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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언니] 04
S#1. 은조와 효선의 방
효선 : (이제까지와는 다른 효선이가 되어서) 거.지..... 꺼져!
은조 : ......
S#2. 마당
기훈, 종이가방 들고 들어서는데,
효선(E) : (악쓰는 소리) 꺼져! 꺼져버리란 말야!
기훈, 흠칫 놀라서 아이들 방 쪽을 본다.
S#3. 아이들 방
효선, 갑자기 방안으로 들어서서, 은조가 함부로 놔둔 꽃다발을 집어들더니 벽을 향해 힘껏 던진다.
꽃다발이 벽에 철썩 부딪혔다 케잌 위로 툭 떨어진다. 꽃잎들은 허공에 뿔뿔이 흩날렸다 떨어져 내린다.
이제 침착해진 은조, 그러는 효선을 가만히 보고 있다.
효선, 은조를 제 깜냥껏 사납게 노려본다.
효선 : 거지 같은 게, 못생긴 게, 못돼 처먹은 게, 거지발싸개 같은 게! 여기 우리 집이야! 꺼져!
은조 : ......
효선 : (보이는 대로 은조의 책이며 가방이며 옷이며 다 집어다 은조 앞에 던진다) 당장 꺼지라구 이 거지야!!!!
은조 : ......
효선 : 당장 안 꺼져 너?!!!
은조 : (조용한) ..... 싫어.
효선 : ? 뭐?
은조 : 니가 꺼져.
효선 : 뭐라구?
기훈 : (방 앞에 놀란 얼굴로 서 있다)
은조 : 나두 여기가 좋아서 있는 건 아니지만, 니가 나가라구 해서는 안 나가.
효선 : 이게 진짜!!
은조 : 정말루 정말루 여기 있기가 지긋지긋해지면, 내가 내 발루 나가지 너 같은 게 꺼지란다구 꺼지진 않아.
은조, 효선을 확 밀쳐내고, 문 앞의 기훈은 더 세게 밀쳐버리고 밖으로 사라진다.
기훈, 어리둥절해서 그러는 은조를 보는데, 효선, 씩씩대며 그런 기훈을 확 치고 은조를 쫓아나간다.
효선 : 야! 너 거기 안 서?
기훈 : (연타로 맞고 저만큼 물러서 있다)
S#4. 대문 앞
은조, 벌써 저만큼 가고 있고, 효선, 대문 박차고 나와 둘러본다. 가는 은조를 발견한다.
효선, 약이 바짝바짝 올라 죽겠다.
효선 : (쫓아가며) 송은조! 너 죽었어!
S#5. 인서트 카드
- 송은조, 네가 좋다. 너랑 사귀고 싶다. 사귀자. 잘해줄게. 김동수.
S#6. 아이들 방
기훈, 폭탄이 된 방 안에서 카드를 읽고 있다.
기훈 : ...... 뭐야 이 놈.... (기분이 점점 나빠진다) 아 뭐야 이 놈... 쪼끄만 것들이 하라는 공부는 안하구 무슨....
(카드 들여다보며) 글씨 하구는.... 허 참 내, 아 진짜.... 뭔데?
S#7. 마을 느티나무 앞 / 그 앞길
동수, 느티나무 아래 앉아서 머리를 쥐어뜯다가, 맥없이 땅바닥의 풀을 쥐어뜯다가, 한숨을 쉬었다가,
다시 머리를 쥐어뜯었다 하더니, 갑자기 불에 덴 듯 벌떡 일어난다. 저-기서 은조가 오고 있다.
동수, 헝클었던 머리 매만지고, 옷도 매만지고, 주춤주춤 은조를 향해 마주걸어가다가, 다시 또 딱 멈춰버린다.
은조 뒤에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면서 오고 있는 효선.
효선 : 야!
은조, 대꾸 없고, 효선, 바짝 따라가더니 뒤에서 은조의 머리채를 확 휘어잡는다.
은조, 버둥거려서 효선에게 잡힌 머리채를 빼내면, 효선 손에 은조의 머리카락이 한 줌.
은조, 그 손의 머리카락을 본다. 효선, 자기도 자기 손의 머리카락을 본다.
은조 눈에서 레이저빔 나오는 순간,
동수, 바라보다 눈을 질끈 감는다. 동수 시선으로 보면, 저쪽의 두 아이는 육탄전을 벌이고 있다.
동수, 눈 살짝 떠서 다시 본다. 은조가 머리로 효선의 이마를 받아버리고 있다.
동수, 다시 눈 질끈 감는다.
은조와 효선의 머리가 다 풀어져서 광년이처럼 산발이 돼 있고, 은조는 입이 터졌고, 효선은 이마가 벌겋게 부어올랐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있는 두 아이.
효선 : 니가 바라는 게 이런 거면, 나 할 수 있어. 미워해줄게. 싫어해줄게. 죽도록 괴롭혀줄게.
내가 못할 거 같...(아? 하려다가 문득 은조 입술의 피를 본다.....)
은조 : ......
효선 : (저도 모르게) 언니야 너 피난다...
은조 : .....
효선 : (저도 모르게 손이 은조의 입술로)
은조 : (멈칫) .......
효선 : (아프겠다..하는 안타까운 시선이 은조의 입술 위에 고정돼 있다, 손도 입술 쪽으로 점점 가까이).... 어떡해....
은조 : (효선의 부어오른 이마를 본다. 갑자기 혼란스럽고 짜증이 밀려와, 다가오는 효선의 손을 세게 철썩 하고 쳐내버린다)
효선 : (쳐내져서)......
은조 : (노려보는) .....
효선 : ...... (다시 독해져서) 나-아압-쁜 년!!
은조 : (벌떡 일어나는)
동수, 은조가 벌떡 일어나는 것 보고 슬금슬금 뒷걸음질.
은조, 동수 쪽을 휙 본다. 동수, 헉 놀라서 휙 뒤돌아 도망치는데
은조 : 너! 거기 서 봐! 사귀자며! 사귀자구!
동수, 전속력으로 도망쳐가고 있다.
S#8. 운학루 마당
엉엉 울면서 들어오는.
효선 : (울면서) 효선이 왔다-
우는 소리에 깜짝 놀라서 부엌에서 뛰어나오는 꽃님, 순분.
꽃님 : 왜 울어?
순분 : 아이구 맛박은 그게 뭐구?
효선 : 함무니-
S#9. 안방
강숙, 심각한 얼굴로 통화중이다가 밖의 소리를 듣는다.
강숙 : (전화. 한껏 죽인 목소리로) 끊어. 또 한 번만 더 집으루 전화질 했다간 확 혀깨물구 죽어버릴 거야.
나 한다면 하는 년인 거 알지? 깨문다면 정말 깨문다구!
전화 내던지듯 끊어버리고 밖으로 나가는 강숙.
S#10. 마당
강숙 : (나오며) 효선아!
효선 : (미처 신발도 신지 못한 강숙에게 달려가 철퍽 안기며) 엄마--
강숙 : ??
할머니들, 강숙을 보고는 자기들끼리 쿡쿡 찌르고 얼른 부엌으로 숨어버린다.
S#11. 효선과 은조의 방
산발인 머리를 대충 손가락으로 긁어 묶고, 효선이가 폭탄으로 만들어놓은 방을 치우고 있는 은조.
밖에서 들려오는 효선이의 울음소리. 은조, 애써 무시하고 책 챙기는데,
강숙(E) : 왜 울어 울애기? 울면 엄마가 마음이 아프잖아.
은조 : (픽 하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청소 계속한다)
효선(E) : 은조 나쁜 년이야아아아- 은조를 왜 낳았어 엄마? 은조 좀 낳지 말지--- (대성통곡)
은조(N) : 내 말이. 나 좀 낳지 말지...
