장 상인들이 먼저 길을 알려준다. 대통령이 들른 돼지국밥집은 문전성시다. 하루 40그릇이던 돼지국밥 매출이 150그릇까지 늘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오찬을 드신 자리입니다’라고 적힌 자리에 앉아 돼지국밥 한 그릇 맛보는 것도 색다른 추억이다.
슬도·몽돌해변 비경도 아름답네
“촤아, 촤아~” 파도와 바람이 빚어내는 소리로 가득한 슬도는 울산의 숨은 비경이다. 방어진항 입구에 떠있는 이 작은 바위섬은 오랜 세월 항구의 파도와 바람을 막아주는 방파제 역할을 했다. 바위에는 돌맛조개들이 서식하며 만든 수많은 구멍이 있어 곰보섬이라고도 불렸다. 파도와 바람이 세게 몰아치면 이 구멍 사이로 나는 소리가 마치 거문고를 켤 때 나는 소리같이 들린다고 하여 섬 이름이 슬도(瑟島)다.
까만 몽돌이 펼쳐진 이색적인 주전 몽돌해변의 모습(왼쪽)과 바위섬과 등대가 어우러져 아름다운 슬도의 모습. /류열 영상미디어 기자
가운데 우뚝 솟은 무인 등대와 구멍 숭숭 뚫린 바위가 제주도를 떠올리게 한다. 드라마 ‘메이퀸’ ‘욕망의 불꽃’의 촬영지였단다. 방파제를 건너다보면 해녀들이 물질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거문고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하여 등대 그늘에 앉으니 방파제와 방어진항의 풍경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눈에 들어온다.
주전 몽돌해변에선 파도가 밀려들고 나갈 때마다 ‘도로로로로’ 소리가 난다. 바닷물에 젖은 까만 몽돌 때문이다. 모래 대신 몽돌이 길게 이어진 주전 몽돌해변도 울산의 빼놓을 수 없는 비경이다. 이동규(34·교사)씨는 “주전까지 왔으면 북쪽으로 정자, 강동 해변까지 이어지는 해변 도로를 달려보라”고 권했다. 울산 토박이들이 강추하는 동해 드라이브 코스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울산 야경을 즐길 수 있는 울산대교전망대. /울산시청 제공
울산대교전망대에 올라 야경도 즐겨보자. 지난해 6월 개통한 울산대교는 남구 매암동과 동구 일산동을 잇는 길이 1800m 현수교다. 전망대에 오르면 울산대교를 비롯해 공업 도시 울산을 대표하는 조선, 자동차, 석유화학단지와 멀리 영남알프스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일몰 후 울산대교에 조명이 켜지고 태화강 물결이 공단 불빛과 어울어져 반짝이는 야경이 아름답다. 전망대는 오전 9시부터 밤 9시까지 무료로 운영된다.
울산, 테마별 여행도 강추!
고래를 알고 싶다면 울산 장생포
울산 하면 고래를 빼놓을 수 없다. 그 인연은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반구대 암각화(국보 285호)에는 귀신고래가 새끼를 업고 다니는 모습과 향고래·범고래 등과 고래를 사냥하는 장면이 새겨져 있다.
이미지 크게보기고래에 관한 모든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는 장생포 고래박물관(위)과 돌고래를 직접 볼 수 있는 장생포 고래생태체험관. /류열 영상미디어 기자
장생포는 1986년 상업적 포경활동이 전면 금지되기까지 고래잡이의 전진기지였으며, 영화 ‘인디아나존스’의 실제 모델인 고고학자 로이 채프먼 앤드루스 박사가 ‘한국계 귀신고래(Korean Gray Whale)’라는 이름을 붙인 곳이기도 하다.
장생포고래문화특구에선 고래박물관, 고래생태체험관, 고래바다여행선 등 고래와 관련한 모든 것을 만날 수 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고래와 포경 관련 유물을 볼 수 있는 고래박물관에선 범고래, 브라이드고래의 골격으로 실제 고래의 크기를 가늠해볼 수 있고 13.5m에 달하는 한국계 귀신고래 실물 모형도 볼 수 있다. 고래생태체험관은 장꽃분, 장두리, 고아롱 세 마리의 돌고래를 만날 수 있어 인기다.
매일 3회(오전 11시, 오후 2시·5시) 먹이 먹는 시간을 이용해 고래생태설명회가 열린다. “몸길이 4m를 기준으로 이보다 크면 고래, 작으면 돌고래로 분류해요. 돌고래의 몸길이를 한번 볼까요?” 아쿠아리스트의 말이 끝나자 장꽃분이 몸체를 드러내며 물 위로 뛰어올랐다. 물이 흠뻑 튀어도 관객들은 즐겁다.
돌고래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해저터널도 인기 만점. 4월부터 11월까지 고래 출몰 지역으로 고래 탐사를 떠나는 고래바다여행선은 운 좋으면 참돌고래나 밍크고래를 직접 볼 수 있다.
외고산에서 옹기 만들어볼까
“옛날 생각난데이” 외고산 옹기마을은 추억을 소환한다. 집집마다 장독 한두 개쯤 있던 시절, 동네 아이들이 실수로 장독이라도 깨는 날엔 이웃집 아주머니의 날벼락 소리가 골목을 넘어다녔다. ‘옹기’ 하면 장독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옹기마을은 옹기를 제작하는 공방과 가마가 있어 물레 돌리는 장인들과 가마, 완제품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외고산 옹기마을에서 옹기를 빚고 있는 장인. /류열 영상미디어 기자
한국전쟁 이후 장인 허덕만이 옹기 제작에 적합한 외고산에 자리 잡은 것이 시초. 당시 부산을 비롯한 남부지방에 피란민이 몰려 있어 옹기의 수요가 늘고 옹기를 배우려는 도공이 모이면서 마을이 됐다. 옹기마을 내 옹기박물관에선 기네스북에 등재된 높이 2.2m, 둘레 5.2m, 무게 172㎏의 세계 최대 옹기를 볼 수 있고, 옹기아카데미에선 흙 놀이와 도예 체험을 할 수 있다.
해돋이? 포켓몬 고 명소 된 간절곶
간절곶은 독도 다음으로 해가 일찍 뜨는 해돋이 명소다. 먼 바다에서 바라보면 긴 장대처럼 보인다고 해서 간절(艮絶)이라 이름 붙었는데 ‘절실히 바란다’는 간절과 음이 같아 새해 첫 일출을 보며 소원을 비는 명소가 됐다.
최근 포켓몬 고 특수가 한창인 해돋이 명소 간절곶의 명물 ‘소망우체통’. /류열 영상미디어 기자
‘소망우체통’이라 이름 붙은 높이 5m 대형 우체통도 명물. 최근엔 포켓몬을 잡으려는 간절한 마음으로 게임 유저들이 하루 1만명 이상 이곳을 찾는 탓에 당분간 간절곶의 운치를 여유롭게 즐기긴 어렵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