대성(E) : (버럭) 그게 무슨 소리야!!
S#12. 마당
대성이 마당 안으로 들어서 있다. 효선과 강숙, 대성을 본다.
대노한 낯빛의 대성.
강숙 : 여보....
대성 : 너 이눔자식 이리 와!
효선 : (강숙에게 달라붙으며) 왜 나만 갖구 그래!
대성 : 이리 안 와?
효선 : (강숙에게 더 찰싹 밀착되며) 싫어!
강숙 : 여보, 효선이 놀라잖아요. 왜 그렇게 무섭게 구세요?
대성 : (와서 효선의 손목 틀어쥐고 강숙에게서 떼내버리는)
효선 : (잡혀가며) 엄마, 엄마-
강숙 : (말리며) 여보, 이러지 마시구,
대성 : (강숙의 손 뿌리치고 효선을 데리고 가면서) 할멈- 회초리 가져와!!
효선 : (아빠가 가장 화났다는 신호다, 효선, 겁에 질렸다) 아빠,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대성 : 입 다물어.
강숙 : (갑자기 은조의 방 쪽으로 휙-)
S#13. 은조와 효선의 방
케잌 위에 박힌 꽃이파리며 몹쓸 것들을 걷어내 쓰레기통에 버리고, 케잌만 들고 일어서서 밖으로 나가려는 은조.
문이 확 열리고 강숙이 서슬 퍼렇게 들이닥친다.
은조 : ?
강숙 : (버럭) 또 무슨 짓을 했길래 효선이가 저래!
대성(E) : 그만 둬요 은조엄마!!
대성 올라오는 소리. 잠시 후 문 앞에 대성이 나타난다.
대성 : 당신은 할 일 하구 넌, 따라 와라. (간다)
강숙 : (대성이 못듣게 작은 소리로) 무대가리 같은 년. 효선이 저 쪼끄만 거 하날 어떻게 못해서 맨날 이 소란이야?
저런 건 열이라두 찜쪄 먹겠다 이것아!
은조 : (들고 있던 케잌을 바닥에 철퍽 던져 엎어버리고 강숙을 노려보는)...... 왜? 맘 아프다면서?
애기가 울어서 맘이 아프시다면서!
강숙 : (은조의 등짝을 철썩 갈기고 내보내면서) 나가봐 얼른! 따라오라잖아!
S#14. 뒤채 창고방
물건들을 쌓아두는 방.
할머니들, 스무 개쯤 되는 회초리를 찾아서 기훈에게 준다. 기훈, 받고서 놀란다.
기훈 : 정말 이걸... 쓰신다구요?
S#15. 대성의 서재 (밤)
은조와 효선, 대성 앞에 무릎 꿇고 앉아있다. 효선은 벌써부터 겁에 잔뜩 질려 있고,
대성 : 너희들이 사이가 좋아질 때까지 은조 방 따루 쓰는 거 허락 안한다.
은조 : (휙 본다)
효선 : (가만히) ....
대성 : 지금 같으면 너희들, 따로따로 방문 걸어잠그구 하루종일 말두 안 섞을 거 같아. 그렇게 되면 사이가 점점 벌어질 거다.
그리구 난, 이 렇게 가족을 만든 걸 후회할 거 같다.
효선 : ......
은조 : ......
대성 : (버럭) 내가 마음이 아프다구 이놈들아!!
효선 : (움찔) .....
은조 : ......
대성 : (밖을 향해) 회초리 안 가져와?!
바로 문이 슥 열린다. 기훈, 회초리 들고 조심스럽게 들어와, 대성 앞에 놓는다.
대성, 회초리 하나 든다. 기훈, 어물쩡 서 있으려는데, 대성이 본다.
기훈 : .......
대성 : 왜, 너두 맞을 테야?
기훈 : 사장님, 제가 이놈들을 잘 타일러보면 안 될까요?
대성 : 그럼 너두 맞어. 거기 서 있어!
기훈 : (헉......)
대성 : 효선이 와.
효선 : (무릎 걸음으로 뒤로 물러나며) 아빠,
대성 : (버럭) 와!
효선, 죽을 상으로 와서 선다.
대성 : 잘못했다구 생각되면 잘못했다구 말 해. (회초리 들고)
기훈 : (눈 질끈 감고)
대성 : (철썩!)
효선 : (한 대 맞자마자 펄쩍펄쩍 뛰며 곧바로 무릎 꿇고) 아빠 잘못했어. 다신 안 그럴게. 아빠 용서해주세요. 응? 응? 응?
대성 : 잘못했어?
효선 : 잘못했어요--- (운다)
대성 : 가.
효선 : (종아리 문지르며 있던 자리로)
대성 : 은조 이리 와서 서.
은조 : ......
대성 : ......
은조 : (까짓거 맞지 뭐 하는 얼굴로 일어서서 대성 앞으로)
대성 : 너두, 잘못했다구 생각되면 말을 해라.
은조 : .....
대성 : (잠시 멈칫.... 얘가 내 새끼일까 하는 마음이 아주 조금)...
은조 : .....
대성 : (다잡고, 철썩)
은조 : .....
대성 : (철썩)
은조 : .....
대성 : (철썩)
은조 : ......
대성 : (당황스럽다).....(멈칫했다 철썩)
은조 : .....
기훈 : (저게 미쳤나...)
대성 : (철썩)
은조 : .....
대성 : (철썩)
은조 : .....
효선 : (얼굴이 점점 하얗게 질리는)
대성 : ..... (철썩, 철썩, 철썩, 철썩.... 회초리 뚝 부러진다)
은조 : .....
기훈 : (노래진다)
대성 : ...... 잘못 안했니?
은조 : ......
효선 : (은조를 본다. 무섭다)
기훈 : 사, 사장님,
대성 : (회초리 또 한 개 집어든다)
기훈 : (은조를 본다, 너 미쳤니? 하는 안타까운 얼굴로)
S#16. 안방 (밤)
강숙, 수화기 귀에 대고, 지겨워죽겠단 얼굴을 하고 있다. 수화기 속에서 어버버한 노래소리 들리고 있고.
S#17. 털보장씨 방 (밤)
술이 억병으로 취한 장씨, 전화에 대고 나에게로 돌아와달라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
빈 소주병 막걸리병이 스무 개는 구르고 있다.
정우, 한심하다는 듯 장씨를 바라보고 있다. 정우 옷에 땟국물이 줄줄 흐르고....
장씨의 노래가 고음으로 올라가자 정우, 더는 들어줄 수가 없다.
S#18. 안방 (밤)
강숙이 들고 있는 수화기 속에서 재애앵---- 하는 소리가 들린다. 장씨 노래는 뚝 끊긴다.
강숙 : ?
S#19. 털보장씨 방 (밤)
장씨 기절해있고, 정우, 무쇠프라이팬 한 손으로 들고, 한 손으로는 장씨 손에서 수화기를 뺏어서 자기 귀에 댄다.
정우 : 인자 주무시이소 마. 엥간-하모 전나번호를 바까뿌이소. 끊심니데이.
정우, 전화 끊고, 발로 빈 술병 치우면서, 이불 끌어 장씨 위로 덮어버린다.
S#20. 대청 (밤)
강숙이 대청 끝에 서서 할머니들을 내려다보고 서 있고,
꽃님 : 얼른 가봐요 점, 사랑채에.
순분 : 죽지 않을라나 몰러 오널밤에.
강숙, 얼른 대청 밑으로 내려선다.
S#21. 사랑채 마당 (밤)
서재 쪽에서 철썩 철썩, 끝없는 철썩 소리.
S#22. 서재 안 (밤)
회초리가 여러 개 부러져 있고, 효선, 구석에서 바르르 떨고 있고, 은조 종아리는 참담하고, 그래도 은조는 꿈쩍도 않고,
대성이 은조를 원망스러운 눈으로(왜 잘못했다고 안해주나) 올려다보더니 다시 회초리 한 개를 집어드는데,
보다 못한 기훈, 대성에게서 회초리 빼앗아 던지고는, 은조의 손목을 틀어쥐고 밖으로 뛰어나가려는데,
은조, 걸을 수 없다, 주저앉아버린다. 그래도 질질 끌다시피 사라져버리는 기훈.
대성 : (패닉) .......
S#23. 사랑채 마당 (밤)
기훈, 은조를 끌고 바깥채로 향하는 문으로 빠져나가고, 이어 안채에서 연결되는 문 열리고 강숙이 들어와 서재로.
S#24. 서재 (밤)
대성, 부러진 회초리들을 초점없는 눈으로 보고 있다. 효선, 구석에서 바들바들. 강숙, 들어선다.
강숙 : ..... 여보.....(하다가 갑자기 고함치듯이) 효선아!!
대성 : (멍하게 고개 들어서보면)
효선 : (앉은 채로 옆으로 천천히 쓰러지고 있다. 기절 중)
강숙 : (달려와 효선을 받아안으며) 효선아!
S#25. 술 발효실(밤)
기훈이 책상으로 던져줬던 그 선반에 걸터앉아있는 은조.
답답하고 화가 난 듯한 기훈이 은조 앞을 왔다갔다....하다가 휙 하고 은조를 본다.
기훈 : 넌.... (다시 왔다갔다하다가) 넌 무슨 애가....(또 왔다갔다) 에이 씨! 너 돌머리지? 미련곰탱이지?
잘못했다구 한 마디만 하면 될 걸 어쩌자구 그걸 안해서....(왔다갔다....하다가 은조 앞으로 와서) 어디 맞은 데 좀 봐.
은조 : (가만히)...
기훈 : 어디 좀 돌아 앉아봐!
은조 : (가만히)...
기훈 : (억지로 보려다가, 그럴 순 없고, 정신없이 화가 나서) 그래, 니가 내 말을 듣는 새끼였으면 사장님한테 그렇게 맞지두
않았을 거다. 니가 내 말을 듣는 놈이면 무릎에 유리조각 박아놓구 눈물 한방울 안 흘리구 독하게 그러지두 않았을 거구.
약 갖구 올 테니까 바르든지 말든지, 맞아 죽든지 굶어 죽든지 니 맘대루 해!
기훈, 문 쾅 닫고 나간다. 정적.
은조, 종아리 상처를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터져있고, 피도 말라붙어 있다.
갑자기 어디선가 뽀그락.. 하는 이상한 소리, 들릴 듯 말 듯. 다시 뽀그락..
은조, 소리나는 쪽으로 고개 돌린다. 보글. 뽀그락 퐁. 풍. 뽁.
은조, 일어서는데, 휘청, 하며 주저앉는다. 잘 걸을 수 없다. 또 보글. 퐁. 소리 난다. 항아리에서 나는 소리다.
은조, 절뚝거리며 항아리로 간다. 퐁 소리 조금 크게 난다. 은조, 항아리에 귀를 댄다. 뽀그락 퐁.
다른 항아리에서도 퐁 하고 소리가 난다. 은조, 그 항아리에도 귀를 댄다. 퐁 소리 크게 난다. 은조가 깜짝 놀랄 정도로.
맞은 건 다 잊어버리고, 호기심으로 눈이 똘망해져서, 무릎 아래를 바닥에 대고(다리가 니은자가 되도록) 앉는다.
항아리에 귀를 바짝 대고, 자세히 그 소리를 듣는 은조. 뽀그락.뽀그락.뽀그락.뽀그락.뽀그락.뽀그락.......
그런데 다리 쪽이 이상하다. 은조, 문득 따끔한 느낌에 움찔하며 고개를 뒤로 돌려본다.
기훈이 쭈그리고 앉아서 은조의 종아리에 약(*양약 말고 된장(?)이나 뭐 그런 거. 민간요법 찾아주세요)을 바르고 있다.
기훈 : 술이 익을 때 그런 소리가 나는 거야.
은조 : ......
기훈 : 맞지 마라.
은조 : ......
기훈 : 맞더라두 도망쳐. 너 도망 선수잖아.
은조 : ......
기훈 : 한 번만 더 똥고집으루 사람 속 태웠다간 정말 죽는다 너..
은조 : ......
기훈 : ......
은조 : ......
기훈 : 은조야....
은조 : ......
기훈 : 대답 좀 해주지....
은조 : ......
기훈 : 은조야....
은조 : .....
기훈 : .....
은조 : 응.....
기훈 : ..... 아프지.....
은조 : ..... 응.....
기훈 : (몸을 잔뜩 낮추고, 입술을 동그랗게 말아 호- 하고 상처에 분다. 호- 호- 호-)
이 항아리에서 뽀그락 퐁, 저 항아리에서 보글보글, 여기서 저기서 뽀그락 뽕 하는 소리, 악기 소리로 바뀌어 들린다.
은조는 항아리에 귀를 대고, 기훈은 그런 은조의 종아리에 호 불어가며 약을 바르고
항아리들에서 나는 소리는 오케스트라 연주로 바뀌고 있다.
그 연주에 맞춰, 기훈과 은조는 항아리와 함께 그 자세 그대로 동그란 비눗방울 안에 갇힌다.
비눗방울이 동실 동실 떠오른다. 발효실의 항아리들이 점점 아래로 보인다.
S#26. 도가 지붕 위 / 밤하늘 / 달
기훈+은조+항아리 비눗방울이 지붕을 뚫고 둥실둥실 떠오른다. 천천히 날아오른다. 날아오르는 비눗방울 위로
은조(N) : 종아리가 하나도 아프지 않다. 피가 났는데도 아프지 않다. 왠지는 나도 모른다.
그냥 내 마음이 하늘 끝까지 날아올라 달까지도 가겠다.
날아오르던 비눗방울이 노란 달 안에 들어가 박힌다. 대성도가도 운학루도 까마득한 지상에 있다.
S#27. 운학루 마당 (밤)
인서트
S#28. 안방 (밤)
강숙, 잠든 효선의 이마를 짚어본다. 대성, 면벽하고 앉아있다.
강숙 : 열 내렸어요.
대성 : ......
강숙 : 여보....
대성 : 은조한테 좀 가봐요.
S#29. 효선과 은조의 방 (밤)
은조, 이불 못 덮고(다리에 쓸리면 아프니까), 엎드려 잠들어있다. 문 열리고, 대성 들어온다.
은조, 이상한 기척에 눈을 번쩍 뜬다.
대성이 거즈에 치자와 술을 갠 것을 발라 은조의 종아리에 붙이며,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 있다.
은조 : ......
(F. O)
S#30. 기훈의 방 아침
기훈 잠들어있다. 방문 열리고 해진이, 눈꼽도 못 떼고 머리가 수세미가 된 채로 쑥 들어와 기훈을 깨운다.
해진 : (흔드는) 어이, 알바. 알바!!
기훈 : (힘들게 눈 뜬다) 예,
해진 : 좀 일어나봐.
기훈 : (일어나 앉는다)
해진 : 지금 여기 마나님이 어디 절에를 좀 다녀오신다는데, 좀 뫼셔다주고 올라나? 우리 형님은 나버러 가라시는데,
아니 으떻게 효선이 외삼 촌버러 자기 새...
기훈 : (웃옷 찾아 팔 꿰며) 예, 다녀올게요. 그런데 어딜 가신다는 거예요?
해진 : 내가 가기 싫어서가 절대 아니에요. 입장이라는 게 있구 관계라는 게 있는 거잖아. 응?
(아예 자리잡고 앉으며 수다가 늘어질 기센데)
은조(E) : 큼! (헛기침소리)
기훈 : ?
해진 : 아 나 또 까먹고 있었네, 애나 으른이나 할 거 없이 사람을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소부리듯 부리기나 하구 말야.
아 뭐 해? 바깥에 쟤가 너 불러달라구 나버러 이리 가라 저리 가라,
기훈 : (이미 나가고 없다)
S#31. 기훈 방 앞
마당 기훈 나오면, 바지 입은 은조가 서 있다. 기훈, 은조에게로
기훈 : 나 불러달랬어? 종아린 괜찮아? 그렇게 입으면 상처 쓸리지 않아?
은조 : 어제 강가에서 까불던 그 여자 누구야?
기훈 : ...... 뭐?
은조 : 물어보기 쑥같으니까 자꾸 뭐? 뭐? 하구 되묻지 말구 대답하란 말야. 어제 강가에서 까불던 그 여자 누구냐구.
기훈, 가만히 은조를 보다가, 미소 짓는다. 점점 이를 많이 드러내며 크게 미소.
은조 : 뭐야? 뭐 뜯어먹을 게 있다구 웃어?
기훈 : 그거 물어보려구 아침 댓바람부터 찾아왔어? 궁금해서 밤새 한잠두 못잤어? 그래?
은조 : (노려보는데)....
기훈, 기분이 좋다. 째지게 좋다. 하- 입이 벌어지는 걸, 손으로 꿰매는 시늉. 그래도 우두둑 뜯어지는 시늉....
은조, 뭐냐? 하는 얼굴로 뚱하게 보고 있다.
S#32. 기훈 방
혼자 철퍼덕 앉아서 주절거리고 있는.
해진 : .... 그러니까 죽은 우리 누나만 불쌍하지, 덜렁 두 알밖에 없는 구대성씨한테 시집와 고생고생 그 고생을 하다가
좀 살 만허다아 싶으니까 덜컥 병이나 얻구,
기훈 : (들어온다)
해진 : (그러거나 말거나) 그러다 덜컥 누나가 가버렸네? 아 갈 데가 있어야 딴 델 가지.
그러게 우리 아부지가 사단이에요. 우리 아부지가.
기훈 : (종이가방 꺼낸다)
해진 : 선산까지 홀랑 팔아먹어버리구 뭘 남긴 게 있어야 내가 그걸 갖구... (끝나지 않을 것 같다)
기훈 : (종이 가방 들고 나간다)
S#33. 대성의 서재
기훈, 전축 앞에 앉아서 종이가방 속의 물건들을 꺼내고 있다. LP판 몇 개, 화집 몇 개, 만년필케이스가 그 속에서 나온다.
은조, 문간에 서서 그런 기훈의 뒤통수를 바라보고 있다.
기훈 : 와.
은조 : ....
기훈 : (돌아보며) 나두 쑥같으니까 자꾸 똑같은 말 하게 하지 말구 오라구.
은조 : (온다. 힘들게 앉는다)
기훈 : (흘긋 보고) 고생 좀 할 거다. (정경화 데뷔앨범, 자켓에서 꺼내 턴 테이블에 올린다. 음악 시작되면)
이게 한국이 낳은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의 데뷔앨범인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반이거든?
너 정경화가 이 차이콥스키 바이얼린 협주곡을 녹음한 게 몇 살 때였는지 알아? (하고 보면)
은조 : (기훈이 꺼내놓은 다른 물건들 이것저것 만지고 있다)
기훈 : 어 그건 뭐냐면 또 내가 두 번째로 좋아하는 음반인데,
은조 : (화집 뒤적거리고 있다)
기훈 : 어 그건 내가 제일 좋아하는 한국의 위대한 화가 손상기 화백 도록인데, 손상기의 삶은 마치,
은조 : (만년필 케이스 열어보려고 이리저리 애쓰고 있다)
기훈 : (전축 꺼버리고) ..... 야!
은조 : (만지던 것 툭 던져놓고)
기훈 : 사람이 말을 하면 좀 들어 임마!
은조 : 그 여자 누구냐구?
기훈 : 누구긴 누구야? 기숙사에서 나올때 이 물건들 맡아줬던 내 친구 동생이다! 친구가 군대가구 없어서 동생이 대신 왔다 왜!
은조 : 됐어 그럼. (힘들게 일어나서 문으로)
기훈 : ? ..... 얌마!
은조 : (문 여는데)
기훈 : (벌떡 일어나서) 넌! 넌 동수 그 놈이랑 정말 사귈 거냐?
은조 : (대꾸 없이 문 닫고 사라진다)
기훈 : 저게 진짜.....! 쪼끄만 게 까불구 있어!!
S#34. 은조와 효선의 방
은조 들어오면, 효선, 말짱한 얼굴로 책가방 챙기고 있다. 은조, 자기도 책가방 챙기기 시작한다.
효선 : 사이좋은 척 해.
은조 : .....
효선 : 엄마 아빠 앞에서만 사이좋은 척하구 째끔만 버티면, 니 방으루 이사가두 된다구 허락하실 거야.
은조 : .....
효선 : 사람이 무슨 말을 하면 대답을 좀 해!!
은조 : 알았어. 그렇게 해. (교복 꺼낸다)
효선 : (휙 노려보다가.... 점점 눈에 힘이 빠진다. 교복 치마 아래로 드러나는 은조의 종아리, 맷자국 참담하다) .....
(갑자기 장농 문 열더니 새 스타킹(까만색) 꺼낸다. 은조에게 스타킹 휙 던져놓고 방문 꽝 닫고 나가버린다)
은조 : (스타킹 보며) ..... (그 스타킹 효선의 장농으로 다시 휙 던져넣고, 자기 서랍에서 자기 스타킹 꺼낸다)
S#35. 차고 앞
기훈, 대성의 자동차 뒷문을 열어주면, 강숙, 올라탄다. 지켜보고 있는 대성.
기훈 : 다녀오겠습니다.
대성 : (끄덕) 아침은 먹었니?
기훈 : 예. 전 먹었습니다. (운전석으로)
대성 : (강숙에게로) 아침이나 먹구 가지....
강숙 : 절에 가서 먹을게요.
대성 : (끄덕... 문 닫아준다)
기훈, 차 출발시킨다. 보고 있다가 대문 쪽으로 가는 대성.
S#36. 대청마루
대성과 은조와 효선이 밥상 앞에 앉아있다. 꽃님이 밥상 가운데에 찌개를 올려놓고, 순분이 숭늉을 올려놓고 나간다.
대성 : .... 먹자. (숟가락 든다)
효선 : (숟가락 들며, 아빠 눈치 흘금 보고, 국어책 말투로) ... 언니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은조 : ....
대성 : ....
효선 : (밥상 밑으로 은조의 무릎을 숟가락으로 쿡 찌른다)
은조 : (휙 보면)
효선 : (너도 빨리 해, 라고 얼굴로 윽박지른다)
은조 : .... (하는 수 없이, 국어책) 아니야. 내가 미안해.
대성 : (아이들을 보는)
아이들 : (서둘러 밥 먹는)
S#37. 학교 가는 길
은조와 효선, 따로따로 가고 있다. 동수, 은조와 효선을 발견한다. 화들짝 놀라서 멀--리 돌아가는 동수.
S#38. 대성도가 마당
대성, 마당 안으로 들어서면, 해진과 일꾼들이 나오셨냐 인사한다.
대성, 끄덕이고 사무실 쪽으로 가다 문득 멈춘다. 기훈이 저쪽에서 일하고 있다.
대성 : ? 너 왜 여깄어?
기훈 : (보고) 아. (달려와서) 기차 타구 혼자 가시겠다구...
대성 : ?
기훈 : 절까지 모셔다드리겠다구 아무리 우겨두 완강하셔서요...
대성 : .... 그래?.... 알았다. 일 봐.
기훈 : 예. (간다)
대성 : (갸웃하며 사무실로)
S#39. 사무실
대성, 전화를 받고 있다.
대성 : 축국문 때문에요..... 예, 이번에두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제가 재주가 있어야 글씨를 쓰죠,
늘 써주셨던 대루 써주시기만 하면 황 감하게 읽겠습니다. 제 새 식구한테 들려보내 주세요 스님....
(얼굴 의아하게 변한다) ...예? 안갔어요?.....
S#40. 달리는 기차 안
강숙, 복잡한 얼굴로 앉아있다.
강숙 : ..... 에라, 나두 모르겠다.
옆승객 : ?
강숙 : 모르겠다.... (창에 머리를 기댄다) ....
S#41. 기훈의 방
기훈, 스페인어 동영상 틀어놓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동영상 강사가 다음 시간에 보자고 굳바이인사하면, 기훈, 동영상 다음트랙으로 넘겨 다음 과 실행시킨다.
기훈 : 제 학생이 진도가 너무 빨라서요, 저는 훨씬 더 많이 공부해놔야 해요 선생님.
다시 공부에 열중하는 기훈과, 공부한 분량이 점점 많아지는 페이지들 계속 디졸브된다.
방문 열리고, 해진이 고개를 들이민다.
해진 : 어이 알바.
기훈 : 예 형님.
해진 : 손님 오셨다? 누구야? 초록은 동생(동색을 잘못말하는)이라구, 너 왕년에 끔 좀 씹고 다녔어?
기훈 : ?
S#42. 도가 앞
기훈 나오면 요란한 복장에 펑크머리로 단장한 기태가 스포츠카 안에 앉은 채로 기훈을 향해 핼로- 인사한다.
기훈 : ......
S#43. 도로
기태, 기훈을 스포츠카에 태우고 씽씽 달린다.
기훈 : 어디 가는 거냐구요!
기태, 갓길에 폭력적으로 차를 세운다. 기훈과 기태의 몸이 휘청한다.
기태 : 내가 너한테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세 가지 액체가 든 병을 딱 준다 이거야. 너는 궁지에 몰릴 때마다 한 가지씩
땅에 던져서 깨뜨려요. 그리고 깨진 병에서 연기가 폴폴 피어오르면서 니 목숨을 구해 주는 거야.
기훈 : ?
기태 : 내가 옛날에 아부지랑, 너랑 니 엄마 살던 그 집에 잠깐 갔던 기억이 분명히 있다 이거지.
니 책장에서 분명히 그 동화책을 꺼내서 읽었다 이거지. 그때 니넘마가 구워준 고구마두 맛있었구.
기훈 : 무슨 말이에요?
기태 : 야, 내가 말야, 그런 테마파크 주인이 되면 어떻겠냐?
애들이 거기 와서 동화책에 있는 걸 그대루 경험하게 하는 거야, 응? 죽이지 않냐? .... 안 죽이냐?
기훈 : .....?
기태 : (시동 걸며) 근데 왜 우리 엄마랑 기정이형은 내가 이 말만 하면 날 죽이려 드냐고요.
내가 디즈니랜드보다 더 잘 지을 수 있는데 말야. (부아앙- 출발한다)
S#44. 도서관 서가
은조, 서가 시옷칸을 살펴보고 있다. 찾았다. <손상기 도록>
S#45. 도서관 열람실
도록의 그림들을 보고 있는 은조.
S#46. 무용학원
선생님 지도에 따라 레슨받고 있는 효선.
효선, 36회전 푸에떼(*할 수 있는 것으로 대체해도 됨) 도중에 실패하고 엎어진다.
선생님 : 후우....... 어떻게 단 한 번을 성공을 못하니?
효선 : (올려다보며) 선생님, 제가 오늘 컨디션이 너어-무 안좋아서 그러는 데요, 집에 가면 안돼요?
선생님 : 콩쿨! 콩쿨 어쩔 거야!
효선 : 으으으응... (삼종세트 중 2번)
선생님 : (기막혀서)....
S#47. 운학루 대문 앞 (밤)
택시 와서 선다. 강숙 내린다.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대문 밀고 들어가는 강숙.
S#48. 마당 (밤)
강숙 들어서면, 마당에 서 있는 대성.
강숙 : (아무렇지도 않게) 좀 늦었어요. 왜 나와계세요? (들어가는데)
대성 : 어떻게 된 거예요? 하루종일 전화두 안 받구.
강숙 : (멈칫했다가) ...그럴 일이 있었어요. (들어간다)
대성 : ......
S#49. 안방 (밤)
보고 있는 대성. 옷 바꿔입고 화장대 앞에 앉아 클린징크림 뚜껑 여는 강숙.
대성 : 어디 갔었어요?
강숙 : (손가락으로 크림 푹 찍다 말고 보면서) 절에 다녀왔잖아요 여보.
대성 : ......
강숙 : 일손두 딸리는데 기훈이학생을 데려가기가 당신한테 미안해서 기차 타구 갔다왔어요.
강숙, 거울 쪽으로 돌아앉아 얼굴에 크림 바르는데, 눈은 거울 속으로 보이는 대성의 모습을 주시한다.
대성의 옆얼굴이 굳어있다. 그 얼굴을 살피며 마침내 판단을 끝낸 강숙, 티슈 한 장 톡 뽑아서 크림 닦아낸다.
또 한 장을 톡 뽑아서 눈에 댄다. 그리고 흐느낀다.
대성 : (보며).....?
강숙 : 미안해요.... 거짓말했어요.....
대성 : ......(의혹이 맞았단 말인가)...
강숙 : (대성 보며) 당신 원망하려는 게 아니니까 오해하면 안 돼요. 은조 종아리를 보니까.... 장독이 시퍼렇게 오른게.....
대성 : ......?
강숙 : (눈물 뚝뚝 떨구며) 당신이 미안해할까봐 절에 간댔던 거였어요. 종아리가 그 정도면 분명히 많이 놀랐을 텐데....
놀랐을 때 그냥 내버 려두면.... 애가 곧 어디가 탈이 나더라구요. 탈 날까봐.... 어릴 때부터 은조 약 지어주던
한의원엘 갔는데, 한의원이 이사를 가구 없어서, 이사 갔다는 델 물어물어 찾아다니다....
대성 : (미안함과 죄책감으로) 미안해요.
강숙 : 아니, 아니에요. 당신이 그러실까봐 절에 간다는 거였는데, 거짓말이 서툴러서...
대성 :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강숙 : (도리도리) 아니에요....
대성 : (눈물 닦아준다) 미안해요....
강숙 : ......
S#50. 호텔 앞 (밤)
기태의 스포츠카가 호텔 현관 앞에 와서 선다.
대여섯 명의 보디가드가 일제히 기태의 스포츠카 앞으로 몰려와서 차 문을 열어준다.
기훈, 의아해하며 내린다.
기태 : 어이.
기훈 : (본다)
기태 : 거기서 살아나오면, 내가 빨간병 파란병 얘기 해줘서 그런 거니까 나한테 잘해라, 어? (하고 출발해서 사라진다)
기훈 : ......
S#51. 호텔 엘리베이터 안 (밤)
기훈, 보디가드들에게 둘러싸여져서 올라가고 있다.
어떤 층에 엘리베이터 멈추면 보디가드 한 명이 리더기로 신원을 읽혀서 엘리베이터 문을 연다.
S#52. 복도
기훈, 보디가드들에게 둘러싸여 엘리베이터에서 내린다.
엘리베이터 앞에서부터 어떤 객실 앞까지, 위협적으로 도열해있는 다른 검은양복들.
기훈 : ......
S#53. 스위트 객실 안
안내하는 검은양복을 따라 객실 안 통로를 구불구불 돌아서 기훈 들어오면,
기태모와 변호사 한 명이 테이블 위에 종이 한 장 놔두고 앉아있다. 검은양복들, 기훈을 데려다놓고 사라진다.
기태모 : 문구는 작성했으니까 읽어보구 사인해라.
기훈 : (테이블 위의 종이를 본다. 상속포기각서다)
기태모 : 뭐하니?
기훈 : .....
기태모 : 그래. 니가 조건없이 도장을 찍을 거라군 생각 안했다. 조건이 뭐니?
기훈 : .....
기태모 : 생각해둔 게 있을 거 아냐. 조건이 뭐야.
기훈 : ..... 홍주가 절반 주실래요?
기태모 : (검지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피차 빨리 끝내자.
오면서 상황은 봤을 테니 시끄럽게 굴면 어떤 사태가 생길지 짐작이 갈 거구,
니가 생각하는 단위보다 공 하나는 더 붙여서 줄 테니, 괜히 한 푼이라두 더 얻어낼까 해서 버틸 시간을 아끼렴.
기훈 : ......
기태모 : 하. 홍주가 절반? 니 엄마야 그런 생각으루 널 낳았겠지만 젊은애가 땀 한 방울 안 흘리구,
기훈 : 우리 어머닐 입에 담지 마세요 사모님.
기태모 : (날카롭게 본다) 여왕이라두 되니? 입에 못 담게? 니 엄마만 아니었으면,
기훈 : 입에 담지 마시라구요!
기태모 : 어디서 언성을 높여!
기훈 : (변호사에게) 변호사시죠?
변호사 : (기태모를 한번 보더니, 기훈을 향해 끄덕)
기훈 : 이제부터 제가 하는 말 녹음하세요.
변호사 : ?
기훈 : 이런 자리가 필요하면 다음에 저두 제 변호사를 선임해 동석시켜 진행하도록 하죠.
기태모 : (피식)
기훈 : 참고루 말씀드리면 이런 식으루 상속포기각서에 강제루 싸인할 생각 전혀 없습니다.
기태모 : (손톱으로 톡톡-기정이가 차 유리창을 톡톡, 했듯이- 테이블을 두들기면)
보디가드들 : (몇 명 나타나 가까이 온다. 위협적이다)
기훈 : 혹시 나한테 손을 댈 생각이면, 신경을 완전히 끊어놔 못움직이게 만들거나, 아예 죽여놓는 게 좋을 거예요.
기태모 : ?
기훈 : 어설프게 살아서 여길 기어나가 신문사나 방송사루 직행할 놈이거든요 저는.
기태모 : 하.
기훈 : 못할 거 같으세요? 해요. 열 번두 백 번두 해요. 엄만 작부취급당했구 아들은 쓰레기취급 당했는데,
더 이상 떨어질 데가 어딨다구 못 하겠어요.
기태모 : 협박하는 거니?
기훈 : 맘대루 생각하세요.
기훈, 돌아서서 나간다. 보디가드들 달라붙는다.
기훈 : 나 죽여놀 자신들 있어요?
보디가드들 : (기태모를 본다)
기태모 : (변호사를 본다)
변호사 : (그러지 마세요, 도리도리)
기태모 : (톡톡)
보디가드들 : (길 비켜준다)
기훈 : (지나간다)
S#54. 복도
기훈 객실에서 나와 엘리베이터 쪽으로. 보디가드들 길 터준다.
기훈 : .....
S#55. 호텔 로비
기훈,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창백하게 굳은 얼굴로 휴대폰 꺼낸다.
S#56. 홍회장 집무실
홍회장, 수화기를 귀에 대고 있다.
기훈(F) : 어떻게 도와드리면 돼요?
홍회장 : ......
S#57. 달리는 기차 안
기훈, 유리창에 머리를 기대고 있다.
기훈(E) : 어떻게 도와드리면 되냐구요!!
기훈 : ......
S#58. 누룩발효실 (술 발효실과 다른 겁니다)
- 발효 선반에 짚을 까는 일꾼들.
- 그 위에 성형한 누룩을 줄줄이 늘어앉히는 일꾼들.
- 마지막 선반까지 모두 다 채우고 모두 밖으로 물러나간다.
- 들어오는 한복 두루마기차림의 대성. 선반이 모두 찬 것을 둘러본다. 경건해보인다.
S#59. 누룩발효실 앞
대성이 발효실에서 나와서 문을 닫는다.
발효실 앞에 고사상 차려져 있고, 대성도가와 운학루의 모든 가족들이 모두 다 깨끗하게 차려입고 그 앞에 서 있다.
강숙과 은조, 효선과 기훈, 해진, 부엌할머니들까지 모두.
해진이 금줄을 가져와 대성에게 한쪽을 건넨다. 대성과 해진, 발효실 문에 금줄을 건다.
고사상 앞으로 오는 대성. 대성과 모든 사람들이 절한다 (두 번).
대성 혼자 고사상 앞에 무릎 꿇고 앉아, 두루마기 소매 속의 축국문을 꺼내 펼친다.
대성 : (축국문 읽기 시작한다) 동방은 청제토공 청제위신, 남방은 적제토 공 적제위신, 서방은 백제토공 백제위신,
북방은 흑제토공 흑제위신, 중안은 황제토공 황제위신,
S#60. 몽타주
- 곡물자루를 뜯어 커다란 자배기에 쏟아붓는 일꾼들. 통밀이 자배기에 들이부어진다.
그런 자배기가 여러 개다. 2인1조나 3인 1조쯤. 해진과 기훈도 한 조다.
대성(E) : 임오년 4월 8일, 주인 구 대성은 삼가 오방오토의 신께 여쭈고,
- 맷돌이나 방아에 통밀을 빻는 일꾼들.
대성(E) : 누룩 수천 수백 덩이를 만듭니다.
- 일꾼들이 거칠게 빻아진 통밀에 물을 붓고 섞어 반죽하면, 대성, 반죽을 손에 쥐어 체크한다.
대성(E) : 길을 가로 세로로 내어 경계를 만들고, 다섯 국왕을 세워 각각 봉경 에 배치하고, 술과 포를 올리며 청하옵니다.
- 대성, 도가 일꾼들 단체 세족식
대성(E) : 벌레들은 자취를 없애고 쓸데없는 기운들은 흔적도 없이 하소서.
- 천을 깐 누룩틀에 반죽을 담아 발뒤꿈치로 꾹꾹 눌러 밟는 일꾼들
대성(E) : 마시면 군자에게는 취하게도 깨게도 하고
- 그렇게 밟은 누룩틀에서 천과 함께 빼낸 누룩 성형들....
대성(E) : 소인에게는 공손해지게도 조용해지게도 하도록 몇 번이고 삼가 여쭙니다.
S#61. 누룩발효실
늘어앉혀져 있는 누룩들 위에
대성 : 이 말씀은 거짓도 허위도 아니오니, 신이시여 이것들 들으시고
S#62. 발효실 앞
은조, 축국문을 읽어내려가는 대성을 바라보는 시선에, 처음으로 어른에 대한 존경이 묻어있다.
대성 : 복의 명계로부터 응하시어 사람의 소원이 다름 아니길 영원토록 기원하옵니다.
다같이 두 번 절하는데, 기훈은 우뚝 서서 은조만 보고 있다. 기훈, 너무나 복잡한 얼굴이다.
은조, 진지하게 절 하고 일어나다가 문득 기훈을 본다. 눈 마주치는 두 아이.
대성, 축국문을 태운다. 타들어가는 축국문을 바라보는 은조, 효선, 기훈.....
기훈, 축국문에서 다시 은조에게로 복잡한 시선. 은조, 그런 기훈을 본다. 두 아이의 시선이 얽힌다.
효선, 그런 두 아이를 본다. 갑자기 기훈의 팔짱을 끼고, 한 손으로 기훈의 얼굴을 잡아 대성 쪽으로 돌리는 효선.
S#63. 교실
은조, 담임선생님이 건네준 상과 상패를 들고 무덤덤한 얼굴로 자리로 돌아온다. 아이들 박수친다.
담임선생님 : 송은조는 교내 수학경시대회에서 일등을 했으므로, 다음달에 있을 전국 수학경시대회에 출전하게 된다.
아이들, 박수친다. 은조 얼굴에는 아무 표정이 없다. 효선의 자리는 비어있다.
S#64. 시민회관 앞 (콩쿨 현수막이 걸려있는, 인근 소도시의 시민회관)
엉엉 울며 계단을 내려오는 효선. 강숙, 그런 효선을 달래고 있고, 대성, 웃음을 애써 참으면서 뒤따라 내려오고 있다.
그 뒤를, 한숨 푹푹 쉬며 따라내려오고 있는 레슨선생님도 보인다.
수상자로 보이는 가족이 왁자하게 웃으면서 효선 옆을 지나간다. 효선이 더 크게 운다.
강숙 : 괜찮아, 다음에 일등해버리면 되잖아 울애기?
효선 : 나 원래 뿌에떼 잘하는데에에--- 나 원래 잘하는데에에--
강숙 : (눈물 닦아주며 쭈쭈쭈쭈...)
S#65. 운학루 앞
집이 가까워올수록 걸음이 절로 빨라지는 은조. 가방 밖으로 상패가 삐죽 나와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지만, 사실은 흥분한 은조.
S#66. 마당 대문
벌컥 열고 들어오는 은조. 와하하하하하하- 하는 단체 웃음소리.
효선이 콩쿨에서 어떻게 뿌에떼에 실패했는지를 재연하고 있는 중이고, 운학루와 대성도가 식구들이 모두 모여 관람 중,
기훈, 희미하게 웃으면서 그런 효선을 보고 있다.
효선 : (아까 울던 건 흔적도 없다. 신나서 떠든다) 내가 원래요, 이걸 정말 잘해서 우리 레슨선생님두
맨날맨날 칭찬만 해주셨거든요. 제가 평소에 연습할 때는요, 이렇게 딱 준비동작을 하구,
뿌에떼 해보이는 효선.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효선의 몸이 빙빙 도는 대로 따라가는데, 아이쿠! 하는 사람들.
착지에 실패해서 또 엎어진 효선. 와하하하 웃는 사람들. 기훈, 피식 웃는다. 강숙도, 대성도, 아무도, 은조를 보지 못한다.
은조 : (삐죽 나온 상패를 한 손으로 만지며) ......
조용히 자기 방 쪽으로 움직이는 은조 위에.
은조(N) : 상관 없다. 나는, 딱 한 사람한테만 칭찬받고 싶었을 뿐이다.
자기 방으로 가며 기훈의 팔뚝을 툭 치고 가는 은조.
기훈 : ? (뒤통수에 대고) 언제 왔어?
은조 : (손가락으로 담장 너머를 가리키고 자기 방으로)
기훈 : ??
S#67. 술발효실
은조, 옷 갈아입고, 상장과 상패 들고, 기다리고 있다. 기훈 들어온다.
기훈 : (담장 너머를 가리키던 은조의 손가락질 흉내내며) 이게 여기였어? 무슨 말인지 몰라 한참 찾았,
은조 : (기훈 눈 앞에 상장과 상패 쑥 내민다)
기훈 : ?
상장과 상패 읽어보는 기훈. 은조를 본다. 은조, 아무 표정없이 항아리를 보고 있다.
기훈, 활짝 웃는다.
기훈 : 잘했어! 너, 정말 잘했다. 이야, 우와, 진짜진짜 잘했다 은조야!
은조 : ....
기훈 : (갑자기 와서 은조의 머리를 손으로 마구 헝클듯 쓰다듬으며) 어유 우 기특한 것!
갑자기 뽀그락뽀그락 술 익는 소리. 은조, 기훈의 손에 들려있는 상장과 상패 도로 가져와서, 아무 표정 없이 밖으로 나간다.
나가는 은조를 보며 기훈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진다.
S#68. 술 발효실 앞
은조, 발효실을 나와서 가면서, 웃고 있다. 웃는 게 어색해서, 아주 이상한 웃음이다.
기훈, 뒤따라나온다.
기훈 : 은조야!
은조 : (웃음 싹 거둔다)
기훈 : 선물 줄게. 따라와. (앞서서 가는)
S#69. 기훈의 방
만년필 케이스 열어서 케이스째 은조에게 건네는 기훈.
기훈 : 봤지? 이거 이렇게 여는 거다?
은조 : (받고, 기훈을 본다)
기훈 : 아주 오래된 거야. 아마 너보다두 나이가 많을 걸?
은조 : (만년필 본다)
기훈 : 내가 아주 잘, 길들여놨어. 너한테 주려니까 아까워서 손이 부들부들 떨리긴 하는데,
대신 니가 이걸루 일기두 쓰구, 편지두 쓰구,
은조 : (케이스에서 만년필 꺼내 손에 쥐어본다)
기훈 : 그렇게 손에 쥘 때마다 날 생각해라.
은조 : (케이스에 도로 집어넣는다)
기훈 : 김 새네....
은조 : (만년필 주머니에 넣고 나가는데)
문 벌컥 여는.
효선 : 그러는 게 어딨어?
기훈 : ?
은조 : ?
효선 : 나는 왜 안 줘? 나두 무용대회 나갔다 왔는데, 왜 난 안 주구 얘만 줘? 오빠 까먹었어? 오빠 누구껀지 몰라?
효선, 은조 손 탁 쳐서 만년필 떨어뜨리고 쏜살같이 어디론가 도망간다.
기훈과 은조가 기막혀하고, 은조, 만년필을 줍는다.
S#70. 은조와 효선의 방 (밤)
효선은 잠들어있고, 은조, 스탠드 불빛 아래 앉아서 만년필에 잉크를 채우고 있다.
잉크병 뚜껑 닫고, 티슈로 만년필에 묻은 잉크를 닦아내고, 밑뚜껑 끼운다.
공책에 만년필로 한 획 그어보는 은조. 그리고 나서, “은조야”라고 쓴다. 기훈의 “은조야” 음성이 덮인다.
그 은조야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은조 ...... (F. O)
S#71. 운학루 마당
은조, 방에서 마당으로 책 들고 나온다. 대성, 호스를 둘둘 말아 정리하다가 은조를 본다. 은조, 엉거주춤하게 꾸벅 인사한다.
대성 : 잘 잤니? 일요일인데 늦잠 좀 더 자지않구, 왜?
은조 : (밖으로 나가려다가...문득 대성을 돌아보며) 술, 제대루 안익은 거 있어요.
대성 : ?
은조 : 맨 오른쪽, 뒤에서 두 번째 항아리, 망쳤어요.
대성 : ..... (호스 놓고 오면서) 니가 그런 걸, 알아? 어떻게?
은조 : 아무 소리두 안 나요.
대성 : (새삼스런 눈으로 은조를 보면서) ....그래, 확인해보마.
은조 : (가는데)
효선 : (대문 열고 시무룩해져서 들어오는) 효선이 왔다.....
은조 : (그런 효선 보고, 대문 밖으로 한 걸음 나가는데)
대성 : (효선에게) 기훈이 잘 갔어?
은조 : ? (휙 본다)
효선 : 잘 갔어... (하고 방 쪽으로)....
은조 : .....??????
S#72. 효선과 은조의 방
효선, 침대에 엎어져 버리는데, 은조 후다닥 들어온다.
은조 : 무슨 소리야?
효선 : (고개 돌려 보면서) 뭐가?
은조 : 어딜 가?
효선 : 누가?
은조 : (신경질이 빡 올라서) 갔다며!!
효선 : 글쎄 누가!!
대성 : (아이들 언성 높아지는 소리에 방 앞에 와 있다)
효선 : (얼른 친한 척) 언니 사랑해. 기훈오빠 군대 갔어.
은조 : ......
S#73. 기훈 방
은조, 확 문 열어본다. 기훈이 책상 위가 깨끗이 비어있고, 짐이 하나도 없다.
은조 : .....
은조(N) : 그 사람을 한 번도 불러보지 않아서, 그 사람을 누구에게 한 번도 설명해보지 않아서, 뭐라고 불러야할 지 모르겠다.
그 사람이 그 사람이지 그 사람이 그 사람 아니고서 다른 누가 된단 말인가.
S#74. 술발효실
은조 들어와본다. 여기도 비었다.
S#75. 운학루 앞길
은조 나와본다. 아무도 없다.
은조(N) : 말이 돼 이게?
S#76. 강가
은조, 돌밭을 뛰어 달려와본다. 아무도 없다.
은조(N) : 말이 돼?
털썩 주저앉는 은조.
S#77. 은조와 효선의 방
효선, 침대에 멍하게 앉아있다가, 주머니에서 반으로 접힌 편지봉투를 꺼낸다.
기훈(E) : 효선아, 이거 은조한테 좀 전해줄래?
S#78. 은조와 효선의 방
효선, 밝은 데에 대고 봉투를 비춰본다. 내용물 비친다.
효선, 노려보듯 그 봉투를 보다가, 손가락에 침을 발라서 붙인 곳을 뜯어내기 시도. 살살 뜯다가 북- 뜯겨버린다.
헉 놀라는 효선. 안에 든 편지는 찢긴 봉투 바깥으로 비죽이 비어져 나와있고.
효선, 망설이다 결국 그 편지를 펼쳐서 본다. 보는 순간, 효선의 얼굴이 알쏭달쏭.... 편지는 몇 줄의 스페인어로 되어있다.
효선 : ??????
S#79. 터미널 앞
은조, 버스에서 내려서 터미널 안으로 쏜살같이 들어간다.
S#80. 터미널 안
은조, 들어와 사람들을 살펴본다. 군대 가는, 제대한, 휴가나온, 휴가나왔다 들어가는 군인들 많이 보인다.
애타게 기훈의 모습을 찾고 있지만, 기훈은 보이지 않고....
S#81. 기차역 안
기훈의 등에 커다란 배낭, 침낭, 크로스로 맨 노트북 가방.... 기차 개찰이 시작된다.
기훈, 개찰구로 발걸음 천천히 옮기고 있다.
기훈(E) : 날 잡아줄래?
S#82. 터미널
사람들이 탄 버스가 줄줄이 떠나고 있다. 은조, 망연하다.
기훈(E) : 무릎에서 피가 철철 흘러도 못 우는, 바보 홍기훈 같은 은조야. 네가 잡아주면 여기서 멈출 수 있을 것 같다.
S#83. 기차 승강장
기훈,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승강장을 둘러보고, 기차 안으로 사라지는 위로
기훈(E) : 내가 기차에 타기 전에, 잡아줘....은조야....
기차 떠난다.
S#84. 강가
은조, 돌밭을 터덜터덜 걸어서 강가로 가고 있다. 눈에 눈물이 괴어온다.
털썩 주저앉는 은조, 눈물이 하염없이 뚝뚝 떨어진다. 자기 자신을 주체할 수 없어진 은조, 목구멍에서 간신히 나오는 소리로
은조 : ....... 은조야...... 은조야......
은조(N) : 그 사람을 뭐라고 불러본 적이 없어서 나는,
은조 : 은조야.... 은조야..... 은조야.....
은조(N) : 뻐꾸기가 뻐꾹뻐꾹 울듯이
은조 : 은조야.....
은조(N) : 따오기가 따옥따옥 울듯이
은조 : 은조야....
은조(N) : 새처럼 내 이름을 부르며 울었다...
은조 : 은조야.....
은조의 발밑 돌밭에 박혀서 삐죽 보이는 옥색 비녀, 강물, 강물에 비친 나무, 강물에 비친 하늘로
카메라가 천천히 은조에게서 멀어진다.
은조 목소리도 작아지다 사라지며 화면 F.O
S#85. 서울
강남의 거리 스케치된다.
자막 : 8년 후
S#86. 청담동 어느 건물 사무실 안
날렵한 단발머리의 은조,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앉아있다.
사무실의 남자가 <대성탁주>의 안내책자와, 미니어처 탁주를 앞에 놓고 앉아있다.
안내책자 읽어보던 남자, 책자 덮고 은조를 본다.
남자 : 언제 이쪽 공장으로 실사를 나가봐도 될까요?
은조 : (흥분을 감추고) 물론입니다.
남자 : (일어서며) 알겠습니다, 그럼 날짜를 정해서 전화드리겠습니다.
은조 : (일어선다) 날짜 정하지 말구 불시에 들이닥치세요.
남자 : 자신만만하시네요?
은조 : 설명이 긴 것보다 직접 보여드리는 게 나으니까요.
S#87. 그 사무실 복도
은조, 약간 상기된 얼굴로 사무실을 나와 복도 끝의 화장실 쪽으로 간다. 화장실로 들어가려다가 문득, 창밖을 본다.
맞은편 화랑으로 보이는 건물 앞에, <손상기 전시회> 알림판 보인다.
은조 : ......
S#88. 전시회장 안
관람객들 틈에 끼어서 그림을 훑듯이 보고 있는 은조. 그림 <따스한 빛> 앞에 멈추는 은조.
그림 속의 담벼락을 비추고 있는 햇살을 물끄러미 보고 있는데,
효선(E) : 기훈오빠는 그 그림 말구 이 그림이 제일 좋댔어.
은조, 휙 본다. 아름다운 처녀가 돼 있는 <영원한 퇴원>을 보며 서 있다.
효선 : (은조를 보지 않고 그림을 보며) 병원에서 돌아가신 오빠네 엄마 생각난다구,
도록에 있는 이 그림 진짜 한 십 분은 들여다보더라.
은조 : ...... 너 왜 여깄어?
효선 : (은조를 보며) 그림 보러 왔지. 언닌 여길 모르구 온 거야? 난 알구 왔는데.
은조 : .....
효선 : 몰랐어? 기훈오빠가 나한테 알려줬는데? 손상기전 한다구 가보라구.
은조 : ...... 뭐...라구?
효선 : 몰라? 우리 만나구 있잖아. 기훈오빠랑 나. (거짓말임)
은조 : ...... (창백해지는 데서)
(엔딩